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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일성수가 흔들리는 원인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13. 1. 26. 21:53

주일성수가 흔들리는 원인은 무엇인가?


종교사회학적 분석

이원규/ 감신대 교수

지난 1960년대 이후 놀랍게 성장했던 한국교회가 침체되고 있고, 그 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신도들의 신앙적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80년대 후반기부터 둔화되기 시작한 교회성장률은 이제 멈추어 버렸고, 신도들의 교회 모임에 대한 참여율도 약화되고 있다. 그래서 일종의 위기감마저 교회 안에 감돌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이 조성된 하나의 결정적 원인은 주일성수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일성수는 문자대로 풀이하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만, 흔히는 좁은 의미로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뜻하고있다. 따라서 주일성수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교인들의 교회출석률, 예배참여률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주일성수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새신자들이 늘지 않아 교회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주로 이미 교회에 등록되어 있는 교인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현상으로 보기로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주일성수가 잘 되지 않는 요인들을 종교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보려고 한다.

Ⅰ. 교회출석의 요인

주일성수가 잘 안되는 요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으며, 왜 현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밝혀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이것은 주일성수가 잘 안되는 것이 교회출석의 요인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게된 동기에 대해서는 사회학적으로 볼 때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는 기독교인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들은 가족, 친구, 친척, 이웃, 직장동료 등의 말과 행실에 영향받아 교회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직접적인 전도와 간접적인 삶의 영향이 모두 중요하게 작용한다.

둘째는 개인적인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이에 대한 도움의 필요성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에 나온다. 여기서 위기상황은 질병, 죽음, 환경변화, 경제적 어려움 등의 삶의 위기와 불안, 공허감, 소외감과 같은 심리적 경험이 모두 포함되고 있다. 이른바 박탈에 대한 보상(deprivation-compensation)을 기대하며 교회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공동체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교회에 나온다. 특히 도시화 과정을 통해 도시에로의 거주지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누렸던 소속의식, 연대감이 상실되었다. 상호 이질감을 느끼는 삶을 살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공동체성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것이 교회출석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넷째로 사람들은 의미를 찾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다.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 등은 실존적인 물음으로써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때로 깊이 생각하게 되는 문제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을 사람들은 종교에서 추구하는 수가 많은데, 교회출석의 경우에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다섯째로, 사람들은 지위에 대한 대체만족을 누리거나 지위에 대한 확인을 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비신앙적인 이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보다 폭넓게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지위를 교회에서 대신 인정받으려는 대체만족의 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주일성수가 잘 안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제시한 교회출석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주일성수가 잘 안되는 요인은 사회적 요인, 사회심리적 요인, 교회 내적 요인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Ⅱ. 사회적 요인

주일성수가 잘 안되고 있는 사회적 요인의 하나는 종교의 다원화(pluralization)현상 때문이다. 종교의 다원화란 한 사회에 단일한 하나의 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교, 교파 교회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종교적으로 매우 다원화된 사회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교집단은 서로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만 하더라도 불교, 유교 등의 10여 개 기성종교,400여 개에 달하는 신흥종교와 경쟁하고 있고, 개신교 각 교파는 113개의 다른 교파들과, 그리고 개교회별로는 3만 7천 개의 교회가 서로 신도경쟁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도들은 여러 기업들의 다양한 상품을 각자의 구미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소비자처럼 시장상황(market situation) 가운데 있는 여러 종교, 교파, 교회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장상황에서는 종교적 유동인구가 매우 많아지게 된다. 새롭게 한 종교를 갖게 되거나 혹은 이미 가지고 있던 종교를 포기하는 일 이외에도,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한 교파에서 다른 교파로,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일이 흔해지게 된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많아짐에 따라 교인들은 목회자의 유명도, 교회분위기, 설교 메시지, 지역적 위치 등의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서 교회를 자주 옮겨 다니게 된다. 따라서 이중, 삼중으로 등록되어 있는 교인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예컨대 문화공보부 자료에 의하면 1993년말 개신교 인구는 천 4백만으로 나와 있는데(이것은 각 교단의 보고 자료를 그대로 소개한 것임), 통계청의 표본조사(1992)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인 수는 약 900만 정도인 것으로 나와 있다. 약 500만의 숫자가 허수로서 이들은 이중으로 등록되어 있거나 등록했다가 교회를 다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기부터는 점차 이러한 유동적인 교인들이 줄어들게 되어 90년대에 와서는 두드러지게 떠돌이 교인들이 감소하게 되었다. 아마 그들 가운데 상당수, 특히 새신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 나오기를 아예 포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종교를 가져본 경험이 있다는 비종교인의 74.5퍼센트가 그 종교는 개신교였다는 조사결과(불교 23.2%, 가톨럭 10.0%)가 뒷받침해 주고 있다.

어쨌든 떠돌이 교인의 감소 및 새신자의 탈락은 교회성장률을 감소시켰고, 아울러 등록된 교인수에 비해 주일을 지키는 교인수의 감소를 가져왔을 것으로 보인다.

주일성수가 잘 지켜지지 않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요인은 여가산업(leisure industry)의 발달이다. 여가산업은 한 사회의경제적 수준과 대체로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경제성장의 한 부산물로 점차 여가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1980년대부터 괄목할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관광지, 휴양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골프장, 스키장, 수영장, 볼링장, 테니스 코트 등의 건강과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또 사우나, 헬스 센터 등의 휴식처가 많이 생겨났고, 까페, 디스코장, 단란주점, 호프집 등의 유흥업소, 그리고 이에 편승한 호텔, 여관 등이 수없이 생겨났다. 특히 서울 근교와 지방 곳곳에 콘도와 호텔이 세워졌고, 각종 위락시설, 유흥시설이 마련되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휴식과 여가를 전문적인 휴식, 여가, 유흥 시설에서 즐기게 되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메우는 주말의 행락 인파를 보면 이제는 봄의 꽃놀이철, 여름 피서철, 가을 단풍철, 겨울 휴양철을 타지 않는 전천후 휴가철이 매 주말마다 찾아오고 있다.

게다가 승용차는 20년 전보다 60배로 증가되었고, 도로망은 크게 확충되었다. 주말의 기차나 고속버스는 항상 만원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이제 해외여행을 이웃집 드나들 듯 한다. 관광회사마다 동남아는 말할 것도 없고, 북미주, 유럽, 나아가서 남미주와 오세아니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여가산업의 급속한 발달은 주일성수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결정적 이유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여가산업은 긴장해소 및 정신적 치유의 좋은 수단이 되며, 따라서 개인적 위기 극복의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주일 7시 혹은 8시 예배를 드리고 빠져나가는 교인들은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Ⅲ. 사회심리적 요인

사회적 요인과 관계가 있으나 심리적 요소가 함께 작용하는 사회심리적 요인은 한 마디로

말하면 종교에 대한 신앙의 동기가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에서 제시했던 박탈-보상의 이론이나 사회지위 이론, 공동체성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요인이라 할 것이다.

즉 보상을 필요로 하는 박탈(절대적 박탈이든 상대적 박탈이든, 경제적 박탈이든 심리적 박탈이든)이 감소된다든가, 대체 지위를 얻을 필요가 없거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대체 영역이 생기게 되었다든가, 혹은 공동체성에의 필요성이 감소되거나 대체 수단이 생겨나게 된다면, 종교를 필요로 하고 신앙을 가질 사회심리적 동기는 감소될 것이며, 이 결과는 종교신앙의 포기 혹은 참여적 종교성의 약화일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대체로 5천불을 넘어서면서 종교적 관심은 약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경제적인,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사회적인, 심리적인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즉 생존문제에 대한 절박성이 약화되면서 그 절박성에 대한 보상 효과가 있는 종교에의 기대 심리는 감소되는 것이다.

교회성장률이 현저하게 둔화되기 시작한시기와 1인당 국민소득이 5천불을 넘어설 무렵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박탈감이 강할수록(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육체적, 도덕적 박탈감 어느 것이든)종교를 찾게 되고 종교성이 강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종교사회학 이론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박탈감의 감소는 종교신앙의 동기를 약화시켰을 것이고, 이것은 교회성장의 둔화와 주일성수의 소극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에 대한 대체나 공동체성에 대한 대체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경제성장 및 이에 따른 신분상승은 비슷한 사회이동을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동질의식을 갖게 만들며, 이러한 동질집단의 폭은 넓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준의 향상은 다양한 취미와 여가를 즐길 여유를 갖게 하며, 이에 따라 교양, 취미, 오락 등의 공동 관심사를 나눌 자발적 결사체(voluntary association)가 많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집단에의 참여는 새로운 공동체성을 마련해줄 수도 있고, 나아가서 그것은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확인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경제생활 수준의 향상은 대체지위의 확립이나 새로운 동질집단 형성을 가능케 함으로 교회출석의 사회심리적 동기를 약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주일성수가 잘 안되게 된 사회심리적 요인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그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사회가 불안정하고 불안할 때 사람들은 종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는 특히 정치적인 변수가 중요하다. 정치적 혼란과 불안이 사회의 지배적 분위기가 될 때에,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인 안정과 복지감, 만족을 종교에서 찾으려는 동기가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전쟁의 위협이 있거나 전쟁이 끝났을 때, 독재가 있거나 정치적 억압이 있을 때 그것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밖에도 문화적으로 가치 혼란이 심각하거나 사회 질서가 크게 흔들릴 때에도 종교에 대한 사회심리적 동기는 강화된다. 이것을 뒤집어 설명하면 사회적으로 안정이 된다면, 사회질서가 잡혀 나간다면, 민주화나 복지화의성과가 나타나게 된다면 불안, 공포, 불만은 약화될 것이고, 이것은 나아가서 종교에의 참여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은 80년대 후반부터 여러 영역에 있어서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종교신앙에의 동기를 감소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이것은 주일성수의 소극성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Ⅳ. 교회적 요인

주일성수가 잘 안되고 있는 요인이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 내적 요인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교회 외적 요인이 다소 불가피한 것이라면 교회 내적 요인은 교회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일성수가 잘 안되는 교회 내적 요인은 한마디로 교회가 매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신뢰감이 약해졌고, 교회에 대한 기대감도 감소되었다는 말이다. 교회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예컨대 한 조사에 따르면 타종교로의 개종률을 보더라도 타종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비율이 다른 종교들의 경우보다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교회는 매력을 잃고 있을까? 우선 교회의 세속화로 인한 실망감의 증대를 들 수 있다. 세속화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이 세상적인 것과 동조(conformity)하는 경향이란 의미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흔히 종교, 특히 기독교 하면 높은 이상, 깊은 진리,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말하고 그것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다. 따라서 종교가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역할 실패) 타종교로 돌아서든가 반종교적으로 되어버릴 수가 있다.

한국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듯이, 실제로 여러 조사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너무 이 세상적 가치에 물들어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물질주의와 물량주의 가치관이다 교회마저도 물질과 숫자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또한 출세주의, 성공제일주의 가치관도 지나칠 정도로 만연하고있다.

이러한 세상적 가치관에 사로 잡혀있는 교회에 대하여 교회 안과 밖에서 심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잃게 된 요인들은 많이 있다.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성장 제일주의, 개교회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사회봉사와 구제에는 너무 인색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교회들은 대체로 1년 예산의 5퍼센트만을 사회봉사를 위해 할애하고 있고, 인적, 시설자원도 거의 교회 안의 일만을 위해 동원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교회가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교회가 비판받고 있는 부정적 요소로는 그밖에도 교파분열이 너무 심하고, 교세확장에만 관심이 있으며, 너무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수준 낮은 성직자가 많고 헌금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것들이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상과 실망감은 교회에 대한 교인들의 충성심을 약화시키고, 그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교회 내적 요인은 교회가 이제는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고 줄 것이 없다는 인식이 교인들에게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분한 설교를 듣고 앉아 있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교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강단의 메시지 고갈, 교회 프로그램의 빈곤 등이 토로되고 있다. 새로운 것이 없다든가, 감동을 주지 못한다든가 하는 느낌을 갖는 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일성수의 약화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것은 특히 젊은층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주일성수뿐만 아니라 부흥집회, 산상기도회, 철야기도회, 수요집회, 성서연구모임 등의 현저한 출석률 감소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한국교회는 성장과 교인들의 주일성수를 위하여 처음부터 총력전을 폈고, 자극적인 방법을 이용했다. 자극적인 방법의 사용은 점점 더 고단위의 처방을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이제 더 이상의 고단위 처방약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면 과장된 비유일까. 어쨌든 이러한 모든 교회 내적 문제들이 주일성수를 약화시키는 데는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Ⅴ. 평가와 과제

앞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사회적, 사회심리적, 교회적 요인들에 의해 주일성수가 잘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어느 정도는 사회적 상황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사회적 및 사회심리적 요인이 주일성수가 안되는 필요조건이라면, 교회 내적 요인은 충분조건이라 할 것이다. 즉 교회 내적 요인만 없어도 주일성수의 문제가 그렇게까지 심각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적 요인들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 요인이며, 우선적 요인은 교회 내적 요인이라고 본다. 경제성장의 결과에 도취되어 자축하는 가운데 경쟁력이 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뒤쳐져버린 한국의 경제상황처럼 기적적인 성장이라는 교회의 성공적 발전에 도취되어 자기만족에 빠져있던 교회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결과가 성장의 둔화, 주일성수의 약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부단히 새롭게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변화되는 사회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교회 안과 밖에서 불어오는 도전에 속수무책이었다.

이제 주일성수가 잘 되기 위하여, 아니 근본적으로는 교회가 그 참된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거듭나야 한다. 지금은 질적 성숙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인들에게 주일성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대하여 훈련과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가지는 기대와 희망이 실망과 회의로 바뀌지 않도록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사람들이 주일성수에 있어서, 교회출석에 있어서 만족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교회는 교회 밖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가, 교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 이제부터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과제이다.

이원규/ 감신대를 나와 에모리대학교에서 종교사회학(M.A., Ph. D.)을 공부했다. 지금은 감신대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 「종교사회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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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최경복의 희망광장
글쓴이 : 최경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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