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1-13(교회가 필요한 일군)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3:1-13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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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태복목사
오늘은 1차 중직선거로 장로 세 분, 안수집사 다섯 분, 권사 여덟 분을 선출합니다. 그러면 과연 어느 분을 선출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인물이며, 교회가 필요한 일군을 선출해야 합니다. 어느 분은 중직을 무슨 높은 자리로 알아서 어치든지 그 자리에 앉으려고 선거운동을 합니다. 어느 분은 자기 남편이나 자녀를 노골적으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코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써주소서"라고 자기를 내세우는 자를 교만한 자로 알아서 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나는 부족하여서 못 합니다."라고 겸손할 때에 강권적으로 쓰기를 기뻐하십니다.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많은 학문을 배우고 무술이나 전술을 단련하므로 지도자 훈련을 철저히 받은 자였습니다. 한번 우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의 신분으로 노역하는 현장을 갔다가 애굽 사람이 자기의 동포를 잔인하게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애굽사람을 처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이제는 자기가 학수고대 기다리던 민족의 지도자로 나서게 된 날이었습니다. 모세는 이튿날도 그 현장에 나가보니 이스라엘 백성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화가 나서 꾸짖기를 "너희가 하나로 단결되어도 독립이 될까 말까 하는 판에 어찌하여 동포끼리 싸우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충고하면 그 백성들이 쩔쩔매면서 자기에게 순종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싸우던 자 중의 하나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제 살인 사건을 노골적으로 폭로합니다.
모세는 기절초풍하여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완전히 깨어지고 녹아져서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나는 못 합니다."라고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큰 능력을 주시면서 모세를 강권적으로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가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는 망신만 주시더니 "못 하겠습니다."라고 극구 사양할 때는 강권적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우시는 일군, 교회가 필요한 일군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오늘본문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감독의 자격이 나옵니다. 감독이란 장로직을 말합니다.
장로는 두 가지 직분으로 나누이는데, 설교와 치리를 담당하는 장로로 오늘 날에는 목사직을 말하고, 또 하나의 직분은 치리만 하는 장로가 있는데, 오늘날 일반적인 장로직을 말합니다. 8-13절까지는 안수집사와 권사의 자격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장로, 안수집사, 권사의 자격을 함께 묶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군의 성품은 어떠해야 합니까?
세 가지 성품을 갖추어야 합니다.
(1)선한 일을 사모하는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1절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중심이 언제나 선한 뜻, 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자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 악한 생각,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보더라도 선하게 못 보고 비뚠 시각으로 봅니다. 그래서 오해를 잘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일군이 되면 교회나 목회자의 가시노릇 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군이 되려면 선한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성품을 가지려면 9절 말씀대로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과 만난 체험을 가진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
(2)관용하는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3절에 "관용하며"라는 말이 나오는데 너그러운 성품을 말합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가정을 다스리려고 해도 관용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키우려고 해도 얼마나 참고 덮어주어야 합니까? 어느 때는 밤이 맞도록 빽빽 웁니다. 똥오줌을 가지리 못합니다.
조금 크니까, 밖에 나가서 싸움질을 하지 않나, 장독을 깨지 않나, 심지어 어느 때는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합니다. 속이 터집니다. 당장 내쫓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참고 견디며 그 허물과 실수를 덮어주며 관용할 때 그런 속으로 점점 자라 가는 것입니다. 교회도 가정과 같습니다. 교회는 온갖 사람들이 모이었기에 허물과 실수가 많은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 중직이라는 분이 누가 실수하면 용서해 주지 않고 책벌하기에 만 능하다면, 하나님의 가정인 그 교회는 남아날 사람도 없고 아무 인재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용이 있는 중직이 많은 교회는 첫째도 은혜로움, 둘째도 은혜로움, 셋째도 은혜로움으로 하나님의 가정을 다스리면서 온갖 허물과 실수를 덮어줄 때, 어린 아기 같은 신앙들이 자라서 장성하므로 많은 인재가 배출될 것입니다.
(3)절제하며 근신하는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계속 강조되는 것은 절제와 근신입니다. 절제란 헬라어로 '네파리온'인데 그 뜻은 나쁜 감정과 나쁜 행동을 억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근신이란 정신을 차리는 자세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를 이기고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성품을 말합니다.
3절 "구타하지 않으며 다투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어느 지도자는 자기를 못 이기어 남과 다투기를 잘합니다. 쩍하면 주먹질을 잘 하여 남을 때리거나 자기 부인을 때리어 눈 주변을 시퍼렇게 만들어 놓습니다.
주먹질이 나온 김에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언제도 말씀 드린적이 있지만, 1993년도 페리호 참사로 280명이 참변을 당했는데 정부의 어느 고위관리도 여름 휴가 때 직원들과 약속을 하고 바다낚시를 떠나는데 그 부인은 아주 독실한 신자랍니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올 예정 날이 주일입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교회를 빠지고 어디 가느냐?"고 계속 따집니다. 그러나 남편은 남자끼리의 약속을 어길 수 없어 그 말을 무시하고 떠납니다.
그럼에도 그 부인은 '굳세어라 금순아'식으로 버스 터미널까지 따라와서 따집니다. 남자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신나게 떠나는데 터미널까지 따라와서 망신을 주니, 다른 직원들이 '제 마누라 하나 못 휘어잡고 저 꼴을 당하다니' 라고 비웃는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체면을 아주 끔찍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너무나 화가 난 김에 생전 처음 주먹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인의 얼굴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화가 나서 때렸으나 남편은 너무나 미안해서 부인을 달래노라고 떠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다른 직원들은 페리호 참사와 함께 목숨을 잃었는데 남편은 극적으로 살게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때는 한 대 때린 것도 큰복이 되었습니다. 어느 때 우리 남편들은 아내가 지나치게 반대하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알고 자기 계획을 멈출 줄도 알아야 지혜로운 자입니다. 또한 교회 일군은 나쁜 습관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3절 "술을 즐기지 않으며" 8절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술, 담배, 마약, 도박 등, 나쁜 습관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급한 성격과 나쁜 습관 때문에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에서 절제하고 근신하면 2절 말씀대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됩니다. 이미 중직이 되신 분들이여, 앞으로 교회 일군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여, 우리는 선한 일을 사모하는 성품, 관용의 성품, 절제와 근신의 성품을 가지므로 하나님이 귀히 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교회가 필요한 일군의 가정생활은 어떠해야 합니까?
교회가 필요한 일군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합니다. 몇 식구 안되는 자기 가정도 못 다스리는 자는 온갖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정을 어떻게 다스립니까?
(1)부부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2절과 12절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라 했습니다. 부부관계가 좋으려면 부부간에 성적으로 깨끗하여야 하고 부부 사이가 원만하여야 합니다. 어느 부부는 자기들의 관계가 원만치 못한 이유를 남편 때문에, 혹은 아내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양쪽이 다 책임이 있습니다. 누구인가 상대방의 허물이나 약점을 대신 십자가 졌더라면 능히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4절과 12절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하므로 믿음 안에서 순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온 가정을 십자가 사랑으로 포용하면서 신앙적으로 앞장서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어느 목사나 중직의 자녀가 신앙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끝마다 설교조의 훈계는 번드르하게 하면서 자기는 신앙적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다르게 사는 모습, 위선적으로 살 때 영적으로 노여워지는 것입니다. '다스린다'라는 헬라어는 '프로이스테미'인데 그 뜻 중에는 '앞장 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이 된다는 말입니다. 뛰어난 통솔가로 유명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지도력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50센티 길이의 실을 길게 늘어놓고 뒤에서 밀어보라고 했습니다. 기자들이 뒤에서 아무리 열심히 밀어 보았으나 그 실은 꼬부라지기만 할 뿐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그 실을 앞에서 끌어 당겼더니 쉽게 끌려갔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말하기를 "짐승은 뒤에서 몰아도 앞으로 나갈 수 있으나 사람은 앞에서 인도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앞에서 솔선수범해야 남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다스리는 법은 우리 부모들이 솔선수범하는 데 있습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교회도 잘 다스립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
천(治國平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기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나라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중직 여러분들이여,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맡겨주신 가정과 교회를 잘 다스리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교회가 필요한 일군의 사회생활은 어떠해야 합니까?
7절에 보면 교회 중직은 "외인들에게 선한 증거를 받은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외인(外人)'이란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중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불신자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와서는 아주 훌륭한 신자 같은 데 사회생활에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거리가 된다면 교회 지도자감이 안 됩니다. 그를 중직으로 세운다면 결국 그 교회가 비난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외인에게 선한 증거를 얻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말에 신용이 있어야 합니다.
8절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며"라 했습니다.
한 입을 가지고 어느 때는 이 말했다가, 어느 때는 저 말을 한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지도자로 모실 수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요즈음 정치가들을 보면 너무나 말 바꾸는데 능합니다. 자기는 절대로 그런 부정이 없다고 했다가 검찰청에서 무슨 증거가 나오면 적당히 둘러대기를 얼마나 잘하는지요?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는 한번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힘쓰는 자여야 합니다. 11절 "참소하지 말며"라 했습니다. 이 집의 말을 저기로 옮기고, 또 여기저기 다니며 이간질하는 사람, 이처럼 말의 신용이 없는 자. 말의 실수가 많은 사람은 지도자감이 못 됩니다.
(2)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3절 "돈을 사랑하며" 8절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 하며"라고 했습니다.
어느 분은 다 좋은 데 돈에 대해서만은 이악스럽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인색하다고 비난받는 사람은 중직으로 자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욕심으로 움켜쥐려는 자보다 주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절 "나그네를 대접하며"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열심히 남을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삶, 불우한 사람들이나 고학생들을 도와주기를 기뻐하는 자를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만 잘해서가 아닙니다. 나그네를 열심히 대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낮 가장 무더운 시간에 아브라함이 자기 천막 문 어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보니 웬 낯선 사람 세 명이 자기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보자마자 뛰어 나가 맞으면서 말하기를 "손님들, 괜찮으시다면 저의 집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로 발을 씻으시고 떡을 가져올 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후에 길을 떠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아내 사라에게 "좋은 밀가루로 떡을 만들라"고 말하고, 종에게 "살찐 송아지 한 마리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자 손님들에게 대접하면서 옆에 서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후한 대접을 받은 그들은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내년에 당신 아내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듬해에 아브라함은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대접한 자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이었던 것입니다.
라합이 이방 여인으로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은 믿음이 좋은 탓도 있지만,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대접한 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남을 대접하는 삶에 힘 쓸 때에 히13:2 말씀대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하게 되는 때도 오는 법인 것입니다.
김정현 목사님이 쓰신「예화설교전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어떤 거지가 이 집 저 집으로 다니며 구걸했으나 밥 한 술도 얻지 못하고 매우 탈진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부인이 들에서 일군들에게 점심을 주고 광주리를 이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밥 한 술 요기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밥이 조금도 없는 데 어떻게 하나?"라고 망설이다가 돌아앉아서 자기의 젖을 그릇에 짜서 거지에게 주며 "이것이라도 잡숫고 기운을 차려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거지는 젖을 받아 마시고 백배사례하며 부인에게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인은 이름을 알아서 무엇을 하느냐고 했으나 굳이 알려고 하자, "청룡골 조씨 부인"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후에 이 일이 온 동리에 퍼져 시어머니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시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면서 "저런 년을 그냥 두느냐?" 구박이 막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루는 암행어사가 이 청룡골에 출두하여 조씨 부인을 찾았습니다.
이 어사는 과거 조씨 부인에게 젖을 얻어먹은 거지였습니다. 어사는 조씨 부인을 크게 치하하고 조씨로 하여금 그 고을 원님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조씨 부인은 부지중에 거지를 대접한 것이 암행어사를 대접하게 됨으로 여자의 몸으로 원님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직을 택할 때에 성품에 대해서나 가정생활에 대해서나 사회생활을 두루 살펴보고 선출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하노라"고 했고, 10절에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라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에서는 장로의 자격은 세례 받은 후 7년, 안수집사나 권사는 5년 후에야 자격을 줍니다. 충분히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오래 두고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중직을 선출하는 데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는 일군을 잘못 뽑으므로 얼마나 말썽을 일으키는지 목회자나 온 교인들이 대단히 후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하나님의 일군을 뽑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선출하되 그의 성품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보고 선출함으로 하나님과 온 교회가 기뻐하는 인물이 선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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