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마태복음11장12-19절(천국이 임할 때) 08.4.20

하나님아들 2013. 9. 28. 12:09
 

                          마태복음11장12-19절(천국이 임할 때) 08.4.20


Ⅰ.로마서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말고,,,,,. 로마13장 너희가 이 시기를 알지니,,,,사람이  때를 잘 분별하면 내가 살고 그렇지 못하면 나 자신이 밀리거나 당하거나 망하거나 합니다. 시대란 거대한 홍수와도 같은 거센물결이기 때문입니다. 거센물결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방심도 곁눈질도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금새 떠내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거센 물결속에서 나를 지키려면 이 흐름과의 끊임없는 투쟁이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중요한 것이 달려 있는 것에 대하여는 대단히 진지해집니다. 증권회사의 전광계시판의 수치의 오르내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 그 눈빛에는 농담이나 작난이나 적당히, 대충의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시험에 임하여 답을 작성하는 학생들의 눈빛도 그러합니다. 자신들이 목표하고 있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성경 제일 나중에 등장하는 선지자는 말라기입니다. 그의 말라기서가 기록되고 난 후에 약 400연년간을 中間史라고 합니다. 선지자도 없고 카리스마적인 말씀의 선포자도, 이스라엘의 왕도 없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암흑기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400여년 간의 기나긴 침묵을 깨고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세례요한이 나타남으로 온 세계를 향한 천국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고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그 세례요한이 증거하던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내가 곧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천국문이 개방되고 하늘나라의 입국이 허용되었습니다.     


Ⅱ. 신앙생활은 어떤 자세로 하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임한 이러한 천국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가 되어야 합니까?

  1) 침노하는 자의 천국- (12)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마태12:28절에서는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니라” 즉 예수께서 오시고 예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 쪽에서 먼저 이 땅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다스림이 이제는 이전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가까이 닥아왔다는 것이지요. 멀리 있을 때는 뭐든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때는 엄두도 못 내고 상상도 못했는데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앞에까지 닥아 왔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닥아 갈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아주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예)북한에 자가용타고 놀러가는 것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 지금은 도로가 다 연결되어서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국도 그러합니다. 주의 얼굴뵙기 전에 멀리뵈던 천국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제는 내 맘 속에 이루어지고, 누구나가 갈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누구나가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예)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까지는 아무도 미지의 대륙을 찾아 바다를 향하여 갈 엄두를 못 내었습니다. 배를 타고 자꾸 가다가는 한없는 낭떠러지에 빠져죽는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콜럼부스 이후로는 수많은 개척자들이 신대륙을 향하여 항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또한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아주 가까이 닥아 와 있습니다.  막1:15-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예수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우리가 닥아 갈 수 있는 그런 사정거리 안에   아주 가까이  천국이 닥아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전투적이고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셨을까요??? 성경말씀에 의하면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천국의 시민이 되고 또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란 그냥 소극적인 것이 아니고, 대단히 진지하고 뜨겁고 감격적인 일임을 말합니다.  마치 군대가 전쟁터에서 高地를 점령하기 위하여 질풍노도처럼 몰려가서 점령을 하듯이 또는 운동선수가 온갖 노력을 다하여 승리의 고지를 점령하는 것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은 적극적인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폭력적인 탈취나 점령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획득하는 믿음이란 강력하고 용기있는 믿음이고, 살아서 움직이는 믿음이고, 간절한 求道심으로, 모험적이고, 挑戰적인 행동입니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먹으려고 품안으로 달려들 때처럼 대단히 적극적이고 힘있는 믿음입니다.   


  2) 차별없이 가는 천국-침노하는 자가 빼앗는 천국이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차별없이 가는 천국입니다. 특혜가 없습니다. 이 천국에 가는 데에는 특권계층이 없습니다. 눅16: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사람마다’ 즉 믿는 자는 누구든지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에 천국복음의 보편성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천국이 그들의 전유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종이나 자유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무런 구분도 차별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침노하는 자에게 열린 것이 천국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성경말씀에서  아주 자주 언급하고 강조하는 것이 도전하는 신앙이지요. 이 도전하는 신앙이 바로 침노하는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야곱-이삭(다른데서 떠 우물을 팝), 요셉 갈렙 유다-

 예수께서 마20:16-에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도 역시 천국은 도전하는 자의 것임을 설명하는 말씀이지요.

  3)이 천국은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치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예)구약성경에 의하면 당시 하나님께서 교제를 금하셨던 모압백성 중에도 룻과 같은 사람은 이방인이었지만 시모 나오미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려는 그 적극적인 믿음 때문에 이스라엘백성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까지 드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이 예정되었던 니느웨성은 요나의 전하는 회개의 말씀을 듣고 티끌과 ‘재’가운데서 백성도  임금도 철저한 회개를 하므로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천국은 침노를 안 해서 그렇지 침노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외없이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렇게 침노하는 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가까이 닥아 온 천국에도 결코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작난처럼, 어설프게 하는 자들입니다. 15-17절을 읽으십시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도다 함과 같도다.

*예수가 비판하는 대상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예수가 묘사한 장터에 앉은 아이들은, 자기들은 구경꾼으로 편하게 앉아서 피리부는 사람과 애곡하는 사람같은 비교적 힘 안 드는 놀이 역을 맡으려 하고, 자기 친구들에게는 '좀 더 힘든 역'을 맡기려 하다가, 이 친구들이 자기들의 지휘에 응하려 하지 않으니까 비난을 퍼붓고 있는데, 예수는 바로 그런 악의에 찬 비난을 비난한 것입니다. 춤추지 않는 아이들이나, 애곡하지 않는 아이들이 아니고,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피리는 기쁠 때에 불렀습니다. 애곡은 물론 슬플 때에 하는 것이지요. 기쁠 때에 부르는 피리에 대해서는 춤을 추지 않는다고 하더니, 애곡을 할 때에는 울어주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즉 세례요한은 떡도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는데, 바리새인들은 그가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했으며,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는데, 바리새인들은 그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즉 세레요한처럼 떡과 포도주를 안 먹어도 비난했고, 예수님처럼 떡과 포도주를 먹어도 비난하였다는 것은, 무조건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바리새인들이 피리를 불렀는데도 춤을 추지 않으면 그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바리새인들이 애곡하였는데도 울어주지 않으면 그것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을 예수님이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다. 장터란 장사꾼은 판매수익을 한 푼이라도 더 올리기 위하여 신경을 최대한 곤두세워 호객을 하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온각 노력을 다하는 곳입니다. 일반기업들도 영업실적을 올리고 기술개발팀은 그 팀대로 밤을 세며 노력을 합니다. 또 구매자들은 보다 좋은 물건을 보다 싸게 사려고 말 그대로 전쟁터 같습니다.

 그런데 장터의 이렇게 진지한 자들과는 다르게 시장 한쪽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모여서는 결혼식 놀이를 합니다. 힘껏 피리를 불었습니다. 모인아이들이 춤을 쳐줄 줄로 알았는데 아무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번에는 또 장례식 놀이를 하였습니다. 슬픈 노래를 불렀는데도 아무도 가슴을 치며 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시장에서 바쁘게 사고 팔고 하는 자들은 아무도 그들의 장난에 관심을 주지 않았고 동조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도 안 추고 장송곡을 불러도 가슴을 치며 우는 시늉을 안 해준다는 것입니다.

 왜 아무도 그들의 놀이에 호응을 안 해줍니까? 그들의 하는 짓이 결혼이니 장례니 하는 것을 작난삼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인즉 결혼은 연습이 없습니다. 장례도 그러합니다. 다 한번으로 끝나는 행동들입니다. 엉뚱한 곳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놀고서는 호응을 안해준다고 불만하는 세대, 예수님당시의 신앙인들,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주님의 지적입니다.

  

 예수님당시의 특히 믿는 유대인들은 주님이 자신들의 口味와 취향에 맞지 않다고 거역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와서 눅3:2-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회개하라고 천국을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금식을 하게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고 이제 곧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회개와 천국을 선포하는 요한이 싫었습니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의 외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서 자기들의 장단에 안 놀아준다고 불평하듯이 세례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는 그를 못 마땅히 여겨 감옥에 가게하고 죽게 하였습니다.  


 19절부터보시면 人子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소외받던 계층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식탁에 참여하시는 일들이 탐탁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며 불만 불평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참 진리로, 천국으로 그들에게 닥아 왔지만 진지함도 熱意도 천국에 대한 의욕이 없는 그런 자세로는 임할 수 없었습니다. 고지를 점령하려는 자에게는 장난이나 연극은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매일 매순간이 실화이고 실전입니다. 영원을 향한 순례의 길은 매일매일이 장터의 장사꾼들의 마음처럼 순간 순간이 치열한 싸움입니다.


  예)어제 뉴스에서는 프랑스의 여대생들은 월세방을 구하기 위하여 매춘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집주인이 그렇게 버젓이 광고를 한답니다. 프랑스는 대학까지 학비가 안 드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그러면 뭐하려고 공부합니까?

 

 인생은 결코 알바이트 처럼 부업처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날마다 날마다  머리를 싸매고 씨름해야 할 일들로 산적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요새는 작난처럼 결혼하고, 만화처럼 헤어지고 무슨 부업이나 하듯이 그렇게 무서운 살인도 저지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시 18-19절을 읽으면-“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도않고 (포도주도)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11:18-19),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함을 얻느니라. 이 지혜는 곧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이루어놓으신 것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천국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자들의 세계입니다. 당시 철부지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의 하신 일은 옳고 그름은 오직 교회가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결코 적당히 작난처럼 또는 마지못하여 그렇게 다닐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방관자로서 손님처럼 부업에라도 임하듯이 그렇게 다닐 곳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Ⅲ. 예)다이야몬드, 순금, 공기, 물, 어느 것이 정말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자는  생명이냐 사망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적극적인 침노자의 자세로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회개할 일이 있으면 회개하고 버릴 것이 있으면 버리고 사랑을 나누어야 할 일이 있으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천국, 보다 의욕과 열의를 가지고 나의 것으로 누리시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출처 : 사랑하지않으면 죽기
글쓴이 : 롱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