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자.
사실 오늘 현대인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 것조차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안에서 뛰는 것처럼 무엇엔 가 쫓기듯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마치 더듬이 잘린 개미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 마디로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 질 수가 있다.
인생을 사는 두 가지 자세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자세가 있다.
다른 하나는 사냥꾼이 표적을 정해 놓고 집요하게 추적하며 사냥할 때 쓰던 표현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달리기 선수가 골인 점을 향해서 한 눈 팔지 않고 전력 질주하는 것처럼 목표를 정해 놓고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사냥꾼이 표적을 정해 놓고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처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애쓰며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 뿐이 아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은 모두가 바울 처럼 목적 있는 삶을 살았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평생 어부로 살던 사람이다. 하루하루 고기 잡으며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다. 어찌 보면 인생의 목표랄 것이 따로 없는 “그럭저럭”살던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뒤에 그의 삶이 변했다. “사람 낚는 어부”라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됐다. 그 목표를 향해서 전력 질주하게 된다.
모세는 젊은 시절 인생의 꿈을 다 접고 나이 80에 평범하게 양을 치며 살던 사람이다. 어찌 보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만난 뒤에 변했다. 내 백성을 인도하라는 사명을 받고 그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목적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주님을 만난 뒤에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렇게 바꿔주신다. 인생의 푯대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푯대를 향해 달려가게 된다. 주안에서 인생의 푯대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 만난 뒤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의 변화다.
몇 년 전에 TV 프로 중에 어린 아이를 추적하던 것이 있었다. 한 번은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를 추적했다. 그저 걸어서 5분이면 될 거리다. 이 아이가 유치원 앞 가게에 들러서 신기한 듯이 이것저것에 한눈을 판다. 시장 통에 접어들어서 약장수의 원숭이 쇼를 한참이나 구경한다. 집에 오는 길에 자기 또래 아이들 노는 것을 또 넋을 잃고 지켜본다. 무려 5분 거리를 1시간이 넘게 걸려서 왔다.
인생의 목적이 없는 삶이 그렇다. 이것저것에 한눈 판다. 그 삶에 초점이 없다. 그 삶이 한없이 늘어지고 권태롭다. 인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우면서 “나는 뭐하고 살았나?” 자책하게 된다. 그 허무함과 쓸쓸함에 힘겨워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정해진 사람들은 다르다. 이것저것에 한 눈 팔지 않는다.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 있다. 발걸음이 분주하다. 인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울수록 보람의 열매를 더 풍성하게 맛보게 된다. 복된 인생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맛보게 된다.
사 43: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또한 사 43: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 백성은 내가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분명한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창조하셨다. 다른 피조물들과 다른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우리를 창조하셨다. 우리가 그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우리 삶의 푯대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그는 전진만이 자신이 할 일음을 아는 바울이다. 신앙의 부족을 느끼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교만하고 자만한 사람은 모두가 있는 것으로 족한 것으로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는 특성이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신앙에도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힘쓰고 좇아가는 성도가 되게 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부족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을 물질적인 면에서는 민감하게 잘 안다. 돈도 없고 물질도 부족하고 자신의 부족을 너무나 잘 알아 대처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부족을 채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앙의 전진이 있을 것이다. 다윗은 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부족이 없다고 시편 23장에서 노래하는 그의 신앙은 위대하지 않을 수 없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분은 자신에게 잔잔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니 나의 부족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다하더라도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하는 그의 위대한 신앙을 본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있다면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는가? 그럼으로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해서 좇아가는 바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모습을 조명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마음의 만족
마찬가지로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도, 그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마음에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목표로 삼으라.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밑그림으로 그려 보라.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려보는 것. 그리고 매일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라. 만일 목표를 이루는 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에 우선순위를 두라.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하는 것. 성도는 그가 받은 은사를 행할 때,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 사용해야 함. 새해 두 번 째 주일을 맞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주님을 섬길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우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기원한다.
하나님 앞에서 성숙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멈출 수 없는 과제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지금 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쓰고 있을 때는 로마 옥중에 갇혀 있던 나이 65세 전후의 시기다. 이제 인생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다. 긴 세월 벅차게 선교사역을 마치고 정리하고 있을 때다. 이쯤이면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바울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고 스스로를 채근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땅 끝까지 가지 못했고, 아직도 주변에 잃어버린 영혼들이 있고, 아직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과거의 실패도 잊어버려야 한다. 잘한 것도 잊어 버려야 한다. 과거에 잘 지내던 것도 잊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1절 말씀처럼 달음질 잘 하는 사람은 얽매이기 쉬운 것, 거리끼는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 꼭 죄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마는 신앙의 경주에 방해되는 것 있으면 벗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목표를 향하여 잘 달려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일을 기억하는 것은 목표지향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에 자신이 잘못한 것을 기억하여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일에 사용한다면 약간의 유익이 있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과거에 잘못한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더 좋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집착하여서 오늘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축복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바울이 나쁜 일만 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온통 칭찬을 받을 일만 하였다. 복음을 위하여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기도 하며,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다. 여러 번 자지도 못하였고, 주리기도 하였으며, 목마르고, 헐벗기도 하였다.(고후11:24-27) 또 신비한 체험도 하였다. 삼층 천을 보기도 하였고, 죽은 유두고를 위하여 기도한즉 살아나기도 하였다. 이렇게 바울에게는 화려한 과거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야 하는데 자신의 영광이 드러날까 매우 조심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이루어 놓은 그 많은 일들을 잊어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칫 과거의 업적이 자기의 자랑이 되어 자기 발목을 잡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됐다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 가면 가장 많은 사람이 왕년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인생을 크게 셋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청년시기까지는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시기다. 장년기는 현재와 씨름하며 사는 시기다. 그리고 노년기는 과거를 회상하며 사는 시기다. 많은 노인들이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갖기 힘든 상황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고 뒤돌아보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왕년”이야기하고, 옛날 추억에 잠기려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수 없다. 아직 다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에 도착도 안 했는데 “그동안 절반까지는 내가 1등이었다. 3/4까지는 내가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달려야 할 거리가 남아있기 때문에 옛날이야기에 심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꾸준하게 계속 가노라면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문필가 앙드레 모로와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을 사는 기술은 하나의 공격목표를 선택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시키는데 있다”고 했다. 승리는 쉬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앞에 있는 목표를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너희의 믿음을 주장하사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 땅에 있는 것을 찾지 말고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인생의 모든 위대한 것은 정열의 산물.
작년에 못다 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울의 경우는 위에서 부르신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목표를 세우기도 하였다. 바울은 그런 말을 한다. 사나 죽으나 먹으나 마시나 앉거나 일어서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삶의 목적을 세워야 할 것이다. 신앙인의 목표가 바로 이 같은 삶의 목적이 세워야 한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무위도식 할 수 있다. 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목표를 정해 놓으면 목표에 완성을 위하여 다름 질 할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뜻을 이루기 위하여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까지 인도해 주시고, 이 새해를 맞게 된 것을 생각할 때 감격을 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하나님의 충만하신 능력이 힘이 되어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자.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살자. 좇아가는 사람은 뒤돌아 볼 시간이 없다. 옆에 있는 것 보려고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 금년도 주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상보기=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자*하원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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