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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NCD사용하기-패러다임의 전환

하나님아들 2013. 7. 19. 18:12

▒ 패러다임의 전환 ▒
패러다임이 바뀌면 교회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두 개의 토마토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 장 3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자신들의 힘든 삶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경배와 찬양,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나가면서 그들은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며 한 없는 기쁨의 눈물을 비같이 줄줄 흘리는 그림입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가복음 4: 3-9).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생명의 결과는 씨뿌리는 자에게 달려 있습니까? 씨에 달려 있습니까?'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맞습니다. 씨에 달려 있습니다. 생명은 뿌리는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기에 자랄 수 있는 모든 백퍼센트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씨 안에 그 유기체의 유전자 정보가 이미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씨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기에 자라야 합니다. 신앙이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뿌리는 사람을 보겠습니다.

말씀 자체가 생명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생명력이 자라갑니다. 씨는 또, 토양에 달려 있습니다. 누가 뿌리건 간에 씨에는 이미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토양에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이것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올바른 패러다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면 그것이 혼란을 일으킵니다. 영적 전투의 장은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터도 집도 아닙니다. 선교지만 영적 전투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전투지인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핍박가운데서도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환경이 천국이어도 내 생각이 지옥이면 지옥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바퀴를 바꾸어 주면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씨앗이 생명력이 있어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성장은 목사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들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의 성도가 백 명이라면, 백 명의 사고 방식을 합친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가 자식이라면 하나님 나라는 2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교하자고 해도 자신의 가치가 자식이면 하나님 나라는 뒷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식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서 생명을 얻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을 얻는지, 세상에서 생명을 얻는지, 돈에서 생명을 얻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바로 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고정관념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성령님을 경험합니다. 그러면 그에게는 하나님은 성령님이 전부인줄 압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불받아야 합니다,' '방언을 해야 거룩하다'라고 합니다. 불 받고 쓰러짐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으로 믿게 되어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힘에 의해서 쓰러지지도 않고, 가르쳐 준 것도 없이 말입니다.

또, 어떤 이는 예수님만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한 쪽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그렇게 옳지 않은 것입니다. 한 쪽으로 너무 치우친다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습니다.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차가 한 쪽으로 쏠린 것입니다. 몸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성령님 쪽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님 쪽에 있는 사람을 만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중심으로 움직여 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부 하나님께 치우치게 가 있는 사람은 예수님 쪽과 성령님 쪽을 강화시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 쪽으로 지나치게 가 있는 사람도 성령님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좌로 치우치면 영성 지상주의가 됩니다. 우로 치우치면 이번에는 방법 지향주의로 빠져 버립니다. '교회는 인간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자들은 우로 치우친 자들입니다. 또, '교회는 하나님만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일은 없습니다' 라고 하는 자들은 우로 치우친 자들입니다. 영감 있는 예배할 때, 영감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나 예배는 인간이 드리는 것입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체 관계인 것입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행복충전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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