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하나님아들 2013. 9. 20. 19:31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 .

 

마태복음17:14-20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만 따로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셨다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산 밑으로 내려 오시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산 정상에서 있었던 환희도 잠시 산밑으로 내려 오는 순간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는 아버지

 

(17:14-16)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에수님과 제자들은 변화 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산 밑으로 내려 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 와서 꿇여 엎드리며 간구하기를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사랑하였지만 자기 아들이 간질병으로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차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절망속에 있다가  예수님께  나와서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며 제자들에게 실망만 했다며 예수님께 사정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그러면 병든 아버지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산 밑에 있던 제자들과 무슨 일을 겪게 되었습니까.

병든 아버지는 예수님을 찾아 왔지만 그때 마침 변화 산에 올라가 계셨기 때문에  주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병든 아들의 아버지는  산 밑에 있던 제자들에게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제자들은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일찍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좆아내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자들은 처처에 다니면서 귀신도 좇아내고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능력도 아무 기적도 행할 수 없었습니다. 병든 아들의 병을 고치지도 못하고 병든 아버지의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9:14)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결국에는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꼬투리를 잡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유대인들과 서기관들은 호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회는 이때다 생각하고 그들을 향해 - 야 언제는 너희들이 능력을 받았다고 큰 소리치며  살더니. 이게 뭐냐 능력을 받았으면 병을 고쳐야지 병도 못 고치는 주제에 날 뛰기는 - 하면서 조롱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제자들은 지금 유대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해 준 셈이 되고 만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에게 갖가지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에 간질병 든 아버지는 아들의 병을 고치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 만 둥둥 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자들이야 얼마나 병을 고치고 싶었겠습니까. 지금 제자들도 너무 괴로웠을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여

 

(17-18)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병든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벌어졌던 상황을 쭉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병든 아버지의 말을 다 들은 후 제자들을 향해 진노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은 세상을 향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패역함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교회의 패역함이란 무엇입니까. 교회에 나오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에수님의 책망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상실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을 들어도 당연한 처사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있었다면 우리 세대를 향해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고 패역해 진 것은 사실입니다. 믿음을 변질시킨체 (요한일서 2:16)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물욕 과욕 명예욕에 도취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도덕과 윤리가 붕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인간성이 상실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가 무너져 내리기 전에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였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가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타락하면 필연적으로 따라 오는 것은 인간의 패역함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책망이 있기 전에  제자들은 병든 아들의 병을 능히 고쳤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좇아내며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제자들이 오늘처럼 병을 못 고친다는 것은 믿음을 사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정작 써먹어야 할 때 써먹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믿음이 없고 패역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베소서 2:3-5) 말씀처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람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헤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에베소서 4:22)절 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이제 우리 교회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빗나갔던 우리의 패역함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기 전에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담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로 변화 받을 때만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세째 간질병 아들을 고쳐 주신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나서 간질병든 아들을 어떻게 고쳐 주셨습니까.

예수께서 '꾸짖으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고 간질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꾸짖어야 떠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은 달래면 절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인정에 끌리면 안됩니다. 사정을 봐 주면 안됩니다. 귀신에게는 절대로 관대하면 안됩니다. 귀신은 교활하고 간교하기 때문에 타협에 일인자입니다. 그 수법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우리가 더러운 귀신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된다면 어떻게 간질병 아이를 고쳐 줄 수 있겠습니가. 귀신을 보면 겁을 먹지 말고 과감하게 담대하게  인정머리 없이 냉정하고 매정하게 꾸짖고 내좇아야 더러운 귀신이 떠나 가는 것입니다. 귀신을 때린다고 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욕한다고 해서 그래 기분이 나쁘니까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나가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간질병을 가져다준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고 책망하고 강하게 핍박'을 하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귀신의 역할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파괴시키는 역할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면 우리는 그들에 의해 반드시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귀신의 수법은 전면전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의 배후에 숨어 있다가 순간적으로 그 본색이 드러나 엄청난 파괴력으로 우리를 엄습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의 형편에 따라 인정사정 봐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간질병 걸린 자가 하루 종일 벌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 간질병 환자들을 많이 겪어 봐서 알지만 하루 종일 간질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 간질을 하게 되면 사지를 비틀고, 피가 꺼꾸로 돌고 거의 죽을 지경까지 되는 것을 봅니다. 귀신은 간질이라는 것을 통해서 거의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1. 물이 그 기회를 주면

2. 불이 그 기회를 주면 물에도 넘어지게 하고 불에도 넘어지게 하는 것이 귀신이 하는 짖입니다.  귀신은 간질을 통해서 한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간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온 사지를 비틀어  꺼꾸러 뜨립니다. 그러니 간질을 한번 하고  나면  기운이 다 빠져 기진맥진하여 하루로 이틀이고 들어 눕습니다. 귀신이 우리에게 행하는 잔인한 일을 보게 되면 결코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간질이 그 아들을 그렇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귀신이 그 아들에게 들어와서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제는 영의 세계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그 아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고통을 준 것처럼 우리도 그 아들을 괴롭히는 귀신을 보고 가혹하고 잔인하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좆아내고 몰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질병이 귀신으로 부터 왔다고는 볼 수 없지만 많은 질병이 귀신으로 부터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부주의로 병이 올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 때문에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도로 오든  통상적으로 보면 귀신으로 부터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아이도 귀신으로부터 그 간질병이 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간질병을 고치시는지 그것을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병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의사한테 가서 간질병을 고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근본적으로 간질병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망 귄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쳐주셔야  완전히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수 있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질병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간질 귀신아 떠나가라' '더러운 간질병아 아 아이에게서 물러가라' 라고 하면 떠나가고 고쳐 지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라고 우리게게 주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귀하신 이름이니까 사용하지 말고 장롱속에 고히 간직해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너희가 어렵고 힘들때 내 이름을 써서 힘들고 어려움을 해결해 가라고 주신 것이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너무 귀하다고 아무도 쓰지 못하도록 금고속에 가둬두면 안됩니다.  보자기에 고이 사서 꼭꼭 저장해 두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곳간에 잘 보관해 놓고 꼭 숨겨두면 안되는 것입니다. 너무 귀한 이름이니까 생각나면 쓰라고 주신 이름이 아닙니다. 내 이름이 너무 귀한 이름이니까 절대로 쓰지 말고 생각날 때만 써 알았지 이래라고 주신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우리 실생활속에서 순간 순간 꺼내들고 사용하라고 주신 이름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명한 이름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잘 써야 성공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잘 써 먹으라고 주신 이름입니다.  아무리 귀한 것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귀하게 쓰면 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것도 사용하지 않으면 귀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금덩어리가 100톤 정도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금덩어리가 아무리 귀하더라도 오늘 끼니를  굼고 있는데 그냥 놔두면 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팔아서 양식을 사서 밥을 먹어야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금도 쓰지 않으면 돌멩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은 크게도 작게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사용되지 않은 곳에는 귀신들의 세계입니다. 귀신들이 누구의 이름을 가장 싫어하는지 아십니까. 김정일이가  아닙니다.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귀신들을 숭배하며 살기 때문에 귀신들이 더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귀신들은 이 세상의 누구의 이름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딱 한분 이름만 무서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야고보서 2:19 '네가 하나님을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귀신들도 무저갱으로 감금을 당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나라와 가장 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많이 가장 큰 나라요 가장 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네째 너희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다면

 

17:19

'이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 만일 너희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다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예수님은 간질병든 아들의 병을 고치고 자기들은 병을 고치지 못하자 궁금한 나머지 예수님께 조용히 물어 보았습니다.

예수님 '저희는 어찌하여 귀신을 좇아내지 못하였습니까' 예수님의 대답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예수님이 보는 관점은 믿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은  믿음의 관점에서 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문제의 정답 모든 문제의 실마리를 믿음으로 해석해 주시고 믿음으로 정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문제나 우리의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적은 게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믿는 우리에게 귀신을 좇아내고 병을 고치며 남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권세와  능력을  부여해 주었는데 사용해 먹지 못한 것은 순전히 우리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데도 아무 능력도 행하지 못하고 무능하게 사는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윽고 제자들에게 만약 너희에게  나와 같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 못할 것이 없다  너희에게 믿음이 있으면 귀신도 좇아내고 병도 고칠 수 있다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귀한 말씀을 대합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제자들처럼 되지 말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성령 충만함으로 받아 남의 문제도 해결해 주고 병도 고쳐주고 귀신도 좇아내 주는 해결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을 제시해 줄때 거창한 방법으로 제시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단순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다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다라며 겨자씨 만큼만의 믿음만 강조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겨자씨는  씨앗중에 가장 작은 씨앗 입니다. 그러나 이 씨가 땅에 떨어져 심기어져 자라나게 되면 어떤 나무보다도 크게 자라나는 속성이 있습니다. 어느 나무 보다도 크게 자라나는 나무가 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겨자씨 만큼의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겨자씨 만큼만 믿음이 있다면 능히 귀신도 좇아내고 병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알곡모으기
글쓴이 : 묘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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