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마가복음12장18-27(산자의 하나님) 08. 3.23 부활주일

하나님아들 2013. 9. 28. 12:07
 

       마가복음12장18-27(산자의 하나님) 08. 3.23 부활주일 


Ⅰ.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우리가 이 날 자체를 너무 대단시하면 곤란하지요. 성경은 이 날은 그리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부활을 믿고 오늘하루가 아닌 매일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또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원래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의 동기는 참 나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답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가장 신나고 기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여러분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이 아니고 그 능력으로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사두개파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께 반대하는 유대 당국자들 중에는 사두개파는 좀 온건한 편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나라의 최고계급에 속한 자들로서 일단 富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국가권력에 있어서도 사두개파사람들이 그 數가 제일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지도자도 제일 많았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도 다 앞서가는 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 시대의 최고 엘리트들 특권 계층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세의 5경의 가르침을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존경하는 정도이고 진지하게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잘사는 사람들이니 애통하고 갈급한 마음도 일어나지 않거든요. 이런 사람들이니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가르침을 진지하게 생각할 리가 없쟎겠습니까? 이들이 사두개 파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예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도 비교적 冷笑的이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고 하는 분이 어부출신 몇 명 데리고 무언가 한다는데 그래봤자지 뭐,,. 하고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고 있었지요. 저 사람들 저러다가 얼마 안가서 제풀에 꺾이겠지,,,.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고 그 가르침에 사람들이 권세있는 자의 가르침과 같더라하고는 소문이 퍼집니다. 거기다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까지 행하셨습니다. 마침내는 그들의 유물론적인 입장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고 약간 위태로워지자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갈릴리 무식한 사람들 혼을 좀 내주어야지 하고 예수님께 접근해 온 것입니다. 그것도 심사숙고하여 아주 교묘하게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두개인들이 가지고 나온 질문은 대단히 유치한 질문입니다. 그들은 성경말씀에 대하여도 바리새인들만큼 열심이지 못하다 보니 질문도 좀 단순 유치하게 했습니다.

그 질문이라는 것이 24절의 말씀입니다.-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35-우리 중에 7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의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당신은 부활 부활 그러는데 과연 이렇게 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대충 이런 질문입니다.

 사두개인들의 주장은 모세는 율법에 繼代결혼(대를 잇게하는 결혼풍습)을 허락하였습니다. ( 신명기 25장 ) 문화인류학에 보면 레비레이트(levirate)풍속이 있습니다. 일본의 아이누족, 티�일부지역, 지금도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들에게서 있는 일인데 一妻多夫제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는 한 여자에게 여러 명의 남자 형제들이 같이 장가들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논,밭 같은 재산이 분산되지 않게 보존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인데 이들은 한 아내를 두고도 여러 명의 형제가 아무 충돌없이 행복하게 잘 지냅니다.

그런가하면 一夫多妻제도도 있습니다. 이들도 역시 싸우지 않고 참 행복하게 잘 삽니다. 또 아내가 죽으면 죽은 아내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생활하는 소로레이트 풍속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서 종족을 이어가게 하는 레비레이트 제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구약 때는 그렇게 하게하시므로 그 지파의 대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가지고 온 질문은 7명의 아들들이 차례로 한 여자에게 장가들어 죽고 그 여자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다음에 죽은 자들이 부활할 때는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물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물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론도 다 허구이고 妄言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질문을 하면 아마 예수님께서 꼼짝 못하실 줄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그 비슷한 질문하는 것을 볼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형 수술을 받으면 천국에 가면 나의 식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합니까? 등등. 우리들도 자칫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영광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Ⅱ. 우리가 부활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이 부활신앙에 살기 위하여는,

  1. 부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29말씀에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참 중요한 말씀이지요. 성도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고 뿌리가 되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요. 오늘을 사는 우리 크리스챤들도 사두개인처럼 자신의 선입견, 고정관념, 생각 속에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가두고 살고 있지 않는가?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소유하시는 주님이시지만 어떤 특정 물체의 하나님으로 불려지지 않으십니다. 이교도들은 바다의 신을 해신이라고 하고, 땅의 신을 지신이라고 하고, 나무의 신을 목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그것에 묶어둡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일컷는 호칭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지으신 어떤 것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고정관념속에 하나님을 제한한다는 것을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1)부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보다 오히려 부활에 관한 말씀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2:24, 2:33- 4:10-10장40-고넬료에게도 부활의 말씀을 할 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마태-요나의 표적, 에스겔의 마른 뼈 골짜기,,,.,얼마나 많은 말씀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부활에 관하여 너무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부활’만은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확신을 가지기 위하여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게 됩니다. 그 능력을 모르면 우리가 성도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꾸 속고 살게 됩니다.

 이 짧고 귀한 인생을 많은 오해와 무지 때문에 속고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돈에 속고 삽니다. 돈이면 다 인줄 알고 돈돈하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지않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고운 것, 아름다운 것에 속고 삽니다. 성경은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말씀하지않습니까?

   예)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단원이 평양 연주를 마치고 김일성 음악대학에 들러서 학생들을 한 30분 지도하는 중 한 여대생에게 미국 줄리어드 음대 같은데서 음악공부를 해보고 싶지 않느냐하니까 대뜸 하는 대답이 그럴 필요는 도무지 없습네다. 우리 이북에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너무 많아서 지도를 잘 해주시기 때문에 충분합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는 한 미국 연주가 “사람을 어떻게 속이면 저렇게 완벽하게 속을 수 있을까” 그러드라구요. 속고 사는 거예요. 

 북한 학생만이 아니고, 오늘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면 자신에 속고, 고정관념에 속고, 선입견에 속고, 시대에 속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배워야할 줄로 압니다.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잘 알면 우리는 죽음에 속지 않고 감언이설에 속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가장 귀한 부활의 복음의 소식을 듣고는 자꾸 잊어버리게 합니다. 그래야 시험에도 들고, 잘 넘어지고, 불순종하게 되거든요.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잘 알아야 하는데,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면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이 부활신앙에 살기 위하여는, (1) 부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2.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25-읽으십시다.

 부활 때에 우리들을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는 하늘의 천사와 같게 하여주십니다. 이일은 사실 엄청난 말씀이거든요. 우리가 장가들고, 시집도 가고 하는 것은 사랑하기위하여 가는 것이고, 그리고 아들딸 생명을 낳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도무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가 시작할 때 우리는 다 부활의 생명으로 한꺼번에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천사들이 시집,장가들어 번식하는 것이 아니고 순식간에 하나님께 창조되었듯이 우리도 그 영광의 날에는 한꺼번에 부활의 영광의 모습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식간에 ‘변화된다’고도 합니다.

쭈굴 쭈굴하게 늙을 필요도 없고, 죽을 필요도 없고, 아플 필요도 없는, 즉 생로병사에 시달릴 필요도 없는 천사와 같은 부활의 몸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김소제 집사님 나이도 잊고 사십니다. 본인은 90이라고 하는데 아들이 96세라고 한다. 그러니 밤낮 전신이 다 아프다고 하신다.

이 세상에서는 김씨의 아들 박씨의 아들, 어디 김씨, 어디 박씨 그러는데 부활에 들어가면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친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눅20:36-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우리는 다 천사처럼 되어 보기싫은 모습이 다 사라진 그 영광의 부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하는 말씀은 잘 음미해보십시오. 사실 남자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얼굴 예쁘고 마음씨 착한 여성을 만나 장가가는 일이 제일 신나고 즐겁습니다. 여성에게 있어서는 어떤 면에서는 능력있고 멋있는 남성을 만나 시집가는 일이 제일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활의 기쁨은 그러한 결혼 생활의 행복을 훨씬 능가하는 극치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육신을 벗어 버린 내가 어떻게 장가가고 시집을 가겠습니까?

  육신이 없으면 남자도 여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갈 수 있습니까? 천사들처럼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나이도 없고 늙음도 없고 잘생기고 못 생기고도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살았을 때에 관계가 유지 되는 것이지 죽으면 끝나듯이 부부관계도 이 세상에서 살았을 때의 관계이지 죽으면 부부관게는 끝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영적 존재로 있습니다. (사순절 저녁금식-참 중요한 것 알았습니다. 한끄니라도 저녁 금식이 제대로 금식이드라구요. 밤에 내일아 아침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예전엔 미쳐 몰랐습니다.

  

  부활의 영광의 기쁨은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맛보는 즐거움이나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치의 충만이고 기쁨입니다. 그 나라의 그 영원한 기쁨을 아는 자는 땅의 것에 미련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삼층천에 다녀온 바울은 그것이 얼마나 좋았든지 형제들아 나는 할 수만 있으면 빨리 죽어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우리를 그 부활에 참여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으로 인하여 즐거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하여 알고 이 부활신앙에 살기 위하여는, 1)부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2)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이 부활신앙에 살기 위하여는,

  3.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27). 죽은 것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은 꽃, 죽은 동물 죽은 사람을 누가 좋아합니까? 하나님은 죽은 사람과 상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을 다 살려두셨습니다. 다른 차원과 영역에서 그들은 다 살아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다 하나님 앞에 살아있다고 하십니다.  말씀에 하나님은 지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수 천 년 전의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현재형으로 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소유하시는 주님이시지만 어떤 특정 물체의 하나님으로 불려지지 않으십니다. 이교도들은 바다의 신을 해신이라고 하고, 땅의 신을 지신이라고 하고, 나무의 신을 목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그것에 묶어둡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일컷는 호칭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지으신 어떤 것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들에게만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수 천 년 전에 죽은 믿음의 조상들인데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을 다 지금 하나님 앞에 살아있게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살아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 우리와 함께 영광의 부활에 함께 나타나기 위하여 살아있는 것입니다.

소경을 보게 하시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시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고치시는 그 정도가 아니지요.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모든 믿는 자들을 살리시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보존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능력의 하나님이 나의 친아버지가 되십니다. 다윗은 옛날에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의사들이 죽어가는 중환자 한 두 사람 살리면 名醫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모든 믿는 자들을 다 살려 놓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자그만치 우리는 이렇게 대단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이 부활은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Ⅲ. 지금우리는 단순히 이 땅에 기생하여 사는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지금 나의 순간도 하나님 앞에 다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똑같은 인생을 사는데 어떤 사람은 기쁨을 잃고 삽니다. 삶의 의미도 보람도 잃고 삽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많은 것을 빼앗기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아버지 앞에 내가 살아있고 마침내는 천국 아버지 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을 생각하면 날마다 오늘이라고 하는 매일 마음으로부터 즐거워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사랑하지않으면 죽기
글쓴이 : 롱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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