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성령 받은 자와 성령 받지 못한 자의 차이

하나님아들 2013. 8. 6. 23:40

성령 받은 자와 성령 받지 못한 자의 차이



                                                                                                 Sep.12, 1989 Prescott 금식 기도 중에 준비한 말씀

   사도행전 19장 1절 - 7절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신앙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세 단계로도, 네 단계로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시간에는 두 단계의 신앙에 대하여 상고하겠습니다.

신앙은 말씀을 깨닫는 단계가 있고, 이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는 단계가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단계와 말씀을 실현하는 능력의 단계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세례에도 물세례가 있고 성령 세례가 있습니다. 교회도 아볼로파 교회가 있고 바울파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보는 사람이 있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3장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신앙인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고 그후에 상급 받는 것이 덤으로 가진 목표

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나는 두 단계의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예수를 믿는 순간에 이미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인용하여 누구든지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면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천년 이상 보수 신앙 자들과 오순절 계통의 신학자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보수 장로교 계통에서는 방언을 말하는 것을 날라리 파라고 조롱하면서 반대 하지만 반대로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는 방언을 말을 안하면 성령 받은 증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필자는 선친 때부터 보수적인 장로교 신앙으로 자라 왔고 장로 안수나 목사 안수도 모두 보수적인 장로교에서 받았습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에 기도를 하며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성령의 은사를 받아 병도 고치고 방언도 말하고 통역도 하였습니다.

필자가 양쪽을 모두 겪어 보면서 받고 보니 성령을 받으면 성령을 받은 증거가 열매로 반드시 나타납니다.

물세례도 받고 성령 세례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상책입니다.

성령을 받았나 아니 받았나 하는 증거는 갈라디아 5장 22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인위적으로 억지로는 절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방언을 말하니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위험한 사람입니다.

내가 방언을 못하니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더 위험한 사람입니다.

성령 받았나 아니 받았나의 기준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 복음 7장 16절 -19절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우리가 맺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열매는 믿음에 의하여 행함이 나타나는 것을 열매라고 말합니다.


1. 사랑의 열매

하나님을 크고 첫째 되게 사랑하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크고 첫째 되게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내게는 미운 사람, 기분 나쁜 사람, 재수 없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요한 1서 4장 7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의 영이시고 하나님의 영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받은 자는 사랑의 영을 받은 자임으로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순서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 2. 부모. 3. 배우자. 4. 자녀. 5. 형제, 친척. 6. 성도. 7. 불신자. 8. 원수. 9. 물질.

원수를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 안하면 안되고 자식을 사랑하기 위하여 부모를 사랑 안하여도 안되고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친척을 사랑 아니하여도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사랑의 순서가 뒤바뀔 때에 생기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크고 첫째 되게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희락의 열매

희락은 기쁨과 즐거움이 오래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신경질을 잘 내고 소리를 버럭 버럭 지르고 욕을 잘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희락의 열매가 없는 사람으로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령은 받은 사람은 나도 알 수 없는 기쁨이 항상 솟구쳐서 기쁨이 지속되고 긍정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세상의 기쁨은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지속이 되는 기쁨은 없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면 이발을 하고, 일 주일을 기쁘게 살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을 기쁘게 살려면 말을 사고,

일년을 기쁘게 살려면 집을 사고, 일생을 기쁘게 살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3. 화평의 열매

성령 받으면 마음이 평화스럽습니다. 사도 바울같이 매를 맞아도, 감옥에 갇혀도 화평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불안, 초조, 신경질은 마귀의 영을 받은 자가 나타내는 열매입니다. 이번 금식 기도에 이 평화를 경험하였습니다. 2일째 되는 밤에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니 아무런 생각이 없이 참 평안합니다.

걱정을 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거리를 억지로 생각하여 내고, 걱정을 일부러 하여 보려고 노력을 하여도 아무런 걱정이 생기지 않는 참 평안을 경험하였습니다.

인생 세상살이에 어찌 근심 걱정이 없으리오만, 산과 같은 문제와 걱정이 있어도 마음의 평화가 깃들여져 사랑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니 화평, 평화가 깃들여지며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면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리 걱정거리를 찾고 생각하려도 생각이 나지 않는 평강과 희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4. 오래 참음의 열매

오래 참을 수 있는 능력을 성령께서 주셔서 조급함이 없어집니다.

안되면 예수님의 책임이요, 죽으면 천당이니 무슨 걱정 조급함이 있겠습니까?

오래 참는 마음은 성령이 역사하여 내가 오래 참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5. 자비의 열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행동이 따릅니다.

나 보다 못한 사람을 못한 사람을 사랑으로 도와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나보다 잘 살고 나보다 지위가 좋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아첨이요 뇌물입니다.


6. 양선의 열매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의롭게 살기를 노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양선

입니다.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채찍으로 사람을 때리고 상을 뒤엎으시며 소란을 피운 것은 양선에 속한 일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은 양선입니다.

하나님이 선이시기 때문에 선을 위한 일은 세상의 모든 도덕과 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비느하스가 간음을 행하는 남녀를 한꺼번에 창으로 꿰어 찔러 죽이는 끔찍한 살인을 저질은 잔인한 방법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양선으로 여기시고, 칭찬하시며, 비느하스에게 영원한 제사장의 언약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전염병의 질병을 그치게 하신 것입니다.


7. 충성의 열매.

주의 일을 앞장서서 남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8. 온유의 열매

  성령을 받으면 성격이 변화되어 옛날 못된 성질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불같은 성질이 없어지고 삶아 논 시금치 같이, 파김치같이 뻣뻣함이 다 죽는 것입니다.

불같은 못된 성질이 다 없어지고 다시 새롭게 변화되는 점액질 성질로 바뀌는 것입니다.

 

9. 절제의 열매

성령 받으면 자기하고 싶은 일을 안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뜻에 나를 조절하면서 살게 됩니다.    자기를 절제함이 없는 사람은 성령이 없는 자로 성령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시어 절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상의 아홉 가지의 열매가 내게 나타나면 이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열매는 한 개만 열리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주렁주렁 열리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성령의 열매가 함께 동시에 열리는 것이고 성령의 은사는 동시에 함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필요에 따라서 성령께서 주시는 것임으로 은사와 열매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성령을 받고 하룻새에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술 담배를 몇십 년을 즐기던 사람이 하룻새에 금연, 절주를 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러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달리고 익는 열매는 없습니다.

꽃이 피고, 교배가 되고 한 후에 점점 아름다운 열매로 익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적은 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러함이 있게 되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으로 자라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게 키워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열매가 없는 사람은 찍혀서 불에 던져 진다는 말씀과 같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베드로, 요한 사도 바울이 좋은 예로 나타납니다.

 

가. 베드로의 경우

성령 받기 전의 베드로는

1. 오래 참지 못하였습니다. 온유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무리들에게 칼을 빼어 들고 불같은 성격을 못 이겨 대항을 하다가 말고의 귀를 베어 버렸습니다.  주님은 이 베드로를 책망하시었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본 베드로는 며칠을 참지 못하여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디베랴 바다로 옛날 직업을 찾아갔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어느덧 고기 낚는 어부가 된 것입니다.

 

2. 충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를 죽는 데까지 따라가고 감옥에도 같이 가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조그마한 계집종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 부인하면서 저주까지 한 것을 보니 베드로는 마음 속 깊이 생각하고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상황에 따라서 기분적으로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호언 장담하고 행함이 따르지 못하는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는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3. 자비롭지 못하였습니다.

어린아이나 불쌍한 병자나 소경이나 귀신 들린 자가 예수께 올 때에 저리가 라고 물리치면서 큰 소리를 지르다가 여러 차례 주님께로 책망 받은 일이 성경에 있으니 자비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후의 베드로

1. 자비로와 졌습니다.

사도 행전 3장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미문 앞의 거렁뱅이를 옛날에는 수없이 많아 보고 지나 다녔어도 별 동정심이 없었지만 성령 받은 후의 베드로는 자비로워져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곡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는 말을 하며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너무 자비로워져서 기도 할 시간까지, 말씀을 가르칠 시간까지 남을 돕고 구제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곱 집사를 세우고 구제하는 일을 전담하게 한 것입니다.

 

2. 베드로는 양선 하였습니다.

과거 베드로는 가롯 유다가 돈궤를 맡고 돈궤에서 돈을 빼어 가는 것을 보고도 못 본체하며 눈을 감아 주는 일을 하였지만 성령 받은 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하나님을 곳이고 거짓말하며 재산 얼마를 감추고

하나님께 헌금하며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없어서 사도 행전 5장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느냐”하면서 책망할 때에 그들의 영혼이 떠나 버렸습니다.

불의를 감싸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Goodness가 아니라 밝히고 도려내고 바로 잡는 것이 감싸주는 것입니다. 이러함이 훨씬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일입니다.

 

3. 베드로는 오래 참으며 온유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행전 11장 2절 -17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베드로는 책망하는 말을 듣고 성내지 않고 온유하게 차근차근히 설명하여 저들을 이해시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노회나 총회나 어떤 교회의 회의에도 차근차근히 이해를 시키는 일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성내는 일을 먼저 하는 성령 받기 전의 베드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자기의 후배의 책망을 묵묵히 들으면서 순종하고 고친 베드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도 실수는 합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온유와 인내로 받아들이고 잘못을 고치고 회개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4. 베드로는 주를 위하여 충성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를 위하여 충성을 하다가 결국 십자가를 거꾸로 달려서 십자가에서 죽는 죽음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의 겁쟁이 가 아니고 하나님을, 주를 위해 충성 하다가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 행전 5장 29절 -31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나. 사도 요한의 경우

사도 요한은 마가 복음 3장 17절에 보면 요한이 어찌 성질이 거칠고 불같은지 보아너게라른 별명이 붙었습니다. 즉 우레 의 아들이라는 못된 성품이, 벼락치듯 하는 성품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모두 뱃놈입니다. 뱃사람들은 성격이 고약한 것은 누구 나가 다 잘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 촌락에 쉬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일행을 대접하지 않고 박대를 하니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이때에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우뢰의 아들인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쫓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벼락을 내려서 저 동네를 멸망시킬 터이니 주님 조금만 눈감아 달라는 말을 한 것을 볼 때에 성격이 불같이 못된 사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성품을 꾸짖고 다른 동네로 갔습니다.

사랑이라는 성품이 하나도 없던 요한이 성령을 받고 보니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사랑의 은혜를 깨닫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니 어떤 사도보다 사랑을 강조하는 사도로 요한 복음과 요한 1,2,3서와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며 사랑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하고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레 와 같이 불같은 성격, 사랑을 모르던 사도가 성령을 받은 후에 사랑의 사도로 변한 것입니다.

 

다. 사도 바울의 경우

사도 행전 26장 10절 -12절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 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사도 바울의 자신의 고백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 이러한 일을 하던 포악하고 희락과 자비나 절제가 없던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강제로 잡아다가 회당에서 때리며 위협하여 예수를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는 마귀에게 충성하는 사람이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아나니아로부터 성령을 받은 후에는 예수를 위하여 수고를 넘치도록 하는 고난을 받으며 순교의 길을 간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4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성령 받기 전의 사울이 성령 받은 후에는 바울이 되어 주님께 죽도록 충성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라. 김익두 목사의 경우

김익두 목사는 1874년 11월 3일에 부유한 가정의 외아들로 출생을 하였습니다. 일찍부터 엄격한 부친의 교육을 받으면서 16세 때에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갔으니 낙방하였습니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 모친의 권유로 상업을 시작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조숙한 그는 18세 때에 결혼을 한 후에 주색에 빠져서 기생집에 다니는 불량자가 되었습니다.

맴씨 내고 술 잘 먹고 싸움 잘 하고 얼마나 망나니짓을 잘하였던지 장날이면 장꾼들이 성황당 고개 넘으면서

오늘 장에 가서 김 익두 안 만나게 하여 달라고 빌고 갔다고 합니다.

서양 선교사 소안론 선교사로 인하여 예수를 믿고 27세 때에 1900년에 자기가 죄인 인줄을 알고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고 방문을 잠그고 3일 동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익두가 죽었다고 부고를 돌리고 장례식에 김 익두 죽음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모인 앞에서 김 두는 죽고 새 사람 김 익두가 살았다고 알리면서 술친구, 사귀던 기생들에게 전도하며 기도 생활을 하다가 1907년 평양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 졸업하고 목사가 된 후에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신유의 능력의 종이 되어 집회하며 상투쟁이들의 상투를 자르게 하며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심한 고문을 당한 후에 목사직을 강제로 박탈당하고, 평신도로 황해도 고향으로 쫓겨갔습니다.

해방되고 6:25가 일어나고 그해 1950년 10월 14일 토요일 국군이 북진하여 선천 지방까지 들어갔을 때에

김익두 목사는 너무 기뻐서 교회의 종을 치고 새벽 기도회를 50여명의 교인들과 함께 드릴 때에 후퇴하던 인민군이 따발총으로 김익두 목사와 교인 5명을 강대 앞에 세워 놓고 사살하고 도망갔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따발총탄 2 개를 맞고 피에 젖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성령 받기 전의 김 익두 목사는 망나니 옅지만 성령 받은 후의 김 익두는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서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정리: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변화는 절대로 내 스스로의 각오로 오지 않습니다. 내 의지로도 내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作心三日이 될 뿐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음행과 더러움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죄 짓는 것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투기와 작당과 술 취함과 방탕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닮고 예수 같이 살고 예수를 쫓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를 날마다 키우면서 달라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없이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절대로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믿고 순종하며 회개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 기도하고 구할 때에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이 내일이 더 달라지고 좋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아름답게 열매를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리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매일 매일을 충만한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변화된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할렐루야 !



출처 : 은혜(恩惠) Supersize Grace
글쓴이 : jinsook55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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