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탄식
7월 6일 2013년 할렐루야 교회 새벽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탄식 속에서 탄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탄하는 한숨을 내 쉬면서 이럴 수가 있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탄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탄식을 하셨고 성령님께서도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보시고 탄식을
하십니다.
세상은 예수님도, 성령님도 탄식하시게 만드는 곳입니다.
하물며 사람인 우리야 탄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탄식을 많이 하였지만 우리 아버님은 딸을 북한에 두고 오셔서 평생을 탄식하면서 시를 쓴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恩玉 못 본지는 만 4년. 仁을 못 본지는 100일 하고도 6일
나 그리워 못살겠네 오 주여 이를 어찌 하오리까?
하루 속히 한 곳에 모여 기쁜 찬송 부르며 고락을 같이 하며
오 주여 도와주소서“
1952년 8월 3일
지금부터 61년 전에 6 : 25 전쟁 중에 가족이 이산 된 부모의 마음을 쓰신 것입니다.
우리 아버님의 큰 탄식 소리를 지금 듣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큰 탄식이 세상에 있고 작은 탄식도 산보다도 많은 이 세상의 살아가는 인생들의 탄식입니다.
사람은 대개 두 가지의 탄식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1. 내가 스스로 잘못 하였을 때, 잘못 되었을 때에 탄식을 합니다.
이것을 후회라고 하는 탄식입니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때에, 성공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때에 탄식을 합니다.
나도 미국에 처음 와서 청소를 하면서 울려고 내가 왔나 고생하려고 미국에 왔나 하고 탄식을 많이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후회가 없고 탄식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회를 다 놓쳤을 때에 탄식이 나옵니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면서 탄식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사고가 난 후에, 자동타가 다 부서지고 사람이 다치고 병원에 실려 가고 많은 고통 중에서 나도 조금만 운전을 조심하고 속도를 줄여서 갔었다면 사고가 안 났을 터인데 하면서 탄식을 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많은 교통사고를 구경하고 참 안됐다고 말만하고 지나갔는데 내가 교통사고의 주인공이 되고 많은 사람이 나를 구경 할 때에 더 비참한 탄식이 나옵니다.
누가 복음 16장에는 밤낮 잔치만을 하면서 호화로이 살아가는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 간 후에 탄식하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3절 -28절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부자는 탄식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불 속에서 고생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잠깐 동안의 탄식을 있을 수 있고 견딜 수 있지만 영원한 탄식만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서 낙원의 기쁨 속에 살 때에 우리의 모든 탄식은 사라지고 기쁨만이 넘치게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으면서 당하는 어려움을 참고 나아가는 것은 영원한 탄식을 않고 영원한 기쁨 속에 살기 위하여 내세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 되었을 때에 안됐다고 말하며 탄식합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죽었다 하면 잘 죽었다고 시원해 합니다. 물론 울고불고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시원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잘 못 되었을 때는 가슴이 찢어지며 탄식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 되었을 때에 부모의 탄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탄식하신 것이나 성령님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잘 못되어 탄식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잘 못 되기 때문에 사랑의 탄식을,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탄식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염려하여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입에서 나 때문에 탄식이 나온다면 이 사람은 불효자식이요, 패역한 아들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성령님이 나 때문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게 한다면, 이는 얼마나 황송한 일입니까?
우리는 주님이, 성령님이 나 때문에 탄식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힘쓰며 노력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주님을,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 할 때에 탄식 하셨습니다.
1. 믿음이 없는 사람을 볼 때에 탄식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19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주님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 대하여 탄식을 하였습니다.
특히 믿음이 있을 만한 사람이 믿음이 없을 때에, 믿음이 적을 때에 탄식하시었습니다.
목사가 목사 같은 믿음이 없을 때에 탄식하고, 장로가 장로 같은 믿음이 없을 때, 권사가 권사 같은 믿음이 없을 때,
집사가 집사같은 믿음이 없을 때, 성도가 성도 같지 못 할 때에는 오늘도 주님은 탄식하십니다.
반대로 주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기뻐하시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신 주님이십니다. 자기의 종이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낫겠다고 하시며 집에 오시지 않고 말씀만 하여 달라는 그 믿음에 기뻐하시며 칭찬하신 주님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 8절 - 10절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혈루증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 등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저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어야 할 사람이 믿음이 없을 때에는 무섭게 책망하시며 탄식하신 주님이십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입니다. 교역자가 볼 때에도 있음이 있어야 할 사람이 믿음 없는 행동을 할 때에 탄식하듯,
주님께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믿음이 없을 때에 주님은 이를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2. 패역 할 때에 주님은 탄식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주님은 믿음도 없고 패역한 사람을 보실 때에 탄식하십니다.
패역이라는 말은 일부러 거슬려 어긋나게 흉악하여져 순종하지 않는 것을 패역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서도 패역한 고로 그들이 광야 40년 동안에 다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우상을 섬기면서 죄악을 저지를 때에 하나님은 패역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기도를 힘쓰며 선한 일을 열심을 내라는 말씀도 알고 있지만 실천을 하지 않음으로 패역하고 있습니다.
패역이라 하면 듣기 싫어하니 그나마 불순종한다고 부드럽게 말하지만 지금 기독교인들이 패역을 하고 있음으로 멸망 받을 일을 하므로 하나님은 한탄하시고 계십니다.
왜 주님이 패역할 때에 탄식하십니까?
가. 내 스스로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가 됩니다.
내 고집이 내 생각이 하나님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나보다 얕게 여기므로 주님이 탄식을 하십니다.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가 됩니다.
디도서 1장 16절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나. 내가 지금까지 쌓아 놓은 CREDIT이 다 없어집니다.
네가 믿음 생활을 잘하였다 하여도 마지막에 패역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믿음의 행실이 헛되어 버리니 주님이 탄식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들이 금과 은을 들여 성막을 지었어도, 저들은 패역함을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에스겔서 3장 20절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지금까지의 행한 의가 수포로 돌아가니 주님이 탄식을 하시는 것입니다.
3. 허탄한 길을 갈 때에 탄식을 하십니다.
야고보서 2장 20절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허탄은 허황되고 망령 된 것을 허탄이라고 합니다.
가능성이 없는 것을 허탄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허탄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특별히 허탄한 믿음을 가질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믿음을 가질 때에 탄식을 하십니다.
예수를 믿을 바에야 잘 믿어서 구원을 받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할 믿음을 가질 때에 주님은 탄식하십니다.
천국은 요새 일반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목사님들의 설교와 같이 들어가기가 쉬운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국 문은 약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천국에는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3절 -27절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설교를 잘 듣고, 성찬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고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허탄한 믿음이 아닐 때에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쟁이는 많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택함 받아서 구원에 참례하는 자는 적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 믿는 사람 노릇하지 말고 진짜 예수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노릇을 하지 말고 진짜 신앙인, 정말로 믿는 사람이 되고 진짜 목사, 진자 장로, 진짜 집사, 진짜 성도가 되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노릇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싫고 영화나 텔레비전이나 다른 일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벌어먹고 살기 위하여 마지못하여 학교에 나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 노릇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명감 없이 마지못해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을 노릇 한다고 말합니다.
아니면서도 긴 척하는 것도 역시 노릇 하는 것으로 가짜를 말하고 있습니다.
노릇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진실이 탄로가 나는 것입니다.
가짜 신앙인 노릇을 하면 주님 앞에서 심판 때에 그 진실이 탄로가 나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노릇을 하지 말고 진실 되고 참되게 나의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은 노릇하면 안 됩니다. 다른 세상의 일은 속일 수 있는 노릇이 될 수 있지만 신앙만큼은 주님을 속이지 못하고 심판 때에 잘못이 드러나면 돌이키지 못하고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지금부터 진실 된 신앙, 노릇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선지자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선지자가 아니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있습니다.
목사가 목사를 말하기에 너무 부끄러운 일들이 많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목사는 진정 목사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현대판 거짓 선지자가 되고 있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열매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고 열매를 보면 거짓 선지자 옅었는가?
참 선지자 이었는가를 구별 할 수 있다고 하시었습니다.
오늘날 거짓 선지자가 참 선지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 노릇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팔아서 귀신을 좇아내고 권능을 행하지만 뒤에서 두고 보니
열매가 좋지 않는 것을 흔히 보고 있습니다.
피닉스에 많은 부흥사들이 거쳐 갔습니다. 어떤 때에는 많은 은혜를 끼치고 가시는 분도 있지만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하고 낙망을 시키고 믿음을 떨어뜨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안수를 받기 위하여 나가서 안수를 받으려고 하는데 야~ 내일 그랜드캐년 몇 시에 가냐
하고 물어서 크게 실망시킨 일도 있고, 믿음이 아주 떨어져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날 선지자 노릇 하는 사람 많이 있고 목사 노릇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노릇을 한다는 것은 가짜가 진짜같이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진다는 말씀을 생각하면 노릇 하는 일은 상당히 처참한 형벌에 처할 일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행동을 함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을 요약하여 성경을 총 정리하여 주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크고 첫째 되게 사랑하고 다음에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개요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없으면 없음을 인정하고 구하여 주시면 받아야 할 것이요 없으면서, 아니면서 긴 척하는 선지자 노릇을 하며 불법을 행하는 어리석은 자, 벌 받을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일에 더욱 조심하여 노릇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두드리고 구하고 찾고 하여 얻을 때까지 노력하여야 할 것이요, 없으면서 있는 것 같이 노릇 하는 거짓은 버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노릇 하는 사람들은 두고 보면 열매로 진위가 판별됩니다.
우리는 노릇 하는 선지자도 되지 말고 노릇 하는 선지자를 따르는 자도 되지 말고, 일평생 주여 주여를 부르짖으며
살아도 헛일이 되지 않도록 진실 되게 겉과 속이 동일한 선지자가 되고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바리새인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은 바리새인이 당하는 여섯 가지의 화를 말씀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하며 그들 앞에 정관사처럼 붙여 불렀습니까?
외식이라는 것은 바로 노릇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러한 척하는 일을 하니 노릇을 하는 것이요
화를 당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현대판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 같이 노릇 하는 사람이요 바리새인 같이 화를 당할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은 십일조도 열심히 하였고, 기도도 열심히 하였고 주일도 잘 지키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참으로 열심히 잘하는데 자기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은밀한 봉사는 안하고 자기 체면과 명예만이 나타나는 일에는 열심인 사람이 바로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는 사람들이요 이런 사람은 화를 당할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천국 문이 막히고 있음을 탄식하며 책망하신 것입니다.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까지도 못 들어가게 막고 있으니 화를 크게 당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이, 진실 됨이 없이 노릇을 하였기 때문에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같이 믿음이 없이, 사랑함이 없이, 의로움이 없이 어떠한 일을 하는 노릇 하는 자가 되지 말아서
하나님의 인정받고 사랑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아나니아와 삽비라 노릇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마음에 사단이 가득하였지만 성령 받은 자 노릇을 하다가 베드로에게 지적 당하고 책망 받고 망한 기사가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초대 교회의 열심 있는 성도였고 성령의 음성도 듣고 감화도 받고 다른 성도들과 같이 재산도 팔아서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두 가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마치 양심이 두 가지의 감각으로 선과 악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듯 성령의 음성과 마귀의 음성이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항상 들려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마귀의 음성을 듣고 마귀의 음성을 따르면서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 노릇을 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마귀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는 척하다가, 믿는 자 노릇을 하다가 결국 아나니아 부부는 망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늘 이 시간에도 두 가지의 음성이 들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성령의 음성,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있고 반면에 마귀의 음성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마귀는 항상 당장의 이익을 보여주며 자기를 쫓아서 편하고 좋게 살라는 사탕을 항상 먼저 내어 밀고 있고 하나님은 장차를 위하여 지금 쓰고 고통스럽지만 참고이기라는 말을 들려주십니다.
내가 미국에 이민을 온지 3일만에 McDonald 식당에서 밤에 청소를 하다가 금목걸이를 주었습니다.
돈도 궁한데 이것을 가져가서 네가 수입을 잡으라는 마귀의 음성이 들려오고 네가 이것을 주인을 찾아 돌려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나는 마귀 말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민 와서 고생스럽고 돈도 궁한데 이것을 가지기로하고 주머니에 집어넣고 어서 퇴근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일을 하는데 어찌 그날따라 시간이 안 가는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이 더 심하여 집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몰래 꺼내서 자세히 들여야 보니 가짜 모조품입니다. 나는 그 때에 미제는 모두 좋고 진짜만 있는 줄로 알았는데 가짜이니, 괴니 마귀 말을 듣고 가슴만 두근거리며 손해를 보았다고 후회를 하고 회개를 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주었으니 돌려주라고 매니저에게 말을 하였다면 내가 상당히 정직한 사람으로 보였을 터인데 마귀 말을 듣고 손해를 본 것을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하였습니다.
만일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의 말을 듣고 성령의 시키시는 대로 행하였다면 참으로 초대 교회의 위대한 기독교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두 가지 음성이 들려옵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성령의 말을 듣고 따라 행하는 자 노릇을 하다가 아나니아 부부는 망하였듯 오늘날도 마귀의 말을 듣고 성령의 말을 듣고 따르는 자 노릇을 하다가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음성을 듣고 성령 음성을 들은 것으로 노릇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양심을 속이는 노릇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가롯 유다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1절 - 8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세상에는 마리아와 같이 1년 월급을 몽땅 주님께 쏟아 부어 드리는 사람도 있고 그와 반대로 그것을 훔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헌금을 마리아와 같이 열심히 하나님께 드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롯 유다 같은 헌금 도적이 없도록 잘 지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핑계 삼아 자기의 실익을 채우는 사람, 선교를 빌미삼아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과 단체들이 가롯 유다이듯 오늘날에도 교회에 가롯 유다가 많이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 있을 때에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선교 헌금을 가지고 중국에 옵니다.
이 선교 헌금은 성도들이 먹을 것을 안 먹고 입을 것을 안 입으며 정성으로 복음 전도를 위하여 헌금한 돈임이 분명하고 헌금 할 때마다 목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 헌금이 쓰여지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달라고 분명히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이런 목사들을 보았습니다. 헌금을 아가씨들에게 술값과 팁으로 주고 자기를 수종드는 여자에게
생활비로 주고, 공산당 간부들과 저녁 먹고 술 먹는데 헌금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좋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헌금을 그렇게 쓰고 간 다음에 공산당 그들이 하는 말은 저 사람은 가짜 목사다고 뒤에서 욕하는 것입니다.
어느 뉴욕의 큰 교회 목사가 연변 조선족 자치주 주장을 찾아가서 무엇 하여 주고 무얼 하여 주겠다고 큰 소리를 치니까 남 주장이 다 듣고 있다가 하는 말이 당신이 지금 그런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 돈은 교인들이 헌금한 돈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교인들이 피땀으로 헌금한 돈을 그렇게 당신 마음대로 헤프게 사용할 수 있냐 하고 일침을 놓으니 큰 교회 목사님이 할 말을 잊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산당에게 질책 당하는 중국에 드나드는 목사들의 헌금 사용을 생각하여 볼 때에 선교를 팔아서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챙기는 목사들이 많이 있는 것을 중국 선교 현장에서 본 솔직한 고백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은혜롭던 중국 교회들이 이제는 이러한 사람들의 돈에 물이 들어서 목사가 자기 교회에 들리면
먼저 주머니부터 보게 되고 주머니에서 돈을 많이 털어 낼 사람에게 설교를 시킨다고 고백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목사들은 지금 헌금 사용권을 쥐고 자기의 마음대로 자기의 기분을 따라서 사용하는 것은 기롯 유다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로 가난한 자를 팔아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것과 같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헌금을 도적질하기 위하여 마음에 없는 말을 하여 가난한 자를 팔아 더 많이 도적질하려고 하는 그러함이 있는 사람들은 가롯 유다 노릇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헌금에 대한 가롯 유다가 너무 많습니다.
지금은 죽었지만 나보다 6개월 미국에 늦게 온 목사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는 그 교회에서 한국에 있는 돈 많은 목사를 초청하여 그 교회 담임 목사로 있게 하고 영주권을 받게 하여 주고 사례를 크게 받은 후에 자기는 다시 다른
지역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에서 또 한국에 있는 목사를 초청하여 영주권을 받게 하고 하는 영주권 장사를 하는 김 목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문사를 차리고 큰일을 하는 듯 하였지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이 세상에 더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몇 년 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불러 가서 이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 목사님이 미국에 처음 왔을 때에 너무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제가 김치도 갔다주고 쌀도 갔다주고 하였는데 몇 년이 안가서 수십만 딸라짜리 집을 사고 고급 차를 타고 다니고 신문사를 차리고 약점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흥정을 하고 돈을 뜯어내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25,000 딸라를 헌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가난한 사람을 팔아서 돈을 훔치려는 가롯 유다가 있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돈을 훔치는 일을 하다가 결국 예수님까지 팔아먹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 노릇을 하다가 결국 망한 사람,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특별히 목회자들은 헌금에 대하여서는 눈이 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구제하고 복음 전도하는 일에만 교회의 헌금이 시용 되어야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명예를 위하여 헌금궤를 훔치는 가롯 유다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5. 믿는 자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여름이면 우리 교회에서는 성도들과 함께 Payson 이라는 곳으로 가서 고사리를 많이 따옵니다.
백두산만큼 높은 산이 있는 고원입니다.
고사리가 많아서 낫으로 베어야 할 정도로 한참만 뜯으면 자루로 한 자루씩 따는 고사리 밭이 있는 곳입니다.
고사리를 뜯고 있고 쉬는 사이에 어느 미국인 남자가 돌을 들고 나를 찾아옵니다. 인사를 나누고 어디사냐고 물으니 여기에 별장을 짓고 사는데 집을 짓느라고 땅을 파는데 돌이 많아서 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개껍질이 화석이 된 돌들이 가득하였다 합니다.
그러며 이 돌을 보라 하면서 큰 조개껍질이 붙어 있는 화석입니다.
여기가 아주 오랜 옛날에는 바다 였는데 지금은 백두산 보다 더 높은 산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이 높은 산이 바다 옅었음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가 안 되고 설명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다는 말씀을 우리는 그냥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믿음은 무조건 믿고 아멘으로 먹어야 합니다.
성찬식 때에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라고 말하면 그것이 포도즙이지 어디 피냐고 따지지 말고 아멘 하고 믿음으로 먹으면 그 피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을 따져서 먹거나 믿음을 씹어 먹으니 믿어지지 않고 믿는 자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강두만 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교회에 나온지 1년이 안되었는데 30년 교회에 다닌 사람보다 더 믿음이 좋아졌습니다. 이 사람은 인텔리로써 외정 때에 청진 의과 대학을 나온 의사입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으로 나와서 예수를 믿으면서 믿음을 따져서 믿지 않고 무조건 믿습니다.
저에게 자기는 무조건 믿기로 하였다고 말하면서 목사님이 주일 설교 한번으로는 안 되겠으니 테프롤 달라고 하여
테프를 주면 일주일에 열 개 이상을 들으며 한번이 아니라 거의 외울 때까지 서너 번씩 반복하여 듣습니다.
설교 테프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벽부터 듣고 믿었더니 좋은 믿음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게 되고 기적도 일어나는 믿음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안 믿으면서 믿는 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책을 보니까 교회에 믿는 다고 다니는 사람의 1/5정도만 구원을 얻을 것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행함을 가진 믿음의 소유자만이 찬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4.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때에 탄식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 -21절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와 같이 자기의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는 이제 영생 복락을 세상에서 누리려고 하는 사람을 볼 때에 주님은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나도 나이가 73세입니다. 이제 인생을 살만큼 살면서 돌아보니 나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이 이미 묘지에,
땅 속에 들어가서 썩은 사람이 점점 많아집니다.
나도 이제까지 살아 온 것보다는 훨씬 짧게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살고, 어리석은 자는 현재를 일생으로 알고 살고, 智慧人은 미래를 연구하며 산다는 인생을 살아 온 옛 사람의 경험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장차 내가 들어가서 영원히 살 집을 생각하면서 죽음 이후의 생활을 생각하며 대비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함이 없이 현재를 나의 일생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탄식밖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5. 멸망의 장래를 깨닫지 못 할 때에 주님은 탄식을 하십니다.
누가 복음 19장 41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성전의 웅장함을 자랑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자랑을 들으면서 탄식하시다 못하여 우시었습니다.
주님은 장래의 모든 일을 보시고 아시고 계심으로 사람들은 장래의 일, 내일 일도 모르고 살지만 주님은 영원까지의 일을 아심으로 이 예루살렘 성전이 이제 37년 후에 로마의 디도 대장에 의하여 이 성이 파괴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이 타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을 보시고 탄식하시다 못하여 우신 것입니다.
주님이 보신대로 로마 군인들이 성전에 불을 지르고 성전이 불에 타면서 금이 녹아서 돌 사이에 금물이 흘러 녹아
스며들었기에, 이 금을 캐기 위하여 로마 군인들이 돌을 하나씩 다 허물고 들춰내며 금을 찾아가서 예수님이 보시고 말씀한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조금 장래를 생각하고 볼 줄 아는 사람은 탄식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러다가 어찌 될까 하고 탄식을 합니다.
장래 일을 보는 사람들은 오늘의 행동을 조심하면서 살아갑니다.
장래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에서 못 할 일이 없이 나쁜 일은 모두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영안을 뜨고 영적인 장래 일을 보고 대비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지혜의 눈을 뜨고 세상을 조금 생각하고 세상을 지혜롭게 살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장래를 보지 못하는 멸망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정리:
사람은 자기가 잘 못 하였을 때에 탄식을 하면서 후회를 하지만 주님은 사랑의 탄식을 하십니다.
내가 범죄하고 죄인이 된들 하나님께 무슨 해가 있겠습니까? 마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은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낌으로, 아들보다도 더 사랑하심으로 잘못된 길로 갈 때에 탄식을 하십니다.
1. 믿음이 없을 때에는 탄식하시고 믿음으로 살 때에는 기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자가 당할 불행을 아시고 믿음으로 인하여 좋은 것을 얻고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2. 알면서도 불순종의 길로, 대적하는 길로 갈 때에 패역한 자를 보시고 패역한 자의 말로를 아시는 주님은
탄식을 하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3. 허탄한 길을 갈 때에 탄식하십니다.
구원받지 못할 허탄한 믿음을 가질 때에, 행함 없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때에 탄식하십니다.
4.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자고 할 때에 탄식합니다.
장래를 볼 줄 모르고 영생을 생각지 않는 사람을 탄식합니다.
5. 멸망이 다가 왔는 데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탄식하십니다.
오늘의 현실을 자랑하며 장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탄식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탄식 소리가 귀에 들려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나를 위한 사랑의 극진함을 깨달아 아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탄식을 그쳐지게 하는 법이 있습니다.
1. 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 순종하여야 합니다.
3.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4. 장차를 예비하여 천국 상급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5. 지금 이 때가 나의 삶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탄식을 듣는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나서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눈이 열리어 주님의 나를 사랑하시어 하시는 탄식을 듣고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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