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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나?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면서 세례요한에 대하여 설교를 하는 경우를 자주 듣지만 예수님의 사역과 세례요한의 역활을 정확하게 전하는 분이 귀합니다. 잘 아시면서 설교시간에 메세지에 충실하다보니 설명을 못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주로, 설교시간에 흔히하시는 내용은 잘아시지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세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앞에 세례를 받으러 오자, 요한이 달려가서 제가 선생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것인데, 오셨습니까?” 하며 만류하였습니다. 대개가 이런 멘트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게 어때서?? 일맥과 오늘도 이 문제를 같이 풀어 봅니다.
ⓐ구약에서부터 해결해야 답이 나옵니다. 구약(舊約)레위기 1장에 의하면 인생의 죄를 양의 머리에 지우고 속죄하는 법이 있었습니다.소,양과 염소들은 떼 중에서 흠없는 수컷으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을 드릴 때에 제사 드려지는 짐승을 끌고 회막이나 또는 성전에 나와서 죄인이 직적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당사자가 잡아서 그 피는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번제단 사면에 그 피를 뿌립니다. 또 당사자는 그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뜹니다. 그리고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 제사장에게 주면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우고, 또한 그 행동은 번제희생물(동물)이 당하는 죽음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양을 잡아서 드리는 제사가 불완전했습니다. 양을 잡아 드리던 제사 는 우리의 죄를 영원히 씻는 데는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가 우리의 죄를 온전하게 씻을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구약 시대의 속죄 제사가 우리의 죄를 온전하게 씻을 수 없었습니까? 비록 한 가지 죄를 씻어서 깨끗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다시 죄를 짓게 되면 지금까지 드린 그 제사는 무효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죄를 다 씻었어도 다시 죄를 짓게 되면 지금까지 드렸던 속죄제는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 되시려고 오신 예수님 ⓒ세례를 거절하는 요한 ⓓ 세상 죄를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나아가는 것이지, 우리의 공로나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 귀한 의(義)가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구약(舊約)의 제사 방법이 예표(豫表)하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레위기 4장에는 속죄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안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죄가 그 제물에게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그냥 남겨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십니다. 우리는 긍휼히 여기시지만 죄를 긍휼히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죄를 씻으시기 위해서는 분명히 죄를 심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지 아니하면 누군가가 대신해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약 시대 때는 양이 범죄한 인간을 대신해서 심판을 받았고, 오늘 이 시대에는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를 위해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한 온전한 제사를 드리러 이 땅에 제물로 오셨다는 것 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구약 시대에 양을 잡아 드리던 제사와 다른 제사,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제사, 즉 과거 사람들의 죄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죄나 미래에 살아 갈 사람들의 죄를 전부 다 영원히 사하는 제물인 어린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제사를 드려서 모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 제물로, 화목 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도 이제 예수님께로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약 시대에는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죄가 넘어갔듯이, 죄를 예수님께 넘기기 위해서는 우리도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 인류가 전부 다 일일이 개인적으로 예수님 머리에 안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전 인류를 대표해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넘겨 버리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이 온 인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예수님께 안수해 버리는 광경을 요단강 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는,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요한은 예수님이 세례를 하라는 그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의를 이룬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죄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죄가 사해지면 모든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가 남아 있으면 결코 ‘모든 의’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어떻게 해서 모든 義를 이루게 됩니까? 그 세례가 어떻게 모든 의를 이루겠습니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세례 요한이 예수님 머리에 안수를 하게 됩니다. 요한이 예수님 머리에 안수하는 그 세례의 안수는 그냥 세례식을 위한 안수가 아닙니다. 바로 구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나 염소를 끌고 와서 그 제물에게 죄를 넘기기 위하여 했던 안수와 같은 것입니다. 침례교인은 이 진리를 모르기에 무조건 침례만 받으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이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그 죄가 양이나 염소에게 건너갔듯이, 우리의 죄도 예수님께 안수해서 넘겨주어야 하지만, 우리가 일일이 안수를 할 수 없으니까, 세례 요한이 전 인류를 대표해서 요단강에서 예수님 머리에 안수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죄가 다 예수님께 넘어가야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 죄가 사해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에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기 위하여 세례 요한에게 안수를 받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 머리에 안수를 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세례는 평범한 세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 세례를 통해서 모든 인류의 허물과 죄가 예수님께 건너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에게 나아왔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세례를 통해 우리의 죄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 건너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세상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을 심판하실 때 십자가 위에서 얼굴을 돌리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로부터 얼굴을 돌리셨습니까? 하나님이 예수님께로부터 얼굴을 돌리셨다는 것은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얼굴을 돌리실 때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아들을 버리신 것은, 바로 그 무서운 죄가 예수님 머리에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예수님께 옮겨졌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를 다 지신 가장 큰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옮겨졌기 때문에 주님이 죽으실 수가 있지, 우리 죄가 예수님께 옮겨지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다 건너갔다면 우리는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건너간 때는 2000년 전입니다. 우리는 시공(時空)의 제약 속에 살기 때문에 2천년하고 따질는지 몰라도, 하나님은 영원한 것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것을 보고 계시지 어떤 순간 속에 일하시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순간 속에 일하시는 것 같지만, 영원을 계획 하고 일하시기 때문에 2000년 전이나 2000년 후가 없고, 하나님의 시계는 과거나 미래 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영원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이사야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넘겨받지 아니하고 어떻게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실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이미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넘어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이미 그 죄도 넘어갔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속에 죄가 있다고 ‘생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기억나는 그 모든 죄들은 이미 십자가 위로 넘겨져서,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는 그 죄가 어떤 죄든지 간에 이미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했습니다. 형벌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셨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다시 우리에게서 심판할 죄를 발견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의인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여러분들의 죄를 씻으셨습니까, 씻지 않으셨습니까?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온전하게 씻으셨다면 나는 죄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씻으셨습니까? 성경은 영원히 씻으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고 성경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씻었다면 우리 죄가 없어야 하고, 만일 씻지 않았다면 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의 죄를 씻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자기의 죄를 씻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십자가를 믿지 아니하므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가 우리 죄를 씻지 못했다면 헛 죽은 것이고, 그 죽음은 개죽음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명백하게 우리 죄를 씻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함으로써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씻어 놓으신 사실을 믿음으로 마음이 죄에서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들이 양이나 염소에게 안수해서 그 죄를 넘겨보내고 그 양이나 염소가 죽으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의 염소에게 안수했듯이, 세례 요한이 우리 죄를 예수님께 넘겼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안수를 세례 요한이 대신 안수함으로 우리 죄는 예수님께 다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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