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12-5-20 좁은 문으로 들어 가는 자 눅 13:24-30

하나님아들 2013. 2. 14. 12:31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 <13:24 30>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위한 길일까요? 그것은 바로 구원이라는 진리가 우리 앞에 있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가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한 바리새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구원 받는 자가 적은 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구원의 을좁은 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4절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 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결국 좁은 문은 많은 사람이 들어 갈 수 없는 문이고, 구한다고 들어 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를 믿는다면 분명한 구원이 있는 것일까? 성경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내리고 있습니다. 29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사람쫒겨 난 자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 나라에 있고 너희는 밖에 쫒겨 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으며 바리새인들은 쫒겨 난 자 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믿기는 믿지만 경건의 무늬만 있는 형식적인 믿음이 있는 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 입니다.

저는 이번 성지 순례 여행을 하면서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자들인 믿음의 조상을 따라 그 발자취를 더듬어 올라 가면서 우리가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구원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    구원은 주님이 나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27)

 26절 말씀을 보면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다고…”할지라도 주님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 주님은 함께 먹고 마시고 그들을 가르치셨슴에도 그들을 기억하시지 않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행악자들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죄악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 들을 가르킵니다. 그렇다면 먹고 마시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불순종하는 그들을 주님은 기억하지 않으시고 싶은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부모님이 원하시는 자녀이고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자녀가 되는 것과 같은 진리 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좁은 문 보다는 넓고 큰 문을 좋아하는 자들로 그들은 모세오경 중에서 레위적 정결을 강조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순결을 중시하여 율법의 엄격한 실행 만이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늘 걸고 넘어지던 바리새인들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14:6) 영생을 얻을 자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씀 하셨는데 , 구원 받는 자가 적냐?”며 시비조의 지적 입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어 놓은 문입니다. 그런데 왜 좁은 문이 되었을까요? 그 문은 자신의 권위도, 자존심도, 자신의 이익도 버려두고 오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문이기에 그렇습니다. 오직 율법을 지킨다고 선택 받았다는 선민 사상 만으로도 갈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문이요 길이기 때문에 좁은 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신봉했던 율법의 본질과 정의를 제대로 알았다면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 율법의 형식 만을 바라 보았기에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이러한 무늬만 크리스찬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한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국경을 여러 번 통과하면서 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속속들이 짐을 푸는 것도 보았고 타고 간 차량의 정밀 검사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세상도 이럴 진대 하나님의 나라의 국경은 어떤 검문 검색을 받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2.    구원을 받은 믿음의 조상들(28)

 믿음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만 밖에 쫒겨 난 사람이라는 말씀은 구원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표현 입니다. 쫒겨 난 사람들은 주님의 식탁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주님의 사람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대 왜 그들은 쫒겨 남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들은 것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외식과 형식에 만 만족해 했던 부류 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짊어 지셨던 십자가는 무거워 보였고 짊어 질 수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그들은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 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 치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쫒겨 난 자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그리고 선택 받은 자들은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 하여하리니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문은 시간이 지나면 닫혀져 버리고 다시는 열리지 않으며 오히려내가 너희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떠나가라라고 거절 하실 뿐 입니다. 주님을 만나되 외적인 접촉 만으로는 그 좁은 문에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적인 변화, 구원의 조건을 이룬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선별 되어 입장하는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던 우리 일행에게 안식일이니 사진도 찍지 말고, 노트에 적은 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벽을 붙잡고 아직도 주님을 십자가에서 못박은 실수를 회개하는 기도가 아닌 선민의 백성들이 받는 고통과 율법의 무게로 울며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저들은 언제까지 십자가의 은혜보다 율법의 형식에 만 메달려 살려하는 것일까?”하는 안타까움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 이나 마호메트의 성지 메카를 향하여 하루 다섯 번 기도하는 무슬림들이 무엇이 다를까? 형식을 중요시 하는 그들은 같은 처지일 것입니다. 형식이나 율법이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은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한 보조 수단이지 구원 그 자체가 아닌 것을 저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형식에 있지 않고 아브라함,이삭,야곱의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 간 신앙의 노선 행동하는 신앙에 있기에 껍데기를 붙잡아선 안되며 알맹이 즉 진실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구원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된 다는 뜻은 순위를 나타나는 뜻이 아니고 온전케 되어 본이 되는 자를 먼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먼저 된 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여정을 이끌어 가시는 길에서 택함 받은 유대인들이 영적인 먼저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유대인들이 나중 될 수 있고 이방인 된 나중 된 자들도 영적인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먼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바로 이 말씀 입니다.

먼저 된다는 것은 누구나 먼저 될 수 있습니다. 29절 말씀처럼 동서남북으로부터…”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오직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 성지를 돌아 보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주변의 다른 종교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서 조상대대로 오직 믿음 하나로 지켜 가는 크리스찬들을 바라보면서 그 수가 비록 많지 않아도 그들은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백성들 임을 확인 할 수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지도 남들에게 보여줄 그 무엇도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 십자가 만을 바라보면서 구원의 그 날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신앙은 사람들의 중심이 아닌 하나님이 중심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 우리는 마지막 날에 구원을 위해 지금 달려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달려 갈 길을 마친 그 종점에서 주님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엇으로 우리의 구원을 확신 할 수 있을까요? 열매로 우리의 행위를 판단하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오늘 구원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어떤 이론이나 형식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을 붙들고 그와 동해 할 때 아름다운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기억 되는 신앙, 하나님이 언제나 찾고 기뻐하시는 지체그런 자 만이 먼저 될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사랑으로 그분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익산모자이크장로교회
글쓴이 : 다윗과 조나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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