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복 있는 사람(시편 1:1-6)

하나님아들 2013. 8. 6. 22:01

 

 

  1.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말씀은 시편입니다. 시편이란 무엇인가? 시편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등장과 함께 발전해서 다윗 시기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편을 통하여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어떤 분으로 알고 믿었는지를 증거하였으며, 또한 그러한 신앙 안에서 이스라엘의 신실한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들의 삶의 모든 측면들을 표현하였습니다. 따라서 시편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 전체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보살피셨는지 다양한 시각을 나타내 줄 뿐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의 신실한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으신 언약적 신앙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하며 살았는지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시편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믿는 자의 삶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앎이 삶을 통하여 신앙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편을 통하여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어떤 분으로 알고 믿었으며, 또한 삶 속에서 그 하나님을 어떤 방식으로 섬기고 살았는지를 살펴봄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말씀은 시편 1편입니다. 시편 1편에는 두 종류의 인생을 증거합니다. 하나는 복 있는 사람으로 알려진 의인의 삶이며, 다른 하나는 복 있는 사람과 정반대가 되는 악인의 삶입니다. 또한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대상이 되며 악인의 그렇지 못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은 두 종류의 인생으로 나눌 수 있으며, 중간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A. 먼저 우리가 살펴볼 것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1절에서 복 있는 자를 히브리어 방식으로 직역하면 복들이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러나 6절에는 복 있는 사람을 의인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은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복 있는 사람이며 누가 의인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 1절을 눈여겨보면 성경이 복 있는 사람라고 할 때 히브리 성경에는 사람앞에 관사가 붙어서 그 사람이라고 한정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곧 보편적으로 인류의 모든 사람을 가리켜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복 있는 그 사람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누구나 다 복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작 복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복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본문 6절에서 의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기자가 1절에서 복 있는 사람그 사람이라고 증거함으로서 복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 중에 일부가 될 것이라고 한정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문 6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의인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를 많은 사람을 뜻하는 을 복수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기자가 본문 6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인에 해당하는 말을 올바로 번역하면 의인들입니다. 이는 곧 한편으로 복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 명이 아니라 많을 것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성경이 복 있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복을 받는 것은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과 서로 연관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의롭다’(, 차디킴)는 말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입각한 행실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것은 원래부터 가진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로부터 2차적으로 얻어지는 법정 또한 법률적 용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의롭다는 용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행실로 인하여 선언을 받는 법적 칭호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의인이란 하나님과 맺으신 언약의 관계와 조화를 이루는 행실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법적으로 의롭다고 인정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B.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복은 본문 1절에 따르면 한 가지 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복 있는 그 사람은 사실상 여러 가지 복들로 둘러싸여 있는 그 사람인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복들로 둘러싸여 있는 그 사람은 의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해서 복들이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들이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에 나타나 있는 이 라는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복들’(, 아세레이)로 해석되는 히브리어는 아솨르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인데, ‘아솨르라는 말은 곧장 가다. 전진하다. 인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이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 행동과 연관되어 있고 또한 어떤 대상으로부터 인도함을 받은 그 결과물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 2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 행동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 복이라고 증거합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변함없는 태도를 나타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맺으신 언약의 관계와 조화를 이루는 선한 행실을 나타내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은 복이란 하늘에 속한 것이며, 그러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심으로서만 얻어지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속에서 언약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행실을 행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복들이 의인들을 둘러싸게 하시는 것입니다.

C. 이렇게 복 있는 사람 곧 의인을 아무에게나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과 맺으신 언약 관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선한 행실을 나타내는 사람을 향하여 의인이라 혹은 복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 복들로 둘러싸여 있는 반면에, 악인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떠난 사람들이며,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 관계에 근거한 선한 행실이 전혀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을만한 어떤 복도 없습니다. 성경은 악인에 대하여 오직 심판과 백성 중에서 끊어짐만 있다고 증거합니다.

 

3. 그러면 의인과 악인은 무엇으로 구별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누가 복 있는 의인이며 누가 악인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태도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A. 첫째로 성경은 복 있는 자가 하나님께 마땅히 나타내야 할 태도는 악인의 길을 좇지 않는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 1절에는 복 있는 자 곧 의인이 행하지 말아야 할 길로서 세 가지를 증거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것입니다.

그러면 악인의 꾐은 무엇인가? 여기서 악인은 삶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자들을 가리키는데, 악인의 꾐이 무엇인지는 잠1장을 참고하면 좋을 것입니다. 잠언 1:10절 이하에 따르면 악한 자의 꾐에 대하여 증거하기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 함께 악한 제물을 나누자하였다고 증거합니다. 한 마디로 악한 자의 꾐이란 곧 의인을 향하여 불의한 길로 함께 가자고 선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악인이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1:1, 1:10)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잠언 1:15-19절에 따르면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고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르나, 그들이 가만히 엎드리는 그 결과는 오히려 자기의 피를 흘리며,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인의 길은 무엇인가? 여기서 죄인은 삶의 목표나 방법이 잘못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에 잠언 23:16,17절에 따르면 죄인의 길은 정직이 없는 삶으로 규정합니다. 예를 들면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면 오만한 자의 자리는 무엇인가? 여기서 오만한 자는 원래 비웃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모독하고 훼방하며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비웃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만한 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사탄입니다. 성경은 모름지기 복 있는 자 곧 의인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훼방하고 조롱하는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탄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B. 둘째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복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마땅히 나타내야 할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 2절에는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증거합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들로 둘러싸여 있는 의인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즐거워하다는 것은 한 마디로 복 있는 자들의 마음이 온통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쏠려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복 있는 자들이 마땅히 나타내야 할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렇게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이해하고 깨닫기를 힘쓰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으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 말씀에 실천하고자 하는 열정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성도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나타내야 할 삶의 태도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혹 어떤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오해하여 실천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열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장 바른 태도는 곧 그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깨달음으로서만 나타는 결실인 것입니다.

 

4. 의인과 악인의 삶의 결과들

A. 성경은 의인의 삶의 결과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본문 3절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였고, 본문 6절에는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고 증거합니다.

이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삶의 결과는 생명으로 묘사됩니다. 곧 나무가 생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요소는 물입니다. 그와 같이 본문에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나무가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물가에 심겨진 나무를 의미합니다. 본문에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번성하고 무한히 뻗어나가며 사시사철 푸르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을 의인의 삶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복 있는 사람, 곧 죄를 멀리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함으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의인의 삶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시며, 구원주가 되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부요함이 항상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사계절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의 삶에도 항상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생명의 부요함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의인의 삶을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의 삶에 대하여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증거한 것을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이 없이 오직 행복만을 약속하신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첫째, 아담 안에서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으며, 이제는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아무런 죄를 짓지 않고 살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여전히 현실 속에 죄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둘째는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는 말씀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을 고난 없이 오직 행복만을 약속하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구원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여전히 삶 속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이 말씀에서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는 말씀은 비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의 삶이 아직도 여전히 세상 속에서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고난과 역경으로 인하여 실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심으로 궁극적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1편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들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

B.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을 인정하심으로 삶을 형통하게 하신다는 사실과 반대하여 악인에게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예를 들면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바람에 나는 겨는 악인의 무가치하고 불안정한 삶의 결과를 의미합니다.

악인의 삶이 무가치고 불안정한 이유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인에게는 심판주로 오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는 항상 구원과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의인의 삶을 인정하고 복을 주심으로 형통하게 하신 것과 반대로 악인의 삶에는 심판으로 그들을 멸망하실 것을 증거합니다. 악인이 이러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였으며, 하나님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악한 자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의인들을 최종 구원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죄인들의 회중에서 건지실 때에, 죄악으로 인하여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 악인들을 심판하여 철저하게 멸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의 결과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 때문에 성경은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23:17,18)고 하셨습니다.

5. 그리스도 안에서 권고

A. 그러면 오늘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시편 1편에서 증거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 곧 의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시편들이 전형적으로 의인이라는 용어는 인간의 노력으로나 경험으로 이룰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적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없이 우리에게 직접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편 1편에서 증거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 의인은 인간의 노력으로나 어떤 공로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인이라는 칭호는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인간의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상 복 있는 자 곧 의인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없이는 단지 이상일 뿐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자신을 복 있는 사람이며 의인이라고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이 로마서 3:10-12절에서 증거한 바대로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B.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지신 완전한 의인이 계시니 곧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증거합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3,4절에는 증거하기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1:7) 고 증거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3:23,24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들은 시편 1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들로 둘러싸여 있는 의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C.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들은 복 있는 사람이므로 이제 성도들은 복 있는 사람으로서 합당한 삶의 태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곧 복 있는 사람들이 악한 자의 길을 쫓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태도를 나타내야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룩한 피로 깨끗함을 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열정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복음을 믿어야 하고 또한 복음을 따라 순종하며 성령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로마서 10:17절에서 증거하기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증거합니다. 심지어 요한복음 14:26절에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구원을 얻는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성령으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출처 : 위재주의 복음 이야기
글쓴이 : 복음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