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사명이 생명보다 귀하다

하나님아들 2013. 9. 20. 19:32

사도행전 20장 사명이 생명보다 중요합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는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는 성령의 중심지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선민의 안식과 보금자리가 자리잡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안식과 평안이 아니라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을 올라가는 바울의 마음은 무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 하여도 피하지 않고 예루살렘성을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성에서 십자가에 죽으실 줄 알면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당당히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인류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것 처럼,  사도바울도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 안가도 편안하게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안가면 핍박과 환난을 당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일부러 가서 고생을 안해도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복음의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구태여 예루살렘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 일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길 보다 쉬운 길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핍박과 환난이 있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의 길을 외면하고 다른 길을 갔더라면 아마 성경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까지 높여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곳 예루살렘 성에 올라갔기 때문에 오늘날 저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첫째 주 예수께 받은 사명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헤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이란 무슨 뜻이 있습니까. 헬라어는 디아코니아 입니다. 영어는 미션(mission)입니다. 라틴어는 미시오(missio)입니다. '보내다'라는 뜻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 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1:10)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요한이 하나님께로서 버내심을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일감입니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이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비록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곳 예루살렘에 올라 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올라가기로 결심 했습니까.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입니다. 사명은 생명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생명보다 귀했기에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명의 길을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그리아니 하실찌라도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합니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물론 잘 먹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안됩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때문에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 가장 귀합니까. 돈입니까. 출세입니까. 성공입니까. 가족입니까. 건강입니까. 우리가 살아 감에 있어서 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명보다 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것들 입니다. 영원한 것들이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은 사명입니다. 복음입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은 사명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께 사명을 받고 태어 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로 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고 존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명은 천하 보다도 귀한 생명을 구원시키기 때문에 사명이 귀한 것입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사명이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귀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바로 영혼을 구원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24)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히노라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떻게 산다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이렇게 살겠습니까. 우리로서는 부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에 붙잡힌바가 되면 사도 바울처럼 살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충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분명 성경은 생명을 버릴 때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죽어야 부활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우리 자신들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고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생명을 받칠 때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생명은 주님의 손안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 양들의 걈독자로 삼아 주었습니다.

 

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양떼를 위하여 감독자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양떼를 위하여 아무나 감독자로 세우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떼를 위하여 감독자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감독자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감독자가 직분으 얻으려면 어떤 자격을 가져야 합니까. (디모데전서 3:1-4) '사람이 감독자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다음은 감독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감독자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내 몸처럼 사랑하여 섬기며 보살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16 '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잘 섬겨야 합니다.

2, 감독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양들을 돌보며 섬기며 위로하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3, 감독자는 이단자들을 단호하게 막고 경계해야 합니다.

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사도바울이 가장 신경섰던 부분이 무엇이었습니까. 자기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고  늑탈하고 탈취해 갈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사도가 떠난 틈을  타서 반드시 그러한 일이 일어 난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사도바울은 잘 알고 그것을 막아야 할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예수님을 따르게 하기 보다는 자기를 좇게 할려고 어그러진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흉악한 이리가 하는 일은 주님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좇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오늘날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따라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해괴망측한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흉악한 이리의 탈을 쓴 사람들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너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을 알아 내는 잣대는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르게 하느냐 아니면 자기를 좇게 하느냐를 보면 분별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는 자는 삯군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게 하는 자는 선한 목자입니다.

4,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면서 신앙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31)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던 일을 기억하라'

 사도바울의 목회가 왜 성공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던 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삼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바울의 고별 메시지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인생을 불행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삼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살아 온 그는 가장 위대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눈물 없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까. 눈물 없는 목회는 실패한 목회입니다. 행복한 목회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눈물 없는 목회가 과연 바울의 목회였을까요. 

 

세째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내지 아니하였고 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사도바울의 생활이 어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목회자가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내는 것은 목회자로서 자격을 박탈당하는 일입니다. 목회자로서 생명을 잃은 행동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은이나 금을 탐내는 목회자는 이미 사명이 끝난 자입니다. 만약 금이나 은을 탐내는 목회자는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회자가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기뻐하시는 훈계도 아닌 것입니다. '주 에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대로  주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받는 것보다 주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생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무엘도 (사무엘상 12:-43) '동일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20:35) 약한 자들을 돕고

목회란 약한 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약한 자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강한 자들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자들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자들을 도울 때 그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를 귀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7)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도다' (마태복음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시편에서도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약한 자를 돕고 섬겼습니다. (야고보서 2: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아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출처 : 알곡모으기
글쓴이 : 묘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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