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삶을 살라. 전5:1-7
전도서는 4편의 설교집으로 구성되었는데 오늘 본문 전5:1-7절 말씀은 그중 제2 설교집 중에서 제 1교훈부로써 해 아래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로서 하나님을 경외를 실천하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예배에 잘 참석하고 많은 헌금을 바치는 것이라는 형식적인 면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진정한 하나님 경외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하나님을 진실함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의 두 축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 앞에 그 삶과 행실을 삼가고 정결하게 하라.(1)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는 말씀은 앞 단락 전4:1-16에서 제시된 위로자와 평안과 사랑이 없는데서 오는 해 아래 인생의 허무와 지혜와 영광과 권력이 영원하지 못한 데서 오는 해 아래 인생의 허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호와 경외의 진실한 실천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네 발을 삼갈지어다’ 라는 말은 사람의 발은 그 사람을 바르게 가게 하기도 하고 그릇가게도 하기 때문에 네 행동을 신중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서 나아가면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을 온전히 인식할 것과 부주의하고 망령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예배의 자리 자체가 거룩하며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기에 예배자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깨끗하게 한 이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예배드리면서 그 이전에 갖춰야 할 바른 자세를 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제사 드리려 오는 자들이 부정한 일, 사악한 일, 거짓된 행한 그 발을 가지고 성전에 나아가 예배하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범죄를 동시에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가지고 쉬지 않고 성전에 드나들면서도 여전히 더러운 죄를 범하면서 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말합니다.뿐만 아니라 사1:15에서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이라” 하신 것은 그들의 손에 피 즉 죄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요청하신 하나님이 요구는 스스로 씻으며 깨끗이 하며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버리라는 것입니다.사1:16)
이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제정된 예배에 참여하는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서 오히려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고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셨음을 선포 하셨습니다. (출6장)
만물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 천국 문을 열고 천국을 이 땅으로 불러내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셨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막9장)
정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내 내면에 자리한 죄된 생각을 버리고 죄된 습관을 근절하고 나아오고 계시는지요?
참으로 이 땅에 이 전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거룩하신 그분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아와 예배하시는지요?
과연 나의 생각과 삶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온전하고 아름답게 구별된 것인지요?
안타깝게도 내가 드리는 예배가 무성의하고 부주의하고 부정한 예배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그와 같은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제거해야 될 줄 믿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 송아지로 속죄제물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물로 몸을 씻고, 거룩한 세마포로 속옷과 고의를 입고 띠를 메고 관을 쓰고 두렵고 떨림으로 예배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배하며 감사와 주일 헌금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고 그럴수록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성도는 성도의 기본권을 제한한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형식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히 받으며 순종하며 신중하고 조심하여 발을 삼가는 태도로 예배에 참석해야 될 줄 믿습니다.
참된 경건과 경건의 자세로 감사하며 예배하는 복된 성도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둘째로 하나님과 자신을 분변하라.(2-3)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면서도 이 온 세상에 오직 나 한사람만 있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는 것 내 머리카락까지도 세시며 보살피시면서 나의 호흡을 관장하고 심장박동까지 다스리고 계신 줄 믿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급하게 말을 내어도 안되고 많은 말을 해서도 안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이 땅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결코 뛰어 넘을 수 없는 절대적 간극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란 서로 간에 알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취하는 의사 소통수단입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구술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석이라는 말이 있지요
아무리 좋은 생각 호의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서로가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릴 수 없지요.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성공의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원만한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하나되고 좋은 감정과 지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면서도 말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요즘 [네 목소리가 들려]라는 연속극이 시청율 1위를 차지하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눈을 보면 다 알고 들린다는 설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선하게 활용하여 바른 판결을 하게 된다는 내용인듯 한데 이는 억지 설정이지 실재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원하는 바를 정확히 분변하고 그분의 뜻에 부합된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 응답받는 기도, 온전한 기도, 합당한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뜻 고집을 주장하고 이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생각, 우리의 지혜, 우리의 계획을 내세우기 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할 것이며,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자로 살아가야 될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인성을 지니신 완전한 사람이시기에 십자가란 고난을 지시기 전에 심각하게 고뇌하며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합니다.
고통이 너무 크고 감당할 없을 만큼 두려운 것이기에 고난없이 고통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고하시면서 거기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기에 그것을 이제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것이며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함부로 말을 뱉을 수 없는 것입니다.
3절에서 일이 많으면 기도할 때 허망한 기도를 하게되고 또 말을 많이하는 경솔한 기도를 하게되면 어리석은 말이 많아진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먼저 우리의 생각과 고집, 욕심을 내놓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떼쓰기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변하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깨닫고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기도를 올릴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 하나님과 기쁨으로 교제하는 바른 기도의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하듯 경박하고 경솔하며 아무렇게나 천박하게 말하고 대우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마음과 정성을 바치는 아름다운 기도를 드릴 때 보배로운 향기와 같은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복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셋째로 말 한마디가 인간의 운명을 바꾸게 될 줄 알라 (4-7)
하나님께 서원하였다면 갚기를 더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서원하다는 말( תדר נדר)팃도르 네데르는 서원하다 맹세하다는( נדר)나다르에서 유래하여 맹세하여 서원하다, 서원하고 맹세하다는 뜻입니다.
서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한 기도의 한 형태이며 감사에 대한 자발적 표현이자 충성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즉 이는 하나님께 사물이나 사람을 자발적으로 봉헌하겠다는 약속(창28:20)이나 나신인의 경우처럼 어떤 일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서원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 아니지만(신23:23)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것이 더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원은 자발적인 것이지만 그 이행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며 서원을 더디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한 것입니다.
대게 서원은 위기에 봉착할 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에서 벗어나게되면 은혜를 망각하고 해이해져 서원의 이행을 지체할 수 있는데 그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서원이 지체는 대부분 스스로의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서원이 지체되면 야곱처럼 딸 디나 사건으로 세겜 주민들을 살상하고 가나안 모든 족속의 공공의 적이되어 몰살의 위기에서야 벧엘의 서원을 생각하고 그곳에 올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드릴 때 일관된 성실함과 정직함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서원은 조심스럽게 하고 이행은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5절 말씀처럼 서원은 하나님과 거래가 아닌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원하여 서원하시는 것과 약속하시는 자원하는 마음을 기뻐하시기에 우리가 서원뿐 아니라 감사도 헌금도 자원하여 드려야 합니다.
한 권사님이 대둔산 구름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곧 떨어질 것 같으니 기도합니다. 하나님 무사히 건너게 하시면 천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2/3쯤 건너가지 바람이 자자졌지요. 그러자 조금 전 서원한 것이 아까워서 하나님 급해서 그랬는데 100만원이면 안될까요?라고 생각하자마자 더 큰 바람이 불어 곧 떨어질 처지가 되었지요. 하나님 농담도 못합니다 천만원 아니 이천만원 하겠습니다.하더래요. 비슷한 유머가 많이 있지용.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경박하게 서원하는 것과 상황이 바뀌었을 때 그 약속을 헌신짝 처럼 져버리는 인간의 사악함을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무엇 무엇을 해주신다면 이것을 하겠나이다 식의 계약적인 서원을 하나님께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서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해서 하는 것도 복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귀해서 거기에 억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자기 몸을 드리겠다 물질을 드리겠다고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야망을 성취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듯 서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면서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조정하려는 미신적 행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서원은 무엇인가를 계약하고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에 기초해야 합니다
6절 말씀은 입을 생각없이 함부로 놀리는 것은 삶 전체가 죄로 치우치게 되는 위험한 일이므로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말한마디의 위력은 인간의 운명조차 바꾸는 것입니다.
잘 나가던 정치인이나 인기 연예인들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추락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말한마디로 천냥빚을 갚지만 말한마디로 죽기도 합니다.
말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의사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써 태어나 자라면서 엄마라는 말부터 죽는 순간 잘 살아라는 말까지 끊임없이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말 정직한 말 고운 말 부드러운 말 격려하는말 위로하는 말보다 거칠고 투박하며 흉보고 모함하며 상처주고 찌르는 말을 많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로몬도 본문을 통해 말이 인생에 미치는 엄청난 악영향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말하고 조심스럽고 부드럽고 정중하게 말하라 합니다.
인생성공을 위해 성급하게 달려가기 전에 말을 거룩하고 구별되며 세련된 말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 지체 하나를 거룩하게 훈련하되 특별히 입의 말을 가장 우선적으로 집중해서 훈련함으로 올바른 말 정직한 말 고운 말하기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 앞에 그 삶과 행실을 삼가고 정결하게 하라.(1)
둘째로 하나님과 자신을 분변하라.(2-3)
셋째로 말 한마디가 인간의 운명을 바꾸게 될 줄 알라 (4-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정해진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향해 우리 진심과 정성을 다해 찬양을 올리고 그분의 말씀을 갈망하고 그 말씀에 기초해 살아가는 성도다운 진실이 담긴 성도의 일상 즉 삶이 예배가 된 성도의 아름답고 구별된 삶인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나약함과 죄 많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베푸신 구원의 은혜, 용서의 은혜를 인해 감격하고 감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날들이 되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재림 징조 (0) | 2013.08.06 |
|---|---|
| [스크랩] 복 있는 사람(시편 1:1-6) (0) | 2013.08.06 |
| [스크랩] {7/28,주일설교}*거룩하신 하나님 공의의 심판/살후 1:5-9* (0) | 2013.08.02 |
| [스크랩] 하나님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호1:1-11) (0) | 2013.08.02 |
| [스크랩]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후`를 기억하라! (히 9:27-28) (0) | 2013.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