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4장12-14절(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려면) 08.6.1
Ⅰ.우리가 로마서14장의 7-8(우리가 살아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주님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얘들아, 내가 떠나고 나면 “내가 하는 일을 너희가 하게 된단다”. 낙담하는 제자들에게 엄청난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마치-아브라함에게 지시할 땅으로, 모세에게 애굽의 내백성에게,,,).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료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죄와 죽음과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인생에게 하늘의 복음을 들려주시어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와 살 수 있는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떠나시고 나면 이 영광스러운 일을 제자들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친 것처럼 너희들도 가르치고, 내가 전파하고 치료한 것처럼 너희들도 전파하고 사망의 권세에 매여 죄 속에서 씨름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이 영광스러운 일을 너희가 하게 될 것이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그 은혜를 아는 자는 이제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않고 분명히 자신을 구원하신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주님이 주신 목적을 향하여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직분의 위대함을 제대로 포착하여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Ⅱ. 교회가 하는 일이 주님의 일이라면, 교회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가 그냥 흘러가는 인생을 살지않고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는,
1.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하셨던 일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 때 엄마와 아들이 같이 있으면 아이가 뚱뚱하면 무조건 ‘장군감이네,,,’ 딸아이들은 무조건 어마나 어쩌면 이렇게 귀엽노,,, 별로 안 귀여워도,, ㅋ ㅋ .)
물론 본문은 양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일은 인간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하신 일이란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고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고유한 사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놓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는 주님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모든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받자 얼마나 큰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전파하고 가르치고 치료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큰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동안 그분의 행동반경은 매우 좁았습니다. 팔레스타인 안에서 밖으로 나가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우리나라 사분의 일도 안되는 좁은 땅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그 좁은 땅에서 오르내리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한참 인기 절정에 있을 때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따라 다녔지만 나중에 예수님의 신분이 위태로워지고 비판의 대상이 되자 모두들 떨어져 나갔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뉘게로 가리이까?"(요6:68)하고 고백하던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예수님 곁에 붙어 있었던 사람은 불과 몇 백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일은 전체적으로 보면 굉장히 작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보다 큰 일을 한다는 것은 지금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하기 쉬운 제자들을 격려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이때 얼마나 격려와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희망이 부풀어 올랐겠습니까? 사람은 다 위로 칭찬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주님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예)아인슈타인은 20세기가 낳은 최고 천재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학창시절을 보면 그는 결코 천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담임선생님의 날카로운 지적이 생생히 적혀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든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낙담해하는 아들을 오히려 달래며 "아들아,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단다. 네가 다른 아이와 같다면 너는 결코 천재가 될 수 없어"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못 알아본 그의 담임선생님의 가혹한 평가를 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격려에 힘입은 아인슈타인은 낙담치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묵묵히 학문에 매진하였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위대 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남과 같아지려고 하면 결코 남보다 나아질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너는 남과 다르기 때문에 기필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어머니의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격려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인격의 영양소입니다.
예2)네덜란드의 한 젊은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어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기 생애를 드리기 위하여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몸소 행동으로도 실천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을 따라 자신의 전 재산까지 다 드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역했던 교회에서는 그의 서투른 설교에 대하여 이런 저런 비판을 했습니다.
저런걸 설교라고 하나??심지어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것을 놓고도 비난하였습니다. 이러한 비난과 비판에 낙심한 젊은이는 결국 목회를 그만두고,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를 비웃기 위해 그의 그림을 사다가 돼지 축사의 무너진 벽을 막는데다 걸어놓았습니다. 계속되는 인생의 시련과 남들의 못된 비판에 견디지 못한 그는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 정신병원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견디다 못한 그는 37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입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가 그에 대해 이런 흥미로운 기록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열정과 창의력을 보면 그가 만약 목사로 헌신했더라도 세계적인 위대한 설교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인류는 위대한 화가를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가를 잃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고흐가 살아 있었을 때에는 남들은 그의 그림을 비웃었으며 결국 자살하게 내몰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잔인한 비난 때문에 위대한 화가도, 위대한 설교가도, 위대한 신앙인도 잃은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격려하지 않고 비난만하면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여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낙심한 자, 죽을 사람까지도 살려주시는 위로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14:26에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어 도우신다” 했습니다. 보혜사란 말은 영어성경에 Comforter, Helper, Advocator 등 여러 말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즉, 성령 하나님은 나를 위로하고, 도와주며, 함께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치어리더이십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격려 위로와 응원이 없다면 아마 우리도 고흐처럼 외롭게 자살로 생명을 마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어려움가운데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위로와 격려를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 21장에 나와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만 면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다들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하였으니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3번씩 저주까지 하며 맹세하기를 절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낯이 없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찾아오셔서 세 번 부인한 만큼 세 번씩 사랑의 고백을 하게하시므로 위로받게 하시고 격려하여주셨습니다. 거기에 힘입어 베드로는 다시 목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를 격려하여 일으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일을 부탁하십니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3대 신학자중의 하나인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1965)라는 유명한 독일신학자가 미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뉴욕 유니언신학대학, 시카고대학교 등 쟁쟁한 대학에서 강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은 그의 독일식 발음에 자주 웃었습니다. 그런 비웃음 때문에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는데 어느 날 한 학생이 카드를 보내왔습니다.
"교수님! 학생들의 웃음은 교수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내용 때문이 아니랍니다. 교수님 강의는 너무 훌륭해요. 우리는 다 교수님을 사랑해요. 힘내세요. 교수님!" 그 카드 한 장이 폴 틸리히를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그분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주님의 위로도 필요하지만 주님을 믿는 사람의 위로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경주석가 윌리엄 버클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최상의 의무 중에 하나는 격려의 의무입니다. 다른 사람의 정열에 찬물을 끼얹기는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절망시키기는 더욱 쉽습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좌절시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격려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한마디의 칭찬이나 격려의 말로도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끊임없이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는 1)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하고,
2. 능력의 원천이 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셨다고 하지않습니까? 아버지께로 가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이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권능의 자리에 앉으셨다는 것이고, 주권자의 자리에 가셨다는 말씀이지요. 예)예수께서 승천을 앞두시고 (마태28:18-)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으로 계실 때 자주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제약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기적의 능력도 제한적으로만 행하시고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하시며 비밀로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그 때와는 달리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기도-능력의 기도(로마8장) 2)승리-원수로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시편110:1)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은 교회를 세우십니다. 에베소서 1장 20-23절을 찾아서 읽겠습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0-23).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은 모든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교회입니다. 사실상 교회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면서 생겨났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 권세와 능력으로 교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히 4:14-16)-다음과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하나님보좌우편.
예수님은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대제사장 역할을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께서 앉아계신 곳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주님께서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사를 동원하여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세상의 권세 권위라는 것은 아무리 대단하다해도 흔들립니다. 이명박정부만 봐도 그렇게 대단한 지지를 얻어 되었어도 불과 100일만에 저렇게 난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세능력은 능력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게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절대적인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는 1)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하고, 2)우리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사실을 확신해야 하고, 세째로는,
3.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분명히 기도의 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그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구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어떤 뜻일까요??
예)한 동료 젊은 목사의 이야기-7살난 꼬마가 있는데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후로는 자기는 절대로 예수님께 기도하지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소풍가는 날 전날부터 기도-뉴스에서 비가 온다고 하는 거예요. 당일 아침에도 날씨가 잔뜩 흐렸답니다. 그래도 열심히 기도-그런데 출발할 시간은 다됐는데 그날따라 아주 폭우가 계속 �아졌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난 이제부터 절대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하지않는다는 것예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예수님의 名義지요. 우리가 누구의 명의를 무언가를 한다고 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분의 이름에 실례가 되지않는 범위 내에서, 그분이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만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빌리는 자의 마음대로가 아닌 빌려주는 자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나타내신 그 뜻 가르침에 합당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일을 위하여 주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주님께서 시행하시겠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직접시행하시겠다고 단언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실 때마다 주께서 시행하심을 믿으시는 성도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Ⅲ. 참 목적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것보다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반대로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이지만 생의 목적을 바로 포착하고 사는 사람보다 행복한 인생은 없습니다. 교회된 우리는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소원을 안고, 주를 위하여 살며,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는 1)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하고, 2)우리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사실을 확신해야 하고, 세째로는, 3.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6월입니다. 삶은 좀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주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새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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