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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지막한달2-마25:24-30 안전인가 모험인가?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43

마지막한달2-마25:24-30 안전인가 모험인가?



◉본문 : 마25:24-30
◉제목 : 안전인가? 모험인가?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Then the man who had received the one talent came. 'Master,' he said, 'I knew that you are a hard man, harvesting where you have not sown and gathering where you have not scattered seed.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So I was afraid and went out and hid your talent in the ground. See, here is what belongs to you.'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His master replied, 'You wicked, lazy servant! So you knew that I harvest where I have not sown and gather where I have not scattered seed?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Well then, you should have put my money on deposit with the bankers, so that when I returned I would have received it back with interest.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 'Take the talent from him and give it to the one who has the ten talents.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For everyone who has will be given more, and he will have an abundance. Whoever does not have,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from him.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And throw that worthless servant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경제가 어려워 “가만히 있는 게 돈 버는 것”이라는 말도 하지만
성공한 청년창업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성공의 이면에는 분명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해 벽두에 들려온 희망찬 소식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산악인 김홍빈씨가 1월 2일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정상에 오름으로써 지난 11년여에 걸친 7대륙 최고봉 등정계획을 마무리지었다. 김홍빈씨의 7대륙 최고봉 등반은 지난 1991년 맥킨리(6,194m) 등반 중 열 손가락을 모두 잘라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등반이라 더욱 값지다. 남극으로 떠나기 전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특히 장애인들에게 도전정신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남극 최고점에 오를 겁니다.” 라고 말했다.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전정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악인 김홍빈씨는 앞으로도 등반을 계속하여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봉 완등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7대륙 최고봉 등정은 97년 유럽 엘브루즈(5,642m) 등정을 시작으로 같은 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98년 남아메리카 아콩카구아(6,959m)와 북아메리카 멕킨리(6,194m), 2007년 아시아 에베레스트(8,848m)와 호주 코시어스코(2,228m)를 올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에 남극 빈슨매시프(4,897m)를 올랐다.)

왜 그들은 생명을 걸고 도전하는가?
"왜냐하면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에…" 이건 내 말이 아니라 1920년대 히말라야 등반가로 유명한 조지 말로니의 말이다. 산이 있어서 간다는 데 달리 더할 말도 구구하게 딴 설명이 필요도 없다. 1993년 한국 최초로 남극점을 통과하고 에베레스트에 몇 번이나 오른 고인경 파고다교육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강하기 때문에 히말라야를 오른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를 올랐기 때문에 강해졌다."

오를 산이 있다는 것, 아직도 해야 할 사명과 꿈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젊다는 것과 늙은 것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을 “안주하려는가? 계속 끊임없이 도전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신의 목표와 꿈을 향해 전진한다면 그는 젊은이이다. 하지만 늘 편안한 현실에 만족하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늙은이인 것이다. <내 생애 마지막 한달> 책에 보면 이런 명언이 있다. “배가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정박해 두려고 건조되지 않았다”(윌리엄 쉐드) 배를 만든 이유는 전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파도와 풍랑을 헤치고 드넓은 바다를 향해 전진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하셨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원초적인 명령이요, 삶의 목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는 많은 도전을 준다. 우리가 잘 알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런 내용이다. 주인이 외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자기 재산을 종들의 능력대로 맡겼다. 한 사람에게는 5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2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1달란트를 맡겼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열므나 비유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장사하라”고 했는데 마태복음에는 나눠준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하라는 말은 나와있지 않다. 어쨌든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장사를 시작하여 각각 5달란트, 2달란트를 남겼다. 하지만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안전하게 감추어 두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주인이 돌아와 결산을 했는데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은 “잘했다”고 칭찬을 받은 반면에, 1달란트 받은 종은 “악한 종”이라 책망받으며 쫓겨나게 된다.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을 주시고 이 땅에 태어나 살게 하셨다. 달란트와 재능을 주셨다. 그래서 언젠가 그 날에 우리 모두도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 가서 결산하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이 있다. 순서없이 찾아오는 죽음, 개인의 종말이 우리 앞에 있음을 알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한달”을 가정하며 우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두 사람들은 마지막을 잘 알았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들이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은 마지막을 모르고 생을 살아간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히 나아가 장사하는 가운데 이 사람은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 마지막이 있는 줄을 잊었기 때문이다. 질문하겠다. 당신은 지금 마지막을 바라보며, 마지막이 있음을 알고 사는가?

(1)마지막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인가?
마지막을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의 마음을 생각하면 된다. 처음처럼, 마지막을 살면 된다.
신혼초에, 처음처럼 살고 싶은 마음으로 드린 이동원 목사님의 기도문을 들어보라.
하나님, 서투른 아마추어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처음 보는 하늘이듯 그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처음 만났던 그 감격으로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내가 처음사랑했던 그 여인을 처음 바라보던 그 눈초리로 그렇게 내 아내를 보게하소서.
처음 들어서는 예배당이듯 그 설레임으로 예배당 안에 앉게 하소서.
처음 그 구원의 메시지가 내 심장을 사로잡던 그 감격으로,
처음 그 설교를 듣는 그 심정으로 설교를 듣게 하소서.
오 주님! 마지막 단두대에 올라 서 있는 사형수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하늘인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아내인 것처럼 아내의 그 얼굴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예배당인 것처럼 그 예배당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듣는 설교인 것처럼 그 설교를 듣게 하소서.

우리는 마지막이 있음을 철저히 깨닫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멋지게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우리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 일들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쓰레기처럼 과감히 버리자.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떨림으로 살 때 우리는 칭찬받을 수 있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을 알고, 생각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챦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을 생각하며 가장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가 건강관리를 안한다는 사실이다. 2001년에 신장을 기증한 후, 몸이 많이 회복되었지만 피곤하면 하나밖에 없는 신장에 무리를 줄 수 밖에 없다. 내가 빨리 죽는다면 그 첫 번째 원인은 건강관리 안 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앤아파트에 있는 헬스장에 내일부터 가려고 한다. 그게 교회를 위한 일임을 믿는다. 보통 작심3일이라 3달을 끊고 간 날은 10일도 안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다음 주일 광고시간에 1주일 동안 몇 번 운동했는지 보고하도록 하겠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운동해야 한다. 영육간에 강건한 삶을 위해서!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1달란트 받은 사람이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주인에게 그 핑계를 돌리고 있다. ①24절을 보면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고 한다. '굳은'(*, 스크레로스)이라는 말은 '포악하며 거친 분', '무서운 분'(공동번역), '엄한 사람'(*, 아우스테로스눅 19:21)이란 뜻이다. 아마도 다른 두 종들보다 훨씬 적은 달란트를 받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은근한 화를 분출하는 것 같다.(Derrett). ②또 주인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이라고 했다. 이 말은 추수한 곡식을 마당에 늘어 놓고 말린 후 키질을 하는데 주인은 키질하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알곡(재산)을 모으려고 하는 불로 소득자로 비난한 것이다. 사실은 자기 자신이 일하지 않는 불로소득자이면서 말이다.
즉 너무 엄격한 주인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이 장사를 하다가 실패하여 본전도 돌려 주지 못할 때 엄격한 주인에게 당할 벌이 무서웠던 것이다. 실로 이 종은 소심하고 진취적이지 못한 용기없는 사람인 동시에 자기 생명과 안전에 대해 강한 집착을 지녔던 자이다. 종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돈을 보관한 것이다(18절). 그러나 그는 주인이 보관을 위해 달란트를 맡긴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실히 활용하여 그에 따른 이윤을 남기라고 맡겼음을 알지 못했다.
주인에게 손해를 기치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는 게 아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능동적으로는 선한 일에 매진(매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는 주인이 맡긴 일에 소홀히 하는 종은 그 주인에게 아무 쓸모없는 자인 것이다(눅 17:10).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께 패역한 죄가 된다. 악한 일을 해야 악한 종이 아니다. 일을 안 해서 게으른 종이 아니다.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이 주신 일에 소홀한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 무익한 종이라 단호하게 정의내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열정과 도전정신을 잃어버린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2)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려움을 직면하고 위험을 택한다는 것이다.
몸을 사리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살아온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믿음의 인생은 보수적으로 편안한 현실에의 안주가 아닌 무모한 도전, 이해할 수 없는 일, 바보같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믿을 수 없고,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기에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100세에 이삭을 낳았던 것이다. 베드로는 밤새 수고했고, 어부의 경험으로는 말고 안 되지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물을 던졌고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에스더는 유대인들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되는 위기의 때에 금식기도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왕에게 나아갔고 민족을 구할 수 있었다.
믿음은 한마디로 도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위대함은 모험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축복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위대함을 향해 모험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게 무엇인가? 그러다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려 하는가?
역사를 보아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만이 성공에 이르렀다. 헨리포드는 성공한 자동차왕으로 기억하지만 사실은 다섯 번이나 도산했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오프라윈프리쇼로 뜨기 전에 텔레비전 방송국 기자 자리에서 잘렸었다. KFC의 창업자인 샌더스는 스스로 고안한 닭튀김 제조법을 가지고 KFC라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성공하기까지 무려 1005번이나 거절당해야 했다. 발명한 에디슨은 전구를 개발하는데 만 번에 이르는 실패를 반복했다. J.K 롤링은 ‘해리포터’를 내기 위해 8개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육상선수들은 과학자들로부터 1마일(1,609m)을 4분안에 달리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 결과 어느 선수도 4분벽을 뚫지 못했다. 그러다가 1954년 로저 배니스터라는 선수가 3분 59초 04의 기록으로, 마의 4분벽을 무너 뜨리자 일년 뒤에는 37명이, 2년만에 그 숫자는 300명으로 늘어났다. 어린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주저앉았을까? 수천번, 수만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할래! 나는 걷는 데 실패했어!"라고 말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걸었고, 우리들도 걷고 있는 것이다.

1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주보 설교란에 매주 적혀있는 명언을 기억하는가? “나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성공했다고 자랑하기 보다, 차라리 위대한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싶다.” 이 말은 실패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위대함을 향해 모험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내버려두신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뜻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위대하게 만드신다.

우리의 인생이 한 달, 멸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냥 죽을 날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인간이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게으르고, 용기가 없고,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한 일들을 용감하게 시도하게 될 것이다. 하물며 더 많은 시간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우리가 그동안 중단한 그 일들을 수행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생각해보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겐 분명한 것 두가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다. 아멘?
또 하나는 마지막 날에 안전을 추구하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평가받든지, 믿음으로 도전한 결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부터 새롭게 도전하고 출발하고 용감하게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사자는 토끼 한 마리 잡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거미는 나방 한 마리 잡기 위해 온 생을 짜낸다.
살아가는 일이 이렇듯 정글 아닌 곳이 없는데
어째서 너의 생엔 손톱도 발톱도 없는가? (박이화의 <정글의 법칙>)


지금은 다시 발톱을 세워야 할 시간이다.

랜디 포시 (Randy Pausch) 교수는 누구보다도 마지막을 잘 알고, 멋지게 살았다. 12월 추천도서로 주보에 소개한 <마지막 강의>의 저자이다. 카네기멜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에 의사로부터 췌장암이 번져 삶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마지막강의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잠재력을 허비하지 말고 이를 일깨우라고 촉구했다. 그가 마지막강의를 한 이유는 자신의 세 아이, 딜런(5).로건(2).클로에(1)를 위한 것이었다. 잠시 영상으로 마지막강의를 보면서 두가지를 생각해보자. 마지막이 있다. 멈추었던 그 일을 도전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길 바란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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