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요한복음11장33-46(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5) 08.3.2 사순절4

하나님아들 2013. 9. 28. 12:06
     요한복음11장33-46(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5) 08.3.2 사순절4 

 

.신약성경 벧전1:24-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고 합니다. 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은 그것이 영광의 실체는 아니고 분명 다 잠간 있다 지나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 덧없는 영광을 심히 추구합니다. 성공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그 영광을 위하여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추구하는 영광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할 때에 우리들이 참 영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고 주기도문에 하는 기도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이 땅에서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내가 내 영광을,,,,,, 시편 19:1절에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고 했습니다.

. 오늘 본문 40절에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에 참여하고 체험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말씀이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이나,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이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다 같은 하나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그것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영광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은 그가 만드신 하늘과 땅에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또 성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쉐키나=영광(구름)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할 때 구름이 가득하였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그 현상은 구름이 가득하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인자가 구름타고 오신다’는 말씀도 사실은 영광가운데 임하는 모습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저들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전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또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후에 음성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또 주님의 수많은 이적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게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나사로의 살리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참 의미에서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하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주실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히2:7절에 보면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라고 했고, 솔로몬이 오직 하나님의 연약한 백성을 섬기기 위하여 지혜를 구했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가 구하지 않은 장수와 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2. 예수께서 나사로의 살리심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내용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1)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창조하신 것에서도 나타나고, 더욱 분명하게는 구원해주시고 살려주시고 고쳐주시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처음부터 주님은 “주의 사랑하시는 자가가 병들었나이다” 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이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 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부활의 권능을 나타내심으로 그들 삼남매의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아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만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도,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 과학으로도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인간의 영역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죽은 자를 위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결과입니다.


   2)하나님이 다스리심 그 나라가 능력으로 임하고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기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 하셨다는 증거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태11:5-6-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소경이 보고 절뚝발이가 걷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한 것입니다. 

   3)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려도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면 그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영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주님은 세 번에 걸쳐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과부의 아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신 경우입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사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앞당겨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부가 우리의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1)먼저는 우리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면 누구나 다 영적 소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 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과 땅과 바다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보지 못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듯이 활용하지 못하는 믿음은 도무지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활용하여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돈도 사용해야 힘이 되고, 지식도 사용해야 힘이 도움이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서도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의지적인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지적인 면과 정적인 면과 의지적인 세 가지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인 신앙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믿은 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믿어야 합니다. 온 몸으로 믿어야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된 지금에는 예수님이라도 이젠 아무것도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현실의 절망적인 환경속에서는 예수님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버리고 있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 있고,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요17:22절에 십자가를 앞두고 드리는 기도에서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십니다. 이미 성도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음과 동시에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 어떤 여인이 자신의 아들이 음악에 소질이 있다고 판단이 되어서 열심히 피아노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찾아가서 제자로 삼아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퇴한 노 교수는 거절하였습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제자로 삼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노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자를 키울 것을 허락하여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이 젊은 청년은 노 교수의 지도를 받아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관중들은 곡이 끝날 때 마다 박수를 치며 열광을 하였습니다. 돈을 발밑에 수북이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계속해서 한 곳만 바라보면서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 교수가 앉아서 듣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손은 건반위에, 눈은 노교수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노 교수는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있고, 발밑에 돈다발이 쌓여도 그곳을 보지 말아라. 명예와 돈을 바라보는 순간 내리막길을 가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의 영광과 부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지만 주님의 영광을 만을 위해서 위를 바라보고 살면 하나님의 영광은 곧 자녀된 우리의 영광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 날에 어떤 왕이 자기를 위해서 평생을 봉사한 궁녀들에게 여러 물건을 갖다놓고

"너희들에게 자유를 준다, 너희들이 무엇이든지 하나씩만 가지고 가라. 제일 보배로 운 것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 다. 어떤 사람은 비취비녀를 하나 가지고 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왕 의 옷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왕의 모자를 가지고 나갔습 니다. 어떤 사람은 왕비가 가지고 있던 비취반지를 가지고 나갔습니 다. 모두 가지고 나갔습니다. 한 시 녀만 아무데도 안가고 있더래요.


"너는 뭐하니?" "폐하 분명히 뭐든지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그러면 폐하, 업히시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여자가 몹시 지혜로운 여자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눈에 팔려 있습니다.


   2)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얻습니다.

  로마서8:17-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또 고후4: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르려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따라서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우리의 영광의 보증수표입니다. 엡3:13절,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사실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을 분들은 이 땅에서 고난을 많이 당한 분들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뭐가 제일 고난입니까? 성도의 고난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이지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명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면 당장에 고난을 받게 됩니다. 그 일이 좀 힘들어도 잠간이고, 또 무거운 영광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전재욱장로-교회학교를 살립시다-훈련받을 때, 위암수술할 때 한주일 빠지고 근 47년을 교사로 근속-무주구천동에서 올라와 못배운 사람이 주일날 노는 일터를 못 구해 늘 가난하게 살아도 주일학교 교사를 50여년 하니까 지금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세계로 불려 다닙니다. 위암수술하고 위장이 하나도 없이 십이지장과 창자를 연결하는 대수술을 하고 다음 주일 교회가야 한다니까- 의사가 주사기 빼고 가다가 세 시간 내에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 쓰고 교회가서 아이들 가르치고 병원에 왔답니다. 독종이지요. 그 반 아이들이 이 할아버지 선생을 지금도 그렇게 잘 따르고 아이들 통하여 부모들이 다 교회로 전도된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이 성공했다고 세상 사람이 놀라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ceo가 되고 대통령 되어도 아무도 안 놀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재벌 되었다고 아무도 안 놀랍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가 그 고난에 무너지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살 때 사람들에게 충격이 됩니다. 똑같이 슬픔을 가져야 될 사람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때 사람들에게 충격이 됩니다. 전도가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우뚝우뚝 선다고 세계는 놀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제 때 그 고통의 옥중에서도 영광의 하나님을 향해서 찬송하고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을 보여준 것이 충격입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향해 그 고통 중에서도 양자 삼으신 손양원 목사님은 문자 그대로 사랑의 원자탄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동을 주지 않습니까?

** 미즈노 겐조라는 일본인이 있습니다. 이 분은 11세 때 뇌성 소아마비로 성장이 멈추어서 그 때부터 자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뼈에 가만히 살만 덮어놓은 것 같은 그런 하반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성장한 것은 얼굴밖에 없는데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동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고통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일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아니했을 것을..." 제목은 '괴롭지 않았더라면'입니다. 

. 일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인생의 사는 목적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고백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실 때에 그의 영광을 위해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은 주님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참 영광은 이 땅에서의 고난과 시련이라는 그릇에 담겨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하시며 우리도 다 주님을 위한 고난에도 기꺼이 동참하시는 성도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사랑하지않으면 죽기
글쓴이 : 롱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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