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13(직분자의 축복)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3:13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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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남수목사
제직회를 지난 주간에 가졌습니다. 제직이 몇 명인지 아시는지요? 1,388명, 주보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를 고갈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식량의 고갈, 물의 고갈, 자원의 고갈입니다. 이것들이 없다, 모자란다,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양식도 부족하고 물도 부족하고 자원도 부족하고 이런 수많은 부족을 느끼며 삽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부족은 인물의 빈곤입니다. 교회도 기둥처럼 무거운 짐을 지는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꾼, 훌륭한 사역자 또 귀한 제직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많은데 쓸 사람은 적기 때문에 인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참 귀한 일꾼, 좋은 일꾼, 기둥 같은 일꾼들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집사, 장로, 권사, 교역자, 목사, 전도사 이런 직분을 주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며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제직들이 임명되고 임직되어 새 회기를 시작하면서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제직이 무엇을 하는 것이며 어떤 qualification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아울러 제직을 잘 감당하면 어떤 축복을 받는가 하는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 제목이 평범하고 우리가 다 아는 것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또 재확인하고 확실하게 분명하게 우리 스스로를 검토하고 분석해 보면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선 제직의 qualification, 자격입니다.
집사, 장로, 교역자의 자격이 물론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이 네댓 가지의 기본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집사라는 직분을 받지 않고 그냥 신앙생활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잘 들으시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직분자가 되는구나 하는 것도 깨닫고 그렇게 봉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래 사역장로님들, 교구장님들이 교구에서 선정해서 교회에 추천을 합니다. 그러면 행정장로님들과 담임목사가 심사를 하고 filtering process를 거쳐서 교회가 저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참 존귀한 것입니다. 목사가 세우는 것도 아니고, 장로님이나 교구장님이 세우는 것이 아니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임직되는 직분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서 주신 존귀한 직분인 것입니다. 마치 교회는 세상에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의 기관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지만 하늘의 기관이고, 사람이 운영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운영하시고,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머리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반드시 주님의 기관이고 주님의 몸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면 주님께서도 저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도 저를 친히 보호하시고, 존귀한 직분과 존귀한 책임과 영광스러운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목사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구장님 위해서 집사님이 일한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교회는 땅에 있지만 하늘의 기관이고, 사람이 모였지만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기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잘못 알면 잘못됩니다. 교회관이 바르고야 교회생활이 바릅니다. 교회관이 바로 서야 교회신앙이 바로 되고, 봉사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의 기관, 사람의 모임, 땅의 기관으로 생각하면, 이 직분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내가 언제 집사하겠다고 그랬습니까? 자기들이 주어놓고 왜 그러느냐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언제 내가 달라고 했느냐, 자기들이 주고서, 왜 제직회 안 나오느냐, 제직이 뭐하느냐, 그렇게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Qualification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첫째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성도라면 말할 것도 없고, 제직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직분자라면 더 말할 것이 없이, 그 기본이 구원의 확신인 것입니다. 신자의 기본이 구원이므로, 예수 믿기로 고백한 개인의 신앙고백이 확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게 확실해져야 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가롯 유다는 비슷한 게 많습니다.
첫째 제자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직책을 맡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라고 captain 조장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팀장이고,
유다는 전체 팀의 재정위원장이었습니다. 늘 재정을 맡아서 돈을 관리합니다. 둘 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실수도 잘합니다.
가롯 유다는 오히려 실수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도 실수했고,
베드로는 드러나게 실수했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늘 드러나게 되고, 성격이 조용한 사람은 속으로 실수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늘 화내고, 엉뚱한 대답하고, 난리를 쳐서 혼나기도 하고, 회개도 빨리하고 그래요,
그런데 가롯 유다는 그런 실수는 안 해도 가끔 돈을 훔치고, 떼어먹고, 팔아먹는 그런 실수를 합니다.
주님이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향유를 붓고 주님의 발을 씻었더니, 유다는 화가 나서 그걸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으면 얼마나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 텐데 이럴 수 있느냐고 소리 질렀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나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낭비할 수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두어라. 나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롯 유다가 가난한 사람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을 취하려는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예수님이 아시고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배신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히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는데, 가롯 유다는 한 번밖에 안 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도대체 예수님이 언제 왕으로 오시겠는가 하다가 안 되겠으니까 예수님 팔았는데, 딱 한 번 배반이 큰 실수가 된 것입니다.
유다는 은 30에 팔았고,
베드로는 세 번씩 부인했습니다.
두 사람이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사람은 자살을 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로 빠지게 되고, 한사람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는데도 통곡을 하고 다시 구원을 받고 다시 회복이 되고 다시 사용되어서 위대한 사도로 마침내 순교까지 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다르냐, 똑같이 제자이고, 똑같이 중직을 맡고, 똑같이 실수하고, 똑같이 배신했는데 뭐가 이 두 사람에게서 다르냐는 것입니다.
한사람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했고,
한사람은 '랍비여, 선생이여, 선생님.'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두 가지 표현이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주'라는 표현은 '당신은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며, 당신은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뜻으로,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랍비'라는 것은 종교적인 지도자라는 말도 되고, 선생이라는 말도 되고, 유명한 분도 되고, 대단한 분이시라는 뜻으로 주관적이지 않은 표현입니다.
'주'라는 것은 그 분과 나와의 관계를 말하고,
‘랍비’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선생이라는 말이니, 유익하면 듣고 유익하지 않으면 안 들어도 되는 객관적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실수했지만
마침내 한사람은 회개하고 돌아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고,
한사람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 '주여'라는 단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통성기도 합시다. 주여 3창 합시다." 그러지요. 사실 주여 3창은 성경에 없습니다. 만세3창은 있었어요. 그래서 만세를 세 번씩 한 습관이 있어서 주여 세 번씩 그러는 것입니다. 주님이 못 들으실까봐 크게 '주여'를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기도하라고 하면 어떤 분은 묵상하고, 또 어떤 분은 망상하고 딴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주여'라는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서울에서는 1창이 늘어서 이제 4창이 되었답니다. 3창은 부족하답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이시고, 왕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당신의 종이요, 당신의 피조물이요, 당신의 소유입니다."
이렇게 고백한 사람과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같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고, 자녀가 되고,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장경동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니 아주 재미있습니다.
여행 다닐 때 들으면 아주 좋겠습니다. 그 분은 말씀의 은사를 받은 분입니다. 어느 설교를 들어보니 얼마나 재미있던지, 비행기 안에서 듣고 한참 킬킬대고 웃으니까 다른 사람이 나보고 돌았나보다고 그래요. 어떤 예배의 앞자리에 스님이 오셨었답니다.
그래 장목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가서 악수를 하면서, '교회에까지 스님이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니, '예 제가 TV를 보고 하도 은혜스러워서 목사님 만나보고 싶어 교회로 왔습니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스님에게 '그러면 저를 한번 따라 하시지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습니다 이렇게 해보세요' 그러니까, 스님이 '예수님도 믿고, 부처님도 믿습니다, 남무아미타불', 그러더래요.
그래서 '절에 계신 것보다 교회에 오시니 더 좋지요' 그랬더니,
'목사님 그렇게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여튼 목사님 재미있게 잘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가셨답니다.
여러분, 주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주여'라는 말은 부처님도 믿고, 예수님도 믿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만 믿는 것입니다.
옛날에 '동가숙 서가식(東家宿 西家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처녀에게 혼사가 두 군데 열렸는데, 하나는 아주 똑똑한데 가난한 게 흠이고, 하나는 부자집인데 좀 멍청한 게 흠이었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여자가 고민을 하다가 시집보내려는 아버지에게, 저는 '잠은 똑똑한 총각에게 가서 동쪽에서 자고, 밥은 서쪽에 가서 먹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동가숙 서가식'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은 동가숙 서가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의 주님이시고, 주님만이 나의 왕이십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를 지으시고, 나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나를 살리시고, 나를 사망과 저주에서 해방시키신 유일하시고 무이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확실한 고백이 '주여'라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여'라는 말을 자주 써도 됩니다.
어떤 분은 그릇을 닦다가 깨뜨리거나, 아주 급한 일을 당하면 '에구머니나' 그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버지' 그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어머니' 그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분제가 생기면 '주여' 그렇게 부릅니다.
자동차 운전하다 위험하면 '주여' 그러면 주님이 천사를 보내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는 도울 수 없지만, 어머니는 도울 수 없지만, '아이고 아주머니'는 도울 수 없지만, 주님은 도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급하다고 아무 이름이나 부르시지 말고 '주님'을 부르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했으면 구원받은 사람인 줄 믿습니다. 이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나만의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나만의 구원의 경험이 있을 때 이것을 구원이 확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복음 15장에는 예화가 세 개가 나오는데,
하나는 잃은 양의 비유,
하나는 드라크마의 비유,
하나는 아들의 비유입니다.
하나는 100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고,
그 다음은 열 개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고,
나중에는 두 아들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모두 잃어버렸다가 찾는 얘기입니다.
하나는 양이고,
하나는 드라크마이고,
하나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앞의 두 가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양은 무리에서 떨어져서 헤매다가 숲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으니 목자가 찾아와서 구해주어야 되고,
드라크마도 숨어있으니 주인이 찾아와야 되는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 비유는 다릅니다. 탕자는 상속을 미리 받아서 부모를 떠나 돈을 다 탕진하고 나서는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남의 돼지 키우는 종으로 들어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허기를 채우고자 하나 그것도 풍족하지 못해 배고픔을 면치 못합니다. 그런데 이 탕자는 내 아버지의 집에는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가 하며 집으로 돌아가,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할지라도 품군으로라도 들어가리라 생각하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비유의 말씀인데, 어떤 때는 우리가 낙심하고 곤경에 처해있을 때,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목자 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우리를 건져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탕자의 경우처럼 하나님 품으로 예수님께로 스스로 돌아올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품을 떠나 세상길로 들어가서 죄에 찌들고 사망과 저주에 눌려있고 마귀에게 찢기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서, 이제는 구원 받을 수도 소리 지를 수도 살려 달라고 말할 힘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목자 되신 주님께서 찾아가셔서 거기서 저를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힘이 있을 때는 탕자처럼 자기 스스로 turn back 돌아서서 아버지께 손들고 자존심 버리고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여 이제 이대로 죽습니다. 죽을 수 없어서 돌아갑니다. 아버지 집에는 품군이 많으니 나를 품군이 하나로 받아주소서' 하며 손들고 돌아가니까 아버지가 저를 받아서 잔치를 하고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며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는 약할지라도 주님이 오셔서 건져주실 뿐 아니라 힘이 있을 때에는 주님께 나가서 '주님 내가 돌아왔습니다.' 하고 예수님께 내 생애 신앙을 맡기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믿었으니 교회생활하고, 교회 다녔으니 구원받고,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가 되었으니 봉사하고, 그렇게 해서 qualification이 생기지만, 어떤 때 보면 이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인데 제가 보니 참 이상해요.
그래서 한번 만났습니다. 교회 몇 년 다니셨습니까? 꽤 오래 다녔습니다. 예수 믿으십니까? 예, 하나님 믿습니다. 예수님 믿냐구요? 그랬더니 '예 하나님 믿습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예, 하나님은 믿어도 예수님은 안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지만 예수님은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믿습니까? 본적이 없습니다.
아 이분은 구원 안 받고 받은 줄 아는 사람이구나.
위험한 사람입니다.
교회생활 오래 하고도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주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기초적인 이야기이지만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복합니다.
한 번 따라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주여'가 이만큼 중요한데 주는 그리스도시오, 이 고백이 있어야 신자도 되고 제직도 되고, 사역자도 되고, 하나님의 사람도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세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application 신청서를 낼 때 '구원 받았습니까?'
두 번째 '세례 받았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세례는 어디서 누구에게 언제 받았습니까? 이것이 확실해야 됩니다.
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다음에는 세례를 통하여 이전의 나는 죽고 새 생명을 얻었으며, 죄사함을 받았으며,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것을 나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확인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청년들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형제와 자매가 너무 다정하게 붙어 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불러 교회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했더니 약혼한 사이라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한 것이니 내가 어찌 알겠어요. 그러다 어느 날 결혼식을 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두 사람이 부부됨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도무지 나눌 수 없을 지어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그 부부가 붙어 다녀야지 떨어져 다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 보면 신부는 하나인데 총각이 두세 명이 쫓아다니는 겁니다. 이미 이 신부는 다른 남자하고 결혼날짜까지 받았는데, 자기는 하나님에게서 이 여자와 결혼하라고 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총각 처녀가 와서 결혼날짜를 잡으려고 상담하고 있는데, 밖에 손님이 왔다고 해서 나가 잠깐 만나니까 중요한 상담을 할 것이 있다고 그래요. 뭐냐고 그러니까 결혼상담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상담하던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얘기를 듣는데, 이 자매 얘기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계시를 주셨는데 아무개 집사님하고 결혼하라고 그러셨답니다. 기도하는데 그 남자 사진이 보이고 환상이 나타나며 이 남자와 결혼하라고 하셨으니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누구냐면 방금 전 결혼날짜 잡으려고 상담하던 그 남자입니다. 참으로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를 잘 달랬습니다. 당신이 너무 사모하고 생각을 많이 하니까 그런 착각이 올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으니 가서 좀 더 기도해 보라고 그랬습니다.
그 남자는 다른 여성과 곧 결혼할 예정인 것 같더라고 타이르니, 아니라고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 자매는 반드시 그 남자하고 결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까스로 등을 밀어서 내보내고 결혼날짜를 정했는데요, 그 분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그 자매는 다시 그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결혼식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만인 앞에 부부된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기로 작정하고 개인적으로 내적으로 영적으로 만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public하게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마귀 앞에 확실하게 '나는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았으면 아멘 하십시다. 세례 받으신 분 축하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마귀가 손댈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는 세상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주초문제를 해결하였는가?
Qualification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이 술을 먹어도 되는 데도 있고, 또 카톨릭에서는 술 담배 이런 것은 구원과 상관 없다고 여기고 별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술과 담배와 노름과 이런 것들을 삼가고 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몸이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님께 바쳐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격, 생명 만이 아니라 우리의 습관이나 우리의 몸까지도 주님의 소유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교단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사업상 포도주 한잔 마시는 것이라든지, 혹은 어떤 이유 때문에 술을 한잔 하게 되는데, 이런 걸 가지고 집사임명이나 장로임명하고 직분을 주는데 문제가 생기니, 세상도 변하고 우리도 이 법을 좀 바꿨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토론하고 투표를 하고 했습니다.
이번 John George라고 하는 목사님이 이 이슈가 나오니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제가 나이가 많습니다. 제가 아들이 셋인데 훌륭한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닙니다. 다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어렸을 때 학교 다니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도 사랑하고 교회도 사랑하고 주님도 사랑하고 다 좋은데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게 술입니다. 결국 결혼하고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가 술 때문이지 다른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사랑하고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지만 술이 이 아이를 망쳤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술을 교회에서는 반드시 금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확실하게 믿습니다." 울면서 그 얘기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숙연했습니다.
정말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침내 먹어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이번에 최진실이라는 분도 술을 밤새도록 먹고 술에게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교회장으로 한 것을 보면 이 분도 교회를 다닌 모양입니다. 집사님은 아직 안 됐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집사님이나 권사님이 술 먹고 자살했다 그러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까. 길게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구별되어서 옛날친구, 옛날사람, 옛날습관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확실한 증거가 확실한 표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물질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시고 받을 것도 없으시지만 주시기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도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드릴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없어도 하나님께 바칠 것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나는 십일조를 드릴까 말까 그런 선택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일생동안 먹고 사는 것과 입는 것과 쓰는 것과 모든 물질은 다 하나님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제직인 것입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일꾼들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헌금은 안 해도 됩니다. 왜 감사하지 않은데 어떻게 합니까.
생일감사헌금, 사업감사헌금, 심방감사헌금, 무슨 감사헌금 해서 이런 것들은 감사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
감사하면 해도 됩니다.
입이 이만큼 나와서 감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할 일이 일어날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Thank advanced. 미리 감사하는 것이예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십의 하나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mandatory이고, 이것은 의무이고, 하나님의 명령이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유를 인정해 드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며 그것을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경기가 어려운데 김목사가 딴소리 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I know that. 그런데 그런 것과 상관없는 거예요. 이것은 세상 경기와 상관없고 내 형편과 사정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관계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돈 남아 본적이 있습니까. 맨날 모자라고 언제 경기 좋은 때 있지만 대부분 나쁘고 남는다는 생각 쉽지 않습니다. 다 쓰고 남은 거 드리려고 하면 절대로 하나님 앞에 못 드리고, 그래서 첫 번째 곡식과 첫 번째 자녀와 첫 번째 짐승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권과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고 확실하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말씀 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하라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도 책임지시게 하는 것입니다.
'
네가 나를 시험해 봐라. 십분의 일을 드리므로 하나님의 창고에 쌓을 곳이 넉넉하면 너희 집에도 쌓을 곳이 넉넉하게 붓지 아니 하시는가 시험해보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책임지고 해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에는 십일조를 잘 드렸는데 요즈음은 아주 힘들어요 그래요. 돈이 없거나 아까워서 그렇지요. 사실 그게 힘든 게 아니고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병들면 숨을 잘 못 쉽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 보면 아주 숨을 힘들게 쉬고 자꾸 눈을 감습니다. 기운이 없어서 눈이 안 떠져요. 눈 안 뜨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기운이 없어서 못 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신앙적으로도 전에 힘 있을 때에는 아깝지 않고 감사하고 열심히 했는데 기운이 빠지니까 힘이 없어집니다. 다 신앙의 문제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멀다 그렇게 얘기 하는데, 교회는 옛날부터 여기 있었습니다. 자기가 이사 가놓고, 처음에 이사 갈 때는 '아 목사님 괜찮습니다, 왔다 갔다 하면서 테이프 듣고 찬송하고 그러면 더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처음 몇 달은 그렇게 합니다. 몇 달 지나고 나니까 '아이구 목사님 멀어져요' 그래요. 새벽기도 못 나오지요, 금요예배 못 나오지요, 그 다음에 모게지 많이 얻어 썼으니까 모게지 붓느라고 스트레스 받지요, 그러니까 기도할 시간 줄고 말씀 못보고, 세상이 급하니까 믿음은 점점 내려가고 그러니까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도 아니고, 이것은 거리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있으면, 하나님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바칠 수 있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확신을 가지면 무엇이라도 드릴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 집사님들, 제직들 보면 십일조를 적당히 하는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적당히 한다는 것은 작은 것은 잘하는데, 큰 것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살이는? 낙타는? 봉급 타서는 십일조하고, 계 타서는 안 하고. 매월 수입에서는 하고, 집 팔아서는 안하고. 작은 것은 하는데, 큰 것은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작은 것은 안 하면서, 큰 것만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10불이면 1불, 100불이면 10불, 이거 적어서 봉투값도 안된다고 해서 나중에 많이 주시면 크게 한번 하겠다고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많고 적고, 크고 작고, 선택의 여지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selection, choose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너희의 수입의 십일조를 드려라, 그러면 내가 너를 축복하마. 내가 너를 복 주시나 안 주시나 시험하여 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바로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돈이 들어왔는데 그것을 그냥 다 헌금으로 드린다 그러면 십일조를 따질게 없지요. 그러나 내가 정말 쓰는 돈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이 정직하게 그 일을 행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 드리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다 기초적인 것이지만 다시 한 번 다지는 게 좋습니다.
새로 임직되신 집사님이 수백 명입니다.
또 이미 제직 되셔서 여러 해 동안 집사님이시고 장로님이시니 그냥 나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생각을 버리십시오.
또 앞으로 교회생활을 할 때에 제직이 되시려고 준비를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 앞에 잘 배워서 똑바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과 행실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본을 보여야 됩니다.
그것은 사실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느냐, 이 사람이 함부로 화를 내느냐, 함부로 다른 사람하고 시비를 거느냐,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말해서 신앙 있는 사람을 상처를 주고 교회 오는 사람을 내쫓는 사람이냐,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구원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며,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우리가 예수님을 모셨으니 예수의 편지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이고, 우리가 작은 그리스도로서 세상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 은 조심해야 됩니다.
말과 행실에 조심해야 됩니다.
제가 늘 얘기하지만 식당에 가서 식사만 잡수시고 오지, 욕까지 처먹고 오진 마십시오. 목사, 장로, 집사 그러면서 음식 투정이나 하고 그러면 절대로 그리스도의 본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으면, 음식이 좀 짜거나 싱거워도 불평하지 말고,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고맙다고 예의를 표하고, 팁도 후하게 놓고, 일어설 때는 의자도 잘 정리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뒤에서 역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 다른 종교와는 다르다, 기독교가 좋다, 그런 소리를 합니다. 나도 다음에 저 사람들이 믿는 예수를 믿겠다 그렇게 됩니다.
집사님이 되는데 그런 것을 본다는 겁니다.
제직이 되면 당연히 그런 일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갈 일꾼을 세우셨으니, 모든 제직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Qualification을 잘 갖추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골로새서 1장에 보면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라고 했는데, 소망은 무엇이냐 복음을 들었다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13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리니 그 안에 지혜와 모든 보화가 있느니라.
골로새서 2장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우리가 믿은 예수 안에 온갖 지혜와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할렐루야! 그래서 3장에 가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사람 보지 말고 주님을 보라는 거예요. 너무 세상 보니까 안 돼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이제 우리는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요, 없는 사람이요, 다 죽었습니다. 예수 안에 감추어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너희가 전에 그 가운데 살 때,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일꾼을 세우시고 기둥처럼 여러분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이제 이 Qualification, 이 기둥의 재목이 되고, 난 아직 부족하다 그러시면 그 재목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준비하시고 노력하시면 하나님이 받으실 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여 우리 모두 이러한 지위와 담력을 얻는 제직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들이 주의 말씀을 상고하고 제직임명을 받고 새 회기를 출발하며 새 역사를 시작합니다. 주님 이 아침에 저희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받히고 세계선교의 위대한 사명을 이루어갈 중대한 직분을 맡았습니다. 주님,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하시고 마음속에 이 직분을 잘 감당할 결단을 하락해 주옵소서.
오늘 제직으로 임명되고 선출되고 또 임직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직분자로 세우셨습니다. 충성되게 그 일을 잘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기둥이 되게 하시고 천국의 위대한 일꾼으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직분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 앞에 존귀한 직책, 영광스러운 직분, 그리고 믿음의 담력과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신앙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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