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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장은 사도 바울의 '아름다운 목회상'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목회자로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도로서, 목회자로서 어떻게 양들을 위하여 살아 왔는지 본문 말씀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올바른 목회상을 잘 배워서 사도바울처럼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8)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첫째로 사도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로 목회를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생애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겸손과 눈물의 삶이였습니다. 참된 목회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입니일까.- '곧 모든 겸손과 눈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겸손과 눈물로 사는 것 많이 올바른 목회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목회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인생관과 신앙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목회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신앙관을 갖추지 않고 양들을 섬기려 한다면 한번 쯤은 고려해 볼 사항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겸손과 눈물의 삶은 매력적이고 흠모할 만한 인생관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꼭 그렇게 까지 겸손할 당위성이 있는가, 아니 꼭 그렇게 까지 눈물을 흘리며 믿음 생활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도바울의 목회는 겸손과 눈물의 삶이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커서 평생 갚아도 갚을 길 없는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반드시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인들에게 해당되는 신앙관입니다. 요즘 우리 교계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겸손과 눈물의 신앙관을 강조하기 보다는 행복론에 대부분 심취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론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목적에 사활을 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바라는 것 보다 더 높은 이상과 비젼을 제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24)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요즘 기독교의 복음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빛을 잃고 있는 것은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을까.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은 거짓과 위선을 책망하고 밝혀 내야 하는데 드러내기는 커녕 그냥 덮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를 점차 깊은 죄의 수렁에 빠뜨리는 범죄입니다. 우리가 하루 빨리 육신의 안일함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책망이란 무엇입니까.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책망이란 바로 잡아주는 훈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죄악에 빠지지 않게 구원시켜 주는 것이 바로 성경적인 책망입니다. 이 일을 목회자가 해야 할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 안에서 조차 겸손과 눈물의 복음을 가르칠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책망의 교훈을 말한다면 교회에 남을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고 가르치시매 많은 무리들이 떠나 간것 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겸손과 눈물의 목회란 무엇입니까. 종의 목회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의 목회란 무엇입니까. 종은 누구입니까.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시간, 생명, 생각, 행동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가 아니라 모든 것이 주인이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주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종의 삶이란 섬김과 희생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섬김과 희생이란 무슨 대가나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무상으로 이웃을 섬겨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들을 섬기기 위해 흐르는 눈물, 양들의 아픔을 위하여 바쳐진 눈물이 바로 겸손과 눈물의 삶입니다. 겸손과 눈물의 사람을 인간적으로 보면 나약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겸손과 눈물의 사람은 영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요.가장 큰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겸손과 눈물 없이 양들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겸손과 눈물 없이 양들을 섬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회 현장에 감동이 없고 사랑의 맛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과연 누구를 양의 목자로 세워 주실 것 같습니까. 겸손과 눈물의 사람을 목자로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목자는 겸손과 눈물의 종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겸손과 눈물로 양들을 섬기면 거기에 감동이 있고 사랑의 맛을 내는 것입니다.
둘째 아름다운 목회는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기는 일입니다.
19)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사도바울이 목회자로서 얼마나 힘든 일을 많이 겪었습니까. (고린도후서 6:4-5)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룸움과 자지'못한 가운데서도 참고 인내하며 주를 섬겼습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교활한 간계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참았고 인내했던 것입니다. 수 많은 위협과 협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모든 시험과 유혹을 이기고 극복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주를 섬겼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신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시험을 참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참되 신앙이란 참고 인내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야고보서 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고보서는 온전한 신앙이란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시험을 참고 인내하면서 주를 섬기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참고 인내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핵심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참지 못하면 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내하고 참아야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도바울은 유대인의 간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험을 참으면서 끝까지 주님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아무리 인내를 잘하고 참아도 주님을 섬기는 일을 중단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첫 순위가 참고 인내하는 것 못지 않게 주님을 섬기는 일을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합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주님을 섬기는 일은 더 영광스러운 일이요. 가장 값진 일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섬기는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 기독교는 새로운 책임에 대한 의무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이 새롭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눔의 책임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약점이 바로 나눔이 부족하다는데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안 나눠주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선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나누어 주어야 할 대상은 누구라고 보십니까. 그 나눔의 대상이 야고보서 말씀처럼 고아와 과부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한 이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한 이웃이란 정말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웃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러한 가난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가난함입니다. 부모들이 있지만 버림 받은 자녀들, 가정 해체로 말미암아 버림 받은 어린 자녀들이 우리의 가난한 이웃입니다. 지하 단칸 방에 살아가는 독거노인들도 우리의 가난한 이웃입니다. 그리고 하는 일이 부도가 나서 신용불량이 된 사람들이 우리 이웃의 가난한 이웃입니다. 교회와 부자들은 그들에게 나눔과 선행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유익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영생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유익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유익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이 우리의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준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죄악에서 구원받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익이란 바울이 전하여 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이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보다 더 유익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영혼 구원보다 더 유익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러면 우리에게 무익한 것은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아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세째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21)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기독교 복음의 본질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참된 목회자는 무엇을 전해야 하고 가르쳐야 하고 증거해야 하는지 21절 말씀은 정확하게 제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 신앙생활이란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첫 메시지가 (마가복음 1:15)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통해서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에베소서4:22)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죄악들을 회개하는 삶입니다. 우리 죄인들은 하나님께 회개해야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죄사함이나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 많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외에 어떤 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업적에도 관심이 없고 우리의 공로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찾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을 찾으시면 하나님은 그때부터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크기 만큼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크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통하여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으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을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이란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셔야 가능 합니다. (에베소서2:8) '너희가 그 은헤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믿음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훈련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절대로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훈련을 잘 받아 견고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한계단 한 계단 믿음을 쌓아 올라가야 합니다. 10년, 20년, 30년, 40년에 걸쳐 믿음을 키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부터 믿음의 훈련과 연단을 잘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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