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기 전에 앞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전체 숲을 잘 보아야합니다. 그래야 잘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했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이 요한계시록은 절대 어려운 말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요한계시록은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쓰여 진 서신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에 보면 요한계시록을 쓰고 있는 사도요한과 이 글을 받고 있는 초대교회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나라 안에 있음으로 인해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함께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 가운데서 함께 인내하고 있습니다(“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고난 받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두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고난 받는 가운데 하나님은 지금도 과연 살아계십니까? 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전에 살아 있는 것처럼 지금도 살아있고, 세세토록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내가 전에는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있고 앞으로 영원토록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러면 지금도 살아 계시다면 우리가 고난을 받는 가운데 어디에 계시며,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고난 받는 너희가운데 내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고난 받은 일곱 교회 가운데 금 촛대를 보여주십니다. 촛대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초대교회가 고난 받고 있을 때 고난 받는 교회 사이를 다니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있는 교회 사이를 다니고 계십니까?
첫째는, 고난 받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위로하십니까?
/예수님께서 허리에 금띠를 띠신 제사장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난 받을 때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자신의 발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이십니다. “나도 이 세상에 있을 때 풀무불과 같은 환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 환난의 풀무불이 내 발을 빛난 주석과 같이 빛나게 했다 너희도 환난가운데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세상에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더 빛나는 정금과 같게 만듭니다.
/또 예수님의 입에는 끊어지지 않은 많은 물소리와 같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내가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나는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옆에 있는 성도님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두려워하지 마십시오/예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교회와 성도들이 고난을 받을 때 예수님은 고난 받는 교회와 성도들 사이를 다니시면서 위로해주십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 교회 사이를 다니시면서 위로만 해주지 않습니다. 초대교회가 고난을 받고 있지만 그 교회 안에 내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2)그래서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 교회와 성도들 사이를 다니시는 두 번째 이유는 고난 받는 가운데 교회의 내부를 감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을 먼저 보아야합니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우리를 불꽃과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받는 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합니다. 고난 받는 가운데 내 안에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합니다. 또 내 안에 세상의 죄가 없는지 살펴보아야합니다. 또 나의 신앙이 죽은 신앙이 아닌지 살펴보아야합니다. 또 내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식어져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합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이야기입니다.
/3)또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 교회와 성도들 사이를 다니시는 세 번째 이유는 고난 받는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초대교회는 당시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로 인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또 로마정부를 통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는 그 사람들 배후에는 바로 사탄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부터는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 세상과 사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하늘의 보좌가 나옵니다. 그 보좌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습이 깨끗한 벽옥과 같고 붉은 홍보석과 같고, 보좌 뒤에 무지개가 있는데 녹 보석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깨끗한 벽옥과 같이 공의와 정직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보니까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 세상과 사탄으로부터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이 붉은 홍보석 같습니다. 붉은 홍보석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보좌의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 세상과 사탄에 대한 심판의 책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시려 합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과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 받는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을 주는 이 세상과 사탄에 대한 심판의 책이 모두 일곱 두루마리인데, 일곱 인으로 봉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일곱 인으로 봉하여져 있는 이 두루마리에 있는 인을 떼어서, 이 심판의 책을 펼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두루마리에 인을 떼어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의 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의 책을 펼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을 주는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는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일곱 두루마리에 인을 떼시며, 그 책을 펼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내가 보매 어린 양(예수님)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고신대 송영목 교수님은 일곱 두루마리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곱 인을 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일 밖에 있는 첫째 인을 뗄 때 흰말이 나옵니다. 둘째 인을 뗄 때 붉은 말이 나옵니다. 셋째 인을 뗄 때 검은 말이 나옵니다. 넷째 인을 뗄 때 청황색 말이 나옵니다. 다섯째 인을 뗄 때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기도가 나옵니다. 여섯째 인을 뗄 때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나옵니다. 그리고 일곱째 인을 뗄 때 일곱 나팔이 울려집니다. 일곱 나팔은 이 세상의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릴 때에 이 세상과 사탄에 대한 심판이 나옵니다. 이것이 일곱 대접의 심판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루마리 책을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는 이 세상과 사탄에 대한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첫 번째 두루마리 책에서 다섯 번째 두루마리 책까지는 왜 이 세상과 사탄이 심판을 받아야하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첫 번째 두루마리 책을 열어보니까 흰말이 나오는데 그 흰말을 탄자가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합니다. 여기서 흰말을 탄자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계5장5절에서는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예수그리스도)가 이겼으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초림 때 십자가에서 세상과 사탄을 이기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현재에도 이기고 또 미래에도 계속해서 이기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과 사탄을 벌써 이기셨는데, 또 왜 이기시려고 합니까?
이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명절 때 마다 추어탕을 먹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청도분이라 청도추어탕은 먹습니다. 청도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삶아서 채에 뼈를 걸러냅니다. 그렇게 하면 추어탕물이 말갛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 추어탕을 만드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추어탕을 만들기 위해서 미꾸라지를 통에 넣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립니다. 그러면 미꾸라지는 결정적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소금을 친 미꾸라지가 이제 죽었다 생각하고 뚜껑을 열면 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꾸라지는 소금을 치면 결정적으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 않습니다. 소금을 친 미꾸라지는 자신이 죽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더 활개를 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는 세상과 사탄의 모습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미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기셨다고 한다면,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더 이상 사탄으로 인한 고난이 없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사탄으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패한 사탄이 자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을 줄로 생각하고, 소금 친 미꾸라지처럼 날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12:12“---마귀가 자기의 (죽을)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려갔음이라”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기셨는데, 또 왜 이기시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사탄이 자신의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생각하고, 소금 친 미꾸라지처럼 날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탄에 대해서 잘못된 두 가지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탄을 너무 강력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결정적으로 패했습니다. 지금 사탄이 날 뛰는 것은 이미 소금을 친 미꾸라지가 날 뛰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을 친 미꾸라지가 아무리 강력하게 역사해도 결국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을 지나치게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사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사탄은 이미 죽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사탄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 사탄의 가장 큰 전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지금도 사탄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특별히 사탄은 자신의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을 줍니까?
3절과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읽지는 말 것)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검)을 받았더라
두 번째 인을 떼니까 붉은 말과 그 말을 탄 자가 나옵니다. 이것은 사탄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화평을 깨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우리가 서로 화평을 깨고, 서로 싸우게 함으로 우리에게 고난을 줍니다.
또 5절과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읽지는 말 것).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세 번째 인을 떼니까 검은 말과 그 말을 탄자가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사탄이 가난을 주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보면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밀 한 되”나 “보리 석 되”라고 합니다. 또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는 한 사람이 하루에 먹을 양식입니다. 한 사람의 가장이 하루 종일 일을 하면 적어도 네 식구의 돈을 벌어야합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일을 해도 가장 한 사람만 먹고 살 수 있는 돈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겨우 먹고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감람유와 포도주는 헤치지 말라고 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초대교회 당시 서민의 생활필수품입니다. 그래서 굶지는 않지만 가난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우리에게 가난을 통한 고난을 줍니다.
또 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읽지는 말 것).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네 번째 인에서는 청황색 말과 그 탄자가 나옵니다. 이것은 사탄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질병과 죽음으로 고난을 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서로 싸울 때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게 하니까 붉은 색 말입니다. 또 중국에 가서 북한 사람을 보니까 키가 작고 피부가 검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하게 하니까 검은 색 말입니다. 병들고 죽게 하니까 청황색 말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인에서는 그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기도가 나옵니다. 9절부터 11절까지를 보시기 바랍니다(읽지는 말 것).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느 때 까지 입니까? 하나님 어느 때 까지 우리가 이 고난을 받아야합니까? 우리에게 불화를 주고, 가난을 주고, 질병을 주고, 죽음을 주는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실 때가 언제입니까?”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순교자의 수가 찰 때까지”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순교자의 수가 찬다는 말은 단순히 숫자적으로 순교자의 수가 찬다는 말씀도 되지만, 문맥으로 보면 순교자의 기도가 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순교자의 기도가 완전히 찰 때 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던 세상과 사탄이 완전히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여섯째 인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12-17절-읽지는 말 것).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마지막 날에 심판하려고 하십니까?
그것은 이 세상과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세상과 사탄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그 순교자들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이 세상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일곱 두루마리의 내용입니다. 또 요한계시록 전체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자신이 죽을 때가 얼마 되지 않을 줄 알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고난을 줍니다. 사탄은 사소한 일로 우리가 서로 싸우게 합니다. 또 가난하게 합니다. 또 병들게 합니다. 초대교회는 죽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고난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대 사탄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낙심을 줍니다. 또 절망을 줍니다. 또 불안을 줍니다. 우리에게 조급함을 줍니다. 또 우리로 한걸음도 걸어가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있는 이 모든 고난들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는 붉은 말 탄자가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가난을 주는 검은 말 탄자가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질병과 죽음을 주는 청황색 말 탄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 성경을 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런 사탄의 시험과 고난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 이런 사탄의 고난과 시험에 대해서 굴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고난과 시험을 주는 사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미 이기셨고, 또 이기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질병으로 인한 고난이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 배후에 청황색 말 탄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에게 질병을 주는 그 말 탄자를 이미 이기셨습니다. 또 이기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병들게 하는 사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가정에 불화가 있습니까? 또 인간관계로 인한 불화가 있습니까? 그 배후에 붉은 색 말 탄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이미 그 말 탄 자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기시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서로 불화하게 하고, 싸우게 만드는 사탄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있습니까? 그 배후에 검은색 말 탄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에게 가난을 주는 말 탄 자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기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앞으로의 인생을 볼 때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또 낙심이 되십니까? 절망이 되십니까? 그 배후에 우리에게 두려움과 절망을 주는 사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두려움과 절망을 주는 사탄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이미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이기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우리에게 그 어떤 절망과 두려움과 낙심을 주어도 절대 넘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날마다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갑니다.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양 편에 기독도를 죽이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무 두려워서 그 길을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때 전도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 사자는 이빨이 빠져 있고, 또 다리는 이미 착고에 메여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도가 말합니다. 아니 언제 저렇게 되었습니까? 그때 전도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이미 사자의 이빨을 뽑으시고, 발을 묶으셨다 저 울부짖는 사자는 이빨 빠진 사자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중간으로 바로 걸어가라 그러면 네 머리털 끝 하나도 상하지 않으리라고 합니다. 이 말을 믿고 기독도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사자가 삼킬 듯이 울부짖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걸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아무리 큰 소리로 위협해도 이빨 빠진 사자입니다. 종이호랑이와 같습니다. 사탄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이기시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도의 눈물이 찰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순교자들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어느 때까지입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순교자의 기도가 찰 때까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이때 우리는 언제까지 기도해야합니까? 하나님의 제단에 우리의 기도의 눈물이 찰 때까지 기도해야합니다. 저는 올해 초부터 저의 카카오톡에 이런 메시지를 올리고 있습니다. “네 눈물이 찰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눈물이 찰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이 이 땅에 내려올 때까지 3주가 걸렸습니다. 왜 하나님의 보좌에 이미 응답이 된 기도가 이 땅에 내려오는데 3주가 걸렸습니까? 선한 천사가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오는데, 악한 천사인 사탄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주가 걸렸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3주 동안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이 기도의 눈물은 절대 절망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의 눈물이 차면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가 서로 싸우게 만들고, 가난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고, 낙심을 주는 사탄을 이기시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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