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국가와 교회

하나님아들 2013. 9. 20. 19:28

 

 

국가와 교회

사도행전 27장 20절

'여러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기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어느 국가든 공포와 두려움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평화로운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평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평화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성립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국가는 큰 풍랑과 광풍을 만나게 되고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는 큰 풍랑을 하나님이 막아 주시기 때문에 평화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죄인의 몸으로 로마를 향해 출발하는 바울

 

사도행전 27:1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 사도바울을 쓰셔서 로마에도 복음 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 바울을 로마에 보내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민족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바울을 어떠한 모습으로 보내십니까. 개선장군이 되어 수 많은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입성시키지 않으시고 초라한 죄인의 몸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바울을 태운 배는 이달리야를 향해 출발을 하게 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사도바울은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서 다른 죄수들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선교사로 로마에 복음 전하러 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선택한 하나님의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위대한 일을 설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비밀을 가슴에 안고 바울은 로마로 출발을 하였던 것입니다. 수송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의 책임하에 여러 항구를 걸쳐 어렵사리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 9-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러 날이 결쳐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니'

미항이라는 항구에 여러날 정착하고 있다 보니 그만  금식절기가 끝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즉시로 행선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금식절기가 끝난 후라 행선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는 말씀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있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지금 출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해 주었습니다.

=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머물러야 할 때 머물러야 하고, 멈춰서야 할 때 멈춰서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민수기9:22) '이틀이든지 한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더니"  주님이 위태롭다고 말씀하시면 위태로운 것입니다. 주님이 머물러 있으라 하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유진하고 있으라 했는데 움직이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년이든지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아마 백부장 율리오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라도 빨리 로마 황제 앞에 자신의 업적을 보여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황제에게 잘 보여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장과 선주도 무역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운행하여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율리오가 죄수로 있는 바울의 말에 귀 기우릴리 만무 했습니다. 결국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묵살하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위험부담이 따르더라도 행선하기로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문제요. 우리 국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하나님의 교회가 하는 말들을 들어야 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의 말을 믿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전문가, 행정가, 학자)말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백부장은 세상의 명예와 출세를 지향하다가 하나님의 종이 한 말을 불신하게 되었고 그 결과 엄청만 어려움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 정부가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힘차게 항해를 하였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율리오는 하나님의 종의 말도 듣고, 선장과 선주의 말도 듣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종의 말을 거절한체 전문가의 말을 듣고 행합니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주는 경고의 메시지는 묵살하면 안됩니다. 얼마못가 위태로워 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역대상10:14 '여호와께 뭍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지도 않고 여호와께 뭍지도 아니하는것은 위험한 짖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사도바울과 같이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호를 운행하시면 얼마 가지 못해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해 주는 하나님의 종이 없는는 것이더 불행한 일입니다. 지도자가 이런 식으로 국가를 리더해 가면 결국 백성들만 고통을 당한다고 직언해 주는 사도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둘째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난 국가공동체


=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배의 출항은 날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침 날씨가 쾌청하고 남풍이 순하게 불어 왔습니다. 이러한 날씨는 배를 행선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들은 출항하기에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내리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 1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얼마 못되어 섬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행선하기에 이익이 된줄 알고 떠났는데 얼마가지 못해서 그만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섬 한가운데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는 바람에 그들은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떠날 때는 남풍이 불고 구름 한점 없었던 날씨였는데 갑자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닥쳐 올 줄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쫒겨 가다가'

거친 광픙 때문에 배는 더 이상 방향감각을 상실한체 가는대로 쫒겨 가게 되었습니다. 선장과 선주 그리고 사공들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 보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두 손을 내려 놓고 밀리면 밀리는 대로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흘러가야만 했습니다. 가야할 방향을 잊어 버린체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국가를 보면 동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심히 요동치고 있습니다.

뭐하나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없고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얼키고 설켜 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에 밀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바다 한 복판에서 표류하다가 난파직전에 놓여 있는 배의 신세처럼 우리 민족 공동체는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율리오(민족 지도자)는 선장과 선주, 사공(행정가, 재벌가, 학자, 전문가)들의 말을 믿고 배를 몰고 가지만 위태롭기만 합니다.
= 9-10절  말씀처럼 바울의 경고를 받아 들였다면 이러한 위기를 만나지 않았을텐데 그만 바울의 말을 무시한 바람에 이러한 어려움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이 사는 길입니까. 배안에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다 내 던져 버리는 것 많이 유일하게 사는 길입니다. 귀한 물건, 값진 물건 금은 보화 상관없이 하나에서 열까지 내어 버리는 것 많이 그들이 살 길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그들은 오직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꿀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재물들을  바다에 다 내 던져야만 했습니다. 평생모은 재산들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 내어 버려도 그 배는 안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그 배가 어떻게 될지 침몰해 버릴지 아니면 살아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전복위기에 놓여 있는 그 배를 건져낼 대안이 없었습니다.

세째 꺼져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사도바울 =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러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한때 저희 가정도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맞고 심히 어려운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위암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가정은 가정대로 큰 환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저를 늦게나마 주의 종으로 부르셨지만 저는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길로 갔습니다. 그후 늦게 깨닫고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저희 가정을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 21-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노라'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 배안에 276명이라는 영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혼들이 귀한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이 귀하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종이요. 하나님의 선교사인 사도바울 때문에  그 배안에 있는 영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기에 놓여 있는 인류 공동체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결코 방관자가 되시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수레바뀌를 하나님이 친히 움직여 가시는 것입니다. 난파직전에 놓여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누구를 예비해 주셨습니까. 풍랑 때문에 표류하고 있는 인류공동체를 위하여 누구를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까. 죄수이면서 십자가진 하나님의 종 사도바울을 친히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를 진 바울에게 배안에 있는 영혼들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꺼져가는 영혼들을 살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조용한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혁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혁명은 서울 광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혁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배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죄인의 몸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배안에 갇혀 있는 죄인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조용한 가운데 개혁을 주도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일을 모릅니다. 은밀하게 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낌새를 차리지 못합니다. 과연 배 안에 있는 죄인의 몸이 그 배 안에 있는 영혼들을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으로 있는 바울을 통하여 그 배의 영혼들을 살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사도바울은 꺼져가는 영혼들을 보면서 죄수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지기 위해서 죄수의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자기는 비록 죄수의 몸이었고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 초라한 죄수로만 보았지만 그러던지 말든지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꿈과 비젼으로 충만해 있었고 이 믿음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섬기고자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배의 구원투수는 누구였습니까. 율리오였습니까. 선장과 선주였습니까. 아닙니다. 죄수의 몸으로 있는 하나님의 종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수라는 죄목아래 그냥 주저 앉아 있으면 죽어가는 영혼들은 누가 구원시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의 손길이 없으면 죽어가는 영혼들은 구원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죄인의 자리에서 일어나 유라굴로라는 광풍으로 신음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종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난파직전에 놓여 있는 영혼들을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구원시켜 주어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 이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으로 일어날 때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일어날 때 죽어가는 인류에게 진리의 등불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의 등불을 켤수 있는 것입니다.

네째 교회는 이제 안심하라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 일어나야 합니까. 교회는 언제 빛을 발해야 합니까. 죄인의 몸으로 있던 하나님의 종 사도바울은 언제 일어 났습니까.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을 때 일어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고 희망을 잃고 있을 때 일어 났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을 때 믿음으로 일어나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죄인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과연 누가 누구를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자기는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이 선택한 소명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종의 말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여 행선하다가 이 어려운 지경을 만났지만 잘했느니 못했느니 유무를 따지지 않고 안심하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선한목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은 '어제 밤에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너와 함께 행선한 사람들을 다 자기에게 붙어 주었다는'약속은 배 안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살려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임이 분명했기에 공포에 떠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안심하라고 위로해 줄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요동치는 우리 민족을 살리는 2008년이 되었으면 합니다.우리 교회는 2008년을 가장 뜻 깊은 한해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만이 우리 민족을 생명의 배로 구원의 배로 진리의 등불을 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인 증표는 당장에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눈 앞에 금방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니고 표적이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은밀한 변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 새로운 국가관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구원해 내는 방주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를 쓰실 줄 믿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사울처럼 (교회)는 죄인의 몸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 사람이 (교회)가 우리 민족을 구원시키는 구원투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 소망의 팡파르, 구원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게 하실 줄 믿습니다.
=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은 자가 없느니라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데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가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그리고 4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꺼져가는 영혼들, 난파직전에 놓여 있는 영혼들 누가 안심시켜주고 생명의 떡을 먹여 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이 일을 할 수 없지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한 하나님의 종 많이 할 수 있는 축복권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굶주림과 배고픔에 있는 영혼들을 안심시켜 주고 생명의 양식을 먹이는 영적인 리더자이지 영혼을 굶주리게 하는 삯군이 아닙니다. 참된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선한 목자는 누구입니까. 지금 누가 굶주리고 있는지, 헐벗고 있는지, 살펴서 안심시켜 주고 생명의 양식을 먹여 주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리더자는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구멍보트를 남몰래 타고 달아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죽음과 절망이 지배하는 바다 한 복판에 위로의 메시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난파직전에 놓여 있는 영혼들을 위로해 주고 생명의 양식을 먹여 주는 사람입니다. 이제 이것은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영적인 사명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배안에 있는 영혼들이 (우리 민족 공동체)가 다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출처 : 알곡모으기
글쓴이 : 묘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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