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스크랩] 성막(聖幕)에 대하여

하나님아들 2013. 2. 21. 10:51

성막(聖幕)에 대하여

扈一麥

 

성막은 하나님의 계획으로 지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성막은 구약에 나타난 일을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왜 성막을 짓게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막이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곳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이면에 우리가 성막을 통해서 알아야 할 영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그 나타난 지식으로만 풀려 한다면 그것은 반쪽 지식이 될 것입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영적인 지식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25:8-9절을 보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 하십니다.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막에 거하시겠다고 지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막을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성막을 지어야 하느냐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면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사람들 또한 하나님이 어디 계신다고 해서 가서 만나려 할지라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시고 사람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죄 때문에 사람은 죽습니다. 만나도 안 죽게 하기 위해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만나도 안 죽게 되냐면 죽어 주는 자가 있도록 만들어서 내 대신 양을 죽임으로 해서 만나도 안 죽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죽어 주지 않는 다면 죄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나는 순간 내가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려고 오실 지라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는 구름을 쌓아서 안 보이도록 하시고 강림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막을 지으라는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막 전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광야에서 짓는 것을 성막이라고 말씀 합니다. 이것을 고정적으로 세워 놓은 것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막은 이동식 성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 갈 때 까지 구름기둥 불기둥이 떠오르면 성막을 옮겼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솔로몬 왕이 세운 것을 성전이라고 말 합니다. 이 성전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2:19-21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만나시려고 짓게 하신 것입니다.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시고 성전에 거하시면서 만나시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만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나는 것은 잘해서도 안 되고 착하게 살아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라도 직접하나님을 만나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날 수 있는 매게체로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은 성전 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시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거 하십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받아들이면 그 받아들인 사람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3:16절 고린도전서6:19-20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9절에 보면 피로 우리를 사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피로 산 사람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줄 모르느냐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한다는 말씀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성령으로 잉태되리라 하실 때 마리아가 내가 남자도 모르는 데 어떻게 잉태 할 수 있습니까 반문 합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능력이 네게 임하시리라고 말하니까 믿습니다. 말씀대로 믿을 때 그 속에 성령을 통해서 예수가 잉태 되었습니다. 마리아 속에 성령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의 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 속에도 마리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으면 마리아가 잉태 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새로운 영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로마서8:8-9절을 보면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8절 말씀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의 말이 전해 질 때 처음에는 안 믿습니다. 어떻게 사내를 모르는데 잉태 합니까 이렇게 믿어지지 않는 상태를 육신에 있는 자라고 말씀 하는 것입니다. 후에 천사의 말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할 때 예수가 잉태 되었습니다. 이제는 영에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영에 속한 자냐 육신에 속한 자냐 하는 것은 그 속에 영이 있으면 영에 속한 자이고 영이 없으면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되어  지는 것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우리 속에 성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수련을 많이 정진 합니다. 교육을 받습니다. 선을 위해서 자비를 위해서 정진하지만 그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선을 행하고 득도를 한다 할지라도 육신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 종교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 안에도 마리아가 거절하는 상태에 있는 것 같이 그와 같은 사람은 그 어떤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려면 말씀과 성령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속에 거해야 성전이지 교회만 다닌다고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그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성령의 전 인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은 우리 속에 성령께서 내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 속에 예수가 잉태된 상태가 바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잉태된 것을 사람의 지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마리아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예수가 잉태한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리아도 참으로 신앙심이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도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반문을 합니다. 육적으로는 이런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 그렇게 말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받아들여지면 우리 속에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사람만이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잘 다닌다 해도 성령이 내 안에 있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서8:10-11절을 보면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게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살아 있는 방법은 우리 속에 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을 몸입니다. 그 몸을 살리시는 것은 성령께서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영이 없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씨 없는 수박이 있습니다. 그 수박은 사람이 먹으면 끝이 납니다. 더 이상 수박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씨가 있으면 그 씨로 인하여 새로운 수박이 생산될 수가 있습니다. 씨 있는 수박과 씨 없는 수박을 쪼개서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오늘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우리 육은 세월이 차면 죽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새로운 영이 살아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씨로 말미암아 천국의 유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교회를 잘 다니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죽는 날로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살아 있을 때만 교인이지 죽으면 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씨 없는 수박과 같은 것입니다. 성막은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제사를 잘못 드리면 어찌 됩니까?

 

민수기18:5절을 보면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를 지키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제사장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려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리면 백성들에게 진노가 미치지 않는다고 말씀 하십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리면요!백성들은 일상생활을 하고 제사장은 성막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제사를 잘 드리면 백성들에게 진노가 미치지 않고 제사장들이 제사를 잘못 드리면 그 진노가 백성들에게 미친다고 말씀 하십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려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잘못 드려서 백성들이 망한 일이 있습니다.

 

엘리제사장 아들들이 제사를 잘못 드려서 엘리도 죽고 아들도 죽고 백성들도 망해 버렸습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리는 제사장이 있으면 백성들이 평안하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가 사는 날 동안 백성들이 평안 하리라는 말씀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 제사장이 사는 동안 백성들이 평안 했습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오늘날도 제사장이 있습니다. 두 종류의 제사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만인 제사장이죠 베드로전서 2장9절에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들이라 말씀 하십니다.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 들입니다. 성령이 거하지 않는 사람은 제사장 자격이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제사장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는데 그 제사장은 특별한 사람을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목회자들에게 우리도 같은 제사장이라 말 하시면 안됩니다. 신약 시대에 제사장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를 믿는 모든 사람을 제사장이라 합니다.  성막(1) 1


로마서15:16절을 보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하나는 복음의 제사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 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못 드리면 백성들이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제사장이 복음의 제사장 직을 잘못하면 그 교회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제사장이 제사장 역할을 잘하면 복음이 그 심령 속에 다 들어갑니다. 복음이 받아 들여 집니다. 복음은 다른 것이 복음이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령에 받아 들여 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로 죄사함의 확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제사장이 할 일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사함 받는 것을 확신 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복음의 제사장이 잘하면 자기가 속죄함 받는 것이 믿어지고 복음의 제사장이 잘못하면 속죄함 받은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엇 하러 오셨냐고 물어보면 100%가 우리 죄 때문에 오셨다고 말 합니다. 우리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 하면서도 자기 죄가 전부 속죄함 받은 것은 믿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은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어져야 하는데 죄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예수가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가 받아들여지면 속죄함을 확신 합니다. 베드로전서3장18절을 보면 예수님은 의인으로서 불의 한 자를 대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 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가 영접된 사람은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속에 영이 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내속에 거하면 죄사함이 확신 됩니다. 죄사함 받은 것이 확신되어지면 죄가 없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죄사함 받은 것이 확신 되어지는 사람은 예수가 있는 사람이요 복음의 제사장을 잘 만난 사람입니다. 만인 제사장이 있고 복음의 제사장이 있습니다. 만인 제사장은 예수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교회를 인도하며 사역하는 제사장은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복음의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릴 때 진노가 백성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복음의 제사장으로 세워진 목회자가 복음의 제사장 직을 잘 못하면 그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진노가 미칩니다. 이 말씀은 지옥 간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복음의 제사장을 만나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죄사함을 확신하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면서 열심을 다하고 헌신하고 할지라도 복음의 제사장을 못 만나면 매일 교회 가서 죄사함 달라고 죽을 때 까지 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 사람 갈 곳은 한 곳 뿐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그 무엇을 하고 열심을 다한다 해도 안됩니다. 복음의 제사장을 만나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 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다니면 다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하고는 다릅니다.

 

교회는 가서 출석만 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여야 믿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사건이 속죄입니다. 성전을 지은 이유는 속죄하려고 성전을 지었습니다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이 제사를 아무리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제일 근본적인 것은 속죄입니다.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믿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사 잘 드리는 제사장을 만나야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잘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살던 때는 불행입니다. 사무엘이 살던 때 있던 백성들은 행복입니다.

 

백성들은 사무엘 때나 엘리 제사장의 아들 때나 그 백성이 그 백성입니다. 백성들의 삶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잘 드릴 때 사람들은 평안하고 제사장이 제사를 잘못 드릴 때 살던 사람들에게는 진노가 임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천국을 가냐 안가냐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은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그럼 가정의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복음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속죄를 위해서 입니다. 복음의 제사장도 자기가 먼저 속죄함을 받고 그 다음 백성들의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먼저 복음으로 속죄함을 받고 내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복음의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때 백성들이 망했습니다. 그 때 제사장이 백성들에게 왜 바로 살지 바로 못 살아서 망하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바로 살았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네가 바로 못 살아서 왜 그리 살아서 망하느냐고 말합니다. 망하기는 누구 때문에 망합니까? 엘리아들 들 때문에 망하는데 그 아들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들이 잘 했으면 안 망했을 텐데 너희 들이 잘못해서 망한다고 합니다. 사실은 알고 보면 제사장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리면 사단도 고쳐서 쓰도록 하실 텐데 제사장이 제사를 잘 못 드리니까 망하게 하기 위해서 붙여 놓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적군들에게 붙였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이 제사를 잘못 드리니까 그렇게 붙인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드리면 사단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잘 못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냥 놔두시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제사를 잘못 드리니까 공연히 백성들이 죽습니다. 그 아들들은 전쟁이 날 때 잘 먹고 잘 살면서 너희들 왜 망하느냐고 할 것 아닙니까?

 

내가 가정에서 제사장 직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실 것이고 보호 하실 것입니다. 사단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의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성소의 임무와 그 단의 직무를 잘하라 그리하면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리라” 지금 제사장은 옛날 제사장과 같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옛날 제사장은 양을 잡아서 제사 드렸지만 지금 제사장은 예수가 양 대신 죽었습니다. 이 예수를 알게 하여 속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속죄 할 수 있도록 믿어지도록 하는 것이 제사장의 임무입니다.

 

요나를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보내셨는데 다시스 가는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났습니다. 요나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왜 우리에게 풍랑이 일어나는지 이것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를 모르고 고민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들 때문에 일어난 풍랑이 아닙니다. 그 풍랑은 요나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풍랑을 잠재울 수 있습니까? 요나만 버리면 됩니다. 그 때 요나도 참 신앙입니다. 이 풍랑이 나 때문이라고 말하고 나를 던지라고 말 합니다. 요나는 자기를 압니다. 자기가 타지 말아야 할 배를 타서 나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구나 그 원인을 압니다. 해결 방법은 요나만 던지면 됩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졌더니 풍랑이 잠잠해 졌습니다. 바람 막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요나만 던지면 바람은 멎습니다.

 

복음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가정이나 회사에서 제사장 직무를 잘 해야 합니다. 요나와 같이 주어진 소명을 다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복음의 제사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사를 잘 드리면 여러분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있다면 그 교회가 복을 받을 것이요 여러분이 가정에 있다면 그 가정이 복을 받을 것이요 직장에 있으면 직장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제사장 직무를 잘못해서 교회에서 진리가 사라졌습니다 교인은 많은데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가 될지를 차마 말하기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제사장들이 직무를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오면 밖으로 하얀 포장이 처져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 포장 기둥이 한쪽에 20개씩 그리고 앞뒤에 10개씩 총60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얀 포장으로 성막을 둘렀고 사람들은 동서남북 세 지파씩 12지파가 살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성막이 있습니다. 성막 에 지파의 기를 꽂으면 그 뒤를 따라서 자기들의 처소를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정렬해서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제사장이 제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려면 반드시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양을 끌고 가서 제사를 드려야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성막은 백성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양을 자주 끌고 가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양을 끌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보입니다.

 

죄지은 사람은 양을 빨리 끌고 가고 싶은데 양은 빠르게 가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성막 안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다고 아무데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반드시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성막의 제도는 무섭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이 다른 불을 드리다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제사장도 제사를 잘못 드리면 그렇게 죽습니다.  자기 지파가 문 뒤편에 있어도 포장 사이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반드시 문을 통해야만합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첫 번째는 죄가 있어야 합니다. 죄 없는 사람은 받아 주지를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양이 있어야 합니다. 양이 없이 혼자 들어가면 죽습니다. 이것은 예수 없이 하나님께 가면 죽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 없이 신앙 생활하는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예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가 있어도 흠 없는 양이 있어야 합니다. 흠 없는 양이라는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를 100%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생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 들여야 합니다. 흠 없는 어린양을 100%받아들이지 않으면 흠이 있는 것입니다. 100%받아 들여야만 죄가 완전히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속죄가 믿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를 아주 자연스럽게 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입니다. 예수를 조금이라도 가린다면 결코 그 제사를 받지 않습니다. 흠이 없다는 말씀은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밖에서 성전을 바라보면 휘장만 보입니다 그리고 성막 지붕이 보입니다. 성막 지붕은 해달의 가죽입니다. 해달(물개)의 가죽은 까만색입니다. 하얀 포장과 지붕의 까만색만 보입니다. 성막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얀 의인으로 보이고 지붕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덮어주는 것을 상징 합니다. 성막을 보면 겉에 쳐진 포장은 예수님의 의고 위의 지붕 까만 것은 십자가로 우리 죄를 덮어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를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지 밖에서 보는 예수는 세상 사람들도 인정 합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밖에서 성막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다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마치면 안 되고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모든 행하여지는 제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안에 휘황찬란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바라보는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직접 성령의 전이 되도록 우리가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와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임하게 됩니다. 성막 안에 들어와서 속죄함을 받습니다. 성소 안에서 양을 가지고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네 죄 때문에 지옥 간다고 하면 그는 가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너는 양을 잡아서 제사 드렸지만 네 죄 때문에 지옥 간다고 하면 그는 가짜 제사장입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으면 네 죄가 사해 졌다고 선포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양 잡아서 제사 드려놓고도 네가 양 잡아서 드렸지만 네 죄가 많아서 지옥 간다면 그 제사장은 가짜입니다.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면 복음의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백성들에게 무엇을 선포하여야 합니까 당신의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죄 없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죄가 없습니다.

 

육적으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육적으로는 의인이 하나도 없지만 영적으로 볼 때 그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개인적으로 양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립니다. 또한 1년에 한번은 백성 전체를 위해 양을 가지고 제사를 드립니다. 백성 전체를 위해 제사 드리는 이유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함을 받지만 그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죄사함 받았다고 선포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복음의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천국 가겠느냐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바꾸세요.

 

그렇게 살아도 천국 간다고 바꾸세요. 죄를 지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께서 계신다면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되겠지요. 속죄 제사는 어떤 죄인도 양을 가지고 와서 잡고 제사를 드린 후에 속죄함을 받고 돌아갑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죄사함 받았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를 소개하고 당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을 위해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해서 드리는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드릴지라도 제사장 직무를 바로 할 때 그 백성은 복을 받습니다. 제사장의 임무는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과 죄가 없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안되면 그는 가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다른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 잡아서 제사 드렸으면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는 일입니다. 다른 이야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사장이 세상 이야기로 감동 시키는 사람입니까? 제사장은 세상 적인 것 묻지도 않고 세상 이야기도 안 합니다.

 

제사장의 일은 양 잡아서 제사 드리고 속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앞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린양이 이미 제사 드렸으니 속죄를 선포하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어린양 예수를 통해 속죄함을 받은 것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편103:10-11절을 보면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기 때문에 우리 죄를 묻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라고 고백 합니다.

 

시편103:12-13절을 보면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기 자녀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과 같이 불쌍히 여기 십니다.

 그것은 자기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03:14절을 보면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 죄를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이유입니다. 우리를 알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안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안 짓고는 못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안 짓고는 못 삽니다. 죄 안 짓고는 못 삽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냐고 반문 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말을 하던 안하던 어찌되었든 죄안 짓고는 못 삽니다. 죄 안 짓고 못산다고 하면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느냐 그래도 성도들에게 혹시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죄를 질수도 있다는 말과 죄를 안 짓고 못 산다는 말과 어느 말이 맞습니까? 죄를 질수도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죄를 안 질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안 짓고는 못 삽니다. 죄를 안 짓고 살수 있다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자기가 죄를 안 질수 있다면 예수님은 괜히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소에 들어가서 무슨 기도를 드립니까?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이 피를 받으시고 백성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피를 받으시고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세요. 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하늘 지성소에 계십니다.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로마서8:34절을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간구하고 계십니다. 대제사장으로서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이 피를 받으시고 백성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받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간구가 그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성소밖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착해서도 아니고 자기가 의로워서도 아닙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의 죄가 제사장이 속죄소에서 피를 쏟으니까 사해지는 것이지 그 사람 때문에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성들과는 상관없이 사해지는 것입니다. 죄가 사해진 다음에 대제사장이 나와서 통보만 합니다.

 

“네 죄가 사해 졌느니라” 선언 합니다 여러분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드림으로 해서 여러분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이렇게 사함 받은 사람은 내가 잘해서 사함 받은 것이 아니라 나는 잘못 했지만 대신 없애주어서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죄를 없애 주어서 하나님께서 네 죄가 없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없다는 사람을 누가 정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죄 없다 하시면 누구도 정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사면해서 서울 구치소에서 꺼낸 사람을 누가 다시 가둘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구치소 보다 더 무서운 지옥에서 여러분을 건져 냈습니다. 건져내서 죄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정죄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능력이 나타나고 죽이는 일은 하지만 살리는 데는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십계명은 죽이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제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살리는 것은 예수라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십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피를 달라는 것입니다. 피 달라고 하는 것 까지 다 주었으니까 이제는 다 끝이 난 것입니다. 피 달라는 것을 주었으면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 졌으므로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죄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멀어서가 아니라 죄 때문에 가리웠다고 말씀 하십니다. 죄가 없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죄가 없어서 만나는 사람은 중보자를 다시 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14:11-12절을 보면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직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나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데 중간에는 담이 없습니다 휘장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휘장치고 만나는 것입니다. 중보자가 만나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중보를 세웁니다 기도할 때 마리아를 세우고 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같이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중보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직접 아버지에게 말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 하는 것이 중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 하는데 친구가 옆에서 도와주세요. 같이 말 하는 것은 우리가 말 하는 중보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는 대신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피로 말미암아 해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없습니다.

 

만약에 중간에 무엇을 세운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거절하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휘장이 찢어졌고 법궤의 요구를 지불했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은행에 빚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은행가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 빚을 누가 대신 갚아 주었다면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서워하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계신 곳에 가는데 방해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성소까지 직접 갈 수 있습니다. 속죄를 모두 했습니다.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났으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십계명은 이제 그 권한이 상실 되었습니다.

 

십계명의 빚을 안 갚은 사람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빚 갚은 사람은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 동안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십계명의 요구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켜서 새 계명을 주시는 것이라 말씀 합니다. 

 

옛날 율법에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사랑하지 않으면 죽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하지 않아도 죽이지 않습니다. 똑 같은 계명이지만 이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죽을 까봐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성소까지 들어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여러분은 이제 생명의 부활의 법아래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