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마지막한달6-행27:13-20 버려야 삽니다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45

마지막한달6-행27:13-20 버려야 삽니다
◉◉본문 : 행27:13~20
◉제목 : 버려야 삽니다

여러분은 운전 면허를 딸 때 몇 번에 합격했는가?
나는 지금으로부터 15년전에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는데 7번에 합격했다. 물론 학원은 전혀 가보지 않고, 운전 연습도 한 두 번 해 본 것 뿐이었다. 교회 차에 앉아서 생각하며 연습했던 것이 다 였다. 10번 이상 시험을 본 분이 있는가?
얼마전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771번이나 떨어진 한 할머니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영국의 BBC 인터넷판은 ‘한국은 운전면허 시험의 지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필기시험에서 771번이나 떨어진 올해 68세의 전북 전주시 차모 할머니를 소개했다. AFP 통신도 차 할머니의 기사를 해외토픽으로 소개했다.
차 할머니는 100점 만점에 60점 만점을 얻어야 합격하지만, 지금까지 30점~50점을 받아 771번째 필기시험 낙방 기록을 세웠다. 음식점을 하고 있는 차 할머니는 운전면허가 없어 걸어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경찰은 차 할머니가 운전면허 필기 시험에 들인 전형료만 4백만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차 할머니가 필기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주행 시험을 봐야 하는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옆에 있는 분과 인사합니다. “우리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그거 포기하지 마세요”

상상이 되는가? 우리는 한 두 번만 실패해도 좌절하고 두려움에 싸이는데, 무려 771번을 도전했다는 것이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겠다는 사실이다. 요즘 경제가 어렵고 힘들다. 자연앤에 사는 어떤 분은 주5일 근무에서 주4일 근무로 줄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이다.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느냐에 따라 충분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생각을 바꿨다. 난 행복하다. 매일 출근해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벌써 4개월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요즘 새출발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하고 달려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을 때 희망은 싹튼다.

이 세상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크든, 작든 모든 사람에게 풍랑이 불고 허리케인이 휘몰아친다. 여러분의 인생을 살펴보라. 그 당시에 힘들고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생생하게 남아있어야 하는데 막상 손에 꼽아보려 하면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런가?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생명의 존재까지 타격을 받기도 하고(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엄청난 눈물과 한 숨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오늘 우리는 내 생애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내 생애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렇게 아웅다웅하면서, 피곤하게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자는 말이다. 가장 가치있게, 값지게 살기로 다짐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 한달” 책에 보면 마야 안젤루의 명언이 적혀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바꾸라. 바꿀 수 없거든 당신의 태도를 바꾸라. 불평하지 말라”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이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것을 잘 구별하고 내가 바꿀 수 있으면 바꾸면 되는 것이고, 안 되는 일 앞에서는 내가 바뀌면 되는 것이다. 내가 이 말을 듣고 무척 많이 써 먹었다. 맘에 안 드는 며느리 때문에 늘 골치 아프던 시어머니가 부흥회에서 말씀을 듣고는 한 순간에 며느리가 사랑스러워졌다고 한다. 그 부흥강사님의 말씀은 이런 내용이었다. “지구가 돌아가는데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면 대단한 일이 아니니까 넘어가십시오.” 그 말은 들은 시어머니가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해 보았더니 며느리에게 지구가 돌아가는데 영향을 줄 만한 대단한 흠이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내가 이러고 있구나 생각하니 며느리가 사랑스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자기 자식도, 남편도 맘대로 바꿀 수 없으면서, 안 되는 일을 바꿔보려 하니 인생이 피곤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중세에 한 수도사처럼 우리도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도전할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없는 일에는 조용히 받아들일 침착함을 주시고,
이 두 가지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2005년 8월 29일 뉴올리언스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혔던 카트리나의 악몽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무려 800여명의 사망자와 80여만명의 이재민을 내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엄청난 허리케인을 막아서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다. 이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바울이 죄인의 몸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는 배에 광풍 유라굴로가 덮쳤다. 이때 바울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기 원한다. 우리 인생에 이런 유라굴로가 불어올때, 내가 원치 않는 어려움과 고난,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해 보자. 그래서 하나님은 27장 1~44절에 이르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먼저 바울이 왜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야 하는지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다. 왜 설명하는지 말하려는데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경을 잘 배우는지 알아보려고 “누가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렸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 소년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얘한테 물어보세요." 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 대답을 듣고 놀란 목사님은 주일학교 교사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그 교사는 "저는 그 소년이 정직하다고 믿습니다. 그 소년은 분명 그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았을 겁니다. 상식으로 생각해봐도 이렇게 어린 아이가 성벽을 무너드릴 힘이나 있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 때 마침 마음씨 좋은 장로님이 지나가시다가 그 소리를 들으시고 하는 말씀. "목사님, 너무 야단하지 마세요. 당회에서 예산을 세워 그 무너진 여리고 성벽 다시 세워주면 되지 않을까요?"
내가 바울이 죄수로 끌려간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면 집에 가서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걱정된다. “바울이 사람이라도 죽였나? 왜 로마황제 한테까지 가서 재판을 받아.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은거야?”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죽이는 열심있는 바리새인이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셨고, 그는 그 예수를 만난 후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훈련을 받은 후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많은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유럽까지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율법을 안 지키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약 2년을 총독에게 재판을 받다가 바울은 로마시민이므로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했고 지금 죄수의 몸으로 배타고 가는 중이다.
 바울의 회심(A.D.35)
 제1차 전도여행(A.D.46-48)
 예루살렘 총회(A.D.49)
 제2차 전도여행(A.D.50-52)
 제3차 전도여행(A.D.53-58)
 결박과 순교(A.D.59-67/68 네로 황제시대 때  순교)

오늘 말씀은 그레데섬의 미항에 도착했는데, 바울 생각에 여기에서 겨울을 보내고 떠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선장과 백부장은 미항으로 부터는 약 65Km 정도 거리에 있는 뵈닉스항에서 과동하자고 결정했다. 10절에 보면 바울이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한낱 죄수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순풍이 불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안 되어 유라굴로(동북풍)라는 바람이 불어 배는 바람에 밀려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17절에 나오는 스르디스(바다에 있는 모래톱)나 암초에 걸리면 파선하게 되기에 애쓰고 노력했지만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18~19절에 보라.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을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짐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 지지 않았다. 다음날은 커다란 돛과 무거운 돛대같은 배의 기구를 버려야 했다. 이것은 뱃사람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기구들을 버려야만하는 비참한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오늘은 우리가 유라굴로 같은 광풍을, 허리케인 같은 무서운 태풍의 핵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첫 번째 지혜를 알려준다. 18, 19절에서 계속 반복되는 말이 무엇인가?
1)버려야 산다는 것이다.
폭풍으로 위태로운 여행에서는 한때 소중했던 수화물들도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현실 앞에서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누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행27:18~19)
선원들은 배가 바다에 가라앉지 않도록 무게를 줄이기 위해 모든 것을 바다에 던졌다. 배에 실을 때 아주 소중하게 다뤘던 바로 그 짐들이다. “취급주의”라고 딱지를 붙인 짐들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귀중품이었던 물품들이 졸지에 쓰레기처럼 됐다. 폭풍이 우리의 인생에 불어닥쳐 난타를 치면, 자신의 우선순위를 재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재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명처럼 붙들고 있던 것들이 휴지조각처럼 느껴지게 된다. 바로 유라굴로 같은 고난과 절망은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붙들고 있는 헛된 것들을 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달 만 살 수 있다면 어떤 수화물을 배 밖으로 던지겠는가?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만들겠는가? 당신의 배가 순항하기 위해 바다에 던져도 될 목록들을 만들어보라. 가끔 소그룹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한다. “집에 불이 났을때  3가지만 들고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강호순은 유일하게 아들만 데리고 나왔다. 돈에 눈독이 들면 긴급한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불에 타도 될 것을 최고로 알고 부여잡고 살지 않는가? 어려울수록, 절망이 찾아올수록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결과는 비참하게 된다. 그게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Sine Qua Non[saini kwei noun]이란 말은 “필수조건, 꼭 필요한 것”("wit-
hout which it could not be)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미국 해병대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귀신잡는 해병대가 무서운 것은 가장 중요한 것만 붙들기 때문일 것이다. 차선의 것은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기에 어떤 사명도 감당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는 말하기를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면 눈앞에 닥친 급한 일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장기적인 전망을 기획하며 자신의 심신을 단련하는 경영자의 모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위기상황일수록 CEO들은 신체적, 영적, 정신적, 사회·감정적 등 4가지 차원에서 쇄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적 차원의 경우 자신의 몸을 효과적으로 돌보는 활동이고, 영적 차원은 종교적 믿음 및 위대한 문학이나 음악에 심취하는 등 자신의 가치체계의 중심을 잡는 일이다. 또 정신적 차원의 쇄신은 독서나 학습 등의 활동을, 사회적·감정적 쇄신은 원활한 대인관계를 위한 내면적 안정을 취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위기는 기회이다.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버리고 기본으로 돌아갈 때 기회가 된다. 선원들이 버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자세히 봐라.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도 그들이 버렸을 때 들려주셨다. 버려야 삽니다. 이대로 모두 붙들고 있으면 죽습니다.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더 위험하고 고통스럽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기억하라. 버린다고 바로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버리는 것이 상황을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버리는 것을 유라굴로 태풍이 보고 약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변하는 것이다. 광풍에 좀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다.

20절에 보면 바다의 풍랑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늘에 끼인 짙은 구름은 낮의 해와 밤의 별빛을 완전히 차단하여 배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채 절망적인 표류를 하고 있었다. 버렸음에도 언제 어디서 암초를 만나거나 모래톱에 걸려 파선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22절에 보면 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것이다. 24절에 보면 바울은 반드시 가이사앞에 서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 약속을 주셨다. 25절을 보라. 바울이 뭐하고 말하는가?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버린 다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29절에 보면 드디어 닻을 내려 배가 풍랑에 표류하지 않고 안전하게 안착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 닻이다.

2)위기의 상황에서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변치 않는 닻이다
폭풍속에서 붙들 수 있는 견고한 닻이 필요하다.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행27:29)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으신 분이십니다(표준새번역)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오늘 나의 하나님이시다. 내 이름을 넣어서 불러보자. “약로(OO)의 하나님”
바울은 폭풍속에서 확신을 가졌다. 이젠 두렵지 않다. 왜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어떤 약속의 말씀을 주셨는가? 벌써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다시 읽고 묵상하며 붙들어라. 나는 시편 62편 5절을 받았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또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설교를 통해 들어라. 그리고 꽉 붙들어라. 유라굴로가 내 마음을 흔들고 절망으로 몰고 가지 못하도록! 또 개인적으로 성경을 통독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으라. “아버지. 약속하셨쟎아요!” 이 말보다 무서운 말이 없다. 사람들의 말 들으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약속만이 변치 않는 닻이 된다.

바울 일행(275명)을 태운 배는 미항에서 멜리데 섬까지 약 800Km 이르는 거리를 14일간 유라굴로라는 태풍에 떠밀려 왔다. 이제 곧 희망을 잃을 것 같았다. 포기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는 이상, 문제될 것 없다. 언젠가 지금의 극한 상황은 간증이요, 인생의 어떤 위기도 뚫고 갈 수 있는 희망의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지옥같은 곳을 지나가고 있더라도 멈추지말고 계속가라”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면 성난 물결과 미친 듯한 바람 너머로 긍정적인 변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유라굴로 가운데 살아남을 세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것이다.
비전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Vision is essential for survival.)- 척 스윈돌
34절에서 말한 것처럼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는 생존에서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바로 비전이다. 유라굴로에 지쳐 뱃멀미가 나고 물에 젖고 지치고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임재라는 부동의 닻으로 당신을 매어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살아야 할 이유인가? 아니다.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27:23-24)

오늘의 말씀을 잘 보라. 비전을 품은 한 사람이 몇 명을 살렸는지? 275명(37절)
내가 살면 우리 가정이 산다. 우리 자녀들이 산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산다. 아멘?
나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나는 비전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진 생각을 아는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1-13)

비전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내게 부르짖으면! 내게 와서 기도하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그래도 기도 안 할 것인가? 절망이 찾아올수록 무릎 꿇어야 한다. 새벽기도를 작정하라. 금식을 선포하라. 내가 유라굴로 폭풍을 잠잠케 할 수 없지만 나는 바꿀 수 있지 않는가? 비전의 사람으로! 기도의 사람으로! 그럼 문제는 끝났다.
따라해 보자. “시련은 선택할 수 없어도 나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누구 말인지 아는가? 적어놓아라. 이약로

여러분 앞에 있는 유라굴로는 무엇인가? 유라굴로는 어찌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3가지나 있다. 버리라. 변치 않는 닻(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라. 내가 변하면 다 바뀐다. 비전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라. 그게 유라굴로를 통해 내게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모두 유라굴로 앞에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 되길 축복한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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