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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하나님아들 2013. 9. 18. 18:10

 

19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1. Schleiermacher는 그가 지은 책 「종교론」에서, 종교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펼쳤습니까?(예, 종교의 본질, 종교와 신학이 서로 다른 점, 교리에 대한 견해, 윤리와 실천을 지향하는 종교 등)

Schleiermacher는 그가 지은 책 「종교론」제2강에서 종교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시 계몽주의에서의 종교연구는 그 본질을 종교현상에서 발견하려 하였다. 따라서 종교의 본질은 형이상학적이며 사변적인 교리내용과 종교에 부수되고 있는 모든 도덕적인 원칙(사회 통념적인 윤리의식도 포함)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Schleiermacher에 의하면, 종교란 형이상학이나 도덕이 아니며, 이 둘의 혼합물도 아니다. 또한 종교는 교리(Dogma)가 아니다. 교리는 종교 자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종교는 교리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종교란 본질적으로 Anschauung이고 Gefhl이다.

“종교는 그 재산을 소유하기 위하여 형이상학이나 도덕에 속하는 것에 대한 모든 요구를 단념하고 종교에 떠맡겨진 모든 것을 반환한다. 종교는 형이상학처럼 우주를 그 성질에 따라 규정하거나 설명하고자 하지 않으며, 도덕처럼 자유의 힘 및 인간의 신적 자유의지에서 우주를 발전시키고 또한 완성시키고자 하지 않는다. 종교는 우주를 직관하고자 하며 우주 자신의 표현과 행위 속에 있어서 경건한 마음으로 우주에 귀 기울이려 한다. 종교는 어린이와 같은 수동의 태도로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파악하고, 그것을 마음 가득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종교론 “제2강: 종교의 본질”에서]

Schleiermacher가 생각한 종교의 본질은 ‘사유도 행위도 아닌 직관과 감정’이다. 이것은 Universum을 Anschauung하고, Unendlichen을 Gefhl하는 것으로, Anschauung은 수동적인 차원이고 Gefhl은 능동적 차원으로 윤리적인 차원까지 염두하고 있는 말이다. 그가 말한 Anschauung과 Gefhl의 감정은 ‘직접적인 자아의식’(das unmittelbare selbstbewusstsein)으로 그 무엇에 의해서도 매개되지 않는 기독교적 경건의 감정이다.
Schleiermacher는 가르침으로 고정된 정통주의의 교리를 거부한다. 교리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종교와 무관하고 종교는 교리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그렇다면 종교의 내용이라고 부르게 되는 모든 교리나 교조는 무엇인가? Schleiermacher에 의하면, 그것은 단지 종교적인 직관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거나 종교심의 본래적인 작용에 대한 자유로운 반성이거나, 혹은 종교적인 견해와 일반적인 견해를 비교한 결과이다. 따라서 교리는 종교의 본질이 아니며, 제 2 차적인 문헌에 불과하다. 그것은 교리가 거짓이라는 말이 아니고 단지 교리가 종교의 본질이라는 것 및 종교와 동일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17세기 교리중심의 주입식 신앙교육을 거부하고 신앙의 출발점으로 개인의 내면적인 체험을 중요시했다.
다른 한편 종교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만, Schleiermacher가 말하는 체험은 신비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체험은 개인의 체험이 아니라, 한 개인이 실증적으로 체험하는 사건으로서의 ‘역사성’(Geschichte)이다. 이 신앙체험의 역사성을 그는 ‘구원’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Schleiermacher는 신앙체험의 場으로서 ‘신앙공동체’(Gemeinschaft)를 중요시 여긴다.
Schleiermacher는 신학을 ‘실증신학’(Positive Wissenschaft)으로 파악하여, 신학의 목적과 기능은 ‘교회의 지도’(Kirchenleitung)에 있다고 말한다. 신학은 일정한 교회에 속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교회의 지도’에 참여하게 되면 그때부터 신학은 그들에게 유용한 것이 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이란 이것을 소유하고 사용하지 않고서는 기독교 교회의 완비된 지도, 즉 기독교의 교회정치가 불가능하게 되는 따위의 학문적 지식이나 기교적인 규율의 총체를 말한다. 같은 지식이라도 만일 이것이 교회정치와 관계없이 획득되거나 소유되었을 경우에는 신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각각 자기의 내용에 따라 속하여야 할 학문에 귀속하게 되는 것이다.
2. Tholuck의 신앙각성운동(Erweckung)에 대해서 설명하십시오.

Tholuck은 교리적인 정통주의 신앙을 배격한 인물이며, 학문적인 신학 또한 거부한 인물로, 교회 실천쪽으로 관심을 기울인 사람으로서 당시의 이성주의(rationalism)을 거부하였다. 보수적인 신앙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신비주의적 경향을 띈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죄에 대한 인식과 회개, 이신칭의를 강조한 주관주의적 신앙을 강조하였다.
Tholuck에 의하면, 신학(신앙)의 시초는 system에 있지 않고 마음(will)에 있다. 신앙을 낳게하는 것은 결코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단지 신앙을 설명해 준다. 개념된 신학은 죽은 신학이다. Wissenschaft가 아니고 Glaube이다. Wissenschaft는 Glaube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가 증명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기독교 진리는 이해(verstehen)하는 것이지, 설명(erklren)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플라톤을 이해하려하는 사람은 플라톤의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계속 성서의 저자가 된다.
이러한 성서에 대한 Tholuck의 전제는 Schleiermacher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Tholuck은 신약성서를 주석하였으며, Luther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지만 바울의 구원론을 다시 이해하였다. 또한그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신앙난제에 대해서 대화를 시도하였고 ‘조직적-개념정리’를 향한 신학사고를 거의 하지 않고 다만 신앙각성운동에만 정열을 불태웠다.
Tholuck이 주장하는 신앙각성운동의 motto는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 부활신앙으로”였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함’이란 주관적으로 자기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Erweckung은 신앙체험인데, 사건으로서의 체험(ereignis)이다. 신앙의 진리는 결코 사색하는 진리가 아니라 즐기는 진리이다.
Tholuck의 신앙각성운동은 두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신앙각성운동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성서 이해, 죄의식,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이다. 둘째로 신앙각성운동은 카리스마를 중요시 여겼다. 신앙의 영적 권위와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였으며, 목회적·윤리적으로 신앙인들 사이의 사랑을 강조하였다. 또한 선교(해외, 사회선교)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하나님나라’ 에 대한 이해로 회개한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학적인 의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삶과 윤리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신앙각성운동에 대한 Tholuck의 공헌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앙각성운동은 신학적 성명의 요지들이 향해 있는 인간의 특수한 상황에 의해 신학적 성명의 요지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일반적인 신학적 진리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특수상황속에서 그 진리들을 말하는 사람의 입속에 있는 진리들만이 존재한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그 진리들은 그 사람의 입과 상황 가운데 있는 지식에 대하여 증거를 제시하고 근거를 제공한다. 신학은 그 시대의 상황속에서 증언하는 것이다. 둘째, 신앙각성운동은 그 시대의 전제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 시대의 외부와 그 시대의 의식에 하나의 독특한 지식을 소개했다는 사실에 의해 확증된다. 즉 신학은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신앙각성운동의 신학은 회복, 재건운동이다.

3. ‘역사적 예수’ 를 밝혀낼 수 있는가에 대한 D. Strauss의 연구결과를 설명하고, 그리고 이 이후에 19세기 후반까지 계속 이어진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결과를 설명하십시오.

Strauss의 「예수의 생애」는 초기 예수의 생애에 관한 연구의 흐름중 복음서에 있는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라는 문제를 신화(myth)로 취급함으로써 해결하였다. Strauss는 종래의 초자연주의적 성경해석과 합리주의적 성경 이해를 모두 거부하고 신인(God-man)이라고 하는 ‘신화적인 것’(the mystical)을 성경 이해, 특히 예수에 관한 복음서 이해의 열쇠로 삼았다.
Strauss는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를 알 수 있는 ‘원천’(Quelle)이라고 확신하면서 성서를 주석하기 시작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자기들의 안경을 통해 예수를 보았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는 사실에 초점을 ?추었고 다른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가 나사렛 예수로서 갈릴리 주변에서 생활했던 것은 분명했지만, 지금 역사적으로 규명해 내기에는 불가능하다. 이런 입장에서 Strauss은 성서를 Bericht로 보긴 했지만, 그것을 가지고 역사적 예수를 발견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성서의 내용은 비역사적, 곧 ‘신화적인 설명’이다. Strauss가 주장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결과의 특징을 Barth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첫째, Strauss는 예수 전기작가들에게 [신앙의]전제 없는 관찰과 사고(an observation and thinking)를 요구한다. 만일 전기작가가 정말로 예수의 전기를 쓰기를 원한다면, 그는 신앙이 아니라, 신앙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관찰과 사고를 선택해야만 한다. 둘째, 신약성경의 이야기 형태은 하나의 역사적 보고(a historical report)의 형태가 아니라, 단순히 신화(a myth)의 형태이다. 셋째, Strauss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핵심’(a historical core)을 발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핵심을 찾는 것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역사적 핵심이 가능성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핵심을 주장하지도 않고,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는 역사적 핵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넷째, Strauss는 예수에 대한 성격 묘사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예수의 인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역사적 예수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예수는 접근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Strauss는 관찰과 사고라는 도구를 가지고, 당시 적절하고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독특하고 절대적인 특성으로 묘사되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나사렛 예수에게로 접근 가능하다는 견해와 싸웠다.
이상의 Strauss의 연구결과는 두가지 문제를 야기시켰다. 하나는 복음서의 기록이 언제부터이며, 성서본문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가? 에 대해 문제인데, 이로 인해 ‘양식비평’이 등장하게 된다. 다른하나는 Strauss가 성서를 Bericht로 보았기 때문에 성서의 Authority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즉, 본문에 대한 정체성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것에 대한 답으로 Martin Khler의 말을 들어보자.
Martin Khler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연구 운동은 역사적 탐구를 위한 자료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그는 “과학에 의해서만 확립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신앙의 경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학자들의 교황과 같은 교만(papal pretentions)을 제재하는 것이 단순한 기독교 신앙의 대표자로서 조직신학자들의 오늘의 과제이다” 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도 복음의 성격과 어긋난다. 복음은 역사적 자료가 아니다. 부활하신 구세주는 “복음의 배후에 있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사도들이 설교한 그리스도이다. 신약성서 전체의 그리스도, 진정한 그리스도는 설교된 그리스도이며, 설교된 그리스도가 바로 신앙의 그리스도이다.”
Martin Khler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를 명확히 구분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불트만에게도 이어졌다.

4. Ritschl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의 하나님 나라이해에 대해서 설명하십시오.

19세기 Ritschl, Harnack, Troeltsch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의 신학을 우리는 ‘Kultur -protestantismus’라고 부른다. 이는 당시 기독교 문화가 정통주의, 경건주의 시대였기에 기독교와 문화가 접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변증학적인 입장에서 문화와 종교를 연결시켜 보려고 했다. 이들은 경건주의의 탈 세계화를 반대하며, 자연과학을 거리감을 두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주장한다.
‘Kultur-protestantismus’ 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Ritschl은 ‘하나님 나라’ 개념을 중요시 여겼다. 사실 Ritschl이전에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얘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경건주의자들이었는데, 18세기 말 나폴레옹이 서유럽을 침략하면서, 경건주의자들은 나폴레옹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하여 빨리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해야한다는 분위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 나라가 매우 중요해졌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이해를 다른 측면으로 이해한 사람이 Ritschl이었다.
Ritschl은 윤리적·사회적 하나님 나라를 생각했다. 예수가 말씀을 선포한 것은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 나라는 ‘최고선’으로서 윤리적 理想이다. 따라서 그는 사회선교, 성화를 강조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으로 이 세상에서 건설되어지는 것이기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는 사회갱신을 통해서 일어난다. 하나님 나라가 역사하는 곳은 오직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만 역사하신다. 이런 사람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 Kant식으로 이해하면, 이런 사람은 가치 판단이 잘 서있는 사람으로 교회중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직업(가정)중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발전해 나간다고 Ritschl은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와 동일하지도 않으며, 저 멀리 있는 탈 세계적인 것도 아니다.
Ritschl의 영향을 받은 Harnack, Troeltsch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윤리적 기독교였다. Harnack은 “종교는 도덕의 영혼이고, 도덕은 종교의 몸이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Ritschl과 Harnack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발전” 개념에 있었다. 그러나 Harnack이 Ritschl과 다른점은 역사의 낙관론만을 말하지 않고 기독교의 헬라화라는 역사의 퇴보측면까지 보면서 교리없는 기독교를 주장했다.
Blumhardt, Ragatz, Paul Tillich로 이어지는 종교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혁명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이었다. 특히 Blumhardt는 하나님 나라가 치유사역으로 인해 지금 여기에서 확대되어 가고 있다고 보았다. 부활체험에 의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Overbeck과 J. Weiss등은 Ritschl식의 윤리중심의 하나님 나라 이해를 반대하면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를 주장하기도 했다. Overbeck은 말하기를 “기독교 고대 교회사를 보면 종말론이 강했는데, 현재 기독교는 종말론이 없어졌다”며 현재 기독교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 나의 신학 성향에 가장 잘 와 닿은 신학자를 골라내고 나서, 왜 그러한지 설명하십시오.

오늘의 시대는 다원주의 시대이다. 기독교의 절대성을 더 이상 강요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Troeltsch의 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역사주의를 지향하며, 절대화를 반대한다. 또한 기독교와 他종교의 문제를 연구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 주기도 한다.
Troeltsch는 개신교를 Old와 New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Old는 16·17세기의 정통주의 시대로 권위의 절대화를 놓고 볼 때, 16세가 종교개혁시기는 중세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이래로 교리를 절대화하는 시기는 지나가고 상대화·역사적인 관찰·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가 되면서 권위의 절대화는 사라졌다.
Troeltsch는 이런 관점에 의해, 교리의 역사를 해석하는데, ‘종교사회학’적으로 해석한다. 기독교를 단지 하나의 종교로 상대화시켜놓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기독교 교회의 역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Troeltsch에 따르면, 기독교는 두 Group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제도적 교회와 Sect로 나눌 수 있다. 제도적 교회는 교회 자신을 절대화 시켰으며, 여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신앙고백’이었다. 그러나 Sect는 각자 개인에 따라 신앙고백을 하며, 다양성이 있으며, 독점이 없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관심사는 제도를 가진 눈에 보이는 교회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어디에 계시는가에 초점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주의가 이미 Sect속에 있었다고 Troeltsch는 주장한다. 그러면, 현재 교회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으로 Troeltsch는 더 이상 교리를 강조하다보면 교회 자체가 사회에 유리된 Sect로 될 것이라고 했다. 교회는 현재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개방·받아들여야한다.
타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Troeltsch는 「기독교의 절대성」이라는 책에서 기독교 신앙을 포함해서 모든 역사적 현상은 절대로 보편 타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 상대주의적 입장에는 세가지 기본 원리가 놓여 있는데, 곧 비판(criticism), 유비(analogy) 및 상관성(correlation)이 그것들이다. 비판이란 모든 증거가 비판적으로 측정되어야만 하며, 또한 모든 결론은 새로운 증거의 조명 하에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유비란 연구 대상인 사건들이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사건들과 그 종류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뜻한다. 상관성이란 역사 내의 모든 사건이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역사 전체는 일종의 이러한 상호-관련성의 연락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한 신적 개입이라는 의미에서 역사 내에 어떤 단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그 자체로서 독특하고 개별적이고 특이하기는 하나 다른 모든 것과 질적인 면에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 결과 어떤 종교도 ‘절대적’이거나 ‘최종적’일 수 없는 것이다.”
Troeltsch는 역사현상에 대한 원리에 입각하여, 기독교는 더 이상 어떤 특별한 절대화를 주장해서는 않된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나란히 하나의 종교에 불과하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종교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기독교의 독특성은 무엇인가? Troeltsch는 말하기를, 다른 종교에 비하여 상당히 수준이 높은 종교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세계화 추세에 ?추어서 다른 종교들에게 개방해야한다.
이상 Troeltsch의 역사상대주의의 입장에는 신학적인 문제점이 남아있다. 그것은 기독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여전히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Troeltsch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독교는 타종교를 무시해서도 않된다. 물론 절대성을 버릴 수도 없지만, 우리는 Troeltsch처럼, 개방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에서 필자는 Troeltsch의 견해에 동조한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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