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8장1-4절(하나님나라의 거인) 13.9.22
Ⅰ.오늘 말씀은 ‘그 때에’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성경 말씀의 문단이 시작할 때, ‘그 때에’ 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본문의 ‘그 때’란 예수께서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그 때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으실 것과 다시 사실 것에 관한 말씀을 자주 하셨으며 곧 기다리는 십자가의 그늘이 더욱 짙게 실감나고 있을 바로 ‘그 때’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오래된 꿈의 실현을 많이 생각하고 있을 때입니다(막9:33-). 십자가가 닥아 올수록 제자들의 同床異夢의 철없는 모습이 더욱 부각되어 나옵니다. 그들의 부풀은 꿈은 예수께서 이제 곧 예루살렘에 가셔서 현세적, 정치적인 메시야로 등극하게 되면 자신들도 덩달아 귀한 자리를 누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이 현실에서의 출세와 그리고 이다음에 하나님 나라에서도 잘나가는 모습입니다(18:1). 현실에서도 남들 보랍시고 잘나가고, 그리고 이다음에 천국 가서도 천군 천사가 우러러 봐주는 위치에 있게 되기를 바라는 제자들을 철없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그 보혈은혜 안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도 그러한 꿈에 끌려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고,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이런 오감각으로 느끼는 것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니이까 라는 제자들의 야심찬 질문을 받으신 주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고, 그 나라에서 큰 자인가를 말씀해주십니다.
Ⅱ. 천국에서 큰 자와 이 세상에서 큰 자는 정 반대일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말대로 천국에서 큰 자란 주님께서도 그렇게 봐 주시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을 크게 보실까요?
1. 세상의 가치관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3).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님 천국에서는 누가 크지요”? 그때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2-3살의 어린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의미를 두고 있는 가치관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합니다. 두 세 살 난 아이들에게 5만원 짜리 지폐와 쮸쮸바를 주면서 ‘어느 것을 할래’? 그러면 영락없이 쭈쮸바에게 손이 갑니다. 그러나 쮸쭈바가 아무리 좋아도 엄마가 안보이면 아이는 엄마를 더 찾게 됩니다. 그들은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에겐 엄마가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들에 대하여 이미 죽어버린 성도들에겐 하나님밖에는 願하는 것이 없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나의 절대적인 가치라는 뜻이지요.
성령을 통하여 내 마음이 하늘에 계신 그 주님을 만나고 천국을 만나고, 천국에 계신 아버지를 만난 사람의 특징은 자신만의 인생의 독자적인 계획이나, 소원이 없습니다. 내가 만족하고 행복함의 극한에 달했다는 것은 소원이 없어진다는 걸 말합니다. 그 사람의 특징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작은 어린아이가 됩니다. 내가 스스로 소원함이 없고, 내가 스스로 계획함이 없고, 내가 스스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염원이 없는 사람, 이게 어린아이입니다.
사람이 철이 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이끌어가겠다는 것이고, 인생에 대해서 꿈이 생긴다는 것이고, 인생을 한번 멋지게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 예수님의 소유된 자들이기 때문에 소원이 없어요. 어린아이는 아무런 자기의 계획이 없습니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면 좋겠다는 소원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린아이는 자기가 무슨 가치를 알아서 이것 저것 해야겠다고 하지않고, 엄마가 소원하는 겁니다. 아이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이 아이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는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엄마가 소원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이의 엄마의 마음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많은 소원을 갖게 되시고, 예수님이 자기의 소원을 우리 안에서 세우시고 이루어가시게 됩니다. 내가 소원이 클수록 예수님의 나에 대한 소원은 자꾸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고, 내가 나에 대해서 갖는 기대와 계획이 클수록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기대와 계획을 갖고 이끌어 가실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작아지게 됩니다.
그런 자들은 자기 딴에는 큰 소원을 갖고 큰 비전과 꿈을 갖고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실제로는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하잘 것 없는 인생이 돼버리고 맙니다.
예)소녀시대라고 하는 걸 그룹이 있습니다. 9명이나 되는 늘씬한 아가씨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제가보기에는 저게 바지인지 팬티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입고 나와서는 부르는 노래가 ‘소원을 말해봐!’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소원을 말해봐! 네 마음속에 있는 작은 꿈을 말해봐, 네 머리에 있는 이상형을 그려봐, 그리고 나를 봐, 나는 너의 지니야 꿈이야 지니야’ 너의 꿈을 다 이루어주는 요정램프 지니야 뭐 그렇게 반복되는 노래입니다. 소녀시대의 노랫말처럼 요정램프 지니가 꿈을 이루어 줄지는 모르지만, 제가 믿고 아는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아니예요.(아이공부,구름떼같이 많은 성도, 땅, 세상가치에 대하여 십자가 잡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전 하나님 알아서 하세요 그저 암것도 모르니 불쌍히 여겨주세요,그랬어요)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주님의 뜻을 알기 전까지는 소원을 가지지 마시고 또 그 소원 이루어 달라고 하지마세요. 우리 하나님은요 우리가 가진 소원 안 이루어주셔요.
오히려 우리 안에서 자기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逆說的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자기 실속만 차리시는 분이라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가 엄마를 제일 기뻐하듯이 그냥 하나님만 기뻐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소원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런데도 지나고 보니까 내 잔이 막 넘치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37편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소원을 다 이루시리라 그러십니다. 이 세상의 가치에 대하여는 십자가에 죽고, 하나님만 기뻐하시게되기 바랍니다. 세상가치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2. 높아지려는 마음이 없습니다(4). “그러므로 누구든지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낯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같이 자신을 낯추라, 한마디로 하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낮아짐의 신비를 더디 깨닫습니다.
지금 주위에 나오는 책은 다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학생성적의 등급이 올라가고 승진하여 자리가 올라가고 연봉이 올라가고, 인기가 올라가고, 시청율이 올라가고, 다 올라가는 데 관심과 스포트라이트가 다 모여져 있습니다.
옛날의 속담에도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환경을 핑계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사람 구실하는 것 같고 인정받게 됩니다. 그게 안 되면 그 시대사회에서 밀려나버립니다.
그러나 어머니 품에 있는 아이들은 올라가고 내려가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이 없습니다. 엄마 품 그냥 그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아이들처럼 낮추라는 것은 그렇게 올라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세계 올라갈 필요가 없는 세계입니다.
주님은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런 것 신경 쓸 필요가 도무지 없는 신비한 세계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늘 아이처럼 낯추라는 말씀은 그 아이의 자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자리, 여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려러분. 에덴동산에는 뭐 부족한 것이 없었쟎습니까. 거기는 그냥 충만입니다. 더 가질 것도 더 올라갈 곳도 비교하고 경쟁할 대상도 더 발전할 필요도 없는 곳입니다. 에덴은 원래 그냥 누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고 난 다음부터 자꾸만 더 가지려하는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우리가 예수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세계입니다. ‘예수님 안’ 이보다 더 높은 곳은 없습니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기를 쓰고 올라가려는 세상의 모든 정상이 한참 내려다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우리의 신분을 아는 자들은 이제 섬기는 자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생명시내교회 성도님들이 엄마품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예수안이라는 이 신비의 나라 천국을 다 누리시고 나누어 주실 수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높은 데서 가장 낮은 데로 오신 주님도 그러셨쟎습니까.마10:45절-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고 하십니다. 주님은 오직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주기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항상 가장 낮은 자리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곳보다 더 잘 어울리고 안락한 자리는 없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이 세상의 가치에 대하여 죽은자이고, 그러므로 세상의 높다는 것을 지향하지 않고 또한,
3. 크고 많은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4). 제자들이 질문한 ‘천국에서 큰 자’란 천국에서 통하는 천국에서 인정받는 그런 자를 염두에 두고 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큰 자는 서로 반대 개념입니다. 세상은 큰 것을 인정해주고 數的으로 많은 것을 앙망합니다. 그래서 싸이즈가 크고, 數가 많고 量도 많은 것을 열심히 추구합니다. 사실인즉 집도 자동차도 크고, 땅도 넓고, 돈도 많은 것이 좋고 습니다. 그래서 多多益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영원하시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광대하신 하나님은 오히려 항상 작은 것을 지향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로 상징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큰 나라가 얼마나 많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메소보다미아나 애굽같은 강대국을 택하셔서 내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를 택하시고는 내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도 베들레햄이라는 가장 작은 고을에서 그것도 마구간에서 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셔서 일하시는 원리가 늘 먼저 된 자보다 나중 된 자,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원리로 일하십니다. 장자를 버리시고 차자를 택하십니다. ‘에서’대신 야곱을 택하시고, 강한자나 부한 자보다는 약한자나 가난한 자를 들어서 쓰십니다. 그래서 크다거나 많다는 것은 하나님 한분이 크시고 광대하시면 되고 우리는 그 주님과 함께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주 가까운 예로 주님의 교회는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까? 작은 자들,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 많이 못 배운 자들이 와서는 아주 존귀히 여김을 받는 곳입니다 다 작은 자들이지요. 제가 너무 좋아하여 자주 인용하는 말씀을 다시 한번 인용합니다.(고전1장26-29절).“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당시 교회를 보니까 학문이나 권력이나 경제력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여러 부분에서 봐도 상류층 사람은 거의 없다라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자들이 교회에는 많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주위에도 모여든 사람이라고는 세리창기 온갖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그 시대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잘나가시는 분들이 많지않은 것을 저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똑똑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의 교회는 항상 싸웁니다. 그분들은 천국을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기쁘시게 뜻하신 바가 있으셔서 너무 어려운 분들, 약한 분들을 그렇게 다들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곳이 없을만큼 가장높으신 예수안에 있는 우리는 오히려 약하고 가난하고 작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작은 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돌이켜 어린아이의 자리로 가서 작아질 때 하나님은 그를 어여삐 받아주십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란 바로 그런 의미이지요.
Ⅲ. 오늘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가치들, 높아지는 것, 큰 것 많은 것을 위하여 사는 현실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돌이키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돌이키는 것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결단은 우리의 의지나 본성으로는 어렵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절실히 느끼는 자는 주님의 도우심을 사모하고 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늘 주안에 거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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