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 닦기(1)-골짜기 메우기
눅3:3-6
▶ 길의 중요성 : 길은 문명발달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로마는 길이 비로 엉망이 되었을 때 길을 닦았습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 온 노예들이 길을 닦았습니다. 만일 길이 망가지면 그 길을 만든 노예를 사형시켰습니다. 그래서 2천년 된 길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길을 닦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전을 가져다줍니다.
중국에 갔다 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은 중국이 개방 정책을 통해서 많이 발전했지만 그래도 곳곳에 아직도 미개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 찬란한 문명을 오래도록 발전시킨 중국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 어떤 분은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습니다.
중국은 힘과 에너지가 생기면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 안에서 안주하고, 자기를 스스로 제한시켰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교훈은 에너지가 생기면 성을 쌓지 말고 길을 닦아야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발전이 지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길을 많이 닦는 만큼 그 나라는 선진국이 되고, 선진국의 지위를 계속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정도로 길을 닦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의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경부 고속도로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때 많은 반대가 있었고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비용을 들여서 고속도로를 만들고 결국 기적의 터전을 이루었습니다.
그처럼 길을 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길 중에 길은 무슨 길일가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닦지 못 하면 영원한 지옥이요, 영원한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본문은 이사야 40장 3-5절의 인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시켰습니다.
그 때 세례요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집니다. 그 내용이 본문 4절입니다.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 말은 왕께서 행차하실 때 그 왕 앞에서 전령이 외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위대한 왕께서 어느 곳을 행차하실 때 왕이 먼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발대가 먼저 갑니다. 가서 왕이 행차하실 수 있는 길을 닦습니다.
산을 메우고 강에 다리를 세우고 넓은 길을 만든 다음, 주변 마을에 들어가서 왕을 환영할 수 있는 인파를 만들고, 혹은 경계하면서 왕께서 그 자리로 들어오시게 하는 것이 선발대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왕을 맞이하려면 먼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오시는 마음이 되려면 어떻게 예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잘 닦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닫힌 마음을 열고 황폐해진 마음을 닦아 마음의 대로를 내어 예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확실한 비결을 요한이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째, 마음의 골짜기를 메워야 하는 단계에 대하여 대언 하겠습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틈, 골을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과 삶에 골짜기를 만듭니다. 마귀는 인간들을 사망으로 끌어가려고, 골을 만듭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에 상처의 골, 불신의 골, 절망의 골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주의 길을, 천국을 가려면 마귀가 만들어 놓은 이 골들을 메꾸어야 합니다.
1. 상처의 골을 메꿔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 관계의 상처, 삶의 상처는 주님을 맞아들이는 데, 깊은 골짜기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상처 입은 심령이 있습니다. 배신당한 자의 아픈 마음이 있습니다. 실패의 경험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많은 상처들이 우리 마음가운데 웅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자라나면서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것, 어머니에게 야단맞은 것, 선생님에게 야단맞은 것, 친구에게 배신당한 것,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 이것들이 그 때마다 움푹 움푹 내 마음을 파헤쳐서 골짜기를 만든 것입니다.
▶ 사울 왕의 실수로 인한 상처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뒤 백성들이 다윗과 사울을 비교 칭송하는 소리에 상처를 받아 나타난 그 현상들(삼상13:8-15 불레셋 침공 시 번제 드림, 15:1-23 아말렉 노획물 불순종, 18:6-9 여인들의 창화) : 불쾌. 주목, 야료, 두려움, 대적, 등등
사울은 받은 상처들로 인하여 결국 인격이 파괴되고 패망하게 된 것입니다.
▶ 목사님이 어느 한 집을 심방해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 며느리가 예배를 안 드립니다. 그 다음에 찾아가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다 믿는데 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정색을 하면서,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합니다.
"목사님! 시어머니가 믿는 예수님은 안 믿을래요, 내가 예수님 좋은 줄은 압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을 안 믿을래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내가 예수님을 믿을만한 마음이 생기면 그 때가서 믿겠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 좋은 줄은 압니다. 하지만 골이 깊어서 그 골을 넘어 설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못 믿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있는 골이 무엇입니까? 지난날의 삶 때문에 상처가 되고 그 상처가 더 깊어져서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의 골들이 있습니까? 그 골들을 메우셔야합니다. 아무리 골이 깊게 파졌다하더라도 그 골을 메우는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내가 먼저 골을 메워야합니다. 거기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한 성도께서 자선단체 모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자선단체를 만들어 2주에 한 번씩 봉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회장이 되어 회원 30여명과 함께 독거 노인과 장애 노인, 치매노인을 위한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임원회를 하면서 회장과 부회장이 충돌이 생겼습니다. 회장은 이 번에는 치매노인을 중심으로 봉사하자고 제안 했는데 부회장은 치매 노인은 너무 힘들고 자신들의 형편에 버거우니까 독거 노인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은 수평선을 이루었고 결국 표결에 붙여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은 회장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회장으로 봉사했는데 회원들이 자신의 마음을 너무나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 있는데 부회장과 회원 몇 명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였습니다. "독선적이고, 지도력이 부족하고, 돈에 대하여 불분명하다" 등등과 같은 부회장의 비난의 소리였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집에 가서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잘못된 사람인가? 그는 봉사한다고 할 만큼 했고 돈에 있어서는 정말로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였습니다.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명하면 자신만 치졸한 인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회장이 한 말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억이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점검해 보기보다는 악의적인 부회장의 비난에 대하여 분노가 격화되었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들은 이야기를 말 할 수도 없었습니다. 상처는 깊어졌고 그는 상처에 민감해져 상처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상처를 통해 해석해 버렸습니다. 사람은 살다보면 갖가지 상처를 받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하면서 서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고, 상처 받지 않도록 잘 이해해야 합니다.
▶ 상처는 용서로만 메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만 메꿀 수 있습니다.
용서는 능력입니다. 용서는 치유에 가장 기본입니다. 만약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 속에 있는 복수심이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내가 나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용서하는 것은 나를 상처 준 사람을 통해서 내게 들어오는 저주를 끊는 방법입니다.
▶ 유럽에 수도원을 제일 먼저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마카리우스입니다. 그가 수도원을 세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회에 홀로 사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웃 남자와 같이 정겹게 지내다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누구 아이냐고 추궁을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차마 그 남자 이름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카리우스 목사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너무나 뻔뻔한 목사라고 그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위선자라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그 아이를 길렀습니다. 심지어는 업고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다른 목사님이 부임하여서 설교하는 데 아이를 업고 뒷자리에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교인들은 동네 사람들이 챙피하다고 제발 이 교회만은 나오지 말아 달라고 신신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카리우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아이를 업고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지극히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괴로워서 견디다 못 하여 사실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회는 난리가 났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몰려 와서 무릎을 끓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와서 목회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가서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를 조롱하던 이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이 마음의 상처들에 대하여 마5:8-9에서 청결하게, 화평하게 해결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 술이 없으면 살 단 한 시간도 살 수 없는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온 재산을 팔아 술을 마셔 버리고 패가망신하고 말았습니다. 후에 큰 아들은 입에 술을 한 잔도 대지 않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같이 술고래가 되었습니다. 신문기자가 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술을 마시지 않습니까?” “내가 술을 마실 수 있습니까?” 둘째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술을 마십니까?” “내가 술을 안 마실 수 있습니까?” 아버지의 술 때문에 아들은 술을 안 마시게 되었고 둘 째 아들은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전가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 예수님의 탕감비유 교훈(마18:24-35) :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2. 불신의 골을 메꿔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골이 깊이 패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신의 골이 깊다느니 피해의식의 골이 깊다느니 하는 말을 곧 잘합니다.
각자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패인 골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불신의 골짜기를 믿음으로 메우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골짜기에 확신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소극적인 골짜기에 적극성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길들여지고 배운 것이 불신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에 깊게 골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이 불신 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제일 많이 희생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도 이 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 허브 밀러가 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라는 책 속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나이트 클럽이 개업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이제 이 평화로운 마을이 시끄럽게 됐습니다. 젊은 사림들이 술집에 드나들면서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걱정에 휩싸여 교회에서는 철야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철야 기도를 하는 가운데 좀 극성스러운 교인들이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 클럽을 불태워 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불태워달라고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악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건져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는데, 얼마 후, 정말 벼락을 맞고 나이트 클럽이 불타고 말았습니다. 나이트 클럽 주인은 그 사실을 알고, 이 교회를 걸어 고소를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 불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도 때문에 나이트 클럽이 불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라고 책임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하는 말이 진리입니다.
“어느 쪽이 범죄를 했든지 간에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나이트 클럽의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기는 커녕 아예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나이트 클럽 주인의 믿음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능력이 있음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불신앙입니다.
▶ 예수님은 믿지 않는 고향에서 떠나셨음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마13:53-58)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곳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3. 절망의 골을 메꿔야 합니다.
절망과 실의에서 다시 올라오지 않으면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민족적이건 더 이상은 과거를 묻지 말아야합니다. 그 깊은 골을 다시는 떠올리지 말아야합니다. 지난날에 자꾸 메여있으면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 베데스다 연못이라는 곳에 38년동안 병든 몸으로 신음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님이 찾아가셔서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38년동안 신음하는 사람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 38년동안 병든 사람이 무슨 고생을 못했겠습니까? 별별 치료는 다 받아 봤을거에요. 좋다는 약은 다 먹었을거에요. 그런데 너무나 오래 동안 치료되지 못하니까 치료되는 희망도 사라진 사람입니다. 주님이 그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정말로 낫고자 하느냐? 그의 절망의 골을 메운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는 너무나 많은 좌절의 골들이 있습니다.
절망의 골을 기도와 정성과 믿음으로 메워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 전체에 맹인 목사님들이 130분이 있다고 합니다. 은평 침례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김 택수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65년 12월 4일, 19살 때 아버지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가성소다와 청산가리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 솟을 열다가 폭발하여 얼굴에 뒤집어쓰면서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절망의 깊은 심연의 고통 속에서 방항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걸을 걸어가고 있는 데 한 사람이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미는 팔을 만져 보니 손이 없는 손목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손 없는 병신이군요. 나는 두 눈 없는 병신입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그가 말을 받았습니다. <형제여! 나는 두 눈도 없습니다.>
<나보다 더 하군요. 손도 없고 눈도 없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당시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맹인 교회를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는 강 영준 전도사였습니다. 그는 성냥 공장을 하는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목을 잘리고 두 눈을 잃었습니다. 그 후 비관한 그는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런 지경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위로하기는 커녕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네가 그렇게 방탕하니까 그렇게 된 것 아니냐?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예수님을 잘 믿어라.>
어머니의 벼락같은 호령에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서 전도사가 되었다고 간증하면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소망이 있다고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 택수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절망의 골을 잘 메꾸어야 합니다.
▶ 동방의 의인이라 칭하는 욥의 생일은 어떠했는가! 그는 하루아침에 그가 사랑하는 열 남매를 잃었습니다. 종들과 많은 소 떼와 양떼들을 이웃의 불한당들에게 빼앗겨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욥 자신은 무서운 악창이 생겨 문둥병자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욥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 그는 한 때 동방의 의인이라 할 정도로 하나님을 잘 섬겨왔는데 이 꼴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으며,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얼마나 저주스러웠겠는가!
그러나 그는 절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서도 끝내 그 입으로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욥은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하나님이 주셨던 것, 하나님이 가져가셨으니 다만 하나님의 이름만 찬양할찌라.”(1:21)고 하지 않았던가! 참 신앙은 불평할 수밖에 없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은 그를 도우시고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망하지 않는 것이 복 받는 길이요, 원망과 절망하지 않는 믿음이 골짜기를 메우고 주님이 왕림하실 심령의 고속도로를 뚫는 비결입니다.
▶ 가나안 탐정 열사람의 절망적인 보고의 교훈.(민13:31-33, 14:22-23)
절망은 천국에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심한 장애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의 길을 닦는데 먼저 깊은 골을 메웁시다.
상처의 골,
불신의 골,
절망의 골을 이 시간에 다 메워 주님 내 마음에 오시도록 해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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