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란 무엇인가?
1. 영성이란 무었인가?
고든 웨이크필드(Gordon Wakefield) 는 영성이란 단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들의 생활에 생명을 불어 넣고 그들로 하여금 초 감각적인 실체들에 도달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태도와 믿음의 실천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고 한다.1) 그런가 하면 개혁주의 전통에서의 영성은 경견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비롯된다고 한다.2). 그리고 경건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깊이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 임재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한다.
개혁주의 영성이 가져다주는 도전은 순종의 삶속에서 제자의 참된기쁨을 발견하므로 하나님의 영적인 호흡에 인도함을 받으며 그를 영화롭게 해 드리는 삶이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 따르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즐거워 해야 한다고한다. 그러므로 경건을 통한 영성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수용하는 것이다. 중세 사막의 교부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영적인 삶이 있었다. 어떠한 영적인 삶이 있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광야의 영성
①. 삶 전제로서의 영성
광야의 영성은 홀로있는 영성이요 삶전체의 영성이다. 광야의 영성이란 외적인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못하거나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도 영성의 균형을 잃어 버리지 않고 삶을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홀로있음의 영성은 하나님과 독대하여 그분과 깊이 있게 만나고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오직 그분으로부터 삶이 유지되고 조성되며 살아갈 힘을 공급받고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야의 영성과 홀로있음의 영성은 곧 외부의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사는 삶 자체인 것이다.
광야의 영성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삶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다. 광야 교부들의 영성은 특별하게 가르칠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체계적인 방법에 의하여 이루진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유대 광야의 사막에 가셔서 마귀들과 싸워 이김으로 영성을 회복하셨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어떻게 회복을 하셨을까, 그것은 어떠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과 인내를 통하여 훈련을 한것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아무것도 의지할곳 없는 곳에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긴 패배자의 영성이다. 즉 패하였지만 이긴 것이다. 당시 유대의 개념에 광야사막은 마귀들이 있는곳으로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광야의 생활은 어떠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마귀와 싸워 이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광야는 마귀와의 최종적인 싸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막의 영성은 오직 하나님께 대한 몸과 정신과 모든 힘을 재 정립하기 위하여 일생동안 분투해야 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몇시간씩 기도를 한다든지 먹고 마시는 것은 기도와 경건의 생활이 삶이 되는 것이다.
아가콘(Agathon)은 이렇게 말한다. “기도는 마지막 숨을 거둘때까지 지속해야하는 힘든 투쟁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수도실에 들어가 않아 있으라 그러면 그것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그러나 만일 사람이 자기의 기도실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다른곳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만약 몸이 수도원의 기도실안에 있으면서 생각이 바같 세상에 가 있다면 그는 이미 그곳을 떠난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막의 영성은 고난과 삶의 역경을 통하여 스스로 터득하여 발견하고 적용할줄 아는 영성인 것이다.
초대교회의 신앙적 구조는 믿음과 행위, 신앙과 소망은 사랑의 조화로운 일치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에는 칭의만이 아니라 수도 정신을 통한 성화가 있어야 한다. 수도정신의 시련과 고난은 성화를 이루어 가는 하나의 방편이다. 따라서 사막의 영성을 우리에게 전해준 안토니의 생활은 광야와 세상을 왕래하면서 세상에서의 영적 아버지로의 사역을 해야 한다 사막의 영성이 개인적이라고 본다면 수도원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이요 관계의 영성이다.
②. 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로서의 영성
사막의 영성은 삶전체에서의 맥락으로 볼때 영적인 아버지 어머니인 “사부”로서의 역할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생명을 주는일을 말한다.
사부(abba amma)란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실제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아들을 위해 진실되게 삶을 가르쳐 주는것과 같이 하나님을 중보할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부란 영적인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잉태하여 낳은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그들이 영적으로 잘 성장하도록 돕고 본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이기에 아버지나 어머니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사막의 영성에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전해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같이 영적인 생명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③ 금욕주의 영성
사막의 영성에 특징은 금욕주의 생활에 있다. 이들의 금욕에 목표는 인내와 극한 훈련을 통하여 자신들의 인간성을 죽이고 그리스도안에 새로운 인격을 배양하고 영적인 힘을 얻을수 있는 자기 훈련이다. 금욕을 통하여 자신을 통제함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일치하게 만드는 삶의 한 방법이요 수단이다.
자기를 죽이기 위하여 자신을 절제하고 규칙을 만들어 그 규칙속에 자기가 자기를 훈련시키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생활이다. 규칙적인 기도생활과 노동과 경건훈련을 통하여 세상을 이기고 세상속에 자유하며 사랑으로 이루게하는 길이 금욕을 통한 영성이다.
3. 어거스틴의 영성
어거스틴의 영성은 그의 저서 참회록에서 발견할수 있다.그는 젊은 날에 세상의 죄악에 속하여 살았다. 그러나 죄악에서 쾌락을 즐기며 자신의 뜻대로 살아 보았지만 무었인가 자신의 내면속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속에 방황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텅빈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마니교에도 9년동안이나 심취해 보았지만 채울길이 없었다. 그렇게 갈망하던 어거스틴은 플라톤 철학을 만나게 되고 철학을 통하여 비 물질 세계에 눈을뜨게 되었다. 무었인가 영적인 다른세계가 있다는 것과 신은 한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어거스틴은 어린 아이들의 노는 소리에 “책을 펼처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바울 성서를 펼처 읽은 순간 자신이 철저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심을 하여 세례를 받고 깊은 신앙 생활에 몰입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바로 33세가 되던 해였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신앙 생활이 깊어 지면 깊어 질수록 내면세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번민하던 어거스틴은 자신의 내면 안에는 세가지의 요소 즉 진리(Veritas) 사랑(Caritas) 영원성(Aeternitas)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영혼은 진리를 사모하는 열정이 있고 사랑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영원하고 싶은 영원성이 있는데 어거스틴은 이 세가지의 기능을 영혼의 기능(Faculty)으로 보았다. 이 영혼의 기능은 기억과 이해와 의지로 설명을 하면서 하나님은 이 세 기능을 통하여인간의 영혼속에 내재하고 있다는것이며 이 교리는 후에 삼위일체론의 모형이 되기도 하였다.
어거스틴은 기억안에는 영원성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을 반영한것이고 이해 속에는 진리가 있는데 그 진리는 성육신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의지는 성령의 역할을 하는데 성령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성도와의 연결하는 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온전히 회복이 되면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진리를 깨달을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영성 생활에서 발견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영성 생활에 가장 선행되는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내면세계에 들어오는것이고 또한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발견하는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의 영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내면속에 거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생활가운데 발견하며 사는것이라고 한다.
4. 마카리우스의 영성
성자 마카리우스는 (330-339) 이집트의 프티나플에서 태어났다. 프티나플은 나트리아 사막에서 별로 멀지 않은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마카리우스는 안토니의 제자 이면서 벗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젊은 시절 평범한 목동이었는데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 했으며 그것은 곧 그를 신비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는 어릴적에 무화과를 훔쳐 먹은 것을 평생 통회하며 살정도로 양심의 소유자 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결혼하였으나 젊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얼마후 세속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서 금욕 수도사를 스승으로 삼아 고행을 통한 영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산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카리우스는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 마음의 영성을 대표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어떤 지성적인 관상이나 사변적인 체계와는 달리 사람의 마음을 영성의 장소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격의 중심인 마음에 영을 통하여 그들과 만나고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체험하거나 감지한다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마카리우스의 영성은 한마디로 성령중심의 체험적 영성(spirituality of experience)이다.
마카리우스는 체험을 통한 신앙으로 인간적인 세상의 정욕과 모든 명예, 이기심등에 흔들리지 않는 초탈의 자유를 누리며 겸손하고 자비로운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죄인을 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죄가 있으나 정죄 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고 용서함으로써 하나님과 같은 지상의 신이라고 할정도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구원이란 마귀와의 싸움에 처한 영혼이 어떻게 하여 마귀로부터 헤처 나올수 있는가를 통하여 설명이 되어 진다. 죄지은 인간이 마귀아래 속밖되어 있는 것을 구출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이 회복됨은 곧 그리스도와 연합을 하는것이고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 지면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 또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 사람은 정욕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은혜가 충만한 삶이되고 그로 인하여 높은 성화의 단계에 이른다고 본다.
그렇게 성화의 단계에 이른 사람은 이방인처럼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초월된 삶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살며, 가난과 고난과, 겸손과, 인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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