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18-22 달리시는 하나님
◉본문 : 눅15:18-22
◉제목 : 달리시는 하나님
오늘 두 번째 여기 섰는데 떨릴까요? 안 떨릴까요?
떨립니다. 그것도 전보다 더욱 많이...
먼저 떠나가는 저에게 말씀 전할 기회를 주신 목사님과 당회에 감사드린다.
솔직히 설교순서가 오늘 오후예배로 잡혀 사임설교로 할까 고민하다가
기분도 그럴 것 같고, 민망해서 피해가려 순서를 바꿨다..
그랬더니 담임목사님께서 주일 1,2,3부라고 하라고 하셔서 아무 말도 못했다.
내가 좋은 대로 피해가려 하다가 더 큰 일을 만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셨을때 그냥 순종하세요. 내 뜻대로 하려 하면 더 큰 일을 만납니다.
좀 더 쉬운 것을 할 뻔 하다가 더 어렵고, 힘든 일을 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 옆에 있는 분과 이렇게 인사합시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합시다”
성지교회에 온 것이 2004년 12월 19일이다. 햇수로는 5년이나 된다.(3년 9개월)
오늘까지 돌아오며 “감사하다”는 말 밖에 더 표현할 말이 없음을 깨닫는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인 1995년 6월 1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그날 “부르심에 순종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적었는데 설교준비 하면서 다시 읽게 되었고 이 시간 나누고자 한다.
그동안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않았고, 귀는 밝아도 듣지 않았던 나(사42:10)를 향해 고민하며 기도하게 하심으로 이제 주의 뜻을 알게 하신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 앞에 나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였고(사26:11) 나를 위하여, 주께서 일하신다는 말씀에 부족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사35:3-4)고 하셨으며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며, 듣고 행하는 자(마5:19)로 큰 자의 삶을 살 것이며, 하나님의 온전한 통로가 되는 성령의 사람이 될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나를 향해 “나의 종, 나의 택한 자, 나의 벗, 나의 붙드는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내 것”이라고 부르시며 두려워말고 담대함으로 나아가라고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힌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이젠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자랑하겠습니다. 어떤 일도 주를 향한 나의 마음을 흔들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을 것은 주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특별히 나를 부르셨고 늘 나를 최선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럭저럭 살 수 없습니다. 늘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시며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심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옵소서.
주 앞에 “잘했다” 칭찬받는 그 날까지 오직 주만을 위하여 나를 마음껏 사용하시고 주의 뜻을 이루소서. 더 이상 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그 때에 나를 저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6개월간 열심히 공부해 신대원에 합격했다. 신대원에 다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했다. 매 주일마다 충청도 충주에 내려가 교회를 봉사하고 돌아올때 부모님은 농사져서 모은 돈을 손에 쥐어 주셨는데, 1주일 동안 기숙사에서 먹어야 할 밥값과 차비밖에 안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생활 가운데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 필요한 것을 날라주시고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다. 부모님은 송아지를 팔아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받도록 학비를 내 주셨다. 그러다가 2학년부터는 학교에서 전액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로 순탄하게 걸음을 인도해 주셨다. 지금 돌아보니 개척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나를 철저히 훈련시켜 주셨다.
신대원 다니는 동안 중고등부 교육전도사로 2년, 졸업후 고향 충주로 내려가 전임전도사,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유치부, 아동부, 교구를 맡아 섬겼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훈련을 많이 받았다. 4년후 서울로 올라와 교구사역을 하며 중보기도, 전도, 새가족을 담당하다가 청년부와 교육부서를 맡아 섬기기도 했다.
3년후 성지교회로 와서 그동안 배운 것을 종합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양처럼 인자하고 순한 목사님을 만나게 하셔서 전인적인 훈련을 받으며 성숙해졌다. “목적이 이끄는 40일”이 내가 성지교회에서 처음 맡은 사역이었는데 저도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분들이 새벽을 깨우며 은혜를 받는 것을 보며 내가 더 은혜를 받았고 사역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그런지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시간은 얼마나 빨리 가는지 벌써 3년 9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는 믿어지지 않는다. 성도님들도 4년도 안되었다고 하면 안 믿는다.
성지교회에서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고마운 분들을 떠올려 보았다. 만약, 영화시상대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한다면 3부예배까지 말해도 부족할 것 같다. 모두 찾아 뵙고 고마움을 표해야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부족하기만 한 저를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것처럼 이후에 더욱 동탄성지교회와 저와 가정을 위해 기도와 사랑을 부탁한다. 아멘?
성지교회를 떠나면서 하나님은 탕자를 생각하게 하셨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자신의 꿈을 이뤄보겠다며, 불효자식이라는 말을 들을지라고 먼 곳으로 떠난 탕자... 여러분은 누가 탕자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탕자인가? 다른 것은 모르겠고 분명한 것은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내 가슴을 치는 메시지는 “바로 내가 집나간 탕자같은 연약한 자”라는 사실이다. 남들 욕할 게 하니라 내 속에 더러운 마음이 가득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많음에 치를 떨게 된다.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놈)인지 얼마 전, 막을 내린 중국 올림픽 경기를 보며 많이 깨달았다. 운동경기를 보는데 다른 나라 팀이 지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왜 그리 고소하고 통쾌한지... 마치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씁쓸했다. 특히 일본과의 야구 준결승 경기 때 일본이 앞서가다가 깨지기 시작하는데 너무 즐거웠다. 지금 보니 나만 나쁜 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무시당하고, 압제당한 것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당하는 것을 보면 즐거운 것 같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 세 명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무단침입으로 원시인들에게 붙잡혀 곤장 100대씩을 맞게 됐다. 다행이 추장은 이들에게 단 한가지씩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미국인은 "제 등뒤에 방석 6장을 올려 주십시오"라고 소원을 말했다. 추장은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곤장 100대를 맞았다. 하지만 방석이 너무 얇아 70대를 맞자 방석이 다 찢어져 나머지 30대는 맨 몸으로 맞아야 했다. 그래도 미국인은 '나는 창조력이 뛰어난 민족이야'라고 만족해 하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일본인은 "제 등위에 침대 매트리스 6개를 올려 주십시오"라고 소원을 말했다. 일본인은 100대를 맞는 동안 '역시 나는 모방 기술이 뛰어난 민족이야'라고 외치며 줄곧 웃기만 하다 일어났다.
이번에는 추장이 한국인을 향해 "자, 네 소원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은 쓱 웃으며 말했다. "저 일본 놈을 제 등 뒤에 올려 주십시오."
좋아하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 안에 탕자 같은 연약함, 죄성, 아버지를 떠나려는 속성이 있다는 증거이다. 탕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바로 나다. 내 속에 탕자의 모습이 늘 존재하고 있다. 그걸 모르면 탕자의 형이 된다. 집에 있지만 아버지와 상관없는 사람 말이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이야기 이지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어느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떼어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말도 안되는 둘째 아들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둘째 아들은 바로 재산을 정리하여 먼 나라에 가서 그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거지 신세가 되었다. 아버지를 떠나면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들은 궁핍한 생활을 통해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다. 왜 하나님은 사임설교를 하는 나에게 이 말씀을 주셨단 말인가? 계속 씹고 묵상하면서 나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3가지 모습으로 보여주심을 보게 되었다.
1)기다리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려 주셨다. 성공하겠다고 큰소리치며 아버지 재산을 받아 나갈 때 아버지가 바란 것은 단 한가지였다. 성공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건강하게, 빨리,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셨다. 그런데 아들은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다.
우리는 너무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 내 맘대로 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고 있다고, “이 정도면 됐지”하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지난주에 후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수원에 있는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조문을 하고 식사를 하는데 건너편에 계신 분의 얼굴이 낯익었다. 그래서 상주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충주에 사는 분 아니냐’ 그랬더니 맞단다. 이름이 김00인지도 확인했더니 분명했다. 그래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집사님은 수안보온천에서 호텔사우나를 경영했었는데 잘 되는지 물어보았다. 많이 손해를 보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의 간증집회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수안보온천 사우나를 하지 말라고 꿈을 보여주셨는데 자기가 했기 때문에 많이 손해를 보았다고 했다. 자기가 예전에는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는데, 모두 죽는다고 하는 병에 걸리게 되었고 하나님이 고쳐주셔서 그때부터 뜨겁게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많은 복을 주셨는데 자신이 순종하지 못해 많이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예전에 한번 더 결정적으로 순종하지 못했던 일인데 처음 말하는 것이라며 들려주셨다. 초신자이던 1989년에 1억 2천만원의 예산으로 시골교회를 짓는데 하나님이 기도중에 8,000만원을 네가 감당하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돈이 없는데요’라고 대답했더니 하나님께서 땅과 가진 것들을 정리하면 된다고 깨닫게 하셨다고 한다. 바로 전도사님과 상의했더니 좋다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직회때 어떤 집사님이 1억원을 내겠다고 하면서 김집사님이 8,000만원 헌금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고 다른 일에 사용하고 말았다. 그런데 사탄이 틈을 탔는지 그 집사님이 헌금을 1원도 하지 않는 바람에 교회와 전도사님이 무척 어려움을 당했고, 자신도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해야 했는데 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당시에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누가 하든 말든 상관없이 순종했다면 얼마나 자신이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을까 후회가 된다는 간증이었다.
나는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내 생각대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둘째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나라로 가서 허랑방탕
탕자가 먼나라로 갔기에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무척 멀고 힘들다. 요나가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3일을 갔기에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고생하며 돌아왔다. 아버지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갈수록 돌아오기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돌아와야 한다.
탕자가 아버지집으로 돌아오게 만든 결정적인 동기는 “궁핍함”이다. 고난이다. 어려움이다. 물을 떠난 물고기 처럼 발버둥치며 아버지 집(시 16:6)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꼭 아버지집을 떠나야 고난이 오는 것은 아니다. 필리핀에서 교통사고로 꿈꾸는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셨다는 뉴스는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왜”가 아니라 인간이 절대자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요, 다시 하나님을 만날 최고의 기회라는 것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73:16-17)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해답이 있다.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신다.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사30:18)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는 아니다. 일어나야 한다.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의 이야기)
실패가 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 본문 18-19절은 탕자의 생각인데 생각으로 끝나면 아무 소용없다.
20절 전반절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돌아가기만 하면 아버지는 아무 조건없이 받아주신다. 정결하고 깨끗해야 받아주시는 것이 아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214)
자격없어도, 한 일이 없어도, 너무 추하고 더러워도 받아주시려고 애타게 기다리시는 주님께 우리 모두 돌아가자. 이 세상에 누구도 그 분의 따스한 품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서 살아나게 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37:9)
오늘 우리가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근거가 있다. 21-22절을 읽어보자.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아들은 아버지와 나는 부자관계가 상실되었다고 고백할 때
아버지는 “너는 내 아들이야” “너는 내 호적에 그대로 있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직접적인 표시로 너는 내 아들이라고 확인시켜 주었다.
첫 번째 표시는 제일 좋은 옷이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품꾼이 아니라 극빈처럼 대우하였는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바로가 하사한 물품과 같은 것들이 지급되었다(창 41:42). 그 당시에는 훈장(勳章)이 없었을 시기였으므로 왕이 공로가 많은 신하를 포상할 때 귀중한 옷을 하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탕감해 준다는 표시로 훈장같은 달아준 것이다. 착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표시는 가락지를 끼워 준 것이다. 가락지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인장 반지와 같은 것으로서 가락지를 아들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한을 아들에게 위임했다는 뜻이 된다.
세 번째 표시는 신을 신겨 준 것이다. 신을 신는다고 하는 것은 그가 자유인의 권리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종들은 맨발로 다녔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은 분명히 알기 원하신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훈장도 받고, 하나님 자녀의 권한도 부여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만끽하게 하신다.
우리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는 근거는 내 모습을 보지 않고 존재됨을 보신다는거다. 오늘 말씀은 두 번째로 2)아들의 존재됨을 보시는 아버지이심을 보여준다
나는 1년에 1-2번 영화를 보는데 꼭 설교에 써 먹는다.
“쿵푸 팬더”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우리의 주인공 포는 뚱뚱하고, 느리고, 식탐 많은 팬더 곰이다.
평화의 계곡, 대대손손 이어져온 국수집에서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 국수배달을 하던 팬더 포에게 아버지는 국수의 비법을 알려주고 싶어하지만, 포의 관심사는 오로지 '쿵푸'다. 어느날 대대로 내려오는 쿵푸의 비법이 적힌 용문서의 전수자를 정하는 ‘무적의 5인방’의 대결을 보러 시합장을 찾았는데 마을의 현자 우그웨이가 포를 용문서의 전수자로 찍는다. 모두 놀란다.
어쨌든 푸는 쿵푸수련을 마치고 엄청난 능력이 생긴다고 하는 용의 문서를 보는데
용의 문서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었다. 당장 쳐들어오는 적을 피해 피난을 가던 중 포는 아버지로 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국수 국물의 비밀을 듣게 된다.
"재료에 비밀은 없어. 그냥 특별하다고 믿으면 되는거야"
여기서 포는 용의 문서를 다시 펼쳐보고는 깨닫게 된다.
내가 용의 전사라는 아주 특별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된다.
160kg의 비만 팬더가 영웅이 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존재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질문하신다. “너는 누구인지 아느냐?”
네가 생각하는 너의 모습이 진정한 너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 안에 있는 네가 너다.
나는 22절을 말씀대로 믿고 묵상하면서 그냥 은혜가 되었다.
죄로 얼룩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냄새가 펄펄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목욕시킨 다음에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라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걸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다. 20절을 보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15:20)
거지처럼 누더기같은 옷을 입고 돌아오는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양치질을 전혀 하지 않은 아들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맞춤은 삼하 14:33에 의하면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를 뜻한다.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의 소중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해 보자. “나는 누가 뭐래도, 꼴이 이래도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2:9)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증거를 보여주고 설교를 마무리하려 한다. 탕자의 비유에서 세 번째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3)달리시는 하나님이시다.
20절 말씀을 한번 더 읽어보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15:20)
내가 탕자의 이야기를 썼다면, 21절을 먼저 쓰고 20절을 나중에 쓸 것 같다.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잘못했어요” 하니(21절) 아버지가 달려가 안고 입을 맞추었다(20절) 이게 현실적이지 않는가?
나는 성경을 읽을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놀라게 된다.
아버지는 회개의 말을 듣기도 전에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에 측은(側隱)한 마음을 느꼈다. '측은히 여기다'(스플랑크니조마이)의 의미는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아들의 참회 고백 이전에 아버지의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선행한다.
하나님은 내가 회개하고, 내 마음의 답답함을 간절히 기도해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면 내가 너무 지쳐있을때, 내가 너무 외로울때,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할 때 하나님은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어 하신다. 그냥 내버려두면 쓰러질 것 같아 아버지는 자신의 체면, 자존심 다 버리고 달려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체면, 자존심, 부끄러움 다 내려놓고 나를 살리기 위해
내게 기회를 주시고, 자녀답게 살게 하시려고 달려오신다.
달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나 혼자라고?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일어나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안아주시려 달려오신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지길 축복한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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