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사함!생명 얻는!!다시사는 회개!!

[스크랩] 개신교 구원진단(1)

하나님아들 2013. 1. 4. 19:19
16세기 루터에 의한 종교 개혁의 핵심- 이신득의(以信得義)

16세기 종교 개혁 운동의 불을 지폈던 루터는 여러 가지를 주장하였었지만 그의 주장의 핵심은 “오직 믿음” 즉 “이신득의(以信得義)”였습니다.

“이신득의(以信得義)”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사람의 착한 행실 곧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당시 천주교의 구원관은 간단히 말해서 예수를 믿는 믿음과 선행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주교의 사제이며 신학교수였던 루터는 천주교의 가르침대로 금욕과 절제 그리고 고행을 통하여 선행으로 의롭게 되려고 안간힘을 다해보았지만 참 안식과 만족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성경을 연구하던 과정 속에서 시편과 로마서를 통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인 선행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예수 안에서 참 안식과 자유를 얻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루터의 이신득의(以信得義) 가르침을 따르는 개신교

이러한 루터의 깨달음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 보급하면서 겉잡을 수 없게 퍼져나가 종교개혁의 위대한 승리를 가져와 오늘날 종교개혁의 후예들인 개신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모든 개신교들은 루터와 동일한 구원관(이신득의)을 가지고 있으며 루터와 동일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는 교파나 교회는 개신교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이단”으로 분리 취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신교는 루터의 이신득의(以信得義)로 말미암는 종교개혁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하여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 주일로 선포하고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이신득의(以信得義)외에 관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적으로 오늘날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파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구원관은 모두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구원관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에 대한 다른 시각 때문에 교리적인 차이점은 있어도 구원의 핵심인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의 구원에 대한 핵심만은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되 구원을 얻게하는 믿음의 주체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에 따라 장로교와 감리교의 구원관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장로교 즉 칼빈주의는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되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한 사람에게 친히 주셔서 믿게 하신다고 주장하는 반면 감리교 즉 알미니안 주의는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그 믿음의 주체와 책임이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이 믿음의 선택을 하게 된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에 대하여 각 교파의 내용이 매우 다른 차이점들이 있긴 해도 사람이 선행으로 구원 받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주장은 온전히 일치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현실

그렇다면 개신교 신자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이신득의(以信得義) 가르침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상식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현실은 어떠할까요?

30~40년 전에는 너무도 많은 교인들이 이신득의(以信得義)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당시에 “구원파”라 불리우는 교회들이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라고 일반 교회 교인들의 구원 문제를 문제삼아 일반교회 성도들을 많이 미혹하게 되자 각 교회들이 각성하여 구원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졌고 특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의 양육 과정을 통해 급속도로 일반 교회에 구원에 대한 올바른 접근들이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매우 보편적으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폭 넓게 확산되어져 있음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과거 30~40년 전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발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의외로 매우 많은 교인들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미국의 장로교 목사 제임스 케네디에 의해 시작된 전도폭발 훈련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약 20년이 되었습니다. 이 훈련을 받는 실습 기간 중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은 교인들을 대상으로 구원을 체크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구원 문제가 바르게 정립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집니다. 훈련을 받는 많은 훈련생들조차 그 훈련을 받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이신득의의 구원 문제를 정립하게 되고 올바른 구원을 얻고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복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거나 신비주의적인 체험주의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되고 있는 것 또한 주목 할만한 일입니다. 이처럼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신앙을 우리는 율법주의적인 신앙이라고 정의하려고 합니다.


율법주의적인 구원관

  율법주의 구원관이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의미가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의 계명들 그리고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구원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상식에 속한다는듯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하고 재차 물으면 그 대답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에 이르는 은혜의 믿음과 다른 율법적인 믿음에 대한 답을 많이 듣게 됩니다.

  구원 받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뿐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기 위해 힘쓰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계명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이것은 율법주의 구원관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신득의(以信得義)” 믿음 즉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분명 믿음으로만 될수있는 것인데 그 믿음의 내용이라는 것이 율법준수 곧 선행과 행위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주일성수도 잘 못하고 십일조 생활도 잘 못하며 전도도 한 명 못한 주제에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매우 겸손(?)해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의 원인

   루터의 이신득의(以信得義) 종교개혁을 통해 형성된 개신교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목회자들의 착각과 구원 문제에 대한 소홀함이 그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착각은 무엇이며, 소홀함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목회자의 착각이라 함은 목회자 자신이 구원의 올바른 이신득의(以信得義) 복음을 깨닫고 또한 그렇게 성도들을 가르쳤기에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 교인들은 당연히 이 복음을 자신과 같이 알고 믿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계신 목회자분이 계신다면 당장 자신의 교회 성도들 하나하나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리라 봅니다.

  교인들 특히 한국 교회 교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이 아주 강합니다. 어려서부터 한국의 전통적 미신 문화 속에서 형성되어온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마음과 정신이 쉽게 벗겨지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웬만큼 강조하지 않고서는 어쩌다 한두번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것으로서는 결코 인습화된 율법주의적 사고 성향을 뒤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설교를 목회자 중심으로 듣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소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한두 번 가르쳤다고 해서 목회자의 가르침대로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목회자의 순진한 착각이라는 말입니다. 율법적 사고가 인습화 되어있는 교인들은 선행이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설교를 금방 듣고도 설교가 끝나고 나가면서 “목사님 오늘 말씀에 참 은혜를 받았어요. 믿음 생활을 진실되고 열심히 해야 구원을 받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은혜로운 시간이었어요. 열심히 믿음생활해서 구원을 받아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하고 인사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구원 문제를 소홀하게 다룬다 함은 위와 같은 교인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년에 한 두 차례 구원에 대한 설교 하는 것으로 교인들이 구원의 문제를 제대로 정립하고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일컫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 자주자주 말하고 가르치고 강조하여도 자신에게 인습화된 율법적 성향과 다른 내용들은 그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사고 구조에 국수틀 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교인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귀에 못이 박히고 마음에 인이 박히도록 강조해주어야 되는 중요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한두번 그것도 교인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는 식의 설교로는 교인들이 바르게 이신득의(以信得義) 복음을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오셨음에도 제자들은 구약 시대로부터 인습화 된 정치적 메시아로서의 기대감을 벗어 던지지를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와 대항하여 싸우실 의사를 한 번도 밝히신 바 없으셨고 또한 가는 곳 마다 이 땅이 아닌 천국에 대한 교훈을 전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을 예수님이 이루실 때 누가 일등 공신이 되어 그의 우편에 앉겠는가를 다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새삼 천국에 대한 교훈을 다지시고 승천하시려 하시는 순간에도 제자들은 이스라엘을 회복(정치적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고 묻습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시아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이해하고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고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실망으로 예수를 로마 군병들에게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문화를 통해 가슴 깊이 인습화 된 것들은 쉽게 벗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해결책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구원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교회의 풍토를 바꾸는 일과 교인들 하나하나를 개별 상담하여 실체를 파악하고 개별적으로 구원의 문제를 다루어주어야만 합니다.

  첫째 교회의 풍토를 바꾸어야만 합니다. 앞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목회자가 깊이 인식하고 그 어떤 프로그램 보다 구원에 대한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어야만 합니다. 또한 지속적인 강조를 통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구원의 문제의 중요성을 깊이 통감하도록 하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는 동안 부자로 사느냐 아니냐 하는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천국과 지옥의 문제임을 깨닫게 하여야만 합니다. 또한 구원문제에 대한 전문가를 모셔 집회를 하여 구원에 대한 여러 중요성들을 인식하게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평신도들을 구원 상담 전문가로 양성하여 그들로 교인들의 구원 문제를 체크하고 돕도록 하여야 할것입니다.

  둘째는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당신은 구원 받은 확신이 있나요?”라고 질문함으로 개개인의 구원 문제를 체크하며 새롭게 해야만 합니다. 과거 구원파가 이런 질문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서 이 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질문은 개개인의 구원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이 질문을 일상화하고 특히 목회자와 교사들이 이 질문을 개인적으로 활성화 시켜서 개개인의 구원 문제를 철저히 파악하고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특히 새로 등록한 새신자들은 등록 심방으로부터 몇차례 여러 교사로부터 질문하여 돕도록 하여야만 합니다.


당신을 향한 질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 질문을 드리길 원합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나요?
  오늘밤 죽게된다해도 천국에 갈 것을 자신하십니까?
또한 당신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구원에 대한 개별적 상담이 필요하신 분은 전화하세요. 기꺼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구원 클리닉 원장/ 정진국 목사
  연락처/  02) 482-9195, 486-4491, 011-9011-0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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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제2의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관을 재확립하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출처 : 사랑과 영혼의 편안한 쉼터
글쓴이 : 푸른초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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