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무슨 십자가를 지시렵니까?

하나님아들 2013. 1. 29. 14:20

무슨 십자가를 지시렵니까? 마27:32-44

오늘 주신 말씀 마27:32-38을 중심으로[ 무슨 십자가를 지시렵니까?]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주 동안 평안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택하여 자녀 삼아주시고 주님의 몸된 성전으로 불러 따뜻한 품으로 품어주시는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는 귀한 날 되기 원합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신 성금요일과 안식일에 있었던 사건이 기록하고 있는 내용의 연속부분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곳은 [해골]이란 뜻을 가진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른 아침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져 심문을 받고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형 판결을 받고 로마 군병들에게 희롱을 당하신 후에 주님께서 못 박히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본래 십자가는 로마의 형법에 따라 사형수를 처형하는 여러 극형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로마 시민이나 인권을 보장받을 만한 사람들은 교수형 등 다른 방법으로 사형을 당하지만 노예나 식민지 백성 또는 흉악범 등 그 시체마저 유린되는 하찮은 죄수들만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들에게 십자가는 한 가지만 있는 것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죄로 죽은 십자가와 남을 위해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본문 38절에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죄 값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자기 잘못 때문에 오는 고난이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우리 삶을 돌아볼 때 주님을 위한 십자가보다 내 잘못으로 오는 십자가가 더 많습니다.

질병도 내 잘못 때문입니다. 타락도 내 잘못입니다. 죄를 짓는 것도 내 잘못입니다.

내 죄 때문에, 일생의 내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길을 외면하고, 혹은 하나님 없이 살다가 물신양면으로 고통당합니다.

자기 죄 값으로 죽는 이 십자가야 말로 아무 가치도 없는 죽음이며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남을 위해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기의 허물이나 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 하나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 입니까?

첫째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라(막8:34-35).

막8:34-35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잠시 동안 어두움의 세력에 속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베드로를 꾸짖으신 후 하신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막지는 않겠는데 , 단 거기에는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을 충족하는 자만이 자기 뒤를 따를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조건은 죄악된 자연인으로서 자신의 전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지워 주시는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자기]는 그에게 속한이란 뜻이요, [지고]는 짐 따위를 짊어지거나 나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란 말은 다시 말하면 [그에게 속한 십자가를 그가 져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각 져야할 십자가를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셨으며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실 때문에 오는 십자가와 같은 고통을 견디어 내며 또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 명령하시는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십자가]는 눅9: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한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은 날마다 자기의 죄악된 본성과 결별하고 죽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이제 더 이상 그 속에 자기 자신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가 산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이 십자가는 나를 내려놓는 십자가입니다.

내 생각, 내 사상, 내 고집, 내 사랑, 내 경험, 내 취향, 내 개성, 내 안일, 내 게으름, 내 교만, 내 자랑, 내 의, 내 습관, 내 생명, 정말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였지만, 그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관은 영광만을 받는 그리스도였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자기에게 임할 고난을 예언하는 예수에 대하여 강력히 반발합니다.

마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시되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했을때 주님께서 23“...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24...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자신만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자는 누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는 고백이 바로 자기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가 꼭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지셨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당연히 져야할 십자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가 짊어져야할 십자가는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당하는 각양의 고통입니다. 고통은 예수님을 올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입니다.

만일 주님을 올바로 믿노라 하면서도 아무런 고통도 당하지 않는 다면 주님을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니요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하나님의 원수인 사단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을 믿으므로 오는 고통을 각오하고 어떤 고통이 올지라도 그것을 마땅히 짊어져야할 십자가로 인식하고 인내로 감내하며 주님 뒤를 좇아가야 합니다.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감당치 않으면 결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화‘ 십자가 무거워 잘라달라고 청원 세 번이나 잘라내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려고 할 때 십자가가 짧아 건너지 못할 때 다른 성도들은 긴 십자가를 짊어지고 와서 요단강에 척척 걸쳐놓고 건너더랍니다’

내가 죽을 때 내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진정 내가 살고 모두가 사는 축복을 받을 것이며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주님을 좇아가는 자만이 마침내 요단을 십자가를 통해 건너 영광스러운 천국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둘째로 사명의 십자가는 억지로라도 지는 것이 축복입니다.(32).

본문 32절에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하였습니다.

시몬이 시골에서 올라와 예수님 십자가 지고 가는 것을 구경하다가 군병들에게 붙잡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억지로”라는 용어를 쓴 것을 보니 그 때 시몬이 얼마나 지기 싫은 십자가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몬]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같이 가게하여 ...지웠더라]는 것은 왕의 특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선박이나 말이나 사람들을 강제로 징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 북쪽에 위치한 성읍의 이름으로 트리폴리에 속합니다.

이곳에 애굽의 포틀레미에 의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강제 이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구레네에서 온 시몬]은 어떤 특정 직책을 진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수천리나 되는 길을 몇 달 동안 걸려서 올라온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은 간밤에 심문 당하느라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지친 , 그리고 새벽까지 채찍에 맞는 온갖 수난을 당해 기력을 잃은 예수께서 30kg 정도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며 11번이나 넘어지며 기진맥진하여 힘들어 하므로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기진해 있는 주님께는 인생의 무거운 짐만큼이나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의 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결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지고 휘청거리셨는데

우리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에 골고다 언덕에 올라설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도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간신히 짊어지고 가다가 실족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 엘리야처럼 지쳐서 엘리야처럼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데려가 달라고 괴로움을 털어놓을 때도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사명을 감당하기에 완전무결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사명을 감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성도가 직분을 감당할 때 사명을 감당함에 부족함이 발견되면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놀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불평하지 말고 서로 짐을 나눠지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한 마음 되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에손잡고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로마 군병이 그렇다고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갈 수는 없으니 로마 군병의 직권으로 길가에 있는 사람 중 눈에 띄는 건장한 한 사람을 차출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에겐 오리를 가는 의무징용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십자가 지고 따라간 것입니다.

명절날에 누가 수치스런 십자가를 지기 원하겠습니까?

부정해서 씻기 전에 성전예배에도 참석할 수 없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일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시몬은 로마 군병에게 차출되어 억지로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에 올라가 그는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진 시몬은 엄청난 행운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좀 저속한 표현입니다만 ‘똥 밟은 줄 알았는데 황금방석에 앉은 것입니다.’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그 가정이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주하게 되었고 믿음의 변방에서 믿음의 핵심 기둥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억지로 진 시몬은 그 가정이 영원한 죄 짐을 벗고 영생을 얻는 축복을 받게 된 줄 믿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으면 그의 가정이 복음화 되고 아내가 주의 종들을 돕는 바울의 어머니 같은 존재요, 그의 자녀들이(알렉산더, 루포) 모두 복음의 일군이 되었을까요?

참으로 십자가를 강요에 의해 짊어진 시몬은 그 일이 불운이 아니라, 행운이었으며, 부정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거룩한 봉사였으며, 노역이 아니라 죄짐을 벗는 축복받는 일이었음을 믿습니다.

이는 우리가 비록 자원하는 심령으로 한 것이 아니라 타의나 상황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할지라도 예수를 한 번 깊이 경험하고 체험하고 만나게 되면 더 깊은 영적 축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몬이 진 십자가는 바로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오직 시몬 한 사람에게만 주어졌던 사명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억지로 십자가를 진 시몬도 놀라운 축복을 받았는데, 자원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성도들에게는 얼마나 큰 하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흥분되지 않으시는지요?

주님께서 친구라 불러 주실 것입니다.

요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하셨듯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얻으신 그 하늘 영광과 축복을 함께 누릴 줄 믿습니다.

 

셋째로 대속의 십자가는 생명의 십자가뿐입니다.(33-44)

33절 골고다]는 해골들의 장소였습니다.

노예나 강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그 시체를 가져갈 사람이 없으니 새들이 날라와 눈을 빼먹고 살을 쪼아 먹습니다.

살이 다 발라 먹히고 나면 뼈만 남아 굴러 떨어져 여기 저기 해골들이 나뒹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골고다는 한 마디로 심판과 사망과 저주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골고다 조차 사망과 심판과 저주의 장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생명과 희망의 장소로 변화되었습니다.

벤허에서 골고다 언덕에서 살고 있던 문둥병자가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예수님의 핏물이 그 몸에 닿자마자 문둥병이 깨끗이 낳는 장면이 감동을 줍니다.

주님이 가시기전 골고다는 심판과 저주와 사망의 언덕이어서 문둥병자들이 몸을 숙이며 살던 곳인데 그곳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지므로 골고다에서 흘려 나오는 빗물에 몸에 닿는 문둥병자가 낳는 생명의 동산이 된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가 이제 골고다 언덕으로 옮겨짐으로 인간의 모든 희망과 새 생명이 그 골고다 언덕 주님의 십자가에서 발원되기 시작한 줄 믿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생명의 장소로 변합니다.

우리 온 교회도 주님이 지금 이 시간 찾아오시므로 골고다 언덕처럼 죽어있던 심령들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으며 주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 영원히 머물러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성도가 가는 곳마다 의와 화평과 은혜의 장소로 변하여 영생의 근원지로 만드는 놀라운 역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로마 병정들이 권하는 쓴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술이라 안 마신 것이 아니라 마취제이기에 로마 병정들이 못을 박을 때 몸부림치지 말라고 주는 것입니다. 쓸개탄 포도주는 마취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통을 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 아픔을 몸소 체험하시기 위해 쓸개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자들의 위로자가 되려면 고난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우리에게 오는 고난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해 가야 합니다.

굶어 본 사람이 굶어본 사람의 고통을 압니다. 동정도 합니다.

고난이 닥쳐올 때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유익한 성도가 되게 하시려고 연단을 주시는 것으로 믿고 믿음과 인내로 극복하시길 원합니다.

본문35-40절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총체적 고난을 당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35절에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는 인류의 죄악을 대신 지신 우리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할 수 없이 졌거나 자기 죄 때문에 진 십자가가 아니요 우리를 위한 전적으로 예수님이 자원하여 지신 희생의 십자가였습니다.

이사야는 기록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53:5-6) 했습니다.

이 십자가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주님만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은 단지 육체적인 고난만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당하신 총체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손목과 발목에 철로를 지탱하기 위해 박는 대못이 박힌 극한의 육체적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옷이 발가벗겨져 나무에 달렸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목욕탕에서 만나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지나 내나 벗고 보니 별것도 없더만 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경배 받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초라한 모습으로 박혀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나눠 가진 옷은 어머니 마리아가 손수 짠 세마포 옷입니다.

발가벗겨진채 여자들이 포함된 수많은 군중들 가운데 달려 있으니 얼마나 창피하고 수치스럽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은 악한 죄인이라는 오명을 씌워졌습니다.

양 옆에 두 강도를 매단 것입니다. 강도 반역자의 두목이란 누명을 쓰고 악랄한 놈들이다는 표를 하고 있습니다.

군중들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홀로 지옥에 내려가셔서 지옥의 세력과 싸우셔야 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십니다.

주님은 이러한 총체적 고난을 바로 우리를 위해서 지신 줄 믿으십니까?

그 주님 앞에 무릎꿇고 온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경배하시는지요?

우리 형제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도 기꺼이 당할 각오를 하시기 원합니다.

41-43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주님을 희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득의양양하여 주님을 모독합니다.

서기관들이 대제사장들이 놀리고 있는 것은[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너를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말과 같습니다.

성도에 대한 사탄의 유혹은 죽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잘하던 분이 예수님을 부인하기도하며, 헛소리를 하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짓고 지혜의 사람으로 추앙받던 솔로몬조차 말년에 우상을 끌어들이는 타락에 빠지게 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 사탄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부터 십자가 죽음 직전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단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품에서 위로를 받을 그 순간까지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고 미혹을 경계함으로 믿음의 용사 승리자로 굳게 서기 원합니다.

44절 말씀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 범한 이후 태도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살인과 강도짓을 한 행악자 중 한사람은 생애 마지막 순간에 회개함으로 천국을 선물로 받았지만,

한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주님께 악담하고 욕을 해댔습니다.

그 결과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생이기에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너무 많습니다.

죄가 없다하는 인생은 거짓말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영혼을 용서해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마음을 강팍히 하지 말고 늦기 전에 신속히 회개하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현명한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모두 내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이제까지 무슨 십자가를 지기 원하십니까란 제목으로 세 가지 멧세지를 선포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라(막8:34-35).

둘째로 사명의 십자가는 억지로라도 지는 것이 축복입니다.(32).

셋째로 대속의 십자가는 생명의 십자가뿐입니다.(33-44)

세상에는 십자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잘못 때문에 지는 십자가는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자기부인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시기를 바랍니다

앞서 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 어디든지 좇아가는 대속의 십자가 지는 ,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서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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