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스크랩] 지옥은 존재합니다 ~(두번째 글)

하나님아들 2013. 1. 19. 12:38

 

 

1.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일시적으로 유한한 몸 안에 거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언젠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임재 앞에서 영원으로 들어갈 것이고,

다른 사람의 혼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주님의 면전에서 영원히 쫓겨나 버릴 것입니다.

 

2. 오늘날 교회 강단은 세 가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나약해 빠져서 어떠한 부정적인 사실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보통의 목사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 교회에 고용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고객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약한 청중이 듣기 싫어하는 것은 전혀 말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어디에 가는지에 관한 설교는 오늘날 거의 듣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3. 목사들이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교를 하지만 지옥에 대해서는 거의 설교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서 구원받는다기 보다는 지옥에 가기 원치 않아서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배우고 나서는 하늘나라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므로 하늘나라를 소망하지는 않습니다.

 

4.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인데 누군가가 와서 이렇게 얘기하면 어떻겠습니까?

간음, 음행, , 마약, 그리고 음란한 파티도 없는 곳에서 영원을 보내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거기에 가지 않으면 영원히 불타는 곳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지요.” 솔직하게 생각해 보세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영원히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죄를 짓지도 않을 장소에 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세요?

하늘나라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원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죄가 없는 하늘나라보다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대해서 전해야 합니다.

 

5. 오늘날 지옥과 심판에 대한 설교를 자주 들을 수 없는 둘째 이유는, 청중의 가족들 중에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있는 경우, 선하고 정직한 설교자들도 지옥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청중의 가족 중에 이미 죽어서 지옥에 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 지옥에 대해 설교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믿지 않은 채 죽은 경우 지옥에 대해 듣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6. 성경에는 지옥에 있는 사람의 말이 기록된 단 한 번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의 가족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전해주어 아무도 그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옥에 가게 됩니다. 지옥에는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하늘나라에는 못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났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7. 오늘날 지옥에 대한 설교를 거의 들을 수 없는 셋째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안수를 받은 설교자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는지를 배운 목사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이 4년제 신학교를 나오거나 3년제 신학대학원을 나온 사람들인데 신학교에 다닐 동안 한 번도 지옥에 대해 듣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수업시간에도 지옥에 대해 듣지 못했고 채플 시간에도 듣지 못했고 밖에 나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들도 이 세상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세상이 듣기 싫어하는 지옥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8. 100년 전에는 어느 교단에 속한 신학교를 나오든 간에 하늘나라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지옥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때는 많은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라디오나 인터넷을 통해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아무도 지옥 불, 영원한 저주, 형벌, 끝없는 구렁, 불 호수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설교를 듣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설교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이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과거에는 바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바르게 살았습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느냐고 따져 묻는 시대입니다.

주위에 경찰이 없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고 믿는다면 도둑질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를 죽이려고 계획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서서 그 모든 행위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모든 살인 계획은 취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성경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형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6을 보세요. 그런즉 이들은 영존하는 형벌에 들어가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3:29절도 보세요.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모독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정죄의 위험에 처해 있느니라, 하시니라.”

 

11. 성경에서 영원한 형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에 주목하세요.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고통을 당하다가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살아있는 친척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교회에 돈을 바친다고 해서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주는 영원합니다. 심판도 영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반드시 신실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육신을 부인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2. 사람들은 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단순히 죽어서 무덤에 묻히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 속으로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불 속으로 던져집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의 직장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이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쇼핑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3. 우리의 육신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거절하면 어쩌지, 나를 비웃으면 어쩌지, 나에게 화를 내면 어쩌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 지옥에 가면 어쩌시렵니까?

우리가 느끼는 것이나 원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4. 심판과 형벌은 단순히 영원한 것일 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육체의 죽음 이상의 것입니다.

유다서 7절을 보세요.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주변 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거주민들은 첫째 죽음을 경험했고 둘째 죽음도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15. 성경은 창세기 19장에서 음행으로 인해 그 도시들을 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들은 죄를 심각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동성연애의 죄만 지은 것이 아니라 온갖 부도덕한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서 그 도시들을 태워버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은지 10년 후에 가서 보면 계속 불타고 있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지금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가면 불타는 것을 볼 수 있을까요? 역시 아닐 것입니다.

 

16. 당시 소돔과 고모라의 거주민들은 하늘로부터 온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서에 의하면 그들은 지금도 불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생에서의 삶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생에서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게 끝날 수 없고 그렇게 끝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의 혼은 영원합니다.

 

17.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죽음 이후에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받기 위해 빛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죽으면 어둠 가운데 던져지고 빛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18. 한 번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지옥이나 불 호수에 던져지면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는 것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요?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받을 수 있게 해 준 일이 잔인한 것인가요? 구원받기 위해 빌딩을 세울 필요도 없고 수 십억을 낼 필요도 없고 선행을 많이 할 필요도 없습니다.

 

19. 단지 마음으로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으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쉽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인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하면서 하나님이 잔인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정당한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공짜로 주시는 선물은 무시하면서 자신이 행한 대단한선행으로는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악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요?

하나님은 악한 하나님이 아니라 선한 하나님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선한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 방법을 싫어할 뿐입니다.

 

20. 성경은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하면 영원한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육체적인 고통 이상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통을 싫어합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고통은 피하고 싶어요.

저는 상처받고 아픈 게 싫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육체적인 고통 이상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마가복음 9:43을 보세요.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손을 찍는 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만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면 왜 손을 찍어버려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죄를 지어도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끝나게 된다면 손을 찍어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생에서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형벌이 존재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형벌을 피해야 합니다.

 

22.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9장43:44절저는 제 손을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과 손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손을 포기하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 보다는 손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손을 잃는 것이 혼을 잃는 것보다 낫습니다.

 

23. 여러분이 어떻게 정의하던지 상관없이 지옥은 실재하는 장소이며 고통의 장소입니다. 어떤 자유주의 목사들은 지옥이 단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라고 가르칩니다. 단지 선이 없는 곳일 뿐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이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장소입니다.

 

24. 만일 여러분이 옆집에서 나는 큰 비명을 듣고 나가서 보니 이웃집 사람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괜히 내가 도와주려고 하면 저 사람은 나를 비웃을 꺼야.”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119에 신고를 하고 도와줘야 할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이웃이 처한 상황은 이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 같지만 지옥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형벌을 향해 아무것도 모른 채 가고 있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그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25. 그리스도인들은 지옥과 친숙해 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옥에 대해 자주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사람들이 지옥에 가고 있는데도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6. 마가복음 9장45절을 보세요.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절뚝거리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어떻게 자신의 발을 찍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엄청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 지옥에 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영원토록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9장46절 저는 휠체어에서 평생을 보내기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지옥에 가는 것과 두 다리 중에서 선택해야만 한다면 저는 두 다리를 포기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 어떤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는 것입니다.

 

27.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직장 동료가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부러뜨린걸 보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리가 부러져서 뼈가 드러나 보이고 피가 흐르고 있는데 내가 도와주려고 했다가 괜히 저 친구를 귀찮게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하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마 바로 도와주려고 달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큰 사고를 당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28. 동료가 발이 다쳤을 때에는 도와주려고 하면서 지옥에 가고 있는 것은 모른 채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지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 데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무언가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이유 중에는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게 하기 위함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9. 마가복음 9장47절을 보세요.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는 한 쪽 눈이 유리로 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종종 자신의 눈을 빼곤 했습니다.

 

30. 소경이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는 소경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수강했던 사회학 과목의 강사는 학생들에게 두세 시간 동안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소경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인해 저는 더욱 눈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31. 눈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고 하십니다.

육신적인 시력을 잃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완전히 눈이 멀어 자신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눈이 멀고 손과 발을 잃는다 할지라도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받고 구원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고 풍족하게 살고 만족할 만한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대단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32.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선택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33. 이제 누가복음 16장19~21을 보겠습니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지내더라. 또 나사로라 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하더라. 또한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더라.”

만일 성경이 여기서 끝난다면 여러분은 부자와 나사로 중에 누가 되고 싶으세요?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만일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누가 더 나은가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돈과 집과 건강이 최고일 겁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저는 나사로보다는 부자가 되고 싶어요.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4. 22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히게 되었더라.” 만일 성경이 여기서 끝난다면 저는 부자보다는 나사로가 되기를 원할 것 같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잘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종교들은 영원한 형벌을 믿지 않습니다.

낙원에 가는 것은 믿지만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빌리 그래함도 지옥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은지 수 십 년이 되었습니다.

빌리 그래함과 오늘날 대부분의 목사들은 22절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는 이야기는 하지만 지옥에 가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5. 23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인간의 존재는 이생의 삶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비록 몸은 죽었지만 그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부자는 그 존재가 없어진 게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살아서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36. 이제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부자와 나사로 중 누가 되고 싶으세요? 나사로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쓰레기 통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기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구원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죽어서 낙원에 갔습니다.

그가 얼마나 비참한 인생을 살았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경우는 정 반대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는 이제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37.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세요?

얼마나 좋은 집에 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차를 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월급을 얼마나 받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휴가는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38. 정말 중요한 것은 육체 안에 있습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혼이 가장 중요합니다.

혼의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나사로는 단순히 거지가 아니라 영존하는 혼이었습니다.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고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영존하는 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던지 간에 구원받았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고 구원받지 못했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9. 계속해서 24절을 보겠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부자는 나사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눈도 있어서 볼 수도 있었습니다. 부자의 몸은 썩어 없어졌지만 그의 혼은 몸적인 형태로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죽으면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겠지만 몸과 같은 형태의 혼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 혼이 바로 여러분 자신인 것입니다. 같은 기억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 자신인 것입니다. 몸이 죽어 없어진다고 해서 혼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40. 부자는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라고 했지만 그가 긍휼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모두 지나가 버렸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부자가 받는 고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부자는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불 속에 있지만 완전히 타서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혼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41.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원한 게 무엇인지 아세요? 부자는 살아생전 먹던 진수성찬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방울의 물을 원했습니다.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실재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42. 25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너는 너의 평생에 너의 좋은 것들을 받았고 그와 같이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부자는 유대인이었고 이스라엘 사람이었으며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자손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영적이고 뛰어난 사람이 친족일지라도 지옥에 있는 사람을 구원해 줄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이 믿는다고 해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43. 26절부터 보겠습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갈 수 없고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 이에 그가 이르되, 그러므로 아버지여, 간구하건대 아버지께서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소서. 내게 다섯 형제가 있사오니 그가 그들에게 증언하여 그들 또한 이 고통 받는 장소로 오지 않게 하소서, 하거늘

 

44. 지금 현재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 아세요?

그들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 경고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 경고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 말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야만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의 존재도 모른 채 죽으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겠지.”하고 살아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도 아니고 구원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45. 이 설교를 듣는 사람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구원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해야 합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린다거나 기분 나쁜 소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목사들이 얼마나 자신의 일에 소흘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일 뿐입니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성경에 순종해서 복음을 증거했다면 지옥에 대한 이 모든 이야기들은 생소하거나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46. 29절부터 끝까지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저들의 말을 들을 것이니라, 하매 그가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지라도 그들이 설득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47. 저는 지금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그대로 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성경을 믿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증거한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지만, 만일 여러분이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만이 그러한 사실을 여러분의 마음에 계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48. 여러분 가운데에는 지옥에 대한 이런 사실들을 듣기 싫어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지옥은 실재로 존재하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나 이룬 업적 같은 것은 여러분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만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49. 나사로가 죽은 다음날, 그가 어디에 살았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더 이상 나사로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부자가 죽은 다음날, 그가 어디에 살았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부자에게 전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눈을 뜨던지 아니면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영원을 보내든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나라로 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50.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옥의 실상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 엄청난 고통의 장소에 가게 됩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들을 위해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51. 정리

(1)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형벌의 장소입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구원받지 않고 죽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형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4) 한번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지옥에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5) 선한 하나님은 구원받는 방법을 쉽게 해 놓으셨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합니다.

(6)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선택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담아온 글입니다..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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