마지막한달4-엡4:29 성숙한 관계를 위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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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엡4:29
◉제목 : 성숙한 관계를 위한 싸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뭔지 아는가? “성숙한 관계를 위한 싸움”이라고 정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우리의 삶이 한 달 밖에 살 수 없다면 우리는 일보다 관계에 더 신경을 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좋은 관계도 있지만, 깨어진 관계, 회복해야 할 관계도 많은 게 사실이다. 오늘 말씀은 깨어진 관계, 갈등의 관계를 어떻게 풀 것이냐의 문제이다.
작년에 감동적으로 본 버킷리스트 영화를 보면 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노인이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The Bucket List)을 적고 실천한다는 이야기이다. 카터는 죽으면서 에드워드에게 아직 실천하지 못한 버킷리스트를 꼭 하라고 편지로 부탁한다. 그게 무언지 아는가? “자네 인생의 기쁨을 찾아가네”
관계를 끊고 있는 딸을 찾아가라는 부탁이었다. 왜? 그것이 인생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에게 충격을 준 군포 여대생 살해사건의 피의자인 강호순이 지난 2006년부터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실종된 여성 7명을 모두 살해한 사실을 자백했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논란중에 하나가 범인의 이름과 사진을 언론을 통해 공개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알권리냐? 인권침해냐?’ 하지만 반대하는 이유중 하나가 가족들, 주변인들이 입을 피해 때문에 공개하면 안된다고 한다. 아무리 죽을 죄를 지은 자식도 그 부모는 불쌍히 여기며 눈물 흘리는 법이다. 남들은 다 손가락질 해도 부모는 내 탓이라며 그 자식을 품어준다.
그렇다. 결국에 남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숙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찜짐한 것, 해결하지 못한 일들, 미움들, 용서하지 못한 아픔들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파묻어 두었던 것들을 지독한 냄새가 날지라도 처리해야 한다. 왜? 더 성숙한 관계를 위해서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반대는 무엇일까?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엘리 위젤)
싸운다는 것은 아직도 관심이 있고, 기대와 희망이 있다는 증거이다.
싸움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우는 것으로 끝낸다. 갈등을 푸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나는 설교준비하면서 다짐했다. 나에게 결혼주례를 부탁하면 반드시 결혼예비학교를 통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물론 나도 아내를 만난지 3달만에 우리는 결혼예비학교에 등록해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그동안 별탈없이 살아온 것도 결혼예비학교의 도움이 크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내가 꼭 결혼예비학교에서 다룰 내용이 ‘부부싸움하는 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의 갈등을 푸는 방법을 꼭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았다. 왜? 살다보면 갈등은 당연히 일어나니까! 문제는 갈등을 풀지 못하니까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고, 서로 너무 큰 상처를 입는다.
결혼후 부부관계의 변화를 사자성어를 써서 3단계로 말할 수 있다.
제1단계 사생사사(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다)의 시기이다. 신혼 초, 지하셋방에 살면서도 그저 행복하다. 3층밥을 짓고, 태우고, 설익고 난리를 쳐도 이렇게 말한다.
"자기는 어쩜 이렇게 밥도 잘해? 예술이다, 예술!"
이제 살다보면 제2단계 돈생돈사(돈에 살고 돈에 죽는다)로 변하게 된다.
결혼 5년차 이상 부부. 돈 많이 벌어오면 최고
제 3단계는 정생정사(정에 살고 정에 죽는다)
결혼 15년차 이상 부부. 사랑이 밥 먹여주나? 그냥저냥 정으로 사는 거지.
사랑하면서 살기로 다짐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도 식고, 애정도 식고, 그냥저냥 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의지가 더 강하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요즘은 3개월이라고도 한다)미만이라 한다. 결혼생활이라는 제품의 수명이 3년밖에 안되기에 특별한 방부처리가 필요하다. 그 방부제의 이름은 노력 또 노력, 혹은 배려와 존중이다.
부부갈등전문가인 미국의 존 고트만 박사는 10년 동안 700쌍의 부부들을 관찰해 파경에 이르지 않고 사랑을 유지하는 커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금슬이 좋은 부부들은 대화 속에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언어의 비율이 5대 1이라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반면 이 비율이 1대 1에 가까운 부부들은 분열과 이혼을 향해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 비난했을 경우 다섯 번 칭찬해줘야 즉 부부가 오랜 기간 사랑을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 방정식 5대 1의 법칙”이라 부른다. 이 법칙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일상에서 칭찬하는 것에 인색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더 어렵다. 하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평생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5대 1’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 속에서 당신의 사랑은 신비하게도 풀려나갈 것이다.
지난주에 끔찍한 뉴스를 보았다. 캐나다 토론토의 20대 남자가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10층 아파트 발코니 밖으로 던져 죽게 하는 사건이다. 29일 수원에서는 ‘당신이 설거지하라’고 말다툼하다 부부가 서로 폭력을 휘둘러 경찰에 붙잡혀갔다는 뉴스도 나왔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도 있지만, 많은 경우 감정의 골이 깊어가고 극단적으로 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살다보면 부부싸움을 할 수 있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하나,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은 부부싸움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부부싸움을 잘(!)하는 가정이 건강하다. 오늘 말씀이 부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 또한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더 좋을 것이다. 교회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는가? 싸울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묻어두고 잊는 것이 아닌, 해결을 통해 성숙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들마다 문제를 다루는 기본적인 유형이 있는데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어떤 유형인지 생각해보자.
1)로프에 기대기(속앓이형)-갈등에 얽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의 철칙은 무슨 댓가를 치루더라도 갈등은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이런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피한 결과 불안한 평화를 가져온다. 언젠가는 폭발하고야 만다.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에게 많은데 오래 참다 보면 심장병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엄살형-이런 선수들은 일찌감치 수건을 던진다. 지체없이 기권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짓평화를 만들 수 있지만 항상 져주는 사람은 말로 못할 쓴 마음을 갖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위험한 교만을 지닐 수 있다. 건강하게 싸우는 법이 아니다.
3)혈전불사형(노발대발형)-이런 유형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운다. 자신이 이기고 상대방이 포기할 때까지 싸운다. 그래서 이들은 보통 싸움에서 이긴다. 하지만 관계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4)원투를 날리는 형-이들은 주고받는 식의 해결책을 따른다. 너도 반 이기고 나도 반 이기는 식이다. 다른 방법들에 비해 좀 더 건강하고 효율적이다.
5)스파링 파트너형(평화 협상 테이블형)-팀동료가 되기도 하고 상대방을 돕는 사람들이다. 스파링 파트너는 아무리 불쾌해도 링에 남아서판정이 내려질 때를 기다린다. 이것이 양쪽을 위해서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스파링 파트너는 논쟁의 주제보다 관계가 더 중요함을 안다. 그리고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공격하는 형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파트너로 바라보는 자세이다. 승리자가 되기보다 파트너 즉, 사랑하는 자가 되기에 힘써야 한다. 승리자 곁에는 패배자만 남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는다. 함께 승리하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10:12)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이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 받았는가? 아니다. 조건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도말하시고 우리를 흰눈처럼, 양털같이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았다. 그 큰 은혜를 받았다. 우리 안에 그 사랑이 있다. 주신 사랑을 힘입어 나는 사랑할 없지만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시기에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싸우기보다 파트너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권투와 프로레슬링의 차이가 무엇일가 생각해 보았다. 링의 개수가 다르지만(권투는 4줄, 레슬링은 3줄-이유는 재미, 위험, 잘 보이게?) 싸우는 공간은 똑같다. 경기방식이 다르지만 그래도 가장 큰 차이는 레슬링은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싸운다는 점이라 생각된다. 보통 링을 벗어나면 이것은 경기가 아니라 폭력, 잔인한 싸움으로 변질된다. 레슬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솔직히 예전에 흑백 텔레비전으로 김일 선수가 나와 박치기로 이기던 즐거움에서 요즘 프로레슬링은 너무 많이 변질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부부싸움이나 공동체, 개인의 갈등이 발생할 때 정당한 싸움의 기본 규칙들이 있어야 한다. 규칙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만드는 것이다. 우정을 깨고, 상대방을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권투 선수들은 경기 시작전에 턱을 보호하기 위해 마우스 피스를 문다. 정당한 마우스피스는 우리가 함께 읽은 오늘의 말씀이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1)문제와 상관없는 더러운 말은 피하라. 말은 날카로워 상대방을 깊게 찌를 수 있다. 또 쉽게 그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말을 절제해야 한다. 대화의 기술에는 옳은 것을 제 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옳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는 법도 필요하다. 갈등의 본질을 숨기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그냥 넘어가서도 안된다. 속마음과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불꽃이 튀더라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합의하라.
‘이’자로 시작하는 말이다. 배우자와 논쟁할 때 ‘이혼’이란 말은 마치 수류탄의 핀을 뽑는 것과 같다. 또한 저속하거나 마음을 후벼파는 말을 하지 않고도 감정을 충실하게 전할 수 있다. 그런데 감정이 격해지면 속을 뒤집어 놓을 말들만 골라하게 된다. 그러면 싸움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말은 하지 말자. 오늘 말씀에서 그런 말을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다. 부부간에 하지 말아야 할 더러운 말은 이런 게 있다.
"능력 없는 남자"(남자의 근본적인 자존심을 짓밟아 버리는 폭언), "이혼하자"(화해해도 머리에 남는다), "집에서 놀면서 그것도 못해?", "아무래도 우린 결혼 잘못 한 것 같아", "돈돈돈… 그 놈의 돈 때문에"(남편의 능력부족으로 직결되기 때문) 같은 말은 삼가야 한다.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그렇게 해서 월급 받겠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 내가 사원때는 더한 일도 다 했어”라고 한다. 서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도 인간을 만드시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만드셨다. 그게 바로 선악과이다. “당신은 나의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나는 당신의 걸작품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선이다. 이게 파괴되어 하나님과 인간은 죄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고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값비싼 희생을 치루고 나서야 관계가 회복되었다. 선을 깨면 회복의 댓가는 너무 크다.
2)서로를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안된다. “당신이 그랬어. 당신 잘못이야. 당신은 늘 그렇게 거짓말 만 하쟎아.” 상대방을 이렇게 비난하면 상대방의 마음의 벽은 점점 더 높게 쌓이고 닫혀진다. 문제를 공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누구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으로써 갈등에 기름을 끼얹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대화법은 I-message라고 한다면, You-message는 문제를 공격하는 대화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직접 충고, 명령, 나무람, 비난 등의 뜻을 내포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는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하게 느끼기 쉽다.
나-메시지의 기본원리는 상대방의 행동자체를 문제삼고 그에 따른 책임을 상대에게 넘기는 대신에,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의 반응을 판단이나 평가없이 알려줌으로써 반응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이다. 이 나-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소를 포함하는데 그것은 ① 타인의 행동 또는 상황 ② 그에 다른 결과 ③ 나의 감정 또는 반응이다.
"너는 형편없구나"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니(행동/상황) 여러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될 것 같아(결과) 내가 속이 상하는구나(감정/반응)."
"나이 값을 좀 해라"
"네가 그런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고 실수를 하니(행동/상황) 앞으로 더 힘든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고 그르칠 것 같아(결과) 걱정이 된다(감정/반응)."
"당신 일이나 신경쓰세요"
"당신이 나의 일에 일일이 참견을 하니(행동/상황) 내가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고, 또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결과)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납니다(감정/반응)."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면 쉽게 해결될 일인데 명령, 비난하고 충고하니까 부작용만 생기는 것이다. 상담의 중요한 기법중에 하나가 공감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이면 된다. 공명현상이라는 게 있다. 만일외부에서 이와 같은 진동수의 에너지가 가해졌을때 에너지는 그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소리굽쇠는 피아노 조율할 때 쓰는데, 피아노에서 440Hz 가 되는 부분 (라음)이 제대로 조율 되었다면 440Hz의 진동수를 가진 소리굽쇠는 피아노 라음을 눌렀을떄 반응을 한다. 직접 힘을 가하지 않아도 움직인다는 것이다. 주파수가 같기 때문이다.
3)옛날 일들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놓은 억울한 일, 원한, 실망의 보따리를 풀고 싶은 유혹은 무척 크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 불거지고 있는 갈등에서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된다. 지금 부딪치고 있는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을 볼 때가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예)군대에서 불교군종이었던 박병장이 생각난다. 평상시에는 착하고 좋다. 하지만 고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터지면 창고로 집합시켰다. 서열대로 서 있으면 계급 순서대로 때리는데 당시에 일어난 일보다 그동안 자기 눈에 거슬렸던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때리는데 정말 싫었다. 그게 얼마나 치사하고 잔인한 일인지 절감했다.
그런데 부부싸움을 하거나 일이 터지면 이런 사람들이 많다. 이번 일과는 무관한 과거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끄집어낸다. 그러면 싸움은 해결점에서 점점 멀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을 하면 과거의 잘못한 일들을 다 끄집어내 말하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서워,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께 가지 못할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집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으로 가득찼다면, 쥐엄열매를 먹으면서 아버지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탕자에게는 아버지집에 가면 종으로 살아도 행복할 것임을, 비참한 상황에서 깨달았기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백한 죄악을 다시 끄집어내어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품으로 두 손들고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가7:19)
최소한 이 정도의 규칙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싸운다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성숙을 위한 싸움이 될 줄 믿는다.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을 존중하자. 1)더러운 말을 피하라 2)문제를 공격하라 3)옛날 일을 끌어들이지 말라
이 지침을 따를 때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싸울 수 있다. 또한 해결점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 때는 해결이 아니라 화해에 주력해야 한다. 모든 사항에 합의하는 것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합의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다르게 보는 문제일 뿐이다.
마가복음 9장 38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을 있었던 것 같다. 요한은 자신과 함께 하지 않으니까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님은 괜챦다고 하셨다. 함께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받아주라는 뜻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연합은 안된다.
어떤 신혼부부가 감자를 먹는데 소금 찍어먹느냐? 설탕 찍어먹느냐? 갖고 싸우다 ‘뭐 이런 집안이 있냐’고 했고 결국은 이혼하러 판사에게 갔는데 판사가 그랬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먹는데...’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치약을 짤 때 가운데를 누르느냐? 아래에서부터 짜 올라올 것이냐? 갖고도 많이 싸운다. 이건 다른 것이니까 서로 이해해 주면 된다. 정 해결이 안되면 치약을 각자 따로 사용하면 된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서로 받아주고 양보해야 한다.
우리가 싸우든지, 갈등의 상황에 있든지, 문제에 직면하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평강의 왕을 싸움, 갈등의 자리로 모셔올리는 것이다. 건강한 결혼에는 셋이 있어야 한다. 남편, 아내, 그리고 하나님이다. 그분을 모시고 와서 “하나님!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다. 상대방을 기죽이려 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도록 해야 한다.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승리자이다. 이게 우리가 마지막날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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