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스크랩] 기도의 구분

하나님아들 2013. 3. 17. 23:48

기도의 구분

기도에 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라. 깨뜨려라. 믿는 것과 아는 것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진정한 크리스챤은 단지 하나님을 믿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수준에 이른 사람입니다.

 

1. 구도(口禱)

생각 머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문 제목에 의한 기도 특정한 목적을 위한 기도 대표기도 합심기도가 이에 해당합니다.

 

2. 심도(心禱)

마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형식이나 의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을 밝히 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영에 있는 것이 마음에 전달되고 마음에 있는 것이 생각에 전달되고 생각에 있는 것이 다시 말로 전달되어 표현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상실되어 버립니다. 최종적으로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는 마음에 있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린 아기의 마음을 읽는 엄마처럼 엄마에게 말이 아니라도 자신을 표현하는 아기처럼 하는 것이 심도입니다. 오랜시간 하는 구도보다는 짧은 심도가 더 중요합니다. 심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말 단순한 말로 합니다. 생각을 섞지 말고 마음을 아주 간단한 말에 담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하나님의 성품인 영성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로 말미암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얻은 크리스챤들은 바로 이 영이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영성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시 오신 성령님을 흙으로 된 우리 몸에 충만하게 담아야 합니다.

구원을 얻을 때는 성령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속에 오신 성령님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론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에게 그동안 때가 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때를 벗기기만 하면 지금도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성장 프로그램같은 것으로는 이제 안됩니다. 건물이나 성도의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내적인 성장이 더 중요합니다.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사도같은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마냥 달라고만 하는 부르짖는 기도에서 영적기도로 돌아서야 합니다.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도를 목회자의 종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목회사역의 생명력입니다. 앞으로 기도로 영적세계에 대하여 뚫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풀어줄 영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머리는 기능적인 부분입니다. 모든 일을 머리로만 기능적인 부분으로만 살려고 하지 맙시다. 그럴수록 머리가 아파집니다.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훈련시켜 마음으로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마음을 활동시켜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의 장소입니다. 묵상을 통하여 침묵의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살려야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묵상과 침묵을 통하여 내면을 치유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이를 훈련합시다. 마음이 내 삶을 지배하게 합시다. 심령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되면 하나님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전에는 마귀가 내 삶을 지배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다스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솟아오르고 능력이 넘쳐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단계에만 머무르지 맙시다. 그 다음의 화평의 단계에 이르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다시 거기서 일치의 단계에까지 이르려고 나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평의 단계에서 일치가 아니라 일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 교제의 관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마르다는 주님과 일을 통하여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의 관계를 가지려는 마리아를 더 사랑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또한 바리새인들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일의 관계 행위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였지 사랑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마지막에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도 깨뜨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주tql니다. 주님을 깊이 알기전에 일하려고 하지 맙시다. 주님과의 관계를 일의 관계로 맺으려고 하지 맙시다. 사랑의 관계 주님이 없으면 못사는 관계 주님이 나를 믿는 관계 이런 관계를 맺으라. 잘못된 관계에 머무르지 맙시다. 적당한 수준의 관계에 머물러 있지 맙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관계 하나님과 사랑으로 손잡고 일하는 관계로 나아갑시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손잡으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깊은 교제가 우선입니다. 이를 위하여 기다리라. 관계를 위하여 먼저 시간을 보내고 노력합시다. 하나님을 알려고 합시다. 이를 위하여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일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인간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력이 넘치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열매를 맺어야 참 열매가 됩니다.

외부적인 환경과 분리되고 평안을 느끼고 그 중에 짧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깊은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씀을 듣는 차원은 너무 낮다. 귀로 듣고 이성으로 듣습니다. 그리고 머리로 분석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영은 눌려 있고 잠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영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영을 깨우는가? 입술의 기도 말의 기도가 아니라 영적기도로 깨운다.

영이 잠든 상태로 드리는 예배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이러한 예배는 굳은 신앙 죽은 신앙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영이 질식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심도를 통해서 영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영을 활성화시켜야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영이 잠자고 있으면 성령님도 잠잘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맙시다. 성령이 활동하지 않으면 마귀가 이성을 통해서 본능을 통해서 우리를 우겨싸고 덤벼듭니다.

1). 일반적 심도:

묵상(Q.T) - 명상 - 침묵기도를 말합니다. 이 단계를 넘어가면 깊은 영적 기도인 신비적 심도의 단계로(수도원에서 7-8년의 수련으로 가능한 수준) 들어갑니다.

2). 신비적 심도:

능동적 관상기도와 수동적 관상기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하는 기도입니다.

(1). 능동적 관상기도:

하나님을 독대하는 심도로서 내가 주님을 찾아가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단계를 넘어가면 수동적 심도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2). 수동적 관상기도:

주님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느낄 수 있고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수준의 심도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가까움으로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나의 한 부분이 되고 호흡처럼 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완성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기도입니다. 이정도 수준이면 영-심리-현실적인 모든 부분에서 윤택해지고 자유해지고 풍성하게 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바로 이러한 심도를 함으로 순교까지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이 땅과 천국은 바로 문 하나 건너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이들에게는 조직도 없었고 목회자도 없었지만 강한 능력으로 신앙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계속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면 어느 순간에 묵상-능동적관상-수동적관상 순으로 단계를 하나씩 넘어가게 됩니다. 이 단계가 되면 하나님과 딩구는 기분으로 밤을 새우더라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라고 부르면 바로 이 단계로 들어갑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입니다. 이 수준이 되면 사랑하는 분과 함께 딩구는 시간이므로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이러한 시간이 있어야 풍성하게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독대합시다. 이것이 진짜 기도이고 이것이 진짜 보화입니다. 그 속에서 많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며 내가 주님 품에 푹 안기게 됨으로 세상과 내가 간곳이 없게 되고 그 기쁨이 터질 것 같으며 시간을 초월하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신앙이 바로 서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면서 점점 하나님의 것이 내게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로 흘러들어오고 이것이 다시 내게서 사람들에게로 흘러 나가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3년공백이 바로 이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도는 진정 귀한 보배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관상기도를 했기 때문에 생명을 던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묵상기도

1). 단순묵상:

언어나 다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기도로서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세상은 육체의 본능과 이성을 자극함으로 자연히 이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쪽이 활성화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기도로 이 벽을 넘어야 합니다. 묵상기도는 절대로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묵상기도는 비록 제목기도가 아니라도 절대로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잠자는 것이 시간낭비가 아니듯 묵상기도에서 제목기도를 아니했더라도 오히려 우리의 영을 강하게 하는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묵상기도 영적기도 관상기도 이 모든 것이 매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 품안의 갓난아이들은 잠을 많이 자면서 순진하고 맑게 자립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린 아이가 되라고 하십니다. 순수해지고 단순해지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받지 말고 복잡해지지 말며 혼잡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훈련을 받아야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는 있으나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순 묵상 기도속에서 하는 대부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이성은 사랑의 기능이 없습니다. 사랑은 심령이 하는 것입니다. 굳어진 심령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면이 깨어나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받을까? 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냥 수박 겉핥기식의 관계였는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 동안의 많은 스트레스 고정관념들 불안들이 치유가 됩니다. 전에는 내 차원에서 다 해결하려고 함으로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더 깊은 차원에서 해결함으로 자연스럽게 됩니다.

 

2). 추리묵상: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상상을 통해서 머리속에서 영상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차츰 상상한대로 좋은 상황이 일어납니다. 나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정결해져 있는 모습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해주는 모습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그 모습을 영상화하시기 바랍니다. 그 모습에서 하나님을 만나 보십시요. 이러한 기도는 진실로 보물창고입니다. 이러한 묵상기도의 바다는 깊고 넓습니다. 들어갈수록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꺼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경우:

(1).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시는 예수님.

(2). 수모 당하시는 예수님.

(3). 베드로의 나타남과 3번 부인.

(4). 빌라도의 궁전 - 채찍 맞아 괴로워하시는 예수님.

(5).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시는 예수님.

(6). 힘에 부쳐서 쓰러지는 예수님.

(7).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시는 예수님.

(8). 인간들을 보면서 죄 용서를 구하시는 예수님.

(9). 군중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시는 예수님.

단순히 사건만을 묵상하지 말고 나와의 관계 이유 삶의 적용 사건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3). 대화묵상:

부부나 친구가 마주 앉아서 대화하는 것처럼 묵상중에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입니다. 진실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이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계심을 믿고 진실하게 고백 회개하며 마음으로 그분의 반응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일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의 의견 하나님의 뜻을 받게 됩니다. 그 일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3자의 위치에 서 보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뜻을 받게 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결정은 감정으로 처리하지 않고 깊은 묵상 중에 하나님의 뜻을 받은 후에 내린 것입니다. 깊은 묵상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게 해줍니다.

 

4). 복음묵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말씀에 깊이 잠기어서 말씀의 참뜻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입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깊이 음미할 때 같은 단어를 여러 가지 다른 단어롤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그 내용을 나의 마음에 자꾸 더 확실하게 심어주고 새겨주는 것입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 대명교회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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