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마지막한달5-눅17:11~19 감사는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44

마지막한달5-눅17:11~19 감사는 곧 믿음입니다

◉본문 : 눅17:11~19
◉제목 : 감사는 곧 믿음입니다

한 어머니가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놀러갔다. 이웃집 부인이 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없이 얼른 받는 게 아닌가?
“얘야”아이의 어머니가 무섭게 불렀다.“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되지?”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껍질 벗겨주세요”

타인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곱 살 난 이 아이뿐이 아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 자신을 위해서 타인이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침묵한 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돌아선다. 사과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사과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종을 칠 때 종이고 장작은 타오를때 불인 것처럼, 믿음은 감사할 때 믿음이다.
종을 치지 않으면 쇠덩어리에 불과하며, 장작에 불을 붙이지 않으면 그 나무는 버려야 할 폐기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감사가 사라진 신앙생활은 믿음도 시들 수 밖에 없다.
감사가 그 사람의 믿음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은 습관이다. 억지로라도 감사하다보면 감사가 싹튼다. 아멘?
우리 옆에, 앞뒤로 앉은 분에게 이렇게 감사의 표현을 해 보자.
“제 옆자리에 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오늘은 더 멋져 보이십니다.”

영어로 감사(thank)와 생각(think)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감사하면 무엇이든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생각을 바꾸면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감사할 것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지 않았는가? “감사합니다”
오늘 교회올 때 사고없이 안전하게 잘 도착하지 않았는가? “감사합니다”
병원에 가면 산소호흡기를 사용해 숨을 쉬려면 하루 30만원이 드는데.
오늘 나는 원하는대로, 마음껏 숨쉬고 있으니 30만원을 공짜로 벌었으니 감사하지 않은가?
차를 타고 온 분들은 아침에 누가 차를 끍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감사해야 한다.
어떤 권사님은 누가 차 앞문을 박아서 화가 났는데 카센터에 고치러 갔는데 수리하는 분이 이렇게 말해서 감사가 넘쳤다고 한다. “만약에 차를 박은 사람이 앞문과 뒷문 가운데를 박았으면 수리비가 엄청났을 겁니다.”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생각에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더 잘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들어가는데 10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불렀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으면 다가와야 하는데 멀리서서 크게 불렀다.
이들에게는 예수님께 가까이 올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는 나병(문둥병)에 걸렸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가까이 가도 전염되지 않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한 거리(50보이상)를 유지해야 했다.  
나병의 증상은 이렇다. 처음에는 반점으로 시작되어 덩어리가 딱딱하게 잡히고 나중에는 더 커져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형상이 뒤틀린다. 그 다음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툭툭 떨어져 나간다. 마지막에는 의식불명이 되고 죽음에 이른다. 나병은 이러한 육체적 고통보다 더 무서운 인간관계의 사형선고가 내려지기에 더 잔인하다. 다시는 사람이 만질 수 없게 된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이를 안을 수도 없다. 무등 태울 수도 없다. 배우자를 안아볼 수도 없다. 집, 가족, 친구들로부터 격리된다. 성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도 드릴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안아줄 수 있고, 이야기 할 수 있고, 전화할 수 있고, 마주 앉아 밥 먹을 수 있는 게 큰 행복임을 아는가? 남자들은 군대생활이 왜 힘든지 안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관계의 단절이 있기에 힘든 것이다. 애인도 맘대로 볼 수 없고, 집에도 갈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무뚝뚝한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떠나야 한다. 10년, 20년, 30년, 아니 1주일, 한 달... 그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 때는 후회해도 늦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함께 할 수 있음이 최고의 행복임을 알고 사랑하자!

오늘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열명의 남자들은 수년간 이런 일을 겼었다. 아니 태어나 오랜 시간을 그런 고통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즉시 응답해 주셨다. 하지만 많은 경우의 치유의 기적과는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이 다른가? 즉시 치료해 주시지도 않았고 가까이 오라고도 부르지 않으셨다. 크게 예수님도 소리쳐 말하신 것 같다.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여 주거라.”
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했는지 아는가? 레위기14장에 보면 문둥병을 치료받은 사람은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해졌다는 진찰을 받아야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 있다. 그런데 그래도 집에 돌아갈 수 없다. 정결의식을 치룬 후 7일을 더 지켜본 후, 이상이 없으면 속죄제와 번제의 희생제사를 드린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시는 아무런 표정이나 행동을 취하시지 않고 그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음에도 그들은 말씀에 복종하여 제사장들에게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신앙이다.  구약에서도 아람장군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요단강물에 7번 씻었을때 문둥병이 깨끗해졌듯이(왕하 5:1-14)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났다. 내가 판단하고 믿을 수 있을 때 믿는 게 믿음은 아니다. 믿음은 순종이다.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무조건 순종해봐라. 기적은 일어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핵심은 나병에 걸린 10명이 동시에 고침받은 게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렇게 나병으로 인해 고생했는데도, 고침받은 후 고맙다고 말한 사람은 10명 중 1명, 10% 밖에 안된다. 90%는 감사할 줄 몰랐다는 게 기적이라고 한다.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고, 회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고, 놀 줄 아는 사람이 잘 노는 것처럼 감사도 할 줄 아는 사람, 생활속에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속담에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다 될 것 같으나 감사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는 곧 믿음이라고 제목을 잡은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9명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의 90%가 왜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지 살펴보며 10%에 속하는 감사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왜 90%의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하는가?
1)현재의 삶에서 감사의 제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원망하며, 세상을 탓하며 살았을 것 같다. 혹시 나병이 고침받으면 감사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감사할 일들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을 것이 뻔하다.

  지금 이 상황만 좋아지면, 이 문제만 해결되면, 내 몸이 건강해지면, ~하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상황이 좋아져도, 문제가 해결되어도, 몸이 건강해져도, 다 잘 되어도 감사하지 못하게 된다. 기억하라. 감사는 감사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결과가 나타나야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상황에 상관없이, 즉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지금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카네기의 행복론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카네기는 스스로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곧잘 고민하곤 했는데 1934년 어느 봄날, 거리에서 잠시 만난 한 사람을 통해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자기 맞은편에서 다리가 없는 사람이 오고 있었는데 그는 롤러스케이드용 바퀴를 단 작은 나무판자 위에 앉아서 썰매를 타듯이 나무로 땅을 짚으며 오고 있었다. 그런데 카네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싱긋이 웃으면서 쾌할한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먼저 했다고 한다. '안녕하십니까?  참 좋은 날씨입니다.'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카네기는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가를 깨달았다고한다. 나에게는 두 발이 있고, 걸을 수도 있지 않는데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린 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없는 것을 찾는 사람은 늘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반면에 현재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이 있는지, 내가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지를 아는 사람은 늘 감사하며 살게 된다. 핍절의식으로 사는 사람은 불평하고, 풍부의식으로 사는 사람은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감사의 이유를 찾아보자. 얼마나 감사한가? 내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며느리가, 사위가, 아들이, 딸이 맘에 안 드는 것만 생각하며 피곤하고 짜증나는 인생을 살지 말고 사랑스러운 이유를 찾아보고, 고마운 이유를 찾아보면 행복하게 된다. 이 세상에 당연한 일은 하나도 없다. 모두 감사할 일이다. 그게 행복의 비결이다. 현재에서 감사하라.

2)미래를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9명의 사람들은 영원히 나병환자로 살아야 할 운명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 이렇게 깨끗해졌지만 그들은 아직도 옛날 생각에 사로잡혀 미래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들은 고침받았음에도 그들의 미래는 밝게 빛나지 않았다. 오늘 감사하지 못하면 미래도 그리 희망적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9명은 나병이 고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했으리라. “이것봐! 병은 치료되었는데 손가락이 없쟎아. 나는 눈이 빠지고, 피부가 일그러지고.. 집에 가도 사람들이 놀리고 상대도 하지 않을거야. 이렇게 살아서 뭐해!” 분명한 것은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오늘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왕과 오랫동안 친구로 사귀어 온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무슨 일이 벌어지기만 하면 무조건 "오! 그거 참 잘된 일이군!"이라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왕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이 친구가 사냥총에 총알을 장정하여 왕에게 내밀었다. 왕은 그의 친구가 주는 총을 받아 들다가 잘못하여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실수를 했다. 총알은 왕의 엄지발가락을 맞추었고 그 결과 발가락이 잘려 나가고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 친구가 뭐라고 했을까?  "오! 그거 참 잘된 일이군!"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왕이 그 말을 듣고 크게 화가 나서 그 친구를 당장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왕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갔는데 잘 된 일이라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있고 일 년 뒤에 왕이 또 사냥을 나갔다. 달아나는 짐승들을 보며 왕을 말을 타고 짐승을 멀리 좇아가다 자신도 모르게 식인종들이 들끓는 위험지역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왕은 식인종들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식인종들은 왕을 잡아 기분이 좋았다. 젊고 싱싱해서 먹음직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음식을 먹은 최고 품질의 고기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식인종들은 왕의 손발을 묶어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려다가 왕의 엄지발가락이 잘려져 없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식인종들은 몸이 온전치 않은 사람의 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왕을 풀어 내 쫓았다.(식인종들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난~ 밥 맛이 없어졌을 뿐이고! 난~ 발가락없는 왕을 풀어주었을 뿐이고!) 왕은 없어진 엄지발가락 때문에 살아난 것이다. 겨우 목숨을 건져 궁전으로 돌아온 왕은 자신의 잘린 엄지발가락을 보며 그 친구의 덕택이라 생각하고 감옥으로 달려가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 말이 맞았네. 내 엄지발가락이 없어진 것이 아주 잘된 일이었어”하며 친구에게 사과했다.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오! 그거 참 잘된 일이군." 일년 전에 하던 그 말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왕은 말했다. "아니 또 그 소리인가? 그 소리 때문에 1년 간 옥살이를 했으면서도 아직 ‘오! 그거 참 잘된 일’이라니, 자네는 화가 나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왕의 말을 들은 그 친구는 웃으며 대답했다.
"잘된 일이고말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만약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왕과 함께 식인종들에게 잡혔을 것이 틀림없겠지요. 저는 잃은 발가락이 없으니 그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겠지요. 그러니 제가 감옥에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잘된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사는 믿음이라는 말이 맞다. 감사는 미래를 보는 사람만이, 미래가 밝다고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서 5:18) 하나님은 복주시기 원하신다. 그 넘치는 축복은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하면 좋은 일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감사하는 자에게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감사하라. 그러면 당신의 미래는 보장된다. 앞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오! 그거 참 잘된 일이군!"하고 감사하며 고백할 수 있길 축복한다.

3)댓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댓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어떻게 했는데, 니가 그럴 수 있어.” “은혜를 값지 못할망정 원수처럼 나 한테 그래도 되는거야?.. 참!”
오늘 말씀을 통해 위로받길 바란다. 상대방이 은혜를 모른다고 고민하지도 열내지도 마라. 예수님은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치고 오직 한 명의 환자에게서 감사의 말을 들었다.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도 10% 밖에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2,000년전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예수님 이상의 감사 받기를 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비결은 감사를 기대하지 않고, 주는 것이다.(주는 것의 기쁨만 가져라...)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을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주는 것으로 행복하기로 마음을 먹어라. 받으려 하면 늘 후회라고, 섭섭하고, 화날 일 밖에 없다.
나는 동탄성지교회가 받는 교회가 아니라 주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지금도 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주지 못한 돈이 쌓여있다. 나는 주고, 하나님은 공급하실 것이다. 주고 나서도 댓가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공짜 좋아하지 않으신다. 사람들이 나에게 억울하게 하면, 이렇게 고백하라. “맞다! 나는 사람들이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복주시려고 이러시나?”
개척 4개월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돈계산 하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죄송했다. 지금까지 누구한테 헌금해 달라고 한 적 없다. 헌금 많이 해달라고 굽신거린 적도 없다. “나는 기도할 뿐이고...” “하나님은 채워주실 뿐이고!...” 이 믿음의 원리로 달려갈 것이다. 내 머리로 목회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믿음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 마음으로 변함없이 목회하도록 기도해 주길 바란다. 지난주에 어디에 전화해 장학금을 내고  싶다고 말했더니 어디에 있는 교회냐 물었다. 그래서 새로 지어진 동탄3동사무소 아시냐 했더니 하는 말. “아! 그 큰교회요?” 그래서 아뇨. 그 옆에 작은 교회이지만 저희는 지금부터 착한 일을 시작해 매년 더 많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시골 교회를 맡고 있는 어떤 목사님이 땡볕 아래서 배추밭을 매고 있었다.
가을 햇볕은 뜨겁고 잡초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때 불평주는 악마가 나타나 말했다.
“목사님, 이래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목사님은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려고 한참을 궁리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많은 잡초가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튀어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 있어서 제가 그 잡초를 단번에 뽑을 수 있도록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악마는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감사하면 마귀도 물리친다. 감사하면 문제도 물러간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복이 굴러온다.
19절을 보라.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공동번역)
Rise and go; your faith has made you well."(Niv)
감사하는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너의 삶에 잘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주간 동안 불평은 멈추고, 감사의 제목으로 바꾸어보라.
"오! 그거 참 잘된 일이군." 이렇게 미래를 보며 감사하기 바란다.
댓가를 바라지 말고 주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인해, 내가 줄 수 있음으로 감사하라.
감사하는 믿음이 나를 살리고 구원하고 축복의 길임을 믿기를 바란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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