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바울신학 총론

하나님아들 2013. 9. 18. 17:11
서론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거둔 성공은 그들이 체험한 성령때문이며 성령체험은 그들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능력있는 실체로 만들었고 이 시대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께는 올바르게 중심을 맟추어 왔으나 성령에 대해서는그러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성령은 현존하시며 우리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하시며 바울에게서 성령안에서 사는 삶이란 열매와 은사 모두를 포용함을 의미하며 신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다루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가 능력있는 모습을 되찾기 원한다면 바울이 가졌던 성령님에 대한 제대로 된 관점을 되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령은 우리안에 우리 가운데 거하려고 돌아오신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현존으로우리가 경험할 수 있고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하시는 실체이다(p20) 현재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철저히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게 한다.이러한 관점에서 바울 서신서를 주해하면서 바울이 품고 있는 성령에 대한 그림을 알아본다.

1.성령의 신학은 가능한가- 바울신학에 나타난 성령

현대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성령이 신학과 성령의 체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p21). 바울의 신학은 항상 현장에서 행한 과업의 신학이다. 이는 인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이루어졌기에 바울은 신학은 복합적이다. 바울은 옛 진리와 새 진리를 설교하고 경험하며 진술하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하나님이 동일한 백성이 되는 것의 의미를 알려고 하였다. 바울의 말은 성령에 대한 그의 이해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여기서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체험한 실체로서의 성령을 이야기 한다.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신학은 삶으로 전이된 신학이다(p22). 성령은 자기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미래가 이미 현세대한에 들어왔음을 증거하며 동시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것을 하나님께서 환성하실 것을 보증한다.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있는 신자들이 현재의 삶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근본적이 요소이다(p23)

바울 신학의 중요한 쟁점의 하나는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 문제이다. 바울을 이해하려면 종교적 전통, 구약성경에 뿌리한 자신의 견해를 유지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파악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새롭게 형성되었고, 바룽에게 있어 약속의 성령(엡1:13)이 오심은 미래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본다(P24). 약속된 새 언약을 성취하는데 있어 성령이 핵심적인 역할을 바울의 이해는 무엇인가를 알아본다. 그러나 바울의 신학에 대하여 핵심은 ‘이신칭의다,아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체험한 신비다’등으로 핵심을 찾는것이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바을의 이해에 있어 핵심은 단순히 “복음”이라는 말속에서 찾으며 발견되어진다. 나아가 너무나 많은 것을 포함한 바울의 신학은 네가지로 분류한다. 토대, 체계, 초점, 열매로서 표현(P26)되며, 종말론이 바울이 가진 신학적 사고의 기본체계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안에서의 구원은 가장 기본적인 관심사다. 성령은 두시대 사이를 살고 있는 신자들의 삶의 핵심요소이다(P27). 저서의 목적은 성령의 문제에 있어서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P28)

2.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다-성령, 하나님의 새로운임재

바울이 말한 모든 내용의 핵심은 성령이 부어진것을 ‘약속된성령(엡1:13,갈3:14)’이 오신 것으로 이해 하였고, 새언약의 성취인 성령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나타낸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 집합적인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자시 백성 가운데 내주하신다.(P21)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체험이 성막과 성전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막위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에서 절정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출애굽기의 핵심구조이다. 신명기(신12:12)의 하나님의 한곳을 택하여 자기 이름을 두신다는 약속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으로 성취된다. 성전은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제사의 장소로도 기능했으나 기도의 장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 보았다(p34) 그러나 범죄함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고 이방나라에 포로가 된다. 그러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실현된다는 약속이 있었다(겔37:27) 출애굽 기사의 하나님 임재를 이사야서63:9-14에서는 주의 성령으로 동일시 되고 바울은 엡4:30에 사63:10의 언어가 반영됨을 확증한다(P38).

바울 서신서에서 바울은 성령의 오심을 새언약과의 새롭게 된 성전이라는 기대 모두를 성취함으로 하나님 자신이 지금 지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이다. 바울에게는 성령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의 거룩한 성전에 거하시는방식이다.(p39). 거주하심은 공동체, 특히 신자 개개인의 마음에서 이루어 진다. 그리스도는 새언약을 효력을 나타내게 만드시고, 성령은 바울은 새언약의 핵심부분으로 하나님 백성의 삶의 실체이다.(P4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값으로 살 때 몸도 함께 사셨다. 하나님의 소유다. 신자의 삶은 성령을 통해 사는 삶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각 개인의 마음인 것이다. 지금은 성령에 의해 성소로 들어 갈수 있고 지금 우리의 수건을 제거하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있고 임재안으로 들어가게 된다(46).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성품을 반영하지 않고 영광을 드러내지 않을 때 근심하신다. 바울의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는것은 우선 성령의 실체를 경험해야 한다.

3.성령은 어떤 분이신가-인격이신 성령

성령을 말함은 우리에게 바로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의미한다(P53).바울은 갈2:20에서 그리스고가 자기 안에 사신다고 말하는 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성령에 의해서 내 안에 사심을의미하며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바울의 삶에 이루어 지는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사역(p62)을 가리킨다.

바울의 사고와 경험은 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라 성령은 참으로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표현대로 완전한 인격적인 분이시다. 현대교회에서 성령에 대하여 삼위일체 고백에서는 쉽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성령에 대하여 희미하며 그 결과는 하나니믜 영에 의한 새로운 하나님의 임재와 그 의미가 어떤 방향으로도 신자들을 격려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 임재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성경적 바른 태도를 취하고 능력있게 되려면 우리의 생각과 경험안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 핵심이(p63) 성령님의 인격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세 위격으로 계신 하나님-성령과 삼위일체

그리스도와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새로운 임재이신 성령을 체험함으로 초대교회와 바울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이해하게 된다. 바울이 성령에 대해 무엇을 믿었는가 하는것은 그가 삼위일체적인 믿음을 가졌는가로 말할수 있고 바울의 자료에서 그것은 분명히 ‘그렇다’는 것이다(p69).바울신학의 핵심이 ‘복음’이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그것을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위해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다. 바울의 삼위일체를 드러내는 구절로 고후3:13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요소를 요약하며 성령의 교통하심은 계속해서 그 사랑과 은혜를 신자와 신자들의 공동체의 실제적인 삶이 되게 한다. 종말의 영광을 위한 보증이다. 또한 신적인 세위격의 활동을 동시에 한기도안에서 동등하게 다루며 말 그대로 삼위일체를 믿고 있다는 뜻(p70)이다. 고전12:4-6, 엡4:4-6도 삼위일체를 암시하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바울의 삼위일체에 대한 전제는 신적인 세 위격의 협력사역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는 한 하나님께 있다(p76). 바울은 후대의 공식적인 신앙 고백의 토대가 된 이러한 삼위일체에 대한 전제와 묘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역으로 위대한 구원을 성취하신 세 위격을 구별하는 일과 그들의 특별한 역할에 대한 그의 인식이 불분명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아가 바울은 오직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아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성령님의 생각을 아신다는 것으로 존재론적 삼위일체에 가까움을 알려준다. 성령을 포함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하나 됨과 다양성의 토대가 되신다. 또한 삼위일체적 본성은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임을 분명히 해준다(p78). 이 사실은 이 시대에 미래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해서 그리소 서로를 향해서 성령안에 사는 우리 삶의 패러다임 중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시사한다.

5.종말의 시작-미래의 임재에 대한 증거인 성령

신약성경의 초대교회가 지금 이시대의 교회와 다른 한가지는 그 들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행하신 모든 것을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이다.(p81) 이 시대 다음의 장차 올 세대로 두 부분으로 구분 지으면서 그들은 자신들은 이미 시작된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러한 단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미래에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현재의 실체로 선포하신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약속된 성령의 오심이었다(p82). 마지막은 단지 시작일 뿐이고 마지막 사건, 메시아 예수의 두 번째 오심을 기다린다. 두시대 사이에서 산다, 이미 미래가 시작되었으나 아직은 온전하게 성취되지 않았고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관점의 초대교회 신자들에 있어서 모든 것을 결정 짓는 종말론적 체계다.(p83)

이러한 새로운 관점의 바울의 신학적 견해를 전적으로 결정짓게 한다. 그가 사용한 용어들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고전10;11에서 ‘우리는 말세를 만난 사람들’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후5:17)라고 말한다. 바울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근본론적으로 종말론의 실체다(p84). 바울에 있어서 교회는 마지막때의 공동체로 본다. 그래서 바울은 일반 법정이나 다른 것에서 일을 해결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근거를 마지막때임으로 우리의 소유한 하늘의 시민권이 그런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p85)바울에 있어서 성령이 오심은 메시아 시대가 이리 도래했고 성령이 미래가 온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자 마지막 완서을 절대적으로 보증하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는데 성령은 바울의 이러한 확신에서도 핵심요소다(p87). 즉 성령은 이러한 미래에 대한 증거와 보증으로서의 이중적인 역할을 함을 바울의 서신서를 통해 ‘계약금’, ‘첫 열매’, ‘인’ 등의 용어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롬8:44에서 나타내는 것 처럼 성령, 곧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한다면 결국 죽도록 정해진 우리 죽음 몸의 미래의 삶을 보증한다.즉 성령 때문에 생명을 얻음의 확신을 가질수 있다(p90). 고전 15:44-48에서의 구속받은 우리의 몸을 신령한 몸이라 부르는데 그 몸의 본질을 나타내기 보다는 미래의 몸은 초자연적으로 성령에 속한 최종적인 삶에 적합하고 현재몸의 연약함이 방해가 되지 않는다. 장차 올 삶에 완전히 맞게 변화될 것이며(p91) 성령의 임재가 보증이다. 따라서 미래의 삶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으나,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적용되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은 믿음으로 획득된다(p94) 이방인에 대해서도 엡1:13-14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 모든 약속된 성령을주심으로그들 역시 자신의 소유로 인을 치심을 확증한다. 바울은 이때 성령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 세대에 성취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함으로 확신하고 있다(p95).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 이름을 위한 백성, 곧 종말을 기다리면서 현 시대안에서 미래의 삶을 사는 자기 백성을 불러내고 있다(p96).

6.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백성-성령과 하나님의백성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성령님은 새로운 백성을 불러 내어 자기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으로 삼으시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것은 더 이상 민족에 근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세례로 알려진 성령의 오심으로 말미암은 개개인의 입회에 근거한다. 바울의 초점과 관심은 항상 전체로서의 백성이다(p100). 구원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백성은 최종 완성을 기다리면서 이 세대를 함께 사는 종말의 백성이다.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p101).교회가 구원받은 개개인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목적은 전체로서의 교회다. 하나님은 단지 개인들을 구원하여 세우지 않고 한 백성을 세운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백성을 이룰 때 뿐 아니라 그들이 함께 하는 삶과 예배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신다(p103). 바울은 고전 12:13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느야 하는것을 답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동일한 실체인 성령에 잠기고 모든 이들이 함께 동일한 실체인 성령을 충만하게 마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을 이룬다. 여기서 새롭게 형성된 교제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고 그들은 한 백성으로서 함께 하나님이 임재 앞에 나아간다.

신앙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견해에서 성령의 중심적인 위치는 교회에 대한 세가지 이미지, 가족, 성전, 몸으로 잘 나타난다(p105). 초대 교회 신자들은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이 없었다. 교회에 가지도 않았다. 그들 자신이 교회였다.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은 교회로서 함께 모였다. 성령이 거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그들은 이적과 예언을 포함한 성령의 사역으로 특징지어진 강력한 코이노니아를 형성하였다(P109).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다(p110).

7.회심:들어가기1-성령과 복음을 들음

입회는 성령의 사역이다. 이것은 개개인적이며 복음의 선포와 제시로 더불어 시작된다.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신자가 되게하는것은 세례가 아니고 그의 삶속에서 함께 하는 성령의 임재다. 새로운 백성의 형성은 구약과 다르게 형성된다. 구원 사역은 개인 신자의 마음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성령님의 특별한일하심으로 분명하여 진다(p113).신자의 삶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서의 삶이며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통해 신자를 계속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 시키신다(p114).

회심의 시작에서 경험하는 구원체험의 요소로서 복음듣기, 믿음, 회심을 나타내는 다양한 이미지, 성령의 부으심, ...등 대부분의 과정에서 성령님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p115). 복음의 듣기는 두가지, 즉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과 성령의 사역인 복음 증거와 응답이라는 이중적인 행위가 있는것이다. 바울 자신도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성령님이 일하신 직접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p116). 그러기에 그의 복음 증거에는 성령의 능력이 함께 나타났고 이것은 고린도 교회성도의 회심에서 입증되며 그는 이것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다(p119).

바울은 계시가 성령을 받은 모든 신자들의 공통된 체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계시는 더 큰 계시에 귀 기울이게하고 예언하시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 계시는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끼며 함께 하신다는 임재 사실을 알려 주는 확실한 징표로 작용한다. 이것이 성려의 역사다(p122)

8.회심:들어가기2.-성령과 회심의 순간

우리가 믿는다는것은 외적인 것이 우리 안에서 내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단계인데 이것은 성령님이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그 동일한 믿음으로 오시는 분이시다. 구원은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일에 달려 있다. 나아가 제자의 길을 시작하게 한 성령의 체험을 바울은 호소한다. 바울에 있어서 회심은 일어나는 순간에는 신자안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명백하고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포함된다. 이러한 회심이 주관적으로 경험될 수 있도록 성령님이 그처럼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한다고 본다(p126). 바울서신에서는 성령과 믿음의관계가 구분이 쉽지 않는데 성령의 사역인 믿음 그 자체가 동일한 믿음을 통해서 오는 성령을 받게하며 경험하게 한다고 본다. 성령은 믿음의 원인이자 결과이다(p127).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에 결정적인 요소이며 회심때 일어나는것은 무엇이든지 성령의 체험이다.그러므로 오직 성령님만이 현재 종말의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확증하고(p129), 회심한 자들의신분 표지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는 구원을 얻는다는것은 성령을 받는다는것의 의미이다(p130).

구원에 대한 바울의 이미지는 성령과 관련하여 ‘양자됨’, ‘씻음’, ‘중생’, ‘생명을 줌’, ‘성화’등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회심은 하나의 이미지 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p136). 여기서 회심의 정확한 시점이나 관계들이 중요한것은 아님을 본다. 성령님이 신자의삶에 들어오시지 않는 회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감정의 변화와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 모두는 성령을 받은것이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그리스쳔의 누리는 삶의 전부이다.(p137)

9.회심:머물기1-성령과 바울의 윤리

회심한 사람은 무엇과 같은가? 성령의 사람이란 무엇인가? 바울에 있어서 구원은 들어가기와 머물기 둘다 관계가 있다. 충성이란 하나님의 방식으로 신실하게 사는것을 의미한다. 성령안에서 사는 새 언약의 삶은 성령안에서 성령에 의해 이루어 지는 삶이다.(p142) 많은 사람에게서 기독교 적인 행동, 기독교 적인 윤리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와 일대일로 상대하는 혼자만의 거룩을 추구함이 아니라 공동체와 더불어 세상안에서 성령의 삶을 사는것을 의미한다(p142). 나아가 윤리는 율법아래에 사는 위장된 삶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사는 삶과 관계있다(p144).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임재였다. 바울은 새 언약시대에는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갖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와 성령의오심으로 토라의 시대는 끝났다(p146). 토라의 준수라는 영역에서는 비연속성을 가지나 성령이 하나님이 백성들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함으로 토라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연속성이 있다(p147). 하나님의 의는 종말적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 삶속에서 성령님이 성취하신다.

바울이 말하는 윤리는 중심이 성령이다.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성령의 윤리는 새로워진 마음으로 함께 시작되며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p149). 바울은 그들에게 기독교 규칙을 주어 따라 살게 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성령을 소개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윤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된 쟁점이다. 기독교 윤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원형은 그리스도 자신이며, 원리는 사랑이고, 능력은 성령이다(p151). 성령의 중심적인 역할은 갈5:1. 6:10에 나타난다. ‘성령안에서/성령으로 행하라’라는 동사로 집약된다. 기독교인의 역동적인 삶이 여기서 전제되어 진다(p153). 성화는 이런 관점에서 설명되어 지며 거룩은 성령님이 신자안에서 사시면서 그들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재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표현하는 바울의 보편적인 표현은 ‘성도’다(p154).

10.회심:머물기2-성령의 열매

회심의 순간에 성령님을 받는것은 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염’이 시작되는 것이다. 성령의 목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감염시키는 것이다. 감염을 표현하는 구절이 성령의 열매이다(p157).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의 열매를 제시하는 것이 신자가 수동적인 상태에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p159). 신자는 계속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 때 열매를 성령님께서 맺어신다. 열매의 본질은 신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재생산하는 것이다.그리스도를 배운다는 관점에서 미리 정해졌음을 표현한다. 나아가 성령의 열매가 아홉가지 뿐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 열매는 태도, 덕목, 행동등 모두를 포함한다. 이 명령은 공동체를 향해 준것이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사는것을 배우는 신자들을 위한 윤리이다(p161). 바울은 아홉가지 열매를 소개한 후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는 진술과 함께 성령의 열매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이것들은 종말론적인 성령의 열매이고 우리안에서 공동체안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우리가 두시대 사이를 미래을 향해 살수 있는 것이다(p171). 이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령님을 소유해야 하며 성령님의 임재가 핵심이다(p172). 개인회심의 목표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것,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11.계속되는싸움-육체를 대적하는 성령

바울 서신이 말하는 성령과 육체의 싸움(롬7:15, 갈5:17)을 신자의 영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싸움이 아니라 육제가 여전히 그 세력을 드러내는 이 세상에서 미래의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내적 자아와 내적싸움에 초점을 맞추고 그러하다가 보니 거의 그리스도를 볼 수 없고 성령의 길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없다(p176). 우리 마음에 혼란이 가득하고 성령님을 향해서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없고 영적인 혼돈 상태에서 하나님을 비난하게 된다. 그렇다고 바울의 견해는 마치 성령을로 사는 사람들이 유혹을 받지 않는다거나 결코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승리주의를 말하는것은 아니다(p177).유혹도 받고 굴복도 한다. 그러나 용서가 따르고 은혜로운 회복이 있다.

바울에 있어서 육체의 의미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의미하며, 다른 의미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원수로 사는 자들의 실존을 묘사한다. 이 문제에서 어떤 싸움은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관점과 가치에 따라 계속해서 행동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 곧 성령의 사람과 관계가 있다. 핵심은 ‘멈추라’는 것이다.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다.

바울이 육체를 신자에게는 과거의 관점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모든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왔다. 성령의 시대에는 무엇이 가치있고 중요한것의 정의가 달라짐을 나타낸다(p181). 성령을 따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들과 완전히 대조적 삶을 산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 즉 성령에 의해 새롭게 되며 이것이 성령안에 삶이 성도의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p183).

우리가 육체를 따라 살아서 힘들때는 아직도 우리가 두 시대 즉 감염이 시작된 시대와 완성이 실현될 시대 사이에 살고 있음을 한번 더 깨닫고 그러할 때 다른 사람이 행한 것으로 인하여 내가 그들을 공격하지도 않는것이다(p190). 성령의 인도하심이 같이 이루어진다. 그들도 그리스고의 형상에 까지 자라게 하는 열망에 동참케 해야 한다(p191).

12.약함속에 있는능력-성령, 현재의 약함, 그리고 기도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중간지점에서 우리는 약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을 깨달아야 한다(p193). 우리의 ‘약함’을 바울은 약함 가운데서 능력있게 된다는 고백을 한다. 약함 가운데 사는것을 긍정적으로 말한다. 이는 바울은 성령의능력과 현재의 약함이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를 한다. 이를 묘사하는 구절이 롬8:17-27, 고후12:9이다.

성령의 오심으로 입증된 것처럼 실제로 미래가 현재 안으로 침입해 왔고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를 뜻하므로 미래가 상당히 이미 도래한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제자도의 표식이며 모델이 십자가의 우리 주님이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두려워 떨면서도 약한 모습으로 전한 설교는 이는 설교자의 능력이 자신의 지혜나 웅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있다고 입증했다(p199). 성령의 능력은 이 세대의 최종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숙으로 이끈다. 우리는 홀로 모든 것을 우리의 책임으로 안고서 살아가지 않는다. 성령님은 우리의 동반자로 늘 함께 하고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하신다. 이러한 능력부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생활에 가장 의미가 깊다(p200).

바울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기도에 바쳐졌고 그와 회심자들의 관계는 우선적으로 감사와 기도에 의해 유지되었다. 또한 그의 기도는 성령의 오심으로 철저하게 변화되었다. 그의 기도는 어떤 경우에서든 성령님의 이끄심으로 자연스럽게 하는 기도가 표준이다(p201).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하나님께 아바라고 외칠때 크리스쳔의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갈4:6, 롬8:15). 성령은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과 신자의 영을 통한 대화이다. 기도없는 삶은 사실상 무신론자의 삶이다. 결국 기도는 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드러내는 제일 가는 표현이다. 기도는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적인 위치에 있음을 드러낸다. 성령안에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요구하지 않고 겸손하게 기다리며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며 성령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함을 기대하는 것이다(p203). 오늘날 개인이 받은 성령 체험을 너무 자주 자신의 사역과 영성의 권위를 확증하기 위해 제시하는 자격 증명서가 되는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p204).

13.그의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성령과 예배

공동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져서 해야 할 일들 가운데 하나는 시와 찬미와 성령의 노래로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대하여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었다(p209). 예배에서 성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예배의 공동체이자 예배의 핵심은 성령이었다. 고전14:16에서는 예배는 다양한 방식으로 드려지며 모든 자들이 참여한다(p211). 기도와 마찬가지로 찬양도 성령의 역사분야다(p212).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 찬양이 있다.이 속에는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수단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p217).

그런 찬송의 대부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 그 자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이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지속적인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삼위일체적 예배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일때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명백히 이루어 진다(p218).

14.논란이 되는 은사-성령과 카리스마

바울에게 있어서는 은사들은 일상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 세대에서 세우기 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카리스마타는 특정한 교회가 당면했던 특정한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p222). 바울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이해할 때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방언에 대하여서는 성령으로 감동된 말이며, 마음은 분리되지 않으나 휴면상태 즉 열매 맺지 못하고, 방언은 말하는 자나 듣는자 모두 알아 듣지 못하며,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이라고 요약한다(p228). 예언에 관해서는 당시에 바울의 교회에서 폭넓게 나타났고, 예언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자신의 마음을 통제함으로 이해된다(p230). 중요한것은 예언의 은사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분별되어야 한다는 표현으로 고린도12:10에서 나타난다. 여기의 잘못된 예언의 예가 살후2:3-4에 나타난다. 초대교회의 예배가 훨씬 은사적 이었음을 볼수 있다(p233).

그러나 한가지 바울과 그 교회들에게 있어서 성도의 삶을 이해하는 열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령이다. 바울의 관점은 잘못된 것을 교정하여 바른 가르침의 길을 따라 가게 하는것이었더(p235). 바울은 두 시대사이에 사는 성도에게 은사는 은사들이 미래에 속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만 속한것이라고 주장한다(p237). 참된 미래가 올때 그들이 미래 존재의 증거라고 보았던 것은 지나갈것(고전13:8)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완성을 기다리는 동안에 계속된다.

15.이곳에서 어디로-오늘과 내일을 위한 성령

세계관이나 삶이 다양한 지금의 세계에서 우리가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더라고 성령님은 분명히 교회의 핵심이다. 바울과 그의 교회들에게 있어서 성령체험이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개혁되어야 하고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 개혁 원리의 진실성을 전제로 개혁과 갱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회가 생각과 행동에서 더 의식적으로 성경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p241). 기독교 삶을 본질적으로 성령의 삶,즉 역동적으로 체험되고 종말적으로 방향지어진 그러나 교회의 삶안으로 완전하게 통합된 성령의 삶으로 보는 바울의 관점을 되찾아야 하며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p252) 그리고 성령님에 대한 신학적 작업보다는 바울이 복음에서 전하는 성령님이 맡으신 결정적인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신조속에 가둔 성령님을 교회가 자유롭게 하여 신자와 신앙 공동체의 경험적인 삶으로 다시 들어가시게 하는 결단을 감행해야 한다(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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