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마라나타!!!

[스크랩] 계시록설교노트(계시록해석의 7대 원리)

하나님아들 2013. 6. 16. 13:45
 

                                계시록 설교 노트


                                          서 언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9)


   요한계시록은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계시”(1:1)요, “예언”(1:3)이요, 편지(1:4)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본서는 주의 날이 가까움을 바라보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처럼 귀중한 요한계시록의 내용이거늘 교회에서 선포하기를 꺼려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벗겨져야 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인 동시에 장차 될 일을 밝혀주는 예언이요, 어느 시대, 전 세계 성도들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 저자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 삼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본서의 귀중성을 전파하여야 할 사명이 주의 종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간략한 요한계시록 설교 노트를 발간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 저자의 해석이 최상의 것은 아니다. 다만 최선을 다하여 해석한 것일 뿐이다. 아무쪼록 이 한권의 요한계시록 설교 노트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주며, 신앙의 열심을 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출간의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주후1999년6월23일

                                                      잠실목양교회에서

                                                           이 광복목사


 

 

 

계시록 해석의 7대 원리


1. 성경의 결론이요 완성이다.

 창세기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므로 상실한 에덴의 축복을 다루는데 비하여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회복될 에덴동산의 축복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요 완성이다. 즉 창세기가 구속사의 시작이라면, 계시록은 구속사의 완성이다. 창세기는 서론이라면 계시록은 결론이다.


    창세기 = 실낙원

        계시록 = 복낙원

(1)에덴동산의 축복을 상실함

(1)새 예루살렘으로 회복함

(2)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상실함

(2)열두 가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음  

(3)실패한 인류 조상의 결혼

(3)어린 양의 혼인잔치로 결혼이 완  성 

(4)에덴동산에서 뱀에게 유혹받음

(4)유혹자 뱀이 영원히 불 못에 던 져짐

(5)벌거벗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힘

(5)세마포 옷을 입혀 주심

(6)바벨론의 교만을 혼란으로 분리

(6)일곱째 나팔소리에 주의 나라가 이룩됨

(7)범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됨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됨

(7)비로소 그때에 하나님을 뵈옵게 될 것임

 

 


2. 내용은 복음서나 서신서와 같다.

 본서는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심을 입어 본 환상을 그의 언어로 전달할 것이다. 비록 상징의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었을지라도 그 내용은 복음서와 서신서와 같은 기독론 중심으로 전개되는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해석도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은혜의 복음이 전개되어야 하며, 사도들의 서신서에 기록된 복음과 일치해야 한다.


3.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다.

 계시록은 “계시”(1:1)이면서 “서신”(1:4)이며, 동시에 “예언”(1:3, 22:10)이다. 따라서 본서의 내용도 복음임에는 틀림없으나 해석은 종말과 재림의 예언적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개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계22:20~21)


  서론에서 구름타고 강림하시는 주님의 영광된 모습을 증거하며 결론에서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증거 한다.

특히 19장 11~21절은 영광중에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에 대한 절정을 이루는 구절이다.

  또한 신약성경 25절마다 1절이 재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 계시록 22장에서도 “내가 속히 오리니”(7절, 12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0절)며 거듭 반복하고 있을 만큼 강조되고 있다.



4. 장차 될 일을 보고 기록한 책이다.

  “반드시 속히 될 일”(1:1), “장차 될 일”(1:19), “이 후에 마땅히 될 일”(4:1), “결코 속히 될 일”(22:6)로 네 번이나 강조하고 있어 “될 일”이란 상징의 표현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일어날 들임을 확증시켜 주는 것이다. 루이스 벌콥은 “신구약 성경이 가지고 있는 계시는 점진적이고 서서히 그리고 정확하게 분명하게 영적 개념이 확대되어 간다.”고 하였다.


  1) 래드(G. E. Ladd)

  “계시록을 쓴 목적은 말세에 나타날 사건과 하나님 나라의 설립에 수반될 사건을 계시해 주기 위함이다. 물론 그 중심 되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2) 메릴 C 테니(Merrill C. Tenney)

  “우리는 이 구절(1:19)을 쉽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네 본 것’은 과거이고, ‘이제 있는 일’은 현재요, ‘장차 될 일’은 미래이다. 이 구절이 요한계시록 전체 연대기에 대한 요약 구절이라면, ‘네 본 것’은 저자 자신이 과거에 친히 체험한 부분을 말함일 것이고, ‘이제 있는 일’은 현재 되어 지는 일, 특별히 일곱 교회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장차 될 일’은 요한계시록의 나머지 부분에 소개된 환상들일 것이다.”


  3) 모리스(Leon Morris)

  “요한계시록의 많은 내용이 장차 올 날들에 일어날 것들에 관하여 쓰고 있다.”


  4) 신성종목사

  “이 세상의 책은 사건이 일어난 뒤에 기록한다. 그런데 계시록은 그것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다.”


  5) 박윤선 목사

  “네 본 것은 다음 구절이 해명하였고, 이제 있는 일은 2~3장에 기록된 교회 현상인 듯 하고 장차 될 일은 6장 이하에 기록된 계시의 내용인 듯하다.


  6) 이상근 목사

  “네 본 것은 저자가 현재 보고 있는 환상(1장), 이제 있는 일은 일곱 교회의 형상(2~3장) 그라고 장차 될 일은 종말에 대한 예언적 계시(4장 이하)이다.”

  “영적 해석법과의 조화이다. 본서는 크게는 역사의 대원리를, 작게는 개인 신앙생활의 지침을 가리킨다고 보아서 과오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영적 의의는 어디까지나 응용이지 해석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교훈만을 치중하고 그 예언적 성격은 폐기된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종말적 사실로 해석하면서 그 영적 의의와 교훈은 실생활에 응용하여야 할 것이다.”


  7) 본 저자

  본 저자는 구약의 예언서를 해석할 때, 1차적으로는 역사적인 해석을 하고, 2차적으로는 복음적인 해석을 하고, 3k적으로는 예언적인 해석을 하여 종말론적인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1차적으로는 예언적 해석을 근거로 장차(종말) 될 일의 원리로, 2차적으로는 과거나 현재의 상황에 응용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본 저자의 해석법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열쇠는 삼위일체께서 역사하사 장차 될 일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시고, 시도 요한은 자가의 본 것을 순교자적인 각오로 증거 하였음을 전제로 출발(계1:1~2, 11; 4:1)해야 한다.

 

5. 전 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계시록의 해석은 본서 자체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전 성경을 배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계시록이 구약 39권의 말씀 중 26권을 인용, 총 404절 가운데 278절이 구약을 직접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구약의 유사 표현을 약 348회 중 약 95회는 반복적으로 사용하였고 약250회는 정확한 유사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1장에서 5장까지 85회나 구약을 인용하고 있을 만큼 성경의 마지막 요약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전 성경을 배경으로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6. 기록이 형태가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복음서가 들은 것을 글로 기록한 것이라면, 계시록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사건)의 내용을 글로 증거 하는 형태로 기록된 것이므로 상징의 해석과 상징적인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


 1) 상징적 해석

  각 단어의 문자적 배후에 암시되고 있는 다른 뜻을 찾으려는 시도로써 “우화적 해석” 혹은 “상징적 해석(영해)”이라고 한다.


 2) 상징의 해석

  상징의 해석이란, 본서에 기록된 여러 가지 환상과 상징을 해석할 때 그 상징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찾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용으로 묘사된 사단을 해석할 때, 용의 특성에서 사단의 특성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해석은 상징적 해석이 아니라 “장차 될 일”을 그대로 해석하는 상징의 해석이 올바른 해석법이다.


7. 묵시문학이 아니다.

  계시록의 전체 내용은 결단코 묵시문학이 아니다. 묵시문학이란, 주전 200년~주후 100년까지 40여개 작품으로 전해오는 문학 장르이다. 물론 계시록은 묵시문학과 유사한 특징들이 있는 반면, 묵시문학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결코 묵시문학으로 분류할 수 없다. 겨(인간의 묵시문학)를 밀(하나님이 말씀인 계시록)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왜 계시록은 묵시문학으로 분류될 수 없는가?


 1) 실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묵시문학은 예외 없이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오직 그의 저술을 고대의 어떤 유명한 인물이 저작한 것으로 가장하여 가명을 사용하여 전하고 있는 반면 계시록은 자신을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 - 사도요한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1:4, 9; 22:8). 묵시문학은 당대의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가명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기록자 요한이 구약의 모든 예언들이 궁극적으로 내다보았던 최종적인 종말론의 성취에 서 있는 자로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2) 상징의 다양성과 통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묵시문학에 나타난 상징은 비교적 단편적이고 단회적인데 비하여 계시록에 나타난 상징은 전체가 하나의 단일한 상징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묵시문학과 동일시 될 수 없다.


 3) 환상에 대한 의미의 부여가 다르기 때문이다.

  묵시문학은 대개 환상을 제시한 후 그 환상에 대한 천사의 설명을 포함시키는데 비해 계시록은 환상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맡기므로 문자적인 설명이 제한시킬 수 있는 보다 풍성한 환상의 의미를 그대로 보존시키고 있다.


 4) 희망적이고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

  묵시문학은 현 시대와 역사에 대해 지극히 염세적이므로 인간의 도덕적 삶에 대해 아무런 소망이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비하여 계시록은 현 시대와 역사를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현장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비록 현실이 환난과 핍박으로 얼룩질지라도 소망적이며 성도들의 신앙윤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시록은 묵시문학과 다르게 교회의 승리와 축복이 주제이다.

  그러므로 묵시문학이 주장하는 현세란, 종말 직전에 있을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시기를 향하는 순간적인 막간에 불과하므로 악하며 무의미하다는 것인 반면 요한계시록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행위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근거로 계시록이 묵시문학과 어느 정도 유사성은 인정 되지만, 계시록이 묵시문학의 한 형태라는 견해는 수용할 수 없다. 따라서 계시록의 전반적인 관심은 묵시 문학이라기보다는 예언적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판단일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가 요한계시록이 어렵다는 이유로 설교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설교하지 않는 것은 목회자의 직무유기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대해 목회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 축복이라 했다.

  “이 예언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목회자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을 증거 하지 않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먹어 버리라고 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계10:9)



 요한계시록은 “갖다 먹어야 할” 작은 책이다. 비록 본서가 교회사 속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은 적도 있으나 목회자들이 갖다 먹어야 할 귀중한 생명의 말씀임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전 세계에 전하라고 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14:6)


  요한계시록은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신분을 초월해서 정해야 할 영원한 복음이다.


  넷째, 인봉하지 말라고 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22:10)


  다니엘서가 봉함된 책(단12:4, 9)이라면, 요한계시록은 인봉하지 말아야 할 책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열려져야 하고, 읽혀져야 하고, 지켜져야 할 귀중한 복음이다.





                계시록 장별 주제

1장 = 서론

2장, 3장 = 아시아의 일곱 교회

4장, 5장 = 천국론

6장 = 일곱 인 재앙

7장 = 십사만 사천의 인침과 흰옷 입은 무리

8장 = 나팔 재앙

9장 = 나팔 재앙 중 세 가지 화

10장 = 작은 책

11장 = 두 증인

12장 = 해 입은 여자 (신령한 교회)

13장 = 두 짐승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14장 = 십사만 사천의 자격

15장 = 예비처의 모습

16장 = 일곱 대접 재앙

17장 = 음녀

18장 = 바벨론의 패망

19장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20장 = 천년왕국

21장 = 새 하늘과 새 땅

22장 = 결론


 

   

                     -출처-  이광복목사/계시록설교노트

출처 : 하나님의 은혜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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