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마라나타!!!

[스크랩] 무 천 년 기 설

하나님아들 2013. 3. 6. 23:57

무 천 년 기 설

(Anthony A Hoekema)

김 정 열

‘무천년기설’에 대한 후크마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해석 법, 20:1-6에 대한 해석법, 통상 지상적(地上的)인 천년 왕국을 예언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두 개의 성경 구절에 대한 윤곽, 무천년기설적 종말론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무천년기설적 종말론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의 요약 등이다.

1. 용어

‘무천년기설’이라는 용어는 행복스러운 낙원의 의미를 포함하는 용어는 아니다. 무천년기설을 믿는 자들은 계시록 20장의 천년 동안의 통치를 문자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무천년기설이라는 용어는 그들의 견해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J. E. 아담스 교수는 “이미 실현된 천년 왕국설”이라는 표현으로 대치하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 표현은 “실현된”이라는 ‘접두어’만 붙인 천년 왕국설이기 때문에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리하여 후크마는 계속하여 ‘무천녀기설’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2. 요한계시록 해석법

후크마에 의하면 계시록 20장에 기록된 내용을 연대적으로 이해하여 19장 뒤에 온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20:4에 나오는 천년 동안의 통치는 그리스도 재림 이후이어야 맞다. 그러나 20:1-6을 그리스도 초림 이후 ‘교회의 역사’로 본다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천년 왕국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천년왕국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계시록 해석법에 대한 설명이 필요 하다.

후크마가 만족스럽게 여기는 윌리암 핸드릭슨의 계시록 주석에 의하면 “점진적인 평행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해석법에 따르면 계시록은 “상호 평행적”인 내용을 지닌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며 그 각각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교회와 이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 서신서를 읽으면 두 가지 인상을 받게 되는데 첫째는 이 서신에는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사건과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둘째는 이 서신에 기록되어 있는 칭찬과 경고의 말은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사실 이 두 가지 전조만으로도 계시록 전권에 대한 해석원리가 주어진 셈이다.

핸드릭슨이 제시하는 계시록의 일곱 구획은 다음과 같다.

(1)1~3장.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일곱 촛대 사이를 왕림하심을 보여준다.

(2)4~7장. 일곱 인에 대한 환상이다.

(3)8~11장. 일곱 나팔과 심판

(4)12~14장.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하자 용이 삼키려 함(그리스도의 탄생)

(5)15~16장. 일곱 대접,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6)17~19장. 바벨론의 멸망과 짐승들의 멸망

(7)20~22장.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정복당함, 최후 심판, 교회의 승이(새 하늘과 새 땅)

이 일곱 구획은 상호 평행적이면서도 상당히 종말론적인 점진성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제일 마지막 구획은 다른 구획들 보다 먼 미래로 우리를 인도한다. 비록 최후 심판이 이미 1:7과 6:12~17에서 언급되었지만 그것은 20:11~15에서 비로서 완벽하게 구체적으로 계시된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들이 누릴 궁극적인 기쁨에 대하여 7:15~17에서 암시되었지만 21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새 땅의 축복된 삶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화려한 서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 방법이 “점진적인 평행법”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3. 계시록 20:1~6의 해석

1~3절은 사탄의 결박에 대해서, 4~6절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는 장면에 대하여 서술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20장의 사건이 연대적으로 19장에 뒤 따르는 것으로 생각을 하여 20:1~6의 천년 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올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되었듯이 20~22장은 계시록의 일곱 구획 중에서 마지막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재림 이후의 사건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20:1은 우리를 다시 신약 시대의 초기로 환원시킨다. 이것이 이 구절들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는 사실은 열거된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20장이 사탄의 대패와 궁극적인 운명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명백하다. 왜냐하면 12:7~9에서 분명하게 언급된 것처럼 사탄의 패배는 확실히 그리스도의 초림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4~6절에 서술된 천년 동안의 통치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다는 사실은 20:11~15절에 기록된 최후의 심판이 천 년 간의 통치 이후에 임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로 볼 때 명백하다. 계시록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최후 심판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있을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20:4~6절에 나오는 천녀 간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어야지 그 후에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주장이다.

계시록에는 상징적인 숫자들이 많은데 명백한 것은 “1천”이라는 숫자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0이라는 숫자는 완전성을 의미하며 1,000은 10을 세제곱한 것으로서 “1천년”이라는 표현을 하나의 완전한 기간, 곧 길이가 불확정한 매우 긴 기간이라 생각해도 좋다. 따라서 이 천년 기간을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가지의 기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러면 사탄이 결박당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구약 시대는 적어도 아브라함 이후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열방들이 사탄의 치하에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수령자였다. 그래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진리를 알았다. 그러나 세상 나라들은 그 진리를 알지 못하고 무지와 오류에 빠졌으며 사탄의 미혹을 받았다.

만일 사탄이 과거에 하던 수법대로 열방을 미혹한다면 어떻게 복음전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계시록 20:1~3에서 주어지고 있다. “이미 시작된 복음 시대 동안 사탄은 과거처럼 열방을 미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탄이 결박당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탄의 결박은 첫째, 사탄이 복음의 팽창을 저지할 수 없고 둘째, 그리스도의 모든 원수들을 하나로 모아 교회를 대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탄이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결박되었다고 신약성경은 증언하는가? 참으로 그렇다. 마 12:29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고 하셨다. 애무 흥미로운 것은 강한 자의 결박을 묘사하기 위하여 마태가 사용한 단어가 요한 계시록 20장에서 사단의 결박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거철하시고 승리하셨을 때 사탄을 결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 마귀를 내어 쫓은 것은 이러한 승리를 증명한 것이다. 사탄의 추방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 했다는 증거라는 것과(마 12 : 28) 복음이 지금 모든 나라로 전파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이다(마 13: 24-30, 47~50).

70인의 전도자들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예수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 이다”고 말하니 예수께서는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7~18)고 대납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이 행한 사역을 통해 사단의 나라가 방금 분쇄된-사실상 사단이 결박당하여 그의 능력에 제한을 받게 되었음-사실을 눈으로 보았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로 보건데 사단의 멸망과 결박은 예수의 제자들의 선교적인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선교적 사역과 더불어 사단의 세력이 제한을 받았다는 사실과 관계있는 또 다른 성경 귀절은 요한복음 12: 31~32이다. “이제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여기에 번역된 “쫓겨나다” 라는 동사는 계시록 20:3, “천사가 사단을 무저갱 속으로 던져”에서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천 년간의 통치를 다루는 구절인 4~6절을 살펴보자. 4~6절에서 언급된 “천년”을 1~3절에 언급된 “천년”과는 다른 시기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가 꼭 그렇게 해야 할 강압적인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1~3절과 4~6절은 동일한 “천년”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 6절에 기술된 천년 동안의 기간이 전반에 걸친 것이기 때문에 1~3절은 이 기간 동안 지상에 일어나는 사건 내용이고 또 4~6절은 하늘에서 일어날 사건 내용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요한은 심판할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보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요한 이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통치하고 있다는 사상을 구체적안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보좌들 위에 앉은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다. 요한이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말하기 때문에 그 가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여기서 “프스카이”라는 단어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영혼으로 정의해야 한다. 사실상 이 구절은 보다 앞 구절인 6:9과 평행구절이다. 거기에는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환상 중에 순교자들의 영혼을 보았던 것인데 그들이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서 심판 사역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순교자들의 친척과 친지들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주님께 끝까지 충성한 신자들은 짐승을 이긴 자들, 짐승과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라는 구절은 가장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전천년기설 해석가나 세대주의 해석가들은 모두 이 구절을 문자적 육체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 그리스도가 재림하신 이후에 지상에서 천년 동안 다스리신다는 증거로 삼는다. 정말 그러한가?

여기 “살아서”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육체적인 부활”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여기에 나온 단어가 의미와 일치하는 것인가? 요한이 이 구절에서 일종의 부활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5절의 “이는 첫째 부활이라”고 말한 것을 보아 명백하다. 그런데 이 구절은 4절에서 나오는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림”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러면 이 첫째 부활은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가? 4절의 살아서는 20장 후반부(11절 이하)에서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고 언급되는 육체적 부활과는 구별이 된다. 그렇지 생각하지 않고 4절의 “에제산”을 육체적 부활로 믿게 되면 일부는 천년 왕국 직전에 부활하고 그 나머지는 천년 왕국 후에 부활하는 두 번의 육체적 부활로 믿게 된다.

따라서 4절에서 언급하는 “살아서”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다스리는 자들은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자들이며 끝까지 그리스도께 충성한 자들의 영혼들임이 명백하다. 그리고 이 하늘 통치는 계 3:21의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앉게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는 말씀의 성취이다. 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리는 이들이 천년 동안 계속해서, 즉 그리스도께서 다시 와서 성도들의 육체를 무덤에서 일으키실 때까지, 곧 전 복음의 기간 동안 그렇게 할 것을 의미한다. 요한은 이 구절에서 지상 천년 왕국 통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4~6절에서 탈레스타인이나 유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요한은 4절을 진술하고 5절에서 “이는 첫째 부활”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요한이 4절에서 설명한 곧 믿고 죽은 자들에게 일어난 내용으로서 즉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나라의 생명에로의 전이로 이해해야 한다. 6절에서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말한다. 복된 이유는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기 때문이다.

4. 구약 예언의 해석법

전천년기설자들, 특히 세대주의 학파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들을 소위 “여자적인” 해석법으로 다룬다. 반대로 무천녀기설자들은 비록 수많은 구약의 예언들이 반드시 여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겠지만 어떤 부분들은 여자적이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5. 무천년기설의 종말론

무천년기설의 포괄적인 종말론은 “이미 시작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으로 말할 수 있다. “이미 시자된 종말론”이란 “하나님 나라가 현재의 복음 기간 동안 이미 임했다는 종말론이다. 이 용어는 “실현된 종말론”이란 용어 보다는 더 좋다, 그 이유는 이미 시작된 종말론이 경륜의 역사 개입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완전하고 정당하게 다루며 이 나라가 좀 더 발전해서 언젠가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절정에 이른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시작된 종말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그리스도는 죄, 사망, 사탄에 대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이다.

(3)비록 최후의 날은 아직 미래에 있지만 우리는 지금 말세에 살고 있다.

(3)계시록 20장의 천년에 관하여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천년 왕국에 살고 있다.

또한 “미래적 종말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때의 징조는 현재와 미래 둘 다 관련되어 있다.

(2)그리스도의 재림은 단 한번의 유일한 사건을 것이다.

(3)그리스도개서 재림하실 때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보편적인 부활이 있을 것이다.

(4)부활 사건 직후에 그 때 살아 있던 성도들은 갑자가 변형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을 것이다.

(5)모든 성도들의 “공중휴거”는 이때에 있을 것이다.

살전 4:17절의 “영접하게”로 번역된 “아판테시스”는 하급 관청이 고급 관청 관리를 영접할 때 베푸는 공식적인 환영에 대하여 묘사할 때에 사용된다. 사람들은 대개 중요한 손님을 영접할 때에는 마중 나가서 그와 함께 자기 근무처로 돌아오곤 한다. 이 단어를 유추해 볼 때에 바울이 말하는 것은 부활하여 변화된 몸은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그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다는 것이며 이 영접 후에 성도들은 주님과 더불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6)그 다음 최후의 심판이 있다.

(7)이 심판 후에 영원의 상태에 돌입한다.

6. 무천년기설 종말론의 기타 다른 의미

(1)신약과 구약을 하나로 묶는 것은 은혜 계약의 단일성이다.

(2)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역사의 주류를 이룬다.

(3)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인이시다.

(4)모든 역사는 결승점을 향해서 전진하고 있다. 즉 전 우주의 구원을 향해서..

7. 무천년기설에 대한 역사적 전천년기설자의 비판(죠오지 엘돈 래드)

죠오지 엘돈 래드는 계시록 20장의 해석 이외에는 후크마가 서술한 내용 전체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20장의 해석에 관한 부분만 정리하겠다.

래드는 후크마가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에 대하여 그 장면이 “하늘”임을 증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래드 자신은 20:1에서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옴을 보았다”고 했기 때문에 그 장면이 하늘에서 땅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며 4절의 그들이 “살아서”는 “육체적 부활”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그 때 그 현장은 지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의 세 가지 논거를 후크마가 만족 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1)계시록 19장과 20장은 내용상 연속적인 것으로 보이며 악의 삼두 정치(짐승, 거짓 선지자, 이들 배후에 있는 악마)의 박멸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고 20장이 19장의 반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2)“그들이 살아서(4~5)”로 번역 된 이 단어는 부활을 제외하곤 육체적 죽음 이후의 생명을 묘사하기 위하여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단어는 영적으로 살아난 경우(요 5:25, 엡 2:6)에는 사용되었고 인간의 부활 생명을 언급하는 여러 경우에도 사용되었다.

(3)계 20:5을 오히려 보통과 다르게 해석하였다고 지적한다. 이 단어는 보통 육체적 부활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는데 후크마는 이 단어가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8. 무천년기설에 대한 세대주의적 전천년기설자의 비판(호르만 에이 호이트)

호이트는 후크마가 20:1~3의 천년은 지상과 관계하고 20: 4~6의 천년은 천상과 관계하였다고 지적하며 본문에는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 낼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호이트는 1~3절의 천년이 지상과 관계되며 4~6절의 천년도 지상과 관계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와 평행이 되는 5:10의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라는 구절도 지상 통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계 6:9~11은 후크마가 그의 논지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그렇게 인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호이트는 4~6절의 “살아서”를 육체의 부활로 이해해야 하며 후크마가 선언한 대로 이 의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 시기에 있기 때문에 하늘이 아닌 땅에서 육체를 입고 지상을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주장한다.

호이트는 후크마가 주장한, “사탄이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결박되었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참패 당하였다”는 것을 반박한다. 그는 사탄의 결박을 “사탄이 어떤 해도 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며 “결박은 다만 열국을 미혹하는 데에만 적용되고 이 결박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곧 사탄이 최후의 운명에 직면할 때에 제거 될 것”으로 보고 있다.

9. 무천년기설에 대한 후천년기설자의 비판(르뢰인 뵈트너)

뵈트너는 후크마가 주장한 20:1~6의 내용들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실제 내용상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후크마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어떤 표적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뵈트너 자신 생각에는 실제에 있어서는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후크마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 있을지 시기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비판하고 있다.

비 평

계시록 20장을 해석함에 있어서 천년 왕국의 문제 못지않게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에 대한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천년 왕국의 시기와 그 성격에 대해서 해석의 충돌이 있는데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에 대한 문제를 같이 풀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첫째 부활이 있다는 것은 둘째 부활이 있다는 것이며 둘째 사망이 있다는 것은 첫째 사망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첫째 부활은 둘째 부활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며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첫째 부활도 육체적 부활로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게 이해한다면 육체적 부활은 그리스도 재림 이전에 한 번, 재림 이후에 또 한 번 그렇게 두 번 있게 된다. 관연 이러한 해석을 성경은 지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본문에 언급되어 있는 “죽은 자들”과 “둘째 사망”, 이 둘은 서로 다르게 설명되어져야 한다. 둘째 사망은 분명히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짐”으로 명시하고 있다. 만약에 둘째 사망이 첫째 사망과 성격이 다르다면 첫째 부활 역시 둘째 부활과 성격이 달라야 한다. 그럼에도 첫째 부활을 둘째 부활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육체적 부활로 설명하려는 것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따른다고 본다.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활

첫째 사망

믿음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음(중생)

불신으로 인해 죽음가운데 있음

둘째 부활

둘째 사망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있을 육체적 부활

그리스도 재림 시 부활, 영원한 형벌

후크마가 계 20:3절의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자들”을 순교한 자들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구절을 지상에서의 통치로 이해하는 천년왕국의 견해를 가진 해석가들은 후크마가 “하늘에서의 통치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하늘의 장면인지를 증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후크마가 표현한 것처럼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자들을 “순교자”들로 한정 짓게 되면 (1)그들은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 되고 따라서 순교자들은 “왕 노릇”하는 반면 지상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통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로 이분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2)이러한 후크마의 견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자들은 이미 하늘에 앉히움을 받았다고 하는 바울의 선언(엡 2:6)과 충돌하게 된다.

그러므로 3절의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자, 지상과 천상을 포함하여 하늘의 새 생명을 가진 자들로 설명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4절에는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안히나 자들”이 함께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크마는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자들” 안에 지상의 신자들을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서 전천년기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기설 학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있다.

따라서 1~6절의 내용을 요약하면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이며 사단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시험의 승리로부터 이미 결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하여 신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로서 지상과 천상을 포함하여 그리스도 재림 때까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되며 그 동안 믿지 않는 죽은 자들은 계속 죽음아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재림 시에 신자들은 두 번째 부활인 육체적 부활을 통해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고 믿지 아니하는 죽은 자들은 육체적 부활 이후에 둘째 사망인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된다.

“무천년기설” 용어는 마치 천년 왕국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며 계시록 20장의 문맥에도 적합하지 않은 용어이다. 따라서 “무천년기설”이라는 용어보다는 본문의 의미를 잘 살린 “현재적인 천년왕국”, 또는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후크마에 대한 역사적 전천년기설, 세대주의 전천년기설 해석가들의 반론은 계시록의 문맥상 타당치 않은 주장들이다,

출처 : 智本知神
글쓴이 : Heal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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