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22 삶을 변화시키는 소그룹
◉일시 : 2008년 3월 7일(금) 여자연합구역예배
◉본문 : 마태복음 13장 22절
◉제목 : 삶을 변화시키는 소그룹
사람들은 혼자 생각한다. “나는 영적으로 남들보다 앞서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감동을 받으면 눈물을 흘리며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따뜻한 마음이 있어.”
하지만 이런 나의 착각이 깨어지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나를 거슬리게 하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 그 따뜻한 마음은 완전히 식어있음을 본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변화가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은 변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 교회를 옮기기도 한다.
규모가 큰 교회에 가면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예배도 웅장하게 드려진다.
하지만 그 교회에 적응하고 파악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장단점이 있음을 본다.
그렇다고 작은 교회에 간다고 상황이 달라지는가?
사생활의 노출이 쉽고 여러모로 조잡하고 체계적이지 않아 실망하게 된다.
초대교회는 어땠을까? 무엇이 저들을 변화시켰는가?
훌륭한 건물도, 신약성경도, 신학교도, 주일학교도, 성가대도, 웅장한 예배도 없었다.
오직 소그룹으로 믿는 교제와 사귐이 전부였다.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두날개가 있다. 하늘을 나는 믿음의 삶으로 이끄는 두 날개.
바로 대그룹 예배와 소그룹 모임이다.
주일 예배를 잘 드리는 것 만으로 신앙의 성장은 쉽지않다. 날개 하나로 나는 것이다.
그럼? 동시에 소그룹의 교제가 필요하다.
교회의 5가지 목적을 아는가? 예배, 교제, 훈련, 사역, 전도
신앙생활은 교제,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사귐이 있다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게 아니다. 한국교회의 문제 중 하나가 이 것이다. 믿음이면 최고인 것 처럼 만들었다.
그럼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로 나타나야 한다. 삶의 실천이다.
우린 하나님앞에 있으면 좋지만 삶의 현장으로 가면 얼마나 많은 좌절과 아픔, 실패를 경험하는지 모른다. 바로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나누며 회복과 위로를 경험하는 곳이 소그룹이다.
하지만 소그룹으로 모인다고 영적성장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5-10명 정도의 소그룹, 구역으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만난다고 성장이 보장되지 않는다.
나는 매주 구역예배에 빠지지 않으니까.. 하고 안심하지 말라.
우리 스스로가 알지 않는가? 수십년을 다녀도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우리의 소그룹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적은 수의 인원이 모이는 게 소그룹이 아니라 진정한 소그룹이란 삶을 변화시키는 영성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커피 마시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장소이다. 그러나 그곳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모든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은 소그룹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하나됨과 서로간의 하나됨을 경험함으로 삶의 변화를 체험하는 관계적인 공동체를 구축하는 곳이 바로 소그룹이다. 지속적인 삶의 변화는 의도적인 관계 속에서 가장 잘 일어난다. 그 곳이 바로 소그룹이다.
그럼 우리의 소그룹이 어떤 요소가 있어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자.
1)가면을 벗어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모두 사람들에게 나아갈 때 가면을 쓴다.
변신 - 엄마가 아빠랑 외출할 때 맨날 이걸 해요.
우리는 솔직한 마음을 숨긴채 그럴 듯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에 익숙하다.
애들에게 소리를 치고, 화를 내다가도 전화가 보면 상냥하게 “여보세요” 한다.
어느 정도의 가면, 위장은 필요하다. 우리 얼굴에 화장하는 정도만...
사실 가면을 만들고 진실을 숨기는 것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일부이다.
선악과를 따 먹자마자 한 일은 위장하고 가면을 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말 가면을 벗어야 하는 소그룹에 와서도 가면을 벗지 않음에 있다.
내 삶의 변화시키려면 자신의 가면을 벗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고백을 하는 것을 말한다.
친구와 가까워 지는 좋은 방법 2가지가 있다. 같이 잠을 자고, 목욕탕에 가는 거다.
왜 그럴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기고백이란 자신을 솔직하게 오픈하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 내가 받은 유혹, 내가 지은 죄,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이뤄낸 승리 같은 일들을 적절히 드러내는 일이다.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진리를 피해 숨어다닌는 공동체가 된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 하고 끝나게 된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도 겉으로 보기에는 꽤 괜챦아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미소짓고, 만나면 날씨, 직장 이야기를 하며 친한 척한다.
어느 교회의 이야기다.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돌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도망가서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이 일로 교회는 충격을 받았다. 믿음이 좋아보였지만 그 부부는 결혼생활의 문제를 몇 년이나 사람들에게 숨겨왔던 것이다.
또 교회안에 매우 인기있는 여성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여성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독약을 마시고 병원에 실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그 여성은 자기가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싫어 자살하려 했다. 그런데 교회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 중에 그녀의 은밀한 고통을 알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예배를 잘 드리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내면에 수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는데 치유받을 소그룹이 없다면 믿음, 신앙과 상관없이 그 결과는 보장할 수 없다. 오늘 우리의 소그룹이 그런 목표를 갖고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하기 위해 가면을 벗겠다. 두려움을 포함한 내면의 감정, 아직도 고투를 벌이고 있는 죄, 성장하고 있지 않은 영역들을 깊이 나눠야 한다.
작년에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다. 2003년에 나온 “사토라레”이다.
사토미 켄이치는 3살때 겪은 비행기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그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있는 청년 외과 의사이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그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마음속을 들켜버리고 마는 '사토라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그의 마음속 솔직한 생각들에 사람들은 당황하고 긴장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냐고? 마음 속의 생각들이 모두 사람들에게 들리는 사토라레는 모두 천재이기에 국가가 보호한다. 주변에 경호하는 사람들을 붙여서 철저히 교육해서, 모르는 척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본인은 자신이 사토라레라는 것을 모르고 사는거다.
그러던 어느날, 사토라레 특별관리위원회는 신약개발분야에서 켄이치의 천재성을 발휘하게 하기위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정신과의사 코마츠 요코를 파견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코마츠 요코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토미 켄이치입니다 (에- 뭐야? 젊을 줄 알았는데 완전히 노계잖아)' '뭐 노계라구? 앗, 잘 부탁드립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남자_ 그의 마음속은 실시간 생중계 중! '만약 그와 사귀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키스를 했는지 또 어떻게 했는지, 느낌이 어땠는지... 다음 날이면 주변사람들은 다 알게 된다.
소그룹에서는 모두 사토라레가 되어야 한다. 마음을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성령께서 지적해 주시는 것들을 오픈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룹원의 진지한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 솔직함에 당황해 농담처럼 여기고 판단하면 안된다. 그 용기를 격려해 주고 함께 공감해 주어야 한다. 사토라레가 자신의 마음을 사람들이 다 듣고 거기에 반응한다면 바로 자살할 것이다.
어떤 소그룹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은 정욕과 씨름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기를 고백했는데 그 그룹의 누군가가 “나는 당신이 정욕과 씨름한다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데요. 아니 믿음으로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로 인해 그 소그룹은 서로 마음을 열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가 어렵게 자신을 오픈하면 정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판단하려 한다. 그건 믿음도, 충고도, 사랑도 아니다. 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이다.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주지 못할 거면 입을 다무는 것이 낫다.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자신의 가면을 벗고 실체를 드러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기 고백의 훈련이 그 가면을 벗는 훈련이다. 가면을 벗을 때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게 되고, 우리 자신을 열어놀때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게 된다.
두 번째는 거울을 봐야 한다.
오늘 교회오기 전에 거울을 몇 번 보았는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약1:22-23)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이 말씀은 2000년전의 상황을 이해해야 된다. 당시 거울은 청동을 반짝이게 해서 만들었기에 흐릿하게 보였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흐리멍텅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오늘의 말로 번역을 하면 거꾸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
나는 목사로서 설교를 하면서 항상 놀라는 것이 있다.
말씀을 들을때 경청하고, 고개도 끄덕이고, 큰 감동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적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살아가는 것을 보면 들은 것과는 정반대로 살아간다.
그런 일이 매주 반복된다. 지난 주 설교의 중심주제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듣기는 잘 하는데 인내하며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소그룹이 해야 할 일은 내가 들은 말씀대로 살아본 것, 실패한 것을 나눔으로 말씀과 내 삶의 간격을 메우는 일이다. 그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화를 너무 잘 내는 습관이 있다고 하자.
소그룹 리더는 그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묻는다.
“어떤 상황이 당신을 화내게 하나요? 당신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세요?”
그럼 리더는 화를 내는 잘못된 방식에 대한 대안들을 그 사람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다음 번 모임을 할 때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질문해서 확인해야 한다. 그가 잘 했다면 리더와 그룹원들은 힘차게 그를 격려해 주어야 한다.
나에게 별 게 아닌 문제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큰 문제였다.
이렇게 삶에 말씀을 적용한 결과에 대해 서로 칭찬해주고, 박수쳐 주면 활발해진다.
그러나 잘하지 못했다 해도 실망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하지 못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내가 받은 말씀의 거울에 계속 나를 비추어 보고 삶에 적용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소그룹에서조차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적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들어도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마태복음 13장 23절을 보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씨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땅에 말씀이 뿌려지냐가 중요하다.
나는 믿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 밭은 좋은 땅이다.
요한삼서 2절 말씀처럼 “우리의 영혼은 이미 잘 되어 있다.”
말씀이 알아서 자라도록 내버려 둔다. 적용하고 실천하지 않는다.
그래서 100배, 60배, 30배로 결실이 맺혀지지 않는다.
소그룹은 체중계와 같다.
내가 살을 빼기로 작정했으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아는 방법이 체중계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는 느낌도 체중계 바늘 앞에서는 변명할 수 없다.
소그룹은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는지 체중계에 올라가는 장이다.
나의 믿음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검증된다.
그런 의미에서 소그룹(구역예배)는 무척 중요하다.
가면을 벗읍시다. 매일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말씀이 적용되는지 확인하자.
소그룹의 체중계에 올라가 나 자신을 측정해 봐야 한다.
이게 신앙성장의 척도이다.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민13장 17-24절 비전의 현장을 바라보라 (0) | 2013.11.20 |
|---|---|
| [스크랩] 마16:18-19 성도가 교통하는 곳(교회론) (0) | 2013.11.20 |
| [스크랩] 히11:4-7 믿음의 영웅들(아벨,에녹,노아) (0) | 2013.11.20 |
| [스크랩] 창3:1-7 실패는 기회입니다 (0) | 2013.11.20 |
| [스크랩] 시118:15-16 가정예배는 축복의 통로 (0) | 201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