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일곱 교회의 지리적 배경
아시아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적 배경은 교훈이나 약속과 무관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곱 교회가 자리한 지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교회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 내용 가운데는 현 믿음의 상태와 약속 그리고 이에 대한 성취 내용이 새 예루살렘의 도래와 더불어 기록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마다 처한 투쟁의 대상이 언급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약속의 말씀대로 교회가 당할 투쟁의 상황과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할 때에 성취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① 에베소(Epenetus)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1~7)
에베소란 ‘인내’란 뜻으로서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의 수도이다. 게스터 강구에서 5마일 상류에 있는 산유지다. 현재의 이즈미르에서 80Km 위치한 도시로서 로마국의 행정상, 교통상의 중심지이다. 에베소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고대에 활약한 작가들의 작품이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얻어진 수천 점의 비문에 의존하지만, 도시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알 수 없다. 역사에서 에베소의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기원전 13세기경의 히타이트 성경의 헷 족속 비문에서인데 그 비문에 APASAS라고 불렸던 도시가 바로 이 지역으로 추정된다.
기원후 1세기에 에베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37~42년 사이에 기독교 전도에 주력하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게 되자 사도 바울(Paul)은 그의 2차와 3차전도 여행 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선교를 벌리고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또한 사도 요한도 그리스도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받고, 예수 모친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살면서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에베소에 대해서는 성경에 몇 가지 사건이 소개되고 있다. 첫째,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시에 이 성에서 전도하였다(행18:16). 둘째, 3차 여행 시에 이곳에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성신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여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본 요술객들이 가지고 있던 은 5만 어치의 술서를 소각하고 신종하였다(행19:1~20). 셋째, 바울이 마게도냐 선교에서 귀로 시에 빌레도에 이르러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너희는 깨여 내가 3년이나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다(행20:17~31). 넷째, 사도 요한이 이성에 오랫동안 감독으로 있었으며 요한복음과 세 서신을 발송하고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아 이곳 교회에 보냈다(엡 1:1). 다섯째,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두기고 등이 이곳 교회의 교역자였다(딤전 1:3, 행 18:18, 19, 24, 20:4, 21:29, 딤후 4:12). 여섯째, 세례요한의 제자 오네시모 그리고 알렉산더, 에베드리오, 스게와의 아들 후메내오, 부겔로, 허머네게 등의 고향이다(행 19:103, 14, 24, 딤후 1:15~18, 4:14, 딤전 1:20).
64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하자, 요한은 그를 대신해서 에베소의 기독교 지도자가 됐다. 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버가모, 서머나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지중해 연안의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해, 이곳에서 계시록을 썼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이 피살당하자 요한도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썼다. 요한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에베소에 묻혔으며,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사도 요한의 교회’가 세워졌다. 7~8세기에 들어와 에베소는 다른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의 침략을 감수해야 했으며, 결국 1304년에는 터키인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에베소는 지진으로 황폐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에베소 교회에게는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말씀했다. 그리고 처음 사랑을 버림을 돌이키지 않을 때에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신다 했다. 에베소 교회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할 뿐만 아니라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내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이는 이론적으로 잘 훈련된 교회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와 그에 따르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고난 가운데서도 참으면서 복음에 협력 봉사하는 교회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아니라 교조적으로 제도화된 형식적인 면이 강하다. 이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으로 잘 드러나는데 이는 이미 예수께서 예고하신바가 있다(마 24:12). 이런 교조적인 교회는 당대에는 진리를 지킬 수 있으나 이를 계승하지는 못한다(계 2:4~6). 그러나 니골라당의 신비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인 비진리를 분별할 수가 있으므로 주께서 진리를 계승하는 교회로 돌아서게 하사 낙원에 있는 생명과를 먹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이를 이루신다(행 20:29~32 참조, 계 22:2, 14).
② 서머나(Smyrna)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8~11)
‘서머나’라는 이름은 ‘몰약성’이라는 뜻으로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됐다. 8, 9 피트의 높이로 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라는 몰약이라는 가시 돋친 나무는 쓴맛을 지니고 있다. 몰약의 향기는 대단히 훌륭하고 유명하여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께 드리기 위해 준비해 올만큼 값지고 훌륭한 향료이다. 특히 두드리고 으깰수록, 짓눌리고 부서질수록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고 한다. 이름의 특성을 생각할 때 고난과 핍박이 아무리 심할지라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따라 순교의 향기로 역사를 장식한 교회를 서머나 교회로 명명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서머나 교회는 서기 100년부터 콘스탄틴 황제가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공인한 밀란의 칙령을 반포한 313 년까지 혹독한 핍박을 치른 시대를 대표한다. 소아시아 서해안 헬메안만 내에 있는 성으로 에베소에서 북으로 36마일, 이스탄불에서 약631km 떨어진 지점에 에게 바다를 향해 위치한 유명한 항구 도시로서 화재와 지진으로 여러 번 파괴되었고 외적의 침략으로 거의 폐허되었으나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한 후 재건하였다.
그 후 이 성은 다시 건축되어 유명한 도시가 됐다. 현대 이름은 이즈밀이다. 주전 3,000년부터 형성된 항구 도시로서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에 주둔하였고, 산 위에 성채를 건설하였다. 서머나는 주전 3~2세기 희랍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고 항구 상업 도시로서 유대인들이 이곳에 많이 살게 됐다.
서마나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일곱 도시 중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유일한 도시다. 주전 3,000년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주전 800년 경 도리아인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로부터 쫓겨난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터키 중서부에 걸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유명한 장님 서사시인 호머(Homer)가 태어나 활약한 곳도 바로 이곳 서머나였다. 주전 3~2세기 희랍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고 항구 상업 도시로서 유대인들이 이곳에 많이 살게 됐다. 유대인들이 이곳의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고, ‘유대인들의 훼방’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머나는 비잔틴 제국, 셀주크-오토만 제국 그리고 터키 등의 역사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 지리적인 중요성 때문에 계속 번성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도시 곳곳에 기독교적 유적을 남겨 놓았으나 아랍 및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기독교 유적은 거의 사라졌으며 수차례의 자연 재난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지가 대파되었으나 오늘날 여전히 옛날의 영화를 누리고 있다.
서머나는 에베소 다음가는 부유하고 번영한 항구 도시다.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살았는데 로마정부와 결탁하여 기독교인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 이곳에 있던 유대인 개종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설림 되었고 그들은 로마의 황제 예배를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로 인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특히 156년에 서머나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각했다. 지방 총독인 스타티우스는 빌라델비아 등지에서 잡아 온 11명의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야수의 먹이로 희생시켰다. 이때 폴리캅은 밀고로 체포된 상태에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스타티우스는 그를 살리기 위해 그의 신앙을 부정하라고 말했으나 “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 하고 거절하였다. 군중들은 그를 사자 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으나, 총독은 경기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에 성이 난 군중들은 물러가지 않고 그를 장작더미에 올리라고 외쳐댔다. 할 수 없이 화형에 처했는데 군중들은 “이 사람은 우리 신의 파괴자다. 기독교인들의 아버지다”라고 외쳤는데 지금으로 보면 기독교인으로서 최대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에도 그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그가 세웠던 교회 위에 현대식으로 폴리캅 기념교회를 세우고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마나 교회에게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말씀했다. 그리고 마귀가 장차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겠지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말씀했다. 서머나 교회는 투쟁하는 교회의 수준에 달한 교회로서 환란과 궁핍과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궁핍에 대해 실상은 부요함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위로해 주신다(고후 4:9~10). 항상 부요와 궁핍은 상대적이지만 성도에게는 부요롭게 하시기 위해 궁핍케 하시는 통시적 해석이 가능하게 하신다. 따라서 부요롭게 하시기 위한 목적을 깨닫는다면 현재 당하는 궁핍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한데 이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복음의 가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후 6:3~13). 서머나 교회의 투쟁의 관점은 환란과 궁핍함인데 특별히 환란을 주도하는 중심세력이 유대인의 훼방이다(히 13:5~6, 계 2:9). 그러나 유대인의 회란 유대인 회로 가장한 사단의 회로서 교회의 중요한 대적이다(고후 11:14). 이는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실 준비된 싸움으로서 예수께서 예고하신바 있다(마 10:17). 이것이 서머나 교회가 경계해야 할 유대주의로 무장한 대적이다. 따라서 죽으면 산다는 복음의 원리대로 충성을 다 할 때에 면류관을 받게 된다(히 11:1, 계 20:4).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과 싸워 이기신 것처럼 지금도 성도를 위해 싸우고 계시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성도는 둘째 사망에 참여하지 않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이를 이루신다(요 11:25~26,계 21:7).
③ 버가모(Pergmos)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2~17)
버가모는 ‘높여졌다’는 뜻으로 소아시아 서부에 있는 무시아의 도시. 에게 바다 연안에서 24km 내륙에 있다. 앗탈루스 왕족의 수도로서 주전 3~2세기에 문화 도시로 번성했고 유네미스 2세(주전197~159)가 도서관을 창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버가모는 이교의 신전이 많이 있으며 특히 높이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의 신전은 ‘사단의 위’로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계 2:13). 로마 ‘황제 예배 신전’이 세워져 기독교에 있어서는 초대교회부터 싸움의 도시로서 초기에 순교자 안디바가 여기서 순교했다.
버가모 교회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해발 300m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로서, 로마지배 중 아시아 전체를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된 총독부가 있을 만큼 정치, 행정의 중심지요 20만권의 장서를 가진 대규모 도서관이 있는 문화의 도시였다. 이곳은 제우스신의 생지라는 것과 연관되어 지어진 제우스 신전을 비롯한 디오니소스 신전, 아데나 신전,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과 로마황제 숭배를 위한 3개의 거대한 신당 등 갖가지 우상숭배 신전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사단의 위, 즉 사단이 득실거리는 곳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우상 숭배와 세속화되어 가는 도시 분위기 속에서 사단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아야 했다.
니골라 당이라는 사단의 위가 있는 지역에 설립된 버가모 교회에게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말씀했다. 그리고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인 고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울 것을 말씀했다. 버가모는 제우스신의 고향으로 알려 진만큼 제우스 신전과 아스킬레피우스(의술의 신으로 뱀을 상징한다) 신전이 있어 세속적이고 철학적인 영지주의가 만연한 지역이다(계 2:13). 또한 발람의 교훈을 따라 우상숭배와 음행의 세속적 문화가 만연한 지역이다(마 15:19, 마 7:22, 골 2:8). 버가모 교회의 성도 가운데 안디바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까지 당한 심한 박해가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발람의 거짓 선지자의 교훈과 세속주의와의 싸움에서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세운 교회임을 깨닫고 말씀의 검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신다(요 1:42, 마 16:16~18). 따라서 주께서 세우신 교회를 대장되시는 주께서 말씀의 검으로 친히 싸워 이기셔서 하나님의 말씀인 만나를 주시고 반석 위에 굳게 세우실 것에 대해 약속하시고 이를 이루신다(계 19:15, 22:4, 17).
④ 두아디라(Thyatira)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鐵杖)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18~29)
두아디라는 ‘회생’이라는 뜻으로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약 32km지점에 위치한다. 소아시아 루디아 도에 있는 성읍으로 빌립보의 여신도 루디아의 고향이다(행16:14).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의 하나(계1:11, 2:18)로서 음행, 간음, 사탄의 깊은 것이라 하여 심하게 책망하였다(계2:20~24).
버가모와 사데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B.C. 7세기 경 리디아(Lydia)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pelppia)’라 불렀다. B.C. 3세기경 Seleucus 1세는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시켰으며, 한 때 로마와 동맹 관계에 있던 버가모 왕국의 지배 하에 있다가 로마의 속령이 됐다.
비잔틴 제국 때에는 크게 번성하였으며 1425년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두아디라의 역사적 중요성은 군사적인 것과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이다. 두아디라는 지형상 훌륭한 요새라고는 할 수 없으나 지리적으로 길고 넓은 골짜기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이 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케 했으며, 이때 이미 상인조합(길드/Guild)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 16:11~15 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에 빌립보에서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를 만났다고 되어 있다. 루디아는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현재 두아디라는 과거의 어떤 유적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도시의 한 귀퉁이에 아마도 아폴로 신전으로 보이는 신전 하나와 회랑이 있는 길 그리고 하나의 커다란 비잔틴 교회 기둥들만이 부서진 상태로 그냥 방치되어 있다.
동방으로 통하는 대로상의 상업 중심지로서 오늘날의 소도읍 아키사르이다. 옛 시대의 잔재는 남아있는 것이 없다. 질그릇에 대한 언급은 그 도시의 산업중 하나를 반영시켜 주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산업은 염료(자주빛) 업이었다. 자주장사로서 빌립보에서 바울을 만났던(행16:14) 루디아는 두아디라 출신이었고 또 집에 돌아가서 그 곳에 교회 세우는 일을 도왔다. 두아디라 교회의 여자 교인들을 그들의 믿음에서 떠나 부도덕에 빠지게 하였고 그 악한 영향으로 인하여 요한은 구약의 인물과 짝을 이루는 제2의 이세벨라이라 표현하였다(행 2:20).
두아디라는 버가모와 서머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공업 도시이다. 주전 190년 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태양신 ‘아폴로(Apollo)’와 ‘아데미(Diana)’, ‘삼바다(Sambatha)’ 등의 신전이 있으며, 빌립보에서 개종한 자주 장사 루디아의 출신 지역이다(행16:14).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두아디라 교회에게는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심판하실 때에 모든 교회가 예수를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라 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로 무장된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는 거짓 선지자에 의해 성도로 하여금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잘못된 미혹을 받고 있다(마 15:19, 마 7:22). 이세벨은 본래 시돈의 공주로서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가 된 후 바알신을 섬기게 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영적 간음을 행하게 한 거짓 선지자이다(왕상16:31; 왕하9:7). 따라서 불꽃과 같은 눈으로 성도를 살피시는 주께서 거짓 선지자를 심판하실 때까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을 것을 교훈하신다.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은 성도에게는 이단의 경계 외에는 아무런 짐을 지우지 않으신다. 이기는 자에게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신 곧 광명한 새벽별이신 주께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계 22:16). 그리고 주께서 철장(鐵杖)을 가지고 질그릇 깨뜨리시듯 저희를 다스리실 것을 약속하시고 이를 이루신다(계 20:4).
⑤ 사데(Sardis)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1~6)
사데란 ‘남은 물건’이라는 뜻인데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 있던 루디아의 수도로서 서머나 동쪽 약 80Km 지점 트몰러스 산 북쪽 기슭 헐머스 평야 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B.C. 1200년경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지대이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상업 도시로 번영하였으며 직물과 귀금속 생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B.C. 6세기와 3세기 두 차례에 걸쳐 파괴됐다.
이곳에는 여신 시빌리의 신전이 있었고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됐다. 사데 교회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자”라는 경고를 받게 되었던 것도 이 같은 밀의 종교의 부도덕한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계 3:1). 지금은 서머나 빌라델비아 철도의 정거장 부근 폐허에 세워진 한 촌에 그 이름이 붙어 있을 뿐이다.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B.C. 1200년경에 세워진 도시로, 그 후 수세기가 지난 후 산 기슭에 제2의 도시가 형성되어 고대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 자리를 잡게 됐다. B.C. 6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 크로수스 왕은 서구인들에게 부를 상징하는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사데는 당시 부유한 상업도시로 직물, 귀금속 생산 및 사금이 유명하였으며 인류 최초로 금화를 만든 곳이기도 했다. ‘마이다스의 황금의 손’ 전설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아시아 지역의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신전이 있었으며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곤 하였는데 사데 교회가 경고를 받게 된 것은 교회가 매우 번성하고 활동적인 반면 이러한 ‘밀교’의 부도덕한 영향을 받았으며 외관상의 일만으로는 완성된 일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로마 시대에도 이곳은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14년 프린스턴 대학 팀이 발굴을 시작하여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사용되었던 교회의 유적은, 거대한 아데미 신전의 뒤편에 있으며, 아데미 신전은 B.C. 335년 Alexander 대왕에 의하여 재건되었는데 이 신전은 희랍 시대에 가장 큰 신전 중의 하나로 크기가 약 100m X 50m이었다.
사데는 두아디라 남동 약 48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루디아의 수도였다. 상업적으로 번창하고, 염직 공업과 금모래가 유명하여 사치와 부의 도시가 됐다. 하지만 물질적 부요는 곧 내적인 피폐를 가져와서 안일과 부도덕의 모습으로 교회에 침투하게 된 것이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말씀했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는 흰 옷을 입게 하며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하며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 했다. 사데 교회는 성령의 감동을 입은 교회의 사자를 통해 살핀 즉 믿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죽은 믿음으로 만연한 교회이다(요 9:41). 세속주의에 만연하여 시대를 분변치 못하는 전형적인 말세적 교회의 모습이다(마 16:3). 다행히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가 몇 명이 있을 뿐이다(눅 18:8). 이렇게 세속주의가 만연한 상태에서도 합당한 믿음을 주셔서 주와 함께 동행하며 정절을 지키는 자는 흰 옷을 입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시고 이를 이루신다(계 22:14, 20:15).
⑥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7~13)
빌라델비아는 ‘형제 우애’란 뜻으로서 리디아(Lydia) 왕국 시대에 칼라테부스(Callatebus)라는 이름의 도시가 건설됐다. 그 후 B.C. 159~138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의 앗탈로스(Attalus) 2세, 필라델푸스 (Philadelphus)는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지역에 도시를 건립,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라델비아라고 명명했다. 사데에서 4키로 동쪽의 소아시아 루디아 성읍이며 소아시아 고원지대와 서머나 사이의 중요한 산업도시이다.
주후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이 도시가 대파 되어 이 도시에는 아무런 고대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이미 마을이 들어서 있어 발굴도 불가능하다. 다만 기독교 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 하나가 파괴된 모습으로 나마 남아있다. 이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져 사도 요한에게 바쳐졌고 순교자가 생기리만큼 1300년 이후 대감독 구역이 됐다.
일곱 교회 중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는 교회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것 같으나 내실이 있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 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현실을 잘 극복해 나갔다. 그래서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된다. 오늘날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습이다.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곳은 서머나와 루디아(사데) 왕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는 부요했으나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말씀했다. 그리고 성전에서 다시 나가지 아니할 것을 말씀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 교회이다(마 17:20). 이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임으로 그 주권이 오직 주께 있다(마 16:16~18). 주를 향한 마음이 열린 신실한 성도들에게 오히려 거짓 선지자 몇을 무릎을 꿇게 함으로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 인내의 말씀을 지킴으로 마지막 때에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을 받았다(시 23:4, 사 43:2).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일에 충성 할 수 있은 즉 잡은 것을 굳게 잡으면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다(계 21:25~17, 마 25:21). 주께서는 약속대로 새 예루살렘 성에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쓰신다(계 21:12).
⑦ 라오디게아(Laodicea)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14~22)
라오디게아는 ‘정의’라는 뜻으로 소아시아 부루기아의 수도이며 골로새에서 서쪽으로 16마일, 에베소에서18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Seleucid왕가의 Antiochus 2세가 그의 부인 Laodice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라오디게아라 불렀다. 성서시대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hia, 성서상의 부르기아)의 수도로 교통의 요지인 리커스 계곡에 위치하여,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발전했다. 라오디게아는 근처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온천물이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질병치료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는 안약의 산지로 유명하여 의료도시로서도 명성을 얻게 됐다.
이곳에서 6.5Km 떨어진 히에라볼리의 온천물이 수로를 통해 라오디게아로 흘러 들어오게 하였다. 라오디게아의 온천물은 이곳에 도착하면 식어서 덥지도 차지도 않은 물이 됐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이 덥지도 차지도 않음을 책망하고 있다.
바울의 전도로 복음이 전해졌으며(골2:1) 요한이 묵시를 받아 근방 6교회와 같이 권면했다(계1:11). 터키에게 정복되기까지는 신도가 많았으나 현재의 라오디게아는 없고 여러 번의 지진으로 땅속에 묻혀진 도시다. 이곳의 교회 터라고 보는 장소도 언제 어떤 교회 터인지도 잘 모른다. 이곳에는 현재 로마식 야외 운동장과 원형 극장 터가 발견됐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는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말씀했다. 그리고 증인들과 더불어 먹으며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 말씀했다. 라오디아 교회는 재정적으로 부요하나 신앙적으로는 형식적인 교회의 수준이다. 해 아래의 부요로움에 취한 세속적 교회로 냉철하게 이성적이지도 않고 가슴에는 뜨거운 열정도 없다(마 6:2). 마치 마비된 것처럼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 체 부족한 것이 없는 줄 안다(눅 12:19~21). 세속적 교회의 특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진정 부요함을 깨달아 알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사실을 보게 하라고 교훈하신다(요 9:41).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더불어 먹게 하라신다. 이렇게 말씀의 능력으로 이기게 하시고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신다(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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