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장1-4(성령충만한 삶) 08. 4.6
Ⅰ. 우리가 성령충만이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리고 “주여 성령충만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도 잘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성령충만이란 무엇일까 하면 딱 이렇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연 성령충만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에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성도들이 다 성령충만을 받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2:4, 11)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것이 성령충만이란 방언을 막 말하고, 희안한 기적과 능력을 행하고, 그리고 대단히 뜨거운 상태일 것이다 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령이 임하시고 제자들이 성령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곧 초대교회입니다. 이 초대교회의 특징을 잘 살펴보면 성령충만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성령강림이후로 늘 방언으로 전도한 것은 아닙니다. 또 늘 방언으로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또한 기적적인 일들이 그렇게 자주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전도가 되었고 외국에도 선교하게 되었고 극심한 박해를 받아도 그들은 계속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바로 성령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을 어떤 한 특별한 순간에 그렇게 충만하였다기 보다는 성령충만은 그들의 날마다의 삶이고, 생활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렇게 충만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박해를 받고 유대당국자들에게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고 채찍에 맞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초대교회는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런 와중에도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복음은 급속도로 확장되어갔습니다.
Ⅱ. ‘充滿’이란 부족함이 없는 상태, 또는 넘치는 상태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태를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지난주의 말씀에서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고 기쁨과 평안이 가득한 상태를 보았습니다.
1.성령강림절 이후로 제자들이 충만했던 모습들을 먼저 살펴보십시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1)박해받는 것과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해받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행5장41-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고 협박받고 나오면서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며 공회 재판정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행16장에서는 바울과 신라가 귀신들린 자를 기도로 고쳐주고는 그 결과 고소당하여 회되게 채찍에 맞고는 지하감옥에 투옥이 되었는데 그 獄 속에서도 심야의 찬송과 기도를 드렸다고 하지않습니까? 매를 맞고도 오히려 기뻐 찬송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고야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 박해를 받고도 감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고 그들은 참혹한 죽음도 도무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7장에선 스테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순교했고, 야고보가 순교했고 이제 베드로도 처형되기 위하여 투옥되었습니다. 그런데 처형되기 전날 밤에도 베드로는 천사가 깨워야 할 만큼 조금도 두려워 하지않고 깊은 잠에 빠져있습니다. 전에는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던 베드로가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충만함이었습니다. 바울도 행20장-나의 달려갈 길과 주께 받은바 은혜의 복음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랬을 정도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1)박해받는 것과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2)세상사는 동안에도 자리를 염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야곱과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와서 주여 주께서 영광의 자리 임하실 때 한아들은 주의 오른 편에, 그리고 또 하나는 주의 좌편에 한자리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다른 10명의 제자들은 다들 씩씩거렸습니다. 그런 그들 얼마 전에도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고 물었을 정도입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그들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을 예로 들면 유대사회에서는 보장되었던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의 학자로서, 당시 국회의원의 한사람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포기하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이 아니라도 이미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도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가 되어도 그들은 단 한 번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서 천막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끝까지 나그네로 기류자로 살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가만히 보십시오. 알고보면 다 자리문제, 자리싸움입니다. 장관자리, 공천문제, 사업에 기를 쓰는 것도 부자의 자리때문이고, 강남학군으로 氣를 쓰고 이사가는 것도 명문대에 내 자녀가 들어갈 자리를 얻기 위함이고, 대기업의 자리, 판검사의 자리 때문에 목숨걸고 공부합니다. 성령충만한 제자들은 지금까지 바라던 자리들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1)박해받는 것과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2)세상사는 동안에도 자리를 염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그들은
3)재산을 내어놓는 행위도 기꺼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2장 44-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있는 자 없는 자들이 유무상통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인생 다 살고 죽을 때 되어서가 아니고 한창 일할 나이인 사람들인 바나바 같은 자들도 그리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충만하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이렇게 말씀드리면 “아 좀 성령충만하려니까 목사님 참 부담되는 말씀하시네,,,,” 성령충만받는 것 좀 생각해봐야겠네,,,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초대교회는 다 그렇게 충만하였습니다. 사실인즉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충만한 자들이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바울은 재판정의 아그립바와 앞에서 審問을 받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아그립바 왕이시여 결박한 것만 말고 다 나처럼 되기를 원하나이다”. 결박당하여 있으면서도 지금 자신들이 최고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자들의 중심이고, 삶이었습니다. 엡5:8-술취하지 말아라 성령충만받아라 그러십니다. 저는 성도여러분이 다 성령충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2. 그러면 성령을 받으면 왜 이렇게 충만하게 되는 것일까요? 박해받는 것과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고, 세상사는 동안에 자리를 염려하지 않게 되고, 내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않고 다 내려놓는 행위도 기꺼이 하게 될 만큼 이렇게 충만해지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들 가운데 가장 귀한 天國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는 절대로 이렇게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비결은 오직 하나, 우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면 됩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예수님보다 먼저 처음 요단강에 등장했을 때 그는 광야에 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는 광야의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낙타가죽옷을 입고 사는 불행한 사람같았습니다. 그런 그가 전한 것은 마태3: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랬습니다. 거칠은 野人이었지만 그는 천국이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맨 먼저 전한 말씀도 마4:17-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랬습니다.
저 천국을 바라보고 또한 그 속에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들은 사망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돈이나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습니다. 늘 충만하게 삽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이제 성령을 받은 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들 속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은 우리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다 위로부터 오는 은혜이고 은총입니다. 예수께서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습니다. 성령 또한 위로부터 오셨습니다. 그 주께서 이제 제자들안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요3:31-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고,,,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나니,,, 천국을 모르면 사람은 언제나 이 세상의 것에 매이고 눌리고 맙니다.
예)금광이야기-19세기말 골드러쉬가 시작된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농부의 물방아간에서 금광이 발견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유럽에서도 사람들이 금을 캐러 모여들었습니다. 마침 몬타나주의 세사람의 남자들이 뜻을 모아 우리도 금을 캐러 가자고 나섰다가 엄청나게 고생을 합니다. 도중에 인디안을 만나서 죽도록 고생하고, 금은커녕 돈도 다 떨어지고 죽을상이 되어 자기들의 집 몬타나로 다시 돌아옵니다. 오다가 한 냇가에서 물을 마시다가 거기서 사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도 장비도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셋이서 약속을 합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장비와 양식을 준비해가지고 다시 오자고 약속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래서는 준비를 하고 어느 날 밤에 몰래 셋이서 그 사금이 나온 냇가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날이 세고보니 자기 동네사람들이 100여명이나 우르르 미행하여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니가 알려줬느냐 하니까 아니라고 하고 아무도 아무에게도 말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해서 몰래 따라온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금을 발견한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아무 말 안 해도 당신들의 얼굴에 사금을 발견했다고 쓰여있더라”는 것입니다. 금광을 발견한 기 기쁨은 그렇게 컸다는 말씀이지요.
성도여러분. 금광을 발견한 것도 너무 좋아서 감출래야 감출 수 없도록 얼굴에 다 나타나는데 하물며 천국을 발견하면 어떻게 그것이 얼굴에 안 나타나겠습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금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고, 먼저 그것을 알고, 그것을 가진 기쁨으로 충만함으로 이 세상을 살기를 바라는데 성도들이 자꾸 천국보다 이 세상을 먼저 구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그러시쟎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래도 자꾸 이 세상의 것을 먼저 구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라만 보고 누리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사도행전은 전도가 잘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지만 그 비결이 기적 때문이 아닙니다. 방언도 아니고, 그들의 열심만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제자들과 믿는 자들 속에 이루어진 천국의 기쁨, 이 충만함 때문입니다.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부자되시고 싶으십니까? 그러나 먼저 성령충만하십시오. 내안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 자녀가 정말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그러면 먼저 나의 자녀를 세상의 스케쥴, 세상과외부터 시키지 말고, 영적인 과외를 시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양육하십시오. 기도훈련시키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공부해도 얼마든지 늦지 않습니다. 어제 신문에는 이제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특기나 실력있으면 대학교수로 임용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현대인,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못 만들지요. 애들이 더 바빠요. 연애는 시간을 내지 못하면 절대로 못하지요. 우리노회 한 목사님 평소에는 남아공은 별로 생각을 안했는데,,관계가 없으니까,. 그런데 자기 딸을 남아공 선교사집 통해 유학 보내놓고 부터는 그 나라가 남의 나라가 아닌 거예요. 그 나라에 무슨 데모나 테러나 이런 뉴스가 나면 전쟁이나 내란이 나지않을까 괜찮을까? 자꾸 마음이 거기 있다고 합니다.
Ⅲ. 주님은 부활승천 하시어 하나님의 권능의 자리에 계시며, 또한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를 천국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성령충만 받은 자는 박해받는 것과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고, 세상사는 동안에 자리를 염려하지 않게 되고, 내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않고 다 내려놓습니다. 그 속에 천국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천국의 주님과 함께 늘 성령충만하게 사시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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