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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도신경강해(19)믿음을 고백하라

하나님아들 2013. 4. 11. 06:45

사도신경강해(19)

믿음을 고백하라

로마서10:9~11절

 

지난 주일에 우리는 부활가 영생을 공부함으로써 사실상의 사도신경 내용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지은 바 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말씀드렸던 내용을 총괄적으로 요약 정리한 후에 우리가 매주일 예배 때마다 우리의 입을 열어서 사도신경을 고백하여야 하는 이유를 간단히 말씀드림으로서 사도신경 강의를 끝맺으려고 합니다.

 

1. 사도신경은 언제 만들었나?

사도신경은 약 500년간에 걸쳐서 수 많은 교회회의와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의 기도와 연구와 토의를 거쳐서, 성령의 신비로운 감동으로 형성된 고백문으로서 주후 500년경에 오늘날과 같은 형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 사고신경의 고백 내용

사도신경은 이 고백문에 등장하는 모든 내용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믿는다”는 말은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믿는다는 말은 이성으로 안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지, 정, 의 곧, 몸과 마음과 힘을 다드려서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믿는다는 말은 또한 믿는 대상이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사물이 아닌 대화와 감정표현이 가능한 인격적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3) 또한 믿는다는 말은 믿어야 할 내둉이 인간의 좁은 인식능력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대상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대상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구성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엘로임이라는 명칭이 보여 주듯이 우리의 경배를 받으실 분이며,

또한 여호와라는 명칭이 보여 주듯이 인간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어떤 허상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고 따라서 인간의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자이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경배를 받으실만한 자유자이신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신다고 사도신경은 고백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뚜렷이 구분되며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독립된 인격체이십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인격체임을 부인하거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독립된 인격체들이니까 세 인격체를 한분 하나님으로 부를 수 없다고 말하게 되면 이단이 됩니다.

세 인격체이면서도 하나님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동등해서 한분 하나님이라고 말해야 바른 하나님관을 갖게 되는 것이며,

어떻게 세 인격체이면서도 한 분 하나님인가를 이해하는데 뒤따르는 논리적인 난관은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1) 성부 하나님

먼저 성부 하나님에 관한 고백을 살펴 보겠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와 성령이 같이 참여하시는 가운데 창조사역과 창조하신 세계를 섭리하는 사역을 주도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오직 말씀만을 수단으로 하여 무로부터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세계를 만드신 성부 하나님은 세계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초월적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세계를 만드신 후 세계 안에 내재하시면서 만드신 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초월해 계신다는 점만 강조하고 내재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이신론이나,

거꾸로 하나님의 세계내재만을 강조하고 초월을 부인하는 범신론은 모두 인간과 세계를 우상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를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친근하게 “우리의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성도들에게 주어져 있는데,

이와 같은 특권이 주어진 근거가 바로 성자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사도신경은 곧 성자 하나님에 관한 고백으로 넘어 갑니다.

“외”라는 말은 독특하다는 뜻으로서, 두 가지 점에서 성자 하나님은 독특합니다.

첫째로, 성자 하나님은 어느 인간에게서도 유례을 찾을 수 없는

성부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둘째로, 성부로부터 낳은 유일한 아들로서

성부와 본질이 같은 하나님이라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2) 성자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워지는데,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 인간이심을 뜻하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①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해주신 선지자요,

② 자기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서 인간들이 사죄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여신 대제사장이요,

③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을 다스리시며 보호하시는 왕이십니다.

사도신경은 인간이신 예수께서 곧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은 인간이신 예수님의 생애를 “탄생, 수난, 그리고 죽음”으로 압축하여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었으므로 예수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몸에서 자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셨으므로,

예수님은 인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인간이셔야 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는 인류가 범한 죄를 대신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인간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자 하나님은 죄없으신 하나님이셔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희생제물로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죄가 없는 살아있는 생명이어야 했으며,

둘째로, 성부 하나님이 온 인류를 향해 쏟아 부으시는 엄청난 진노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신 예수님은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대제사장 가야바와 빌라도의 재판을 통하여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써 인간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고 성부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그 순간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비로소 인류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남으로써 그리스도로서의 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장사지낸 바 되었다는 고백을 첨가함으로써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다 더 분명히 한 후에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완전하고 흠없는 의로움이 죽음의 권세와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었음을 선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예고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심으로써 본격적인 천상의 그리스도의 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르셨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승천은 이후로는 예수님의 육체의 형태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을 예고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이 육체의 형태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이유는 세상으로부터 떠나기 위함이 아니라 성결의 영의 형태로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임재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후부터는 예수님이 구원사역을 주도하는 시대가 끝나고 성결의 영의 형태로 임재하시면서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 곧, 구원사역을 적용하는 일을 성결의 영이신 성자 하나님이 돕는 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동시에 교회를 대리자로 삼고 일하시는 교회의 시대가 시작될 것을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사도신경은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다는 것은 이제 우주의 왕으로서 왕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주의 왕으로 오르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통치하시는데 이와 같은 예수님의 통치는 사탄의 통치와 대립됩니다.

등불이 침상 믿이나 말 아래 감추어져 있듯이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던 예수님의 왕권과 예수님의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때가 되면 그 권능과 영광을 만천하에 드러낼 것입니다.

역사가 끝나는 날이 될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인류억사의 모든 과정이 낱낱이 준엄하고 추상과 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은 성도들에게는 한없는 위로와 은혜의 날이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오직 값없이 그리고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움에 힘입어 성도들은 심판을 통과하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자 하나님에 대하여 3분의2 이상의 긴 분량을 할애하여 고백한 사도신경은 이제 성령 하나님에 관한 고백으로 넘어 갑니다.

성령 하나님에 관한 고백은 “성령을 믿는다”는 짧은 한 문자으로 되어 있으나,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고백들은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성도을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서 사실상 모두 성령의 사역들입니다.

 

3) 성령 하나님

성령은 성부 하나님이 주도하신 창조와 섭리사역에 참여하셨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은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간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로 세울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성령의 특별한 사역이 필요하게 됩니다.

성령이 특별한 사역은 성자 하나님이 이룩하신 구속사역을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역을 가리킵니다.

 

(1) 성령의 특별한 사역의 첫 단계는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의 깊은 속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의 영훈을 거듭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사역을 말합니다.

이 사역은 오직 성령의 주권적인 작용을 통해서, 은혜로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고 구할 때, 생수의 근원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충만하게 능력을 부어 주셔서 우리의 삶을 활기찬 삶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2) 성령이 충만한 자의 삶입니다.

① 인내와 수고로서 사랑을 실천하는 열매를 거두게 되며,

② 하나님을 찬양하되 홀로 찬양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게 되며,

③ 성도들의 말에 순종하는 태도를 갖게 되며,

④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열매 맺게됩니다.

성령의 열매가 성령이 충만히 임할 때 성도들 개인의 신앙생활에 나타나는 결과라면, 이제 성령이 충만한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들이 주어져서 교회를 세워 갑니다.

 

(3) 성령의 은사

성령의 은사들은 그 종류가 무한히 다양합니다.

방언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나, 병을 고치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 은사가 있는가 하면, 다스린다거나 돕는 것이나 구제하는 것과 간은 자연적인 은사도 있습니다.

사도나 선지자나 예언의 은사처럼 신약시대에는 있었다가 후에는 없어진 은사가 있는 반면, 찬양의 은사라든가 기계나 컴퓨터 조작능력과 같이 시대의 필요에 따라서 첨가된 은사도 있습니다.

이와같은 다양한 은사들이 유기적인 한 몸인 교회의 요소요소에 배치되어서 교회를 세워 갑니다.

 

(4) 교회 공동체 형성(거룩한 공회(교회)가 교통하는 것)

성령의 특별한 사역을 통하여 거듭난 성도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데, 이것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사도신경은 먼저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고백합니다.

교회가 서술적인 의미에서 하나라고 고백되는 이유는,

하나됨의 근거가 말씀을 통하여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서술적인 의미에서 하나인 교회는 하나가 되라는 규범적인 명령을 계속해서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지역교회들은 신학적인 이유나 전도지역상의 이유와 같은 건전하고 하나님의 뜻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분열 이외에도 정치 경제적인 이권이나 지방색이나 인종 등에 기인한 건전치 못한 분열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계속해서 교회는 연합체임을 고백합니다.

교회가 연합체라는 말은 많은 원자들을 무질서하게 모아놓은 어떤 집합체가 아닌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임을 뜻합니다.

이 유기적인 생명체 안에서 성도들은 나이와 출신과 학려과 빈부와 계급을 뛰어넘어 모든 성도들을 유기적인 몸의 지체로 존중하고 아끼는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성령의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진 교회공동체에 관하여 고백한 뒤에 비로소 성도 개개인에게 임하는 특별한 사역을 고백합니다.

 

첫 번째 사역은 죄를 사해 주는 사역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인간들이 스스로 범한 죄도 가리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담으로부터 온 인류에게 전가되어 온 인류를 태어나기 전부터 운명적으로 죄인의 굴레 속에 갇히게 하고,

또한 사망의 형벌을 받게 한 원죄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이 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전가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로움이 우리에게 또 다시 전가되어서 우리는 이 의로움을 힘입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서게 되며,

우리의 속사람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죄의 세력은 뿌리가 뽑히고,

우리의 영혼은 그 속사람으로부터 거둡나게 됩니다.

 

두 번째 사역은 몸이 다시 사는 사역입니다.

죄를 사함받음으로써 영혼이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장차 몸까지도 다시 사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모든 인간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바로 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를 감싸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은 하나님의 불같고 추상과 같은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영생의 나라로 인도할 것이며,

이 영생의 나라에서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신 삼위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거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시는 삼위 하나님을 또한 날마다 새롭게 감도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는 삶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소리내어 믿음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들]

지금까지 우리는 그동안 배운 내용의 핵심을 총정리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매주일 입을 열고 소리를 내어서 사도신경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를 간단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본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마음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가리키고 입은 인간의 외면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때 우리의 전 인격을 드려서 겉과 속이 서로 위선되거나 분열됨이 없이 통일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표현하라는 뜻입니다.

생각 따로 말 따로 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믿으면 그 생각을 그대로 말로도 표현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인격과 행동과 삶 전체를 드려서 신앙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표현은 사실상 우리를 주님을 위하여 고난 받는 길로 초청하는 권고입니다.

요한복음9장22절이나 12장45절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으면서도 유대교로부터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서 입으로 고백하는 일을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사도 바울이 권고를 하던 때도 역시 공중앞에서 고백하는 것은 곧 핍박을 받고 때로는 신앙고백 때문에 순교를 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마음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곧, 주님을 위한 고난을 받는 길로 우리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고난과 핍박과 때로는 순교가 바라보이는 상황에서도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을 과연 고백할 수 있느냐?

이렇게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자주자주 표현하는 것은 주님에게 우리의 마음을 더 잘 알릴 뿐만 아니라 또 우리의 마음이 흩트러졌을 때 우리의 마음을 다시 주님께로 집중하게 하는 경건훈련으로서 매우 유익합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마음을 자주자주 상대방에게 알리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마음속에 신실하고 곱게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자주자주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 표현함으로써 신뢰와 사랑이 한층 더 견고해지고 또 자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에 의하여 형식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형식에 의해 마음이 좌우되기도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자주 우리의 이비을 열어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흩트러졌던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또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자라나는 유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헤브론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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