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18-19 성도가 교통하는 곳(교회론)
◉본문 : 마16:18-10
◉제목 : 성도가 교통하는 곳
한국교회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를 SBS가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이란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최근 SBS에서 스페셜 4부작 <신의 길 인간의 길>은 지금까지 방송됐던 기독교 비판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내용을 선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신앙의 근본인 신의 권위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SBS 스페셜 1부는 ‘예수는 신의 아들인가?’라는 제목이었다. 1부의 내용은 제목에서 물씬 풍기는 것처럼 예수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에 불과하다는 쪽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MBC나 KBS는 SBS에 비해 자주 기독교를 비판하였지만 기독교의 믿음의 대상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켰다. 단 교회나 목사, 크리스천들이 신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부분에 대해 비판을 퍼부었다. 교회 세습과 헌금유용, 부동산 투기, 성적 타락 등이 주로 비판이 대상이 된 것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SBS는 교회의 타락, 잘못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없다, 기독교는 거짓종교라는 식으로 아예 우리 믿음의 대상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얼마나 우리가 믿음없게 살았으면 그들은 말하기를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저들을 보니 하나님은 없는데 분명해!” 이렇게 말하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된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한국처럼 십자가로 가득한 도시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그 수에 비해서 너무나도 미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상당 부분이 교회에 대한 인식의 부족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교회론의 부재 때문이다.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잃어버렸기 때문이라 나는 지적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교회론을 훑어보는 강의식 설교이다. 또한 이제 세워질 동탄성지교회를 생각하면서 교회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확신한다.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다.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을 교회만이 갖고 있다. 교회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반드시 존재할 이유가 있다. 이 확신이 먼저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성령론 이상으로 교회론도 서자 취급을 당했다. 4, 5세기까지 교회는 삼위일체론(기독론, 신론)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이단들이 물고 뜯는 주제였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 삼위일체론이 교리화 되었다. 15, 16세기의 중심 주제는 구원론(구속론)이다. 죄용서와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는데 가톨릭은 행위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성령의 시대, 교회론의 시대이다. 사랑의교회 하면 제자훈련이 유명하다. 제자훈련의 중심은 교회론에 있다. 평신도는 수동적인 “병신도”가 아니라 만인제사장으로 훈련받아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회론에 근거해 훈련을 받고 사역자로 세우는 것이다. 올바른 교회론은 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주님의교회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라는 교회론에 따라 교회가 건물을 짓는 일보다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고 결단했고 그 결과, 정신여고에 강당을 지어주고 예배를 드린다. 목회자나 장로,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기에 기간을 정해놓고 교회를 섬기게 한다. 창립자인 이재철목사님도 10년이 되던 해에 사임을 해서 교계에 희망을 보여주었다. 부목사도 7년까지만 사역이 가능하다.
또 하나의 예로 감자탕교회로 알려진 서울광염교회를 들 수 있다. 홈페이지에 교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서울광염교회는 이 땅에 있는 여러 교회와 같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날마다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세워나가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일을 많이 한다.
감자탕 교회의 10가지 소망
1. 세계에서 전도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교회
2. 국내외에 100개 이상의 교회를 설립하는 교회
3. 100명 이상의 선교사를 지원하는 교회
4. 1천만 장 이상의 전도지를 전하는 교회
5. 우리나라에서 구제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교회
6. 100명 이상의고아와 과부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교회
7. 1만 가정 이상을 천국의 모형으로 만드는 교회
8. 우리나라에서 예수님 닮은 인재를 가장 많이 양육하는 교회
9. 100명 이상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회
10. 100명 이상의 사회 각 분야 최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회
올바른 교회론에 세워진 건강한 교회이기에 10년만에 출석교인만 800명을 웃돈다. 개척하면서 정한 원칙대로 구제·선교·장학 부문에 예산의 30%를 집행한다는 것과 교회 계좌에 잔액을 100만 원 이상 남기지 않겠다는 그 약속은 잘 지켜져 왔다. 그래서 50%이상의 재정이 구제·선교·장학 부문에 집행되었다. 절기헌금은 이웃을 구제하는 데 전액 사용한다는 원칙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어느 해에 성도들이 드린 맥추감사헌금, 약 6천 5백만 원이 어떻게 쓰였는지 공개한 것을 보면서 큰 도전이 되었다.
#임대주택 보증금 168만원 내 주기
#제주도 열 개 마을 구제(1,000만 원)
#해외 13개국 16개 지역 구제(1,600만 원)
#한벗재단 장애인 리프트카 지원(1,000만 원)
#도봉1동사무소 사회복지사 추천 어려운 고등학생들 필요한 것 쇼핑
(1인당 10만 원, 200만 원)
#교회 내 어려운 성도들 30가정에 사랑의 선물을 하는데 300만 원
#학사생들 장보기 120만 원
#중국광염관 지원 500만 원
#백혈병 병동 어린이 환자 위로 잔치 100만 원
#투석중인 목회자 치료비 100만 원
#꿈꾸는 우리 지역아동센타 시설지원비 100만 원
#인근지역 어려운 이웃 100가정에 사랑의 택배 (가정당 5만 원, 500만 원)
#등록금을 미납한 고등학생 학비 지원 100만 원
#굶주린 북한동포 돕기 500만 원(한국교회 이름으로).
교회가 무엇이지 올바로 알 때 이런 교회들이 많이 생겨난다. 나도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며 그런 교회를 세우길 소원한다. 계속 기도하며 틀을 만들고 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교회,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언제나 YES하는 교회” 기도를 부탁한다.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 감동을 주는 교회, 행복을 보여주는 교회가 되도록 말이다. 내가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엡5:10의 말씀대로(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주님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면 하나님은 분명히 보여주시고 인도하실 줄 믿는다. 동탄성지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독특한 사명, 말이다.
1.교회에 대한 정의
이처럼 올바른 교회론 위에 교회가 세워질 수 있음을 알았으므로 교회가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기 원한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시다. 어디에? 이 반석위에. 가톨릭은 반석을 베드로라고 해석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의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6절을 읽어보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보여주듯이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믿음의 고백위에 세워진다.
교회라는 단어는 Ekklesia와 qahal인데 "부른다 혹은 소집한다“에서 어원되었다. 교회는 부름받음(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임이다. 성경에도 교회의 본질을 표현하는 다양한 이미지들도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스도의 몸(엡 1:22-23, 고전 12:12-27, 4:15-16, 골 1:18, 2:9-10, 19), 하나님의 백성(고후 6:16, 벧전 2:9-10), 하나님의 성전 (고전 3:16-17, 엡 2:21-22, 벧전 2:5), 그리스도의 신부 (엡 5:23-32, 고후 11:2), 하나님의 가족 (딤전 3:15, 5:1-2, 고후 6:18, 마 12:50, 요 1:12), 성도의 공동체 (고전 1:2), 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 등. 폴 미니어는 그의 저서 Images of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에서 교회에 대한 신약의 이미지 96가지를 열거하였다.
교회의 여러 분파들은 교회들 자기들의 언어로 정의하였다: "선택 받은 자들의 공동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1), "화해의 공동체" (PCUSA 1967년 신앙고백), "구원 받은 자들의 모임" (벨직 신앙고백 28), "성도와 참 신자들의 회중" (아우그스부르그 신앙고백 8), "새 언약의 공동체" (감독교회 요리문답), "신앙인들의 회중" (감리교회 신앙고백 13), "세례받은 신자들의 자율적인 지역 회중" (남침례교회 신앙고백 6), "그리스도의 몸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주민" (하나님의 성회 신앙선언 10), "선택 받은 하나님 백성의 모임" (정교회 신앙고백), "하나님과의 연합 성체, 전 인류와의 연합 성체" (2차 바티칸 문서, 교회의 조직 2).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지상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쇼윈도우다. 즉 세상은 지상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양쪽 날개가 필요하듯이, 교회 밖으로 나온 교회는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기 위해 복음과 선행이라는 양 날개로 무장해야 합니다.(신앙생활 ,믿음의 삶)
교회만이 사회의 유일한 대안임을 믿을 때, 교회는 세상으로 나서게 된다. 오늘날 전도가 안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복음이 감동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자신이 감동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도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더 많은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도 대상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진실성이다. 교회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섬길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될 것이다.
교회론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가 "되며(be)",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가(do)"를 스스로 고민하며 스스로 성찰하는 신학적 탐구이다. 예수님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교회론의 핵심이다.
1)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본질적 성격은 그 주인이며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의 일차적 정의이다. 몸 없는 머리도 없고, 머리 없는 몸도 없다. 칼 바르트가 서술한 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실체의 지상 역사적인 형태"이다 (IV/1, 661). 몸이 그 머리로부터 명령을 받는 행동 기관인 것처럼, 그의 몸인 교회는 그 머리와 주인에게 완전한 순종이 요구된다. 그 결과, 교회는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이다. 실로, "교회가 사명을 '가지고 있다"라기 보다 그리스도의 명령 자체가 교회를 창조한다."(몰트만, 10)
사도 바울께서는 고전 12:27에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렀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의미한다. 사도께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래서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엡 1:22, 23)라고 하셨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명령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설립자, 또는 특정인의 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교주를 모시는 사이비 집단이 되어 버리고 만다. 교회는 주님의 교훈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단호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머리와 지체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유지된다. 서로가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도 머리되신 주님과 하나이어야 한다. 교회는 주님과 생각이 같아야 한다. 감정도 같아야 한다. 교회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야 한다.
머리는 하나이지만 지체는 많다. 많은 지체들은 각기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체들은 한 머리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와 통일을 이룬다. 지체들끼리의 대립이나 견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교회들은 상호 보완적인 역할로 머리되신 주님을 섬겨야 할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2)에클레시아
성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희랍어 '에클레시아'이다. 이 말은 '안에서 밖으로(out of)'를 의미하는 전치사 '에크'와, '부르다(to call)'를 의미하는 동사 칼레오가 합해진 합성어이다. 따라서 이 말은 "밖으로 불러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회는 흔히 구원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집합체라고 일컬어져 오고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교회는 성도(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교통하는 곳(집합체)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의 교통은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교통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피차의 교제(코이노니아)를 통한 성도들 사이의 수평적인 교통으로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예배와 교제가 있는 것이 교회이다. 건물이 없이도 교회이다. 직분자가 없어도 교회이다. 십자가가 걸려 있지 않아도 교회이다.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핵심은 예배와 교제이다. 이 세상에서 했던 것 중에 천국에 가도 할 수 있는 것이 예배와 교제이다. 전도, 봉사, 훈련... 다 소용없다.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간에 행복한 친교, 교제가 이뤄진다. 나 혼자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성도간에 원수지간으로 살면 안된다. 왜? 천국에 가서 만나 영원히 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진리의 기둥과 터
사도 바울께서는 교회를 가리켜서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하셨다(딤전 3:15). 교회를 기둥이나 터에 비유한 것은 교회의 기초와 사명이 무엇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을 주시려 함이었다.
교회의 터는 진리이다. 교회는 오직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한다. 교회가 혈연이나 사업이나 권력 등의 기초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진리되신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교회는 진리의 소호자이다. 교회는 진리만을 전하고, 진리만을 가르쳐야 한다. 진리는 타협이나 양보를 허락하지 않는다. 타협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외로울 때가 많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할 때도 많다. 이것이 교회가 가야 할 길이다.
진리위에 세워진 교회는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다. 왜 요즘 많은 교회들이 비난받고 흔들리고 나눠질까? 진리가 아닌 인간의 욕심, 꿈, 방법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18절 말씀을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권세있게 하셨다. 든든한 반석위에 세워주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위에 건설되었다(13-17, 20-21절).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론은 조직신학의 순서에서 보는 대로 진정한 기독론과 구원론에 기초한다. 위르겐 몰트만이 강조한 대로, "교회에 대한 모든 언급은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언급은 교회에 대한 언급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의 교회를 건설할 계획을 공개하면서, 그는 자기 교회에 필요한 천상적 권력과 권위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교회의 권세는 그리스도의 권세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세 가지의 직분에 상응하는 세 가지의 권세(왕, 제사장, 선지자)이다. 다스리는 권세 (potestas ordinans와 potestas iudicans를 포함하는 potestas gubernans), 돕는 권세 (potestas misericordiae)
, 가르치는 권세 (potestas docendi)가 있다. 교회는 권세를 가진 공동체이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로다 마(16:18)
세상의 권세와 사탄의 권세, 죽음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나가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교회의 파워이다. 교회는 죄, 세상, 사탄과 싸우고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면류관을 쟁취하는 영적 권위와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한 곳이다.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는 전도공동체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6:19)
교회는 천국열쇠를 갖고 있다 천국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선포할 수 있는 특권이 교회에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 천국을 여는 것이다. 둘째는 용서와 기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용서와 기도가 있을 때 교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기적이 일어난다. 셋째는 교회에 전도의 사명이 맡겨졌다는 것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지상명령으로 갖고 있다. 전도는 교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리스도의 빛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교회의 영광스러운 특권이다.
2.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그런데 교회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를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로 구별하였다. 왜냐하면 우후죽순처럼 교회가 생기니까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하는 것은 당시의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또한 개혁정신을 이어가는 개신교회안에도 수 많은 배교자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개혁자들은 초대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사상속에 있었던 보이지 않는 교회의 개념을 발전시켜 현실의 교회와 구별되는 참교회로서의 보이지 않는 교회의 개념을 확립시키닌 것이다. 참교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지상과 천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택된 무리를 말한다. 보이는 교회는 때로는 사단의 도구가 되고, 부패하기도 하지만 참된교회는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며 결코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누면 첫째, 제도적교회의 활동을 신성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둘째, 제도적교회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용기를 갖고 계속하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교회 개념은 구체적인 교회의 개혁으로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참교회는 부패한 현실적인 교회에 안주할 수 없다는 강한 개혁의지가 핵심인 것이다.
3. 교회의 속성
최초의 공식적인 세계교회 신조인 니케아신경은 "una, sancta, catholica et apostolica ecclesia, 하나의 거룩하고 세계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고백하였으며, 이는 전 세계교회에서 교회의 4대 속성으로 수용되어 왔다
1)하나의 교회 una ecclesia
오로지 "하나의 주님, 하나의 신앙, 하나의 세례, 하나의 하나님과 만유의 아버지", "하나의 소망", "하나의 소명", "하나의 성령",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머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의 몸", 즉 하나의 교회만 있어야 한다(엡 4:4-6). 비록 초대교회에도 수 많은 다양성과 차이가 존재하였지만, 이단을 제외한 여하한 분리도 금지되었으며, 주님과 모든 사도들에 의해 정죄되었다. 교회는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되었다(4:3). 예수님은 하나됨을 위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적대적인 교파와 교단들로 분열되었으며, 세계에는 9천개에 달하는 교단들이 있다.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의 겸손과 상황적 이해의 사랑이 필요하며
개신교회도 통일성을 지키는데 실패하였다. 이는 성찬이나 교회정치구조와 같이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이견을 관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는 분열을 정죄하였다: "교회로부터의 분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V.i.10) 그는 신앙 조목에 대하여 필수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근본적인 것과 비근본적인 것을 구별하였다 비본질적인 문제로 분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18-19세기의 부흥운동과 선교운동이 분열된 교회들로 하여금 20세기에 하나됨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그 하나의 결과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1948년 창설되었고,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화 사이에도 화해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분파와 이단은 구별되어야 한다.
2)거룩한 교회
교회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의도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교회 sancta ecclesia"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이것은 교회의 현실적인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관점에 기초한다. 고린도교회가 서로 나뉘어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거룩한 성도라고 부른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hegiasmenoi), 즉 성도의 공동체 communio sanctorum 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 교회는 도덕적 공동체이며, 따라서 교회의 도덕적 수준은 항상 세상의 그것보다 높아야 한다. 또한, 교회의 성결성은 세계를 성화시키고 죄와 흑암의 세력과 성공적으로 싸워 이기는 유용하고 설득력 있는 도구가 되는데 필수적이다.
3)보편적인 교회(세계적인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는 인종과 민족과 지역과 언어와 문화와 성별과 연령과 모든 사회 집단을 포함하며, 따라서 "세계적인 교회 catholica ecclesia"이다. "카톨릭 catholic"이라는 말은 "kath holou의 준말인 katholikos"에서 왔는데, 어떤 것도 제외하지 않는 전체를 의미한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는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 세계적인 교회를 말한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의 모든 분열되고 적대적인 집단들을 자기 안에서 통일하기 위해서였다(엡 1:10, 22):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느니라."(엡 2:14-16)
4)사도적인 교회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와 기둥이다.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으며(엡 2:20), 바로 사도들이 교회의 "기둥들"(갈 2:9)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apostolica ecclesia 사도적인 교회"이다. 그의 사도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을 수 없다.
로마 가톨릭은 사도적교회란 사도적 계승자인 로마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받은 주교가 다스리는 교회이므로 가톨릭에서는 개신교를 사도적인 교회로 보지 않는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마16:16을 베드로라는 반석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교황은 베드로의 대리자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으로 계승한 분은 베드로가 아니라 성령님이시다. 사도적교회란 성령께서 운행하시며 사도들의 정신이 통치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사도들이 남긴 복음, 교훈,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는 사도적교회이다.
교회는 semper reformanda, 즉 지속적 개혁을 실천함으로서 계속하여 자신이 사도적 전통으로부터 이탈하지 않도록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이 교회가 1세기 사도들의 교회와 정확히 동일한 형태를 유지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성령이 계속 변화하는 세상에서 창조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사도성이란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이다. 이게 바로 사도행전적인 교회인 것이다.
4. 교회의 표징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를 거짓 교회와 구별하기 위하여 참된 교회의 표징(notae verae ecclesiae)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칼빈은 두 가지의 구별하는 표징을 제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경청되며, 성례가 그리스도의 제정방식에 따라 시행되는 것을 우리가 보면, 거기에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기독교강요 IV.i.9) 개혁자들은 교회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시행이라고 이해하였으며, 이 두 가지 기능이 참된 교회의 증표 notae verae ecclesiae라고 주장하였다. 후에, 교회 권징의 시행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주님이 위임한 모든 사역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본질적이고 기초적인 내적 기능이다.
1)말씀과 참된 전파
참 교회를 분별케 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파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졌고, 또 말씀을 수호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만을 전파해야 한다.
2)정당한 성례의 거행
성례(聖禮)란 거룩한 의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문자적인 의미로만 본다면,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거룩한 의식들이 행해진다. 예배, 기도, 안수, 결혼, 임직 등 모든 의식물들이 다 거룩하게 행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이 모두다 참교회를 구분하게 해 주는 성례라고 보지 않는다.
로마교회는 성례의 종류가 7가지나 된다고 말한다. 영세성사, 성체성사, 고백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 신품성사, 종부성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로마교회와 달리,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행하도록 명령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뿐이기 때문이다.
3)권징(勸懲)
권징이란 선한 일은 권장하고, 악한 일에는 징계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권징이 신실하게 시행된다는 것은 권징이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실행됨을 의미한다. 교회는 사랑을 내세워 범죄자를 동정하는 나머지 마침내 그 사람을 심각한 죄악에 이르게 하기가 쉽다. 또 작은 쓴 뿌리를 묵인하고 용납하다가 교회 안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쉽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법과 질서를 내세우다가 오히려 심각한 상처를 낳게 할 수도 있다. 또 일부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권징이 악용될 소지도 있다. 그래서 교회는 권징을 신실하게 시행해야 한다.
교회 권징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1) 죄인을 회복시켜 하나님과 동료 그리스도인과 화해시키려는 목적, (2)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더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 그리고 (3) 교회의 순수성과 그리스도의 명예를 보호하려는 목적. (그루뎀, 896)
5.교회의 책임
교회 안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면, 어디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다면, 마음이 상한 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주님의 몸 되신 교회. 그리고 각 지체가 된 우리들. 함께 울어주고 또 함께 기뻐해주는 참 사랑이 우리 각 사람에게 있어 사람을 살리는 교회들이 온 땅 가운데 세워져야 한다.
교회의 역할은 주님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주님께 맞추는 것이다.(도로시 세이어스)
교회는 살려고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언하는 예수님의 몸이다.
차고에 간다고 차가 되는 것이 아니듯 교회에 다닌다고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로렌스 J. 피터)
한번은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가 중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그가 준 선교금이 얼마나 잘 쓰였는지를 알아 보기 위함이었다. 워너메이커는 구식 쟁기로 쟁기질을 하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런데 그 쟁기를 웬 청년이 소 한 마리와 함께 끌고 있었다. 워너메이커가 그 까닭을 묻자, 농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농부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는 수 마일 밖까지 볼 수 있는 뾰족탑이 필요했었다. 교인들은 기도를 했지만 돈이 부족하였다. 그러자, 자기 아들이 "소의 멍에를 제가 질테니 소 한 마리를 팔도록 하세요"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저로 하여금 고난의 멍에를 메게 하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할 때에 이들 부자처럼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워너메이커는 기도하였다.
중국에서 돌아온 워너메이커는 교회 세우는 일에 자신의 재물을 아끼지 않고 헌금하기 시작하였다. 워너메이커는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희생적으로 헌신하면서도 즐거움으로 그 멍에를 메게 해 달라"고 기도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감당하도록 고난의 멍에를 메도록 하자.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다.
교회의 속성-하나의 거룩하고 세계적이며 사도적인 교회
교회의 표징-말씀의 참된 전파, 올바른 성례시행, 권징
개혁교회...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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