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12:1-10(약할 때 강합니다) 08. 4.13
Ⅰ. 바울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도 그의 고통은 고린도지역의 성도들이 바울을 다른 사도나 거짓 사도들과 비교하여 좀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능력이 없다느니 모자란다느니 하고 평가되는 것은 참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거든요. 물론 그는 열두제자중의 한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생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직접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초대교회가 시작된 지 한참 후에야 부활주님을 만나고 회심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의 기적의 현장이나 부활의 현장에도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몸에 참 고통스러운 질병이 있었습니다. 기독 교회사의 자료에는 그것은 간질병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요 지도자인 그가 남들이 보기에도 민망해 보이는 그런 질병으로 자주 고생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는 덜 신령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평가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신령한 경험도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복음전도자로 살아가는 그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일들로 인하여 바울은 고린도지역의 교회 성도들에게 11장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지금까지 주님의 일을 이루어 왔는가를 피력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변명의 결론과도 같은 말을 이 12장 1-10절에서 전합니다. 그것이 그의 신령한 경험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하여 평생을 살려는 그에게 건강한 몸으로도 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터인데 왜 그렇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병을 주셨을까요?그 병이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그는 ‘가시’라는 표현을 써서 말합니다.
Ⅱ.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런 가시를 주신 것은,
1. 그를 자고(우쭐,잘난척)하지 않게 하시려고 질병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바울은 자신의 신령한 경험을 먼저 나열합니다.
1) 2절 이하에서 놀라운 영적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체험담은 당시로부터 이미 14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때라면 주후 약 43년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의 이 놀라운 체험에 대하여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받은 계시에 대해 결코 자랑으로 나타내지 않았다는 사실과 하늘의 비밀에 대한 바울의 조심성과 겸손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한 경험을 그 대상을 제3자로 돌려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안다'는 말로 표현한 이 사람은 7절에서 자신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므로 바울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는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했습니다. 셋째 하늘이란 4절에서 밝혀 준 낙원이란 말과 같은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곳을 천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하늘이란 말은 하늘 위에 하늘이란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 신비한 체험을 말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몸 안에서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몸을 떠나 영적으로 체험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런 표현은 자신이 본 셋째 하늘의 모습이 그가 생각하기로는 실제로 자신의 몸이 올라가 체험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혹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겸손한 생각에서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올라간 곳은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낙원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겔28:13). 예수님도 회개한 강도에게 약속한 곳으로, 계2:7절에서는 이기는 자가 얻을 영생의 장소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2) 바울이 낙원에서 들은 말-4절 말씀에서 바울은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 했습니다. 그가 셋째 하늘인 낙원에 올라가 본 일만도 대단한 비밀인데 그곳에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이 누가 한 누구의 말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주님을 친히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들은 사실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바울은 그곳의 광경이나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가 자칫 신비적인 오해를 일으킬 수 있고 그런 것을 듣는 일이 유익이 되는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삼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별한 경험을 한 것 때문에 바울같은 사람도 행여 자고할까봐서=잘난척 할까봐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시같은 육체의 고통을 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한번생각해보세요 남들이 다 대단한 사도라고 우럴어 봐 주는 그지만 설교를 하다가 간질증세가 나타나서 거품을 품고 쓰러졌을 때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하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그러한 사람이 기억납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부끄러워하고 멋쩍은 모습이로 서둘러 그 자리를 드려고 합니다( ). 바울의 그러한 병이 나아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기도의 능력이 자주 나타난 그에게도 그 병만은 낳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는 결코 우쭐하거니 잘난척 하지못합니다. 언제나 자신의 가시로 인하여 겸손하게 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가시로 바울은 자주 자기 절망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모양으로 자기의 사람들을 자기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복음성가에도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닥아와 눈물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 나에게 실망하여 내 자신 연약해 고통속에 눈물흘릴 때에. 사람은 자기실망 자기 절망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자고하지 않게되지요.
베드로- 주님앞에 큰 소리치며 주여 다 주님을 모른다할지라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제일먼저 세 번이나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베드로가 밖에 나가 통곡하며 울었다고 하지요. 나라는 존재가 요것밖에 안된단말인가,,,자기절망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베드로가 철이드는 것입니다. 자기절망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자가 밧세바와 간음죄를 짓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고 난 다음에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이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들었을 때 그는 철저한 자기 절망을 하지요. 어떤 사람은 죄로, 어떤 사람은 실수로,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하나님은 자기절망을 하게 합니다. 나라는 자는 이것밖에 안되는 구나,,,. 경험들 있으시지요??! 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하기 위한 사랑의 가시이지요. 노래제목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시므로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두 번째로는, 육체의 가시를 주시므로
2.弱한 것을 자랑하게하십니다. - 대단히 逆說的(패러독스)인 방법이지요. 성도여러분
약한 것이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약하다는 것은 가난한 것, 무식한 것, 못 배운 것, 부족한 것, 무능한 것, 미련한 것, 이런 것들을 통합하여 표현한 말씀입니다. 이런 것들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아무도 이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런 것은 다 피해가고 싶습니다. 지난주에는 주일학교 아이들과 양화진에 있는 선교사들의 묘지에 다녀왔습니다. 그들이 다 120 여 년 전에 한창 젊은 나이에 미국에서 와서는 풍토병에 죽고 결핵으로 죽고 천년두로 죽고 또 토마스목사 같은 경우는 한국 땅을 디뎌보지도 못하고 배위에서 순교했습니다. 또 일본이 그들을 방해하였고 우리나라 조정도 한동안 그들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자기들 나라에서는 엘리트 교육을 받고 그 시대의 보장된 기득권을 다 버리고 조선에 와서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어린 딸을 잃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간 사람들은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미련스럽고 무력하게 이 땅에서 죽어간 그들로 말미암아 조선은 점점 하나님께로 인도되어갔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바울도 내세울만한 자랑거리가 참 많은 사람입니다. 빌3장-율법학자에, 국회의원의 한사람, 거기다가 바리새인으로 성경학자에 로마 시민권까지 있었으니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우럴어보는 그런 사회적신분입니다. 거기다가 삼층천까지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신령한 체험을 하였으니 자랑거리가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자랑하지않고, 그는 오직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위하여 세 번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세 번이란 한번 두 번, 세 번이 아니고, 많이 기도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기도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지칠만큼 기도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요. 하나님 아무리 그래도 사도인 제가 간질병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가다가는 선교활동에도 지장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겠습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제가 무시당하는 것같고, 도무지 덕이 안되는 것같아요. 그러니 제발 이병만은 좀 낳게 해주십시오,,,,,.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바울의 기대하던 바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울아 너를 향한 나의 은혜는 그만하면 充分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시고는 ‘나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 그러시는 거예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약합니까?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보다 强하지않습니까? 하나님을 역사하심을 기다리고 인내해야 할 때, 우리는 하나님보다 너무 빠르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못 마땅하여 우리는 항상 먼저 지혜를 발휘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통하여 일하시지 못하도록 우리가 자녀들을 지혜롭게 만들려고 먼저 치맛바람을 휘날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강하고, 우리가 발 빠르고, 우리가 지혜로운 동안은, 하나님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잘 해봐라 그러십니다.
바울은 이 같은 기도 중에 주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고 하신 주님의 뜻을 음성으로 듣고는 이 일에 대하여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足하다는 것은 맞춤이다는 것입니다. 안성맞춤이라는 것이지요. 여기다가는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더하고 뺄려고 합니다. 제가 양복을 기성복을 사면 바지도 줄이고, 소데도 줄이고, 더 나아가서 윗도리의 길이도 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양복이 어딘지 이상합니다. 그러나 좀 비싸도 맞추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딱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안성맞춤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후를 다 아시고 줄로 제어주셨기 때문에 거기에 더할 수도 제할 수도 없습니다.
육체의 가시로 참 힘들었던 바울이 이제는 기도로 지쳤습니다. 바닥을 치는 듯한 그런 느낌,,,,,., 힘들고 지쳐 자기절망 할 수 밖에 없던 그에게 그때 주신 말씀이 바로 바울아 나의 은혜는 너에게는 줄로 젠 것이야 그러시는 거예요. 성도여러분도 자세히 살펴보시면 다 가시가 있으실 거예요.
저는 우리 교회도 요즈음은 바닥을 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요. 좀 힘들어요. 교회를 나간 성도가 십일조를 여기에 내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나이에 참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기도중입니다. 좀 불편해도 세가 덜드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이 아닌지 하여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누가 그러기를 바닥을 칠 바엔 제대로 바닥을 치라쟎아요? 그래야 이제는 솟구쳐오르지요.
Ⅲ. 심히 지쳤던 바울은 새로운 은혜를 받았는데 자신의 자랑거리가 새롭게 생긴 것입니다. 10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육신으로는 괴로움을 당하지만 그로 인해 영적 유익을 얻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보람있게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신앙적 자세라고 믿는 것입니다. 약할 때 강합니다. 가장 약할 때는 가장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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