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강
내적치유에 대한 정의
1.내적치유의 다른 명칭들
① 내적치유- 마이크 플린 & 더그 그래그(내적치유와 영적성숙),
주서택(내마음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 배용준 (내적치유),
김만홍(성경적 내적치유) 김한기(내적치유기도법 24단계),
허철 (내적치유를 통한 놀라운 자유) 강기호(내적치유) ,이성훈(내적치유)
② 깊은 차원의 치유- 찰스 크래프트(깊은 차원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③ 깊은 감정의 치유- 데이빗 A. 씨멘즈(상한감정의 치유)
④ 내면의 치유- 시어도어 답슨 (내면을 치유하는 기도).
팀 마샬(내면으로부터의 치유)
⑤ 내면세계의 치유-정태기 (내면세계의 치유)
⑥ 과거와 화해- 노만 라이트 (당신의 과거와 화해하라)
⑦ 상한마음의 치유-심관섭 (상한마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⑧ 전인치유 - 김종주 (왜 그럴까요?)
2. 정의
1) ⌜상한감정의 치유⌟ 를 쓴 David A. Seamands- 성령의 치유능력을 특정한 형태의 감정적/ 영적문제에 그 초점을 맞추는 기독교 상담과 치유기도의 한 상태이다.
2) Betty Tapscott- 내적치유는 속사람 즉 마음, 감정, 괴로운 기억, 꿈 등을 치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도를 통한 과정으로서, 그것을 통해 우리는 원망, 자기부정, 자기동정, 우울, 죄책감, 두려움, 슬픔, 미움, 열등감, 정죄, 무가치 등의 감정으로부터 해방된다.
3) ⌜깊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을 쓴 Charles H. Kraft- 그것은 전인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여 성령의 능력을 통한 사역이다. 인간의 질병은 대체로 감정적/ 영적인 부분에 연관이 있음으로, 내적치유는 그곳에 초점을 맞춘다.
이 사역은 그러한 상처의 근원이 되는 부분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적용하려 한다. 흔히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이러한 근원적인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에 내적치유는 때로 “기억의 치유”라고 불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환자를 치유하면서 흔히 당면하게 되는 구체적 문제는 용서하지 않음, 분노, 원망, 거부 , 자부심의 결여, 걱정, 성적인 문제 등이다.
4) C. C. C 의 주서택목사 - 인간의 정신적 문제, 내적인 문제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성경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다. 전인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며 성령의 능력을 통한 사역이다.
5) 전인 치유연구소의 김종주 장로- 마음속에 있는 깊은 기억의 상처를 성경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며 성령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거룩한 성화로서의 영성회복이다.
6) 갈릴리 영성훈련원의 배용준 목사- 상처로 인한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7) 광주 전인치유 영성훈련 센터의 이건복목사- 내적치유란 과거의 사건을 기억에서 지우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남긴 상한 마음과 상함 감정, 잘못된 고정관념, 가치관을 치유하여 상처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력을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바꾸어 비 진리적인 삶에서 진리적인 삶으로 살아가므로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되고 영혼의 성장과 성숙을 도와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3. 내적인 상처가 주는 영향
인간의 뇌는 마치 컴퓨터와 같이 입력된 모든 사건들을 보관한다. 시간이 자나면 모든 사건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망각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사라져 간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로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무의식)의 부분에 자리를 잡게 된다. 특히 우리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낸 과거의 고통은 나쁜 감정과 함께 저장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활동성 세균처럼 다fms 부위에 퍼져나가 현재 삶 가운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나 악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흔히 우리는 의식하는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는데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의식(무의식)가운데 있는 경우가 많다. 잡초는 낫으로 벤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뽑아야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문제도 밖으로 드러난 의식부분의 문제만 해결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무의식)의 문제도 같이 해결 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마음의 문제와 상처는 다 해결된 것으로 생각한다.
고후 5:17절의 말씀처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나의 과거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볼 때 그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Trinity Evangerical Divinity School의 교수인 Charles Sel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스천들은 공통적으로 거듭나면 유년기의 결함으로 인한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것을 나는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만나던 그날 예수님은 나를 변화시키지도 , 완전케 하지도 않으셨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지나간 기억들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는 진정한 과거의 해결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들에 대한 아무 처리 없는 망각은 결코 우리를 과거로부터 자유케 해 주지 않는다.
내적치유는 우리를 과거 속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건강하게 독립시켜 온전히 그리스도와 연합되도록 만들기 위한 필요작업인 것이다.
잠재의식은 지나온 모든 과거가 들어있는 창고이다. 이 창고는 계속 내가 문을 닫아걸고 안 본다고 해서 결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 나와 별개의 것이 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은 외부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삶 속에서 그 상처로 인한 결과가 나타난다.
1) 대인 관계의 어려움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가장 보편적으로 호소하는 증상이다. 이들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극단적인 어려움은 지나친 지배의 모습과 지나친 의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지나치게 지배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난 경우
모든 상황을 자신이 왕처럼 지배하거나 간섭하려고 한다. 이럴 때만 안정감을 유지한다. 이런 사람이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면 자신의 생각대로 가정을 독재적으로 끌고 간다. 만일 가정의 식구 중 누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자신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용납하지 못한다.
둘째,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난 경우
자신의 생각은 아무것도 없고 어릴 때는 부모의 의견대로 살다가, 후에 친구의 의견대로 움직이고, 결혼해서는 배우자의 의견대로만 움직이는 지극히 피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의존하게 되는 상대방에게 실망감을 느낀다면 온 천지가 무너지는 절망감속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의지의 대상을 찾지 않으면 살아 갈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서도 상대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마음안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인 관계에 있어서 반사회적, 적대시, 시기, 질투, 분쟁, 불신, 불쾌하게 함, 쉽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준다.
2)자신에 대한 자존감 결여
자신에 있어서 바른 자존감을 가져야 하는데 교만한 모습과 열등감의 모습을 가진다.
첫째, 교만한 모습은
다른 사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갖거나 ,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올때까지 깎아 내린다.
둘째, 열등감을 가지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진장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조금이라도 상한 태도를 보이면 즉시 하는 말이 “네가 나를 무시해!”이다.
자신과의 관계, 심리적인 관계, 신체적인 관계에 있어서 자기비하, 무가치, 자기거부, 증오, 혐오, 용서못함, 열등감, 우울증, 자기사랑, 이기주의 ,배타심, 의존감등을 나타낸다.
3) 삶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태도
자신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다른 사람 즉, 부모나 세상의 모순탓으로 돌리기에 누군가에 대해 원망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도 그에게는 서운하고 불공평한 분으로 인식된다.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는 매우 잔인한 성격으로 발전될 수 있다.
4)우울증과 강박적인 사고방식
아무것도 할 수없는 무기력한 상태를 느낀다. 바로 우울증이 나타난다.
또한 강박적인 사고는 신경이 쇠약해지면서 심해진다. 쇠약해진다는 것은 신경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인데 , 과연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죄책감이다. 성경은 우리 안에 죄책감이 있을 때 그 상태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시32:3-4=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이런 죄책감이 계속 지속되고 해결되지 않음으로 인해 신경은 더욱 예민해지고, 그러면서 강박적인 증상은 점차 확대되어간다. 결국은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5)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결여
왜곡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그의 눈이 바로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모습이 결코 바르게 이해되지 못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깊은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가지는 인상은 심히 부정적이다.
일관성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며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항상 나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셔서 인상을 쓰고 계시는 하나님,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나에 대해서 지겨워하시는 하나님..., 이런 숨겨진 마음의 느낌으로 인하여 심한 영적 의심과 공격을 자주 받는다.
이렇듯,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정적인 느낌을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으면서 포화 상태에 또 다시 무언가를 집어넣듯이, 하나님에 대한 좋은 말을 억지로 밀어 넣어 자신을 스스로 세뇌시키려는 노력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마음의 감정은 정직하다. 절대로 세뇌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의 좋은 감정은 좋은 관계의 흐름속에서 나온다.
하나님에 대한 좋은 감정은 그분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이어질 때 자연히 뒤따라오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해 나쁜 느낌을 가지 자에게 아무리 지식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려고 해봐도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그의 마음의 눈이 먼저 바르게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내 눈을 열어 주를 보게 하소서!”(시편 119:18)
6) 영적 삶의 굴곡과 침체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앙의 태도가 항상 주변의 상황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심한 굴곡현상을 보인다.
신앙 연수가 오래 되었는데도 생활 속에 어려움이 생기면 항상 근본적인 회의에 빠져서 하나님이 계신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등등의 유아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영적인 관계에 있어서 신앙의 의미를 잃게 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 신앙의 기복이 심하거나, 감정과 현실에 의해서 신앙이 좌우되거나, 말씀에 대한 불신, 죄에 대한 무감각, 하나님을 믿지만 거부감, 저항감, 불순종을 나타내게 된다.
4. 기질과 성격의 구분
1) 기질
기질은 심리학적인 용어/ 성품운 일반적인 용어(선천적)
Florence Littaur가 쓴 ⌜기질플러스⌟ 라는 책에 보면 그녀는 기질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며 그것이 각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모두 우리자신의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다. 우리들 중에는 화강암도 있고, 대리석도 있으며, 현무암도 있고, 사암도 있다.
이런 재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형태는 바꿀 수 있다 . 우리의 기질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금빛 재질로 태어나며 또 어떤 사람은 회색 빛 흠집으로 태어난다. 우리의 성장 환경, 지능지수 , 국적, 경제 형편, 그리고 부모의 영향력 등이 모두 우리의 기질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 면에 있는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기질이 바로 나의 참된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그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질이란 생리적 요소를 포함한 선천적인 속성이다.
2) 성격
성격이란 인간행동의 다양한 표현의 전체를 의미하며 후천적인 것을 포함한다.
잘못된 성격은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작품이다. 그것은 상처받은 아픔의 결과이며 죄의 결과이다. 잘못된 성격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다. 그러므로 잘못 형성된 성격은 반드시 바르게 고쳐야 한다.
잠재의식(무의식)은 우리의 성격을 형성하게 만든 뿌리가 들어있다. 대부분의 성격은 어머니 태중에 있을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조상으로부터 유전되어 내려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리 인생의 과거문제까지 치료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은 병든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분은 우리의 내면적인 상처들이 치료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마9:12-13절에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사야53:5절에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61:1-3절에도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기질과 성품은 바뀌지 않는 선천적인 것이지만 성격은 후천적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상한 마음과 상한 감정을 치료하여 성령의 지도와 인도를 받아 영혼의 성장과 성숙을 하도록 도와주면 잘못 형성된 성격은 바뀔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내적치유는 꼭 필요하다.
♣ 결론
내적치유는 상한 마음과 상한 감정을 치료하여 성령의 지도와 인도를 받아 영혼의 성장과 성숙을 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내적치유는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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