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란!

[스크랩] 프랜시스 쉐퍼의 「진정한 영적 생활」

하나님아들 2013. 8. 16. 15:04

프랜시스 쉐퍼의 「진정한 영적 생활」
성경이 가르쳐주는 영적 삶의 본질
김정훈 _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영 성’(spirituality)이란 쉽게 말해 구원 이후의 삶을 가리킨다. 영성에 관한 책은 안경테와 같다. 성경의 진리라는 렌즈를 붙잡아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좋은 안경테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튼튼하고 멋이 있지만, 유행을 타는 싸구려 안경테는 사람들로 하여금 금방 싫증을 느끼게 한다. 쉐퍼가 「진정한 영적 생활」(영어판은 1971년에 출간)이라는 책을 쓴 지도 벌써 35년이 지났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잊혀질 법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쳐 그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게 만든다면, 이 책을 영적 고전이라 부를 만하다.


‘진정한 영적 생활’의 의미
먼저 책 제목부터 살펴보자. 그가 책 제목을 ‘영성 신학’이나 ‘기독교 영성’이 아닌 ‘진정한 영적 생활’(True Spirituality)이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짜 영성’ 혹은 ‘거짓 영적 생활’에 대한 대안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쉐퍼가 생각한 가짜 영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먼저 가짜 영성은 ‘죽은 정통’을 들 수 있다. 쉐퍼는 보수적인 장로교 신학을 통해 정통 개신교의 교리를 잘 알고 있었고 10년을 목회자와 선교사로 지냈지만, 결국 ‘영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삶 속에 기독교 신앙의 실체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271쪽). 문제는 정통 신학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이 삶의 모든 영역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제대로 몰랐던 데 있다. 실제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돼 있는데, 앞부분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믿음으로 얻는 칭의가 영적 생활에 어떻게 기초가 되는지를 밝힌다. 뒷부분은 그것이 개인이나 공동체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쉐퍼가 ‘진정한 영적 생활’이라고 명명한 우선적인 이유는 바로 신앙과 삶이 동떨어져 있는 보수적 정통 신앙에 대한 대안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신학적 정통과 보수적 신앙을 자랑하는 우리도 쉐퍼처럼 정직하게 스스로 돌아봐야 함을 시사한다. 쉐퍼는 ‘정말 우리가 믿는 그대로 살고 있는가’, ‘신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운 대로 교회 사역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가’라는 것을 정직하게 묻고 있다. 또 성경의 메시지가 단지 종교 생활에 관한 진리가 아니라 만물의 존재 양식에 부합하는 진리임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가짜 영성은 또한 성경의 메시지 자체를 왜곡하는 실존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을 의미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라는 구원의 역사적 시공간에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부인한다는 데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서구의 합리주의 속에 함몰돼 초월성이 없는 윤리적 조언으로 그치고 말았다. 반면에 쉐퍼가 ‘철학적, 종교적 타자’, ‘상층부 경험’, ‘신비주의’(318, 323, 325, 352쪽 등)라는 말을 쓴 것은 당시의 실존주의 철학이나 히피 운동 이후의 동양 사상과 뉴에이지 사상 그리고 신비주의 등 기독교 신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실존주의 신학의 위험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쉐퍼는 기독교 진리의 시공간성을 강조한다.


쉐퍼의 공헌은 구원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한 것뿐 아니라 구원 이후의 삶도 동일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기독교의 종교적 체험의 실체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적 황홀경에 빠지는 게 아니라 순간마다 일상의 모든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곧 기독교의 ‘진정한 영적 체험’을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종교적 체험을 갈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령 체험, 치유,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 인격적 관계 등의 용어들은 그럴 듯하게 성경적인데, 그 내용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적 체험의 본질과 같은지를 정직하게 묻지 않는 것이 우리의 관행이다. 쉽게 말해 성경 공부를 통해 에베소서 5장을 배우는 것과 실제로 직장이나 가정에서 실천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얼마나 큰지,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가 실제 목회 현장에서 얼마나 가르쳐지고 적용되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살펴보지 않는다면 영적 체험의 현상만을 좇아가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의 영적 체험은 그 역사성과 일상성을 잃어버린 상태다. 이런 의미에서 쉐퍼는 그냥 영성이 아니라 ‘진정한 영적 생활’의 본질을 말하려고 한다.

적극적 수동성
그 러면 쉐퍼가 말하는 ‘진정한 영적 생활’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는 ‘영적 생활의 내면성’이다. 내면적인 것이 먼저 오고 다음에 외면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흔히 내면적이라고 말하면 역사성을 무시한 신비한 내적 체험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것을 쉐퍼는 반대한다(332쪽). 쉐퍼가 말하는 내면성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현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연속성을 정직하게 묻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데 문제는 이후의 삶이다.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이것은 순간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 렇다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어떻게 가능한가? 쉐퍼는 ‘적극적 수동성’(active passivity)이라는 독특한 용어로 설명한다. 그는 마리아의 예를 자주 들고 있는데,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할 것을 알려주었을 때 마리아는 ‘주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했다. 이것은 자신을 부인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게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다(356~358쪽). 영적 삶의 특징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는 ‘자기 부정’의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적극적으로 빈손을 내밀듯이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도록 맡기는 태도이다.

우리는 영적 생활의 내면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쉐퍼는 전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영적 생활의 핵심을 잃는 이유가 너무 수동적인 태도, 자기 부정적인 요소만을 영성의 핵심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336쪽). 실제로 우리는 ‘하지 말라’는 종교적 불문율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느라 ‘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저버릴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을 섬기라’, ‘직장 동료를 용서하라’, ‘정직하게 세금을 내라’ 등 적극적인 삶은 분명히 ‘술 마시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보다 더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순간마다 사는 방법이다.


내면성의 또 다른 특징은 생각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쉐퍼는 ‘진정한 영적 생활’이 거주하는 곳은 바로 사상의 영역임을 강조한다(443, 449쪽). 생각을 바꾸는 것이 항상 앞선다. 쉐퍼는 사상으로부터 모든 외적 사실들이 나온다고 주장한다(448쪽). 미술, 음악, 건축 등 문화 전체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증오 및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열매나 반역의 결과물이다. 모든 것들이 내적 사상에서 출발해 외부 세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쉐퍼는 아예 ‘복음 전파는 사상이다’(449쪽)라고 선언한다. 쉐퍼의 탁월성은 복음의 지성적 변화를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경의 계시를 통한 복음의 사상이 종교적 영역에서만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진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면의 변화 즉 생각의 변화는 개인의 회심으로 그치지 않고 외적으로 인간과 자연 나아가 온 우주를 포괄하는 변화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개인의 영혼, 구원, 회심 등을 강조해 왔다. 개인의 구원이나 회심의 체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와중에 생각의 변화를 얼마나 강조해 왔던가? 영성 훈련이라는 프로그램 중에 생각이나 세계관을 다룬 적이 있던가? 가치관과 세계관은 그대로 놔둔 채 ‘영혼’을 구한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지금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심지어 기독교계 안에서도 보고 있다.

초자연적 현실성
쉐 퍼가 말하는 ‘진정한 영적 생활’의 둘째 특징은 ‘초자연적 현실성’이다. 초자연적이라 하면 기적이나 이상한 현상을 떠올리기 쉽지만, 쉐퍼가 말하는 초자연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말한다. 신앙의 현실성도 흔히 말하는 기복 신앙이 아니라 정반대이다. 쉐퍼가 말하는 ‘진정한 영적 생활’의 본질은 초자연적 실재가 현실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 삶의 본질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똑같이 실제적이며 두 영역 속에서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378쪽). 이 세상을 염세적으로 보고 저 세상에 대한 소망으로만 가득 차게 하는 현실 초월적 경험을 추구하라는 것도 아니고, 현실에만 몰입해 현실 세계의 결과에만 집착하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순간마다 초자연적 실재를 경험하며 살게 해주는 유일한 종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쉐퍼가 초자연적 세계를 강조할 때에는 초월적 세계의 실재를 부인하던 자유주의 신학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다. 이미 자연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은 21세기 우리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주의가 과학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안다면 한가하게 신학적 논쟁을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순간마다 초월적 하나님을 의지하는 실제가 없다면 초월적 세계 자체를 부인하는 문화 속에서 기독교인이 살아남을 여지는 없다.

 
또 다른 것은 현실성이다. 기도와 경건 생활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으로 초월적 실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초월적 실재와 현실적 실재의 세계관적, 가치관적 연결이다. 이런 초월적 체험의 목표를 심리적 평안을 얻거나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거나 좋은 직장을 얻어 좋은 집과 차를 사는 것 등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심지어 그는 이런 종교적, 초월적 체험이 세속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질타한다(302쪽). 이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물량주의나 결과주의는 교회를 기업화하고 있다. 쉐퍼는 교회를 짓는 일이 순전히 세상적인 사업처럼 되었다고 탄식한다(521쪽). 성경은 4차원의 영적 세계가 현실 세계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지만 4차원의 세계를 이용해 현실의 복을 받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음을 파는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격성
쉐 퍼가 말하는 ‘진정한 영적 생활’의 셋째 특징은 ‘인격성’이다. 사실 쉐퍼의 책을 읽다보면 ‘인격적이고 무한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그것이 핵심적 개념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개념이야말로 쉐퍼가 말하는 기독교 영성의 통합점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그렇게 대접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인격성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고, 자연과 우주의 질서 및 조화도 인격적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목표도 원래 ‘하나님의 형상’ 즉 ‘인격성의 회복’에 있다.
또한 하나님의 인격성에는 ‘무한한 준거점’(452~455쪽)이 있기 때문에 인간과 우주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도 ‘인격적이고 무한하신’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쉐퍼의 영성을 전인적이고 우주적인 것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이유이다. 진정한 영적 생활의 핵심은 초월적 인격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흔히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을 가리킨다. 이것을 쉐퍼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인격성이라는 개념이 골방에서 이뤄지는 개인적인 일로 축소하는 데 있다. 인격성은 인간과 우주 심지어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포괄적인 개념인데, 이것을 개인적 체험의 영역에만 머물게 만드는 일이 진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신학과 영적 삶의 통합점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온갖 신비주의적 체험, 세속주의 등이 우리 삶의 통합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쉐퍼는 ‘진정한 영적 생활’을 위한 기계적인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402쪽). 순간마다 인격적이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실제만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은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인적이고 우주적인 통합점을 가진 영적 생활을 살라는 것이다. 쉐퍼는 예수님의 사건이 어떻게 삶의 모든 영역에 관계하느냐고 정직하게 묻고 성경적 대답을 찾아 책을 썼을 뿐 아니라 실제로 가정과 ‘라브리’라는 공동체를 통해, 사회 운동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몸으로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이런 의미에서 쉐퍼의 「진정한 영적 생활」은 잘 된 밥과 같다.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삶의 체험과 생각이 정성스럽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영성을 살찌울 영적 고전을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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