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그 분의 보호아래, 그 풍성하심 아래

하나님아들 2013. 1. 29. 14:18

그 분의 보호아래, 그 풍성하심 아래

사무엘상 1:12-20

 

이 시간 저는 실물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저의 손에는 생수병이 하나 들려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 이 물은 깨끗한 생수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물은 90%는 깨끗한 생수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10%는 저의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난 구정물을 넣었습니다. 90%의 생수가 들어있는 이 물을 먹을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제가 이 생수병을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공짜로 드린다고 해도 이 물을 먹을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90%라는 것은 숫자적으로 볼 때 큰 부분입니다. 9할, 10분의 9 그것이 얼마나 큰 분량입니까? 그러나 90%가 생수라고 하더라도 10%의 더러운 물이 섞였다고 하면 그 물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 물을 먹으라고 하면 막 화를 낼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물은 100%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100%의 깨끗한 물을 요구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100%의 순도를 요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지낸 사울이 나옵니다.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짐승 중에서 좋은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다는 핑계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사울 왕을 축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구약성경에 나옵니다.

여러분,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울 왕이 엄청나게 불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이고 아말렉 왕 아각 한 사람만 살려두었습니다. 그 많은 다른 짐승은 다 진멸하고 그 중에 좋은 것만 몇 마리 남겨두었습니다. 그것도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몇 마리를 남겨두었을 뿐입니다. 엄청나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숫자적으로 보면 거의 98, 99%정도 순종한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그만하면 잘했다고 칭찬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학점으로 따지면 A플러스가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내가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1) 사람에게는 사울의 행동이 올바르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불순종으로 보셨습니다. 2%의 더러운 물이 섞인 것을 잡수실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사울과 같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어제 아버지학교 청주 33기를 마쳤습니다. 많은 것을 깨닫고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숙제인 소감문을 쓰면서 제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을 잘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강의를 듣고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지금보다 더 잘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잘하는 것이 아니겠어.’ 그러면서 더 이상 온전을 추구하지 않고 그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신앙생활을 할 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바쁜 세상에서 52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할 수 는 없는 것이 아닌가? 3분의 2 정도만 참석하면 잘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 예배만 참석하면 되지 어떻게 오후 예배, 삼일기도회, 금요기도회 까지 참석할 수 있겠어? 주일 오전예배만 참석해도 잘하는 것이 아니겠어.’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꼬박꼬박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우리 남편은 다 좋은데 그것 하나가 문제야 그것 하나만 고치면 100점 남편인데” 어떤 사람은 평소에는 다 좋은데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신뢰를 다 무너트려 버립니다. 다 잘합니다. 그런데 도박하는 것을 끊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안 그런 척, 경건한 척, 주일날이면 열심히 봉사도 하고 충성을 합니다. 이것은 90%의 생수에다가 10%의 구정물을 넣고 ‘하나님 이것이 제가 드리는 생수입니다. 잡수세요.’ 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구정물이 들은 물을 주면서 ‘이 물이 어떠세요? 이 물이 뭐가 문제 이길래 안 받으시는 것입니까? 이 물을 잡수시고 저를 축복해주세요.’ 이것을 하나님이 잡수시겠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기쁘게 보고 우리들을 축복하시겠습니까?

 

말라기시대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나름대로 제사도 잘 드리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습니까?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면 복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복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에게 희생제물을 드린다고 했는데 내가 보니까 눈 먼 것, 병든 것을 드리고 있더라. 그것을 내가 어떻게 기쁘게 받고 축복해줄 수 있겠느냐?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갖다 주어봐라. 그들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 우리가 눈먼 것, 병든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 왜 우리를 축복해주지 않으십니까?’ 구정물이 들어간 생수를 드리면서 ‘이것이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왜 우리를 축복해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따지는 모습은 아닙니까? 이 시간 양심에 손을 얹고 조용히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히 100% 거룩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온전한 삶을 살아가지는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온전을 목표로 삼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못한다고 아예 포기하면서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성도들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에베소 교회가 책망 받은 이유는 90%가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다 잘했습니다. 그런데 2%가 부족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 2%가 부족해서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 2%의 구정물 때문에 주님이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2%의 구정물을 생수로 바꾸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온전히 순도 100%의 생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순도는 85%가 아닙니다. 90%도 아닙니다. 99%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은 구정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도 100%의 생수입니다. 하나님은 그 생수를 받으시고 그 생수를 드리는 자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아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만 옛날 사무엘 시대에 자녀가 없는 것은 저주 중에 저주였습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오랜 시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면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엘리 제사장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 제사장이 오해를 하였습니다. 이 여자가 술을 먹고 취해서 술주정을 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말을 합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여러분 이 말을 들었을 때에 한나가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얼마나 모욕을 느끼며 속으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겠습니까? 요즘 말로 하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도대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깊이 기도하는 모습이 안 보여요? 도대체 술 취한 것과 안타깝게 기도하는 것도 구별하지 못하는 당신이 제사장이 맞아요? 영성이 떨어졌다고 소문이 난 것이 거짓이 아닌 틀림없는 사실이군요. 이제 됐어요. 다른 데로 가서 기도하야겠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뛰쳐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나는 제사장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을 ‘내 주’라고 공경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대제사장을 존중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엘리는 분명 그런 반응을 받을만한 행동이나 판단을 못했지만 한나는 권위 있는 엘리의 제사장 직분을 깍듯이 존중한 것입니다. 그러자 제사장이 자기의 실수를 깨닫고 한나를 축복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자 한나가 그 축복의 말을 믿고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는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하나님은 제사장이 축복하신대로 한나의 품에 어린 사무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가운데 나타나는 한나의 신앙은 순도 100%의 생수신앙이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녀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소문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기도하는 것과 술 취한 것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영성이 떨어졌습니다. 안타깝게 기도하는 한 여인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말로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화가 나서 그냥 뛰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축복을 해 준대도 이런 제사장이 축복한다고 무슨 복이 임하겠나? 별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 상황에서도 제사장을 하나님의 종으로 받들었습니다. 공경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축복이 분명히 임할 줄 믿고 기쁜 마음으로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렸습니다. 한나는 본능적인 논리로 살지 않고 여호와의 영적 권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나중에 한나는 그 귀한 아들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맡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 주변 상황은 기도할 때보다 오히려 더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아들을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공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권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보통 많은 손해를 볼 것 같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고 순종을 해도 일부만 하고 온전히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권위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것은 내 품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내 보호에서 하나님의 보호로, 내 능력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어디가 더 안전하고 어디가 더 복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분의 날개아래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심 속에 거하게 하십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고 있을 때 하루는 다윗과 아비새가 사울의 진영을 정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나 피곤해하는지 모두가 다 골아 떨어져 있었습니다. 보초도 골아 떨어져있고 사울왕도 골아 떨어져서 옆에 가도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그때 아비새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자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때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죽인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사울은 무죄한 제사장 85명과 그 아내들과 자녀들을 잔인하게 죽인 폭군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말을 통해 이미 다윗을 이스라엘 다음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이제 다윗이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사울은 삼천 병사와 함께 다윗을 죽이러 나왔습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입니다. 분명 이것은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해 다윗과 아비새가 사울 옆까지 갈 수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사울을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이유가 그럴듯하고 일리가 있으며 옆에서는 충직한 신하가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상황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상황적으로 보면 분명 죽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사울 왕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축복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극과 극의 차이가 아닙니다. 단 몇 %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차이가 바로 그들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람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순도 100%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깨끗한 생수를 마시고 싶어 하십니다. 10%의 더러운 물, 아니 5%의 더러운 물이 섞인 그런 물은 마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생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도 100%의 헌신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약성경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그것은 순종입니다. 신약성경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사랑입니다. 이 두 성경을 압축하면 순종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19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저는 이것이 성경을 가장 간단하게 요약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아니 적당히 순종하였던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죄악과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죄악과 사망의 고통스러운 세상을 깨트리고 인류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까?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내 뜻과 내 욕심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어려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계획이 죽지 않는 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분의 날개 아래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의 풍성함속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영광의 보좌위에 계신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삼상15:22-23)

예수님처럼 온전히 순종하여 구원의 역사와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barnaba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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