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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린 왕자

하나님아들 2012. 7. 25. 12:24

어린 왕자

(앙투완 드 생 텍쥐베리 지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개 기독교인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자주 읽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책은 무엇인가? 질문의 방향을 먼저 내게로 돌리면, 얼마 전에 나는 이 지면을 빌려 한스 큉의 책 <그리스도교>를 성경에 버금가는 비중이 있는 책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도 성경 옆자리에 놓여 있고, 성경처럼 이 책도 자주 열어본다. 얼마 전에 불교계의 수도승이요 저명한 문필가인 법정은 <어린 왕자>를 불교경전의 꽃인 <화엄경> 다음으로 가장 자주 읽고 소중히 여긴다고 말하였다. 이 책이 화엄경 못지 않게 불교의 깨달음을 탁월하게 설파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기독교의 정신을 성경만큼 탁월하게 설파하는 책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들겠지만, 나로서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판매 양으로는 <천로역정>이 성경보다 더 애독된 책일지는 몰라도, 내용 면에서는 훨씬 수준 미달이다. 이 책이 구원의 과정을 극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는 있지만, 내용과 방향이 너무나 개인주의적이고 현실도피적이다. 그리고 천국에 이른 주인공은 괴로운 장망성(장차 망할 성)을 되돌아보거나 걱정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하늘의 기쁨을 포기하고 땅의 구원을 위해 다시금 현세로 내려오는 과정을 묘사하는 책이 한 권 더 나오길 기다린다. 책의 제목은 아마도 <지로역정: 땅으로 내려오는 과정>이 되어야 하리라!

  요즘의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일까? <목적이 이끄는 삶>일까, <긍정의 힘>일까, 아니면 <다빈치 코드>일까? 하지만 법정처럼 나도 덩달아 <어린 왕자>라고 외치고 싶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은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평소부터, 그리고 <어린이 신학>을 완성한 후에는 더 간절히 <어린 왕자>를 읽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랫동안 나는 이 책의 수준을 유치한 동화 정도로 깔보고 있었다. 하지만 건축학 박사인 동생까지 책을 사 주면서 적극적으로 편드는 바람에 나는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 밖에 이 책은 어린이가 읽고 이해하기 쉬운 책이 아니었다. 줄거리야 어린이도 대충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자주 튀어나오는 심오한 말들은 공자의 수준을 넘어 거의 석가와 예수의 수준이었다!

  이 책은 비행기 조종사였던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진 일종의 자서전적 성격의 책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상상과 환상으로 가득한 동화책으로 만들어놓았다. 갈피 사이에 종종 삽입된 저자의 예쁜 그림들은 동화책의 느낌을 더해준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동화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그 어떤 책들보다 더 풍부하게 오묘한 지혜와 심오한 깨달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의 뭇 경전들에 버금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 같다. 법정만이 아니라 원시 불교의 가르침에서, 아니 석가의 가르침에서 어린이는 가장 높은 수준의 깨달음에 도달한 자의 상징이다.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어린이는 천국에 도달하거나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의 형상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책은 어린이를 깔보는, 아니 진정한 어린이가 되지 못한 어른들을 가장 통렬하게 꼬집는다. 여기서 가장 지혜롭고 현실적인 자로 여겨지는 어른은 가장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인간으로 그려지는 반면, 가장 유치하고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어린이는 가장 순수하고 현실적인,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물론 이 책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인간은 우리 주위에 있는 평범한 어린이가 아니라 별나라에서 온 <어린 왕자>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처럼 땅 너머의 세계로부터 구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책은 우주 만물을 아우르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고, 삶의 의미가 돈과 권력과 지식과 명예와 같은 것이 아니라 책임적인 사랑에 있음을 깨우쳐 준다. 작은 풀까지 정성껏 돌보는, 그리고 자연과 생명을 친구로 삼는 사랑만이 순수하고 영원하며 풍요한 삶의 샘이 된다는 진리를 저자는 갈피마다 웅변한다. 만약 내가 <어린이 신학>을 쓰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도 <어린 왕자의 신학>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와 함께 사라졌다. 아마도 어린 왕자와 함께 먼 별나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지금 어린이들의 가슴마다, 그리고 참회하는 어른들의 가슴에도 별처럼, 아니 어린 왕자처럼 조용히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는 나도 저 하늘 어디에 살고 있을 법한 어린 왕자가 불현듯 다가와 주기를 기다린다. 물론 내 마음의 진정한 어린 왕자는 어린이를 가장 크게 높이신 만물의 왕자, 즉 아기 예수이시다. 그런 점에서 아기 예수는 종종 내 곁에 다가오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매일 새롭게 태어나시길 원한다. 어린 왕자 예수여, 우리를 영원한 진리의 별로 인도해 주소서! 

출처 : 주사랑
글쓴이 : 항공모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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