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5장29-39절(영성기도 넘버 원) 13.7.28
Ⅰ. 진(晉)나라의 환온장군이 이웃 촉(蜀)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을 통과할 때 그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습니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배가 출발하자 원숭이는 강가에 크고 위험한 벼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가기를 100여리쯤 따라갔습니다. 배가 강기슭에 닿자. 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이상하게도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새끼를 잃은 슬픔이 어찌나 슬펐던지 창자가 토막 토막 다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斷腸 이라는 단어입니다. 큰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어미는 ‘애간장 탄다, 또는, 속이 온통 숯덩이가 돼 버렸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께서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창자가 뒤틀린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지역에서 돌아오신 후 갈릴리 건너편지역 산에서 가르치실 때입니다. 큰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왔고, 장애인들도 주님앞에 앉혔습니다. 장애인들 중에는 다리를 저는 자, 시각장애인, 그리고 말을 못하는 언어장애인등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은 다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상에서 지내기를 사흘째 되는 날 주님은 그들을 그냥 보내실 수 없어서 그들에게 특별한 식사를 제공하시게 됩니다. 떡덩이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를 들고 축복기도하시고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천 명이 넘는 자들이 다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이 일곱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미 들으신 마태복음14장13-21절에 있는 오병이어의 말씀과 닮은 점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Ⅱ. 오늘 말씀에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누가 나를 불쌍히 여긴다는 말을 도무지 듣기 싫어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불쌍한 것도 모르고, 남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도 못 받아들입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좀 젊을 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다는 말씀도 싫어합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그거 아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때 거기에는 항상 놀라운 일이 생기고 큰 능력이 나타나고 복이 임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하나에서 열까지 다 불쌍한 것 투성이입니다.
이 불쌍히 여긴다는 말보다 그나마 좀 더 듣기 쉬운 말이 ‘긍휼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케세드라는 말은 자비, 불쌍히 여김(compassion with, 긍휼히 여김(mercy on-) 同情(sympathy)등으로 번역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특별한 은혜가 임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무력하고 무자격하기 때문입니다.(저는 긍휼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제일 많이 합니다, 성도님들도 한번 해보십시오, 우리 자녀 남편,,,놀라운 일들이,,오늘 제목,,,)
저는 우리 생명시내교회 성도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시고, 하나님의 긍휼이 크게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 즉 주의 긍휼이 우리게 임하기 위하여는,
1.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30). 긍휼없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임합니다. 구하여야 합니다. 잘난 사람은 긍휼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고 긍휼을 원하노라” 그러셨습니다. 자신이 영적 결핍의식이 없는 사람은 긍휼이 필요없습니다. 딸이 귀신들려 고통당하던 이방나라 가나안 여인이 바란 것은 오직 긍휼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영문으로는 ‘mercy on me’ 긍휼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장면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큰 무리가 사람들을 산에 계신 주님께 끌고 올라왔습니다. 불치의 장애로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산으로 끌고 온 많은 사람들은 중도 장애를 안고 힘들어하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산에는 나 혼자 몸 오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지체장인을 산에 앉아 말씀 전하시는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와 비슷한 사건이 마가복음2장3-에도 있습니다. 가버나움의 많은 사람들이 네 명의 남자를 택하여 그들에게 한 중풍병자를 들것에 누인 채로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는 집의 지붕을 통하여 주님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런 협력이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결과는 보나마나 나음을 얻게되는 일이었습니다.
마5: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할렐루야!
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그냥은 잘 안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가 그 은혜를 깨닫고 은혜안에 살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안에서 우리의 視覺이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 이야기 중에도 참 감동스러운 일이 있더라구요. 양집사님 수술받고 치료받는 동안 노집사님이 아들 성준이를 집에서 맡아 볼봐주셨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성준이가 한 성깔 하쟎아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이 양집사님이 수진자매가 수술받는 다니까 내가 상윤이 봐줄께 그랬다쟎아요? 상윤이 얘도 아직 돌도 안 지난 것이 보통 아니거든요. 서로 이웃의 입장에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게 긍휼입니다. 스프랑크니 조마이(엘레오스) 알고보면 괭장히 좋은 말이예요. 앞으로 저도 많이 긍휼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예)들으셨던 예화를 한 번 더 말합니다. 수녀원‘죽어가는 자들의 집’에서 어느날 한 수녀가 테레사 수녀에게 “오늘 병원에 문제가 생겼어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때 테레사는 그 ‘문제’라는 말이 듣기에 좀 그러네요. 문제라는 말 대신 ‘선물’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날리 없겠지요.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그게 무슨 일이든지 다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랬답니다. 그때부터 그녀가 있는 병원에서는 문제를 膳物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래서 그들은 5-60년대 캘컷타의 거리의 폐병환자 그리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보호합니다. 거리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자들이 다 하나님의 선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을 선물로 섬기던 병원, 죽음의 집이 그 후로는 죽어가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활의 집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긍휼이란 길거리에서 버려지고 쓰러진체 물건처럼 죽어가는 악취나는 환자들이 다 하나님의 선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한 번 따라 해보십시다. 모든 문제는 다 선물이다! 큰 문제는 ??큰 선물이다.
스데반집사님은 자기 동족들의 시기를 사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기를 죽이는 자들이 불쌍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해서 저럽니다,,,. 하고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이게 긍휼의 마음입니다.
오늘 불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두고 볼 수 없어 그들을 산위에 앉으신 주님께로 힘들게 데리고 온 많은 무리의 마음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문제를 놓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많은 말로 구하지 못하도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 이 보다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 즉 주의 긍휼이 우리게 임하기 위하여는, 1)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2. 주님앞에 나와야 합니다. 수많은 결핍을 지닌 자들이 다 주 앞에 왔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받고 능력받고 복받고 회복되기를 원하는 자는 다 주 앞에 나오는 자들이었습니다(30). 끌려오든지, 스스로 오든지, 억지로 오든지, 하나님의 긍휼을 원하는 자들은 주님앞에 나와야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이 멀리계시지 않고 우리와 만나기 위하여 아주 가까이 와 계시니까요. 천국도 그러합니다. 침노할 만큼 우리들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은혜받고 능력받고 복받고 다 주앞에 나오는 자들이었습니다(30). 그들 중에 편안 자가 누가 있었겠습니까? 다 힘들었습니다.
힘들어도 예수님께 오면.. 뭔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병든 사람은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무시당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차별당하지 않고..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대접받습니다. 그 뿐입니까? 그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께만 나오면.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말씀들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무엇을 기대하며 예수님께 나오셨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상태로.. 어떤 결핍의식으로 나왔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예수님)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르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 16)
이처럼 세상 어떤 수고와 무거운 짐을 졌다 할지라도 주님께 나오면.. 그 모든 짐 대신 져 주시면서 우리에게 하늘의 평안을 주심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주님 앞에 나오는 자들마다 언제든지 주님을 뜻을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보시면.. ‘불쌍히 여기노라’ 이 말은 compassion.. 함께 느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나온 이들의 고통을.. 아픔을.. 괴로움을.. 우리 주님도 함께 느끼는 거예요. 이 단어를 헬라어 의미로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 깊은 곳의 속 창자가 뒤틀려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예수님께로 나온 이들의 아픔을 아시고.. 문제를 아시는데..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이.. 속 창자가 끊어지도록 저들의 아픔에 같이 동참하고 공감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냐면 가까이 와계시는 주님앞에 나오는 자들에게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오기를 힘서야 합니다.
예)못살던 시절에는 무슬림들은 평생에 한 번 그들의 성지라는 메카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평생소원이 로마 바티칸에 가서 교황을 알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마치 그들의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합니다. 기독교는 그런 성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로 순례의 여행을 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어디에나 교회당이 있고, 예배 공동체가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 예배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無所不在하신 분으로 어디서나 계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인데 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교회에 안 나오고 라디오 예배 인터넷 예배를 드리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특별한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교회라고 하는 모임이 아닌 혼자 예배를 드려도 괜찮을 만큼 성숙되어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라는 예배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거기는 주님만이 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바라고 하나님 앞에 예배로 모이기를 힘쓰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 즉 주의 긍휼이 우리게 임하기 위하여는,
1)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2)주님앞에 나와야 하고,
3. 주님밖에는 대책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모인 이들은 주앞에 나와서 사흘을 함께 있는 것 뿐이었습니다. 내일을 위한 대책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대책입니다. 이들은 앉으라면 앉고(35),먹으라면 먹고(37), 돌아가라면 돌아가는 사람들입니다(39). 이들만 산위에서 주님을 특별히 만났습니다. 이런 자들을 위하여 주님은 미래의 일까지도 확실한 완전보장이 되어주십니다(엡3:20). 주님은 이들이 돌아가는 길에서 혹시라도 기진할까봐서, 기운이 다 빠질까봐서 그냥 못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개의 떡덩이와 생선 두마리로 기도하시고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돌려보내시게 됩니다.
이 무리의 특징은 아무 것도 없고,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별볼일 없는 자들같이 무력해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앞에 있기를 즐거워 한 자들입니다. 주님이 돌아가라고 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가만히 묵상하면서 참 안식을 느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산에 와서 주의 말씀을 듣고, 병도 고치고 기적의 빵을 먹고 몸도 기력을 회복하고 그리고 주님의 말씀따라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짜 안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 앞에 나와 주님말씀 듣고, 힘을 얻어 세상에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기를 못펴고 눌려있던 氣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한껏 배부르게 되어 세상에 나가는 거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향한 긍휼도 나오고, 문제도 선물로 보이고, 살아볼 의욕도 생기는 것입니다. 내 배가 고프면 만사가 다 귀챦아 집니다. 영적으로도 똑같습니다. 주앞에 나와서 주님으로 배부르지 아니하면 우리는 氣가 빠지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필요한 모든 것을 6째 날까지 다 완료하시고, 그리고 6째 날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곧바로 땅을 다스리라 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자마자 밤이 되고 다음 날 제 7일은 안식하셨습니다. 인간이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안식을 제대로 쉬고 노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고, 머리를 샤프하게 잘 활용하여 많은 성과를 이루고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일을 해도 즐겁고,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성공을 가져다가 주십니다. 성도여러분. 성공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열심히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성공도 이루는 것이 아닌 프레젠트입니다. 자꾸 요셉을 들먹이시는데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답을 보여주시는 꿈을 세 번 해몽하고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다윗은 도망다니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나의 분깃이라고 했습니다. 왕의 자리는 그냥 주어졌습니다. 솔로몬은 예배 잘 드리고, 바라지도 않던 부도 영광도 장수까지도 받았습니다. 성공도 지혜도 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학생들이 시험 때가 되어도 예배드리기를 즐거워하고 중간시험 기말시험대신에, 학기 중간과 기말에 특별 기도화 특별 헌신하겠다고 하고, 우리 성도님들이 일 년에 주일이 52주 뿐인데, 엠티는 무슨?? 목사님 주일날 어디로 가겠습니까 예배드려야지요,,, 이런 날이 올 수 있지요?? 오늘 산위에 있는 사람들은 통 대책이 없는 사람들 같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그들의 대책이 되어주십니다.
Ⅲ. 우리를 긍휼히 불쌍히 여기시는 이렇게 좋으신 주 하나님이라도, 만나보지 못한 자는 모릅니다. 주앞에 오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맛보지 못한 자는 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구원하려고 힘쓰고 애쓸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 즉 주의 긍휼이 우리게 임하기 위하여는,
1)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2) 언제나 주님앞에 나와야 하고, 3)주님밖에는 대책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 그 자체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자기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민족과 열방을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많이 기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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