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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수아 1:1-18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아들 2013. 9. 20. 19:36

여호수아 1:1-18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영도하에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약속해준 가나안 땅에 드디어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장장 40년 동안 광야의 생활을 살면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1. 하나님을 불신하던 출애굽 세대들은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2. 가나안 땅에 들어갈 사람들은 출애굽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대들이었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만  죽게 되었습니다.

4. 모세는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호수아 장군이 그의 후계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5. 이제 여호수아 장군은 모세의 바통을 이어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을 받습니다.

 

본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그동안 모세에게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를 여호수아가 맡아서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노예생활,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느라고 제대로 한번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 합니까. 안식이었습니다. 안식 한번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해준 안식의 땅에 들어간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백년 동안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이 자기들의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1-2년도 아니고 수백년이 흐른 다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흥분이 아니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워 놓고 모세에게 이미 약속한 언약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1: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1: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지경을 축복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땅을 차지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해 준 땅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바닥으로 밟는 지역을 하나님께서 다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한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이 무슨 축복인지 아십니까. 이 약속은 우주적이고 세계적인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마 어마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세계적인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이 시간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가 우주적이고 세계적인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준 땅은 이처럼 광활하고 무한한 땅입니다. 사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땅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멀리 보고 싶어도 제한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이 봐야 눈으로 보이는 데까지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본다 하여도 얼마 바라보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땅밖에 못보는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땅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역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이는 지경만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 하나님이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땅은 무한대며 땅끝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성도님들이 원하는 땅을 한번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들이 차지하고 싶은 땅 만큼만 지도를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려 보셨습니까. 얼마나 크게 그리셨는지 보여 주시겠습니까. 자 한번 봅시다.

사실 우리가 소유하고 싶은 땅은 이렇게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요 정도만 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크게 가질려고 하면 부담을 느낍니다. 때로는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너무 욕심부리는 것 아니냐.

그러나 진짜 축복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땅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땅이 진짜 알짜배기 땅입니다.

 

과연 얼마나 차지하고 싶으세요. 보세요. 그 종이에 그려 본 땅이 얼마나 큰 땅 입니까.

에이 저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그런 그림같은 것은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준 땅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또 빼앗길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땅을 청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땅이 아무리 넓고 큰 땅이라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면 우리는 다 받을 수 있스니다. 다 누릴 수 잇습니다. 모든 지경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것으로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애야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노라 말씀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도 저는 그 땅이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 땅을 안 받을래요.

이러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사실 주고 싶은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지 우리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받는 우리는 그냥 받으면 되지 주고 싶은데도 받느니 안 받느니 하면 곤란 한 것입니다.

주고 싶은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 것이지 안 주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고 싶어도 안 받는다면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안 주시는 것입니다.

뭐든지 준다고 했을 때 네 그래요 저에게 주세요 하면서 감사하게 받아 내것으로 삼으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잘 받는 것도 은사입니다. 잘 받기만 해도 수지를 맞는 것입니다.

 

오늘 부터 우리는 잘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받는 습관을 필요한 것입니다. 잘 받으시가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줄 때 아멘하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리 빼고 저리 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자 다시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받아 누리느냐는 것은 각자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1. 믿음의 분량에 따라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2. 모든 약속의 땅은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자기 땅이라고 요구하는 것만 자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청구하지 않은 땅은 주실 수 없습니다.

4.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아야 할 당은 어떠한 땅인지 확실히 알아서 넘치는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5. 믿음의 크기에 다라 복도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너희가 발로 밟는 땅을  전부 차지하게 하리라'는 약속이 우리 가운데 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한번 상기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세워 주실 때 먼저 꿈과 비전을 주시고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평의 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조상들과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준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믿음이 필요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가나안의 축복은 하나님이 지정해 준 곳에서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해준 땅에서만 청구해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둔 수 많은 축복들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한 곳에 가서 청구하게 되면 다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약속해준 땅으로 가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해 준 땅으로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가서 아무리 차지할려고 해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지명해준 곳에서만 효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약속해 준 땅으로 가지 않고 애굽이나 블레셋에 가서 하나님이 나에게 준 땅이다 그러니 나에게 달라고 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준 꿈과 비젼을 붙잡을 때 우리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그린만큼 그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평의 땅도 주어진 것은 없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가나안 땅은 합법적으로 차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땅, 룻에게 준 땅, 에서에게 준 땅이 이 엄연히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땅 외에는 욕심부리면 안 되었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룻에게 준 땅이나 에서에게 준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 하리니'

 

이방 민족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했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냥 그 땅을 순수히 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빼앗기지 않을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루어야 할 전쟁을 예고 하시면서 여호수아에게 무엇을 준비시켜 놓으시고 있습니까. 5절 말씀처럼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를 영적으로 무장시켜 놓으시고 있습니다.

 

 

1: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라'

 

사람이 강하고 담대해 지는 지름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사람이 강하고 담대해지고 싶어서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습니까. 사람은 스스로 강해질 수 없습니다. 물론 천성적으로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강한 것이 하나님의 앞에 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게 하여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 하신다는 말씀을 붙잡을 때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강하고 담대하게 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함께 하여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은  오늘 나와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권력이 있으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 아나라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 것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남의 유익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만 채우며 살 때 그 권력은 쓸모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이나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면 안됩니다. 잘못되게 쓰는 사람들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돈이나 권력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잠간 나에게 맡겨 주신 것인데 내것인양 함부로 쓰면 망하는 것입니다. 얼마간 사용하다가  하나님께 돌려 주어야 합니다. 영원히 자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강함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신다는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신다는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한시도 나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실 수 없습니다. 평생에 나를 떠나시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에게 계속적으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해 주셨을까요.

아마 여호수아는 인간적으로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본성적으로 두려움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리더자로서 영웅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강하고 영웅적인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이 그를 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자기의 힘과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가령 히틀러나 나폴레옹 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었다면 받아 들이겠습니까. 아니 저 보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는데 뭘 모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저는 빼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빼대 있게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요. 저는 원래 강하고 담대하니까요. 그런 말씀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대꾸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거부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연거푸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인간적으로 강하고 담대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연민에 빠져 한 발 자욱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이러한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영웅만 쓰신다면 저 같은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도 써 주신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인간적인 연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연약함 때문에 써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강했다면 써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연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써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연약한 자는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비겁하게 살지 않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하게 살기를 바라실까요.

이 세상은 우리가 강하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의 공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강하지 못하고 위축되는 것은 마귀의 공작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잘 강당하지 못하고 무력해질 때 사람은 나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나약하고 쓰러질 수 밖에 없는 데 뭐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까.

 

시편 145;14

'여호와께서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리니'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드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믿는 백성들이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킬 때 입니다. 하나님의 말슴을 100% 순종할 때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만큼  확실한 보증수표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영적인 능력이요 영적인 힘인 것입니다.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나님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적인 능력이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고 과시하기를 잘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소망할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리하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는 ' 삶을 살 때 우리의 길이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3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탄하게 되는 길, 형통하게 사는 길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말씀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생활만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형통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길이 거칠고 평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해 준 땅에 들어가 차지하라고 약속해 준 말씀을 공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리 약속해 주었어도 우리가 차지해야 할 지경을 그려놓고 정식으로 요구할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차지해야 할 구역을 그려 놓으시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디 어디를 차지해야 할 것인지 정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지역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로 가서 차지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교회를 세워 주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청사진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청사진을 미리 그려 놓고 우리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진 것이지 우리 스스로 한 것은 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자녀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약속의 땅은 우리 자신들의 노력이나 힘으로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채워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해준 축복일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게 청구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둔 모든 신령한 복을 내 것이라고 믿고 간구할 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1:10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1: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해 준 가나안 땅에 3일 후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양식을 예비해야 했습니다.

3일 후면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약속에 땅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흥분 되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그리던 땅에 곧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1: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

1:13  -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다짐을 받아야 할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기름지고 아름다운 땅을 모세가 일찍이 세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해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기는 주는데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14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 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1:15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것 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게서 주시는 당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찌니라'

1:16

'그들이 여호수아게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신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17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 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하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여호수아는 과연 그들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변함이 없는지 그들의 선택권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확인해 볼 겸 재차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자유 의지를 꺽지 아니 하십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가 원하는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세 지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도 않고 요단 동편에 도착한 그들은 기름진 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 지파들은 욕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그 땅을 자기들에게 분배해 달라고 요구하자 모세는 그들의 요구대로 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을 억지로 가나안 땅에 인도해 갈려고 하지 아니 했습니다. 단 조건을 하나 달아 주었습니다. 젊은 용사들은 가나안 정복에 동참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해 두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세 지파에게 재차 물어 보았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약속해 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한 후에도 약속에 땅에 정착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분배받은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인지 아닌지 그것을 확인해 볼려고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확인한 결과 세 지파들은 자기들이 결정한 것에 대해서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3일 동안 세 지파에게 모세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을 제차 확인해 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모세의 말대로 분배해 주었습니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서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실 세 지파들이 내린 선택은 역대상 5장에서 보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생겼는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왜 여호수아는 이 점을 부각시켜 주셨을까요.

그들이 분배받은 땅은 비록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이 였지만 이 땅은 그냥 버려두고 가야 할 땅이였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 땅을 탐내어서는 안 되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 지파들은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 땅을 탐내고 말았습니다. 자기들에게 안성맞춤의 땅이라고 착각하고 그만 그 땅에 머물고자 했던 것입니다.

후에 일어날 후환에 대해서 전혀 방비하지 못한 결단을 내려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세 지파들에게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는지 성경은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씻을 수 없는 오욕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지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맛본 지파들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의 땅으로 인도한 지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제일 먼저 포로로 잡혀갔고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저주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더이상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세 지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서 피와 땀을 흘렸지만 결국 그들은 세속을 끊지 못하고 육신의 안일을 추구하다가  영영히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시작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끝 마무리를 잘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을 누리며 살지만 매일 매일 믿음 안애서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육신의 안일과 게으림을 이기고 날마다 믿음 안에서 살아야 세 지파들처럼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육신의 편안한 대로만 살다가는 세 지파들 처럼 망하는 것입니다.

 

출처 : 알곡모으기
글쓴이 : 묘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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