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라 엡4:11-16
할렐루야!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목사님도 사랑--옆사람과 인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주시고 살게 해주시는 사랑입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상한 마음에 하나님의 위로함을 주시고 삶에 지치고 문제 있는 것이 예배중에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한해를 결산하는 당회를 오후예배후에 합니다. 당회를 통하여 그동안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퇴보했는지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보고서를 통하여 각자의 신앙을 점검하게 됩니다. 내 신앙은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면 오늘 다시한번 하나님이 기회를 다시 주시면 열심을 품고 뜨거운 열정으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당회는 내년도 일꾼도 선택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감리교회에 총회, 연회, 지방회, 구역회, 당회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2014년 당회를 은혜롭게 하고나니 2015년도에는 각 가정마다 복을 주셔서 가정마다 잘 되고 교회도 재정으로는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번 2015년도 당회에서도 여러분이 은혜중에 진행되도록 도우시고, 일꾼이 선택될 때에도 못해요. 하지말고 아멘으로 받으셔서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셔서 이번 당회도 즐겁고 웃음이 가득찬 당회가 되시고 2016년도에도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그리고 우리교회위에 하나님의 은헤와 축복이 풍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당회 때에 여러분은 여러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약속은 소중한 것입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신뢰받고 인정받고 마침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약속이라 할지라도 약속이기에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을 크게 세 가지 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자신과의 약속을 많이 합니다. 이것을 결심한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자신과의 약속들을 가지고 살아오셨습니까? 그리고 그 약속한 일에 얼마나 성실하게 지켜왔습니까? 자기 자신과의 약속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약속이 아닐까요?
2)다른 사람과의 약속입니다. 한 심리학자가 울타리 있는 운동장과 울타리 없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놀게 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가 없는 운동장에서는 운동장 중앙에서만 노는 반면에 울타리가 있는 운동장에서는 전체 운동장을 다 쓰면서 노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교훈해 줍니까? 울타리가 있어야 사람의 폭이 넓어지고 오히려 더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 사회의 약속은 바로 이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켜야 우리에게는 더욱 폭넓은 자유와 기쁨이 주어지게 됩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가족 간의 약속일 수도 있고 공동체간의 약속일수도 있습니다. 약속은 속박과 굴레가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는 복된 것입니다. 가족들 간의 약속이 지켜지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그러나 약속이 깨지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공동체에도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공동체는 활력이 넘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도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맡은 사명이며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교사의 사명을 맡았으면 한 해 동안 그 사명의 자리를 잘 지키며 성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찬양대의 사명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직분들이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서 그 사명을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3)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약속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소중한 약속이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약속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과의 약속,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에만 충실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약속까지 감당해야 하고 오히려 하나님과의 약속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에 세상의 성공과는 다른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축복이 아닙니다. 하늘의 신비한 복이며 또한 이 땅에서의 복이 하나님의 약속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며 또한 교회와의 약속이요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태어난 아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자라나지 않으면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문기둥에 자를 만들어 놓고 키를 재면서 금을 그어놓던 생각이 납니다. 매월 표시를 하면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신이 났던 것을 생각합니다. 어느 날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키 재는 것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성장이 늦어지면서 재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들에게서 다른 성장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내적인 실력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어 실력이 자라나고 있었고, 사고의 능력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성숙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부모를 걱정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많이 자라났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기뻤습니다. 자녀들의 성장과 성숙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특히 성장을 해야 할 때에 성장하여야 하고 성숙하여야 할 때 성숙하여야 합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성장과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키가크면 뭐라고 합니까? 엄마 여기 위공기는 맑고 좋은데 아래공기는 어때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여야 합니다. 성장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신앙의 연륜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상태가 자라나야 합니다. 진정한 성장은 단순한 외형적인 성장이 아니라 내적인 성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나이는 어려도 성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는 들어도 미성숙한 사람을 봅니다. 신앙도 오래 믿노라 하였지만 신앙적으로는 미숙한 사람이 있고 얼마 믿지는 않았지만 성숙한 신앙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세상적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만을 하면 사는가 하면 처음부터 확실한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을 향하여 자라나기를 소원하며 권면합니다. 믿음 안에서 귀하게 성장하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신앙의 지도자로서 바울은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항상 기대하며 살았던 바울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을 기억하면서 온전한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였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얼마나 자라났습니까? 신앙이 얼마나 성장하였는가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믿음이 퇴보되지는 않았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믿음은 성장하고 있는가? 성장이란 교회 생활이 오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 자라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나는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사는가’,‘날마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가’, ‘이전 보다 더욱 충성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실감하며 사는가’,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가? 더욱 열심히 충성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기준인가’ 세상 일에는 열심히 하는데 주의 일은 등한히 하고는 있지 않는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신앙인으로 자라나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깨닫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본문을 통하여 어떠한 성장이 있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성장하는 신앙인은 어떠한 신앙인일까요?
1.예수님을 닮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성장의 분명한 목표를 제공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가 분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목표는 직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인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종교에 익숙한 사람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관습에 익숙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깝게 여기며 살았습니까?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말씀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교회를 다닌다면 교인은 되어도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은 지나도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사는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였습니다. 철저하게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작은 예수로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주님을 본받고 자신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기를 원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닮아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잘못된 사람을 멀리 하고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면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머무르게 되고 성장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속임수로 우리를 신앙의 길에서 멀리하게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지만 그러한 것이 나의 신앙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도리어 예수님을 멀리하며 신앙을 까먹을 수도 있습니다. 악한 자와 함께 하면 악한 자가 망할 때에 함께 망하게 됩니다. 복된 자와 함께 하면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 신앙적인 사람을 만나면 신앙이 자랄 수도 있지만 비신앙적인 사람을 만나면 신앙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사람 때문에 낙심하기도 합니다.
신앙적인 사람과 함께 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하여야 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시1:1절‘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했습니다. 예수님을 닮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지를 못한다면 성경적으로 사는 사람과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가까이 하는 사람을 따라가게 됩니다. 불평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불평하는 사람이 되고 찬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찬양의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 누구와 함께 하며 살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 길을 걸어갈 것인가를 정하여야 합니다. 자신과 함께 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의 비결은 믿는 일에 하나 되고 아는 일에 하나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믿는 것을 믿어야 하고 주님이 아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가지신 믿음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자신을 찾는 이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자라려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이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신나게 행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날마다 자라나는 신앙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2.헌신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수고하고 헌신하는 신앙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신앙은 십자가를 지는 신앙입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희생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희생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신앙은 자신의 짐을 지려고 하지 않고 헌신과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받기는 좋아해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은 받으려고 하면서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희생과 헌신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으려고 하는 것은 많고 교회를 통하여 얻으려고 하는 것은 많아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며 헌신하려고 하는 마음이 적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긴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 성도들의 모습은 교회나 하나님에 대한 기대는 높아도 충성은 적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짐을 지는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충성과 헌신이 고난은 아닙니다. 기쁨이며 즐거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짐을 지라고 하셨지만 그 짐은 쉽고 가볍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지는 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은 가볍고 신나는 것이 됩니다. 허리가 아픈 할머니가 손자를 업어주는 것은 기쁨입니다. 행복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하고 헌신하며 봉사하면 그것은 행복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면 헌신의 사람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매 해마다 헌신과 수고가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년 더욱 큰 헌신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는 비결은 헌신하며 사는 것입니다. 복된 신앙의 길을 걷기를 원한다면 헌신으로 시작하십시오. 헌신한 만큼의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뿌린 만큼 거두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일군으로 세우셨음을 가르칩니다. 다양한 일군으로 삼으셨음을 가르칩니다. 여러 가지 일군을 세우셨지만 모두에게 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봉사의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라고 우리를 나름대로 일군으로 삼으셨습니다. 헌신이 절대로 희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신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욱 큰 일을 맡겨 주십니다. 작은 헌신은 더욱 큰 헌신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더욱 큰 일을 맡겨 주셨으며 작은 일에도 충성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았습니다. 주님을 업은 나귀 새끼는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더욱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헌신이 축복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헌신은 많은 축복을 거두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헌신에는 상급, 혜택이 있다. 성경은 그 상급, 혜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매년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힘을 다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한 평생 해마다 나아지는 충성의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떻게 하면 헌신하며 살 수 있을까요? 헌신은 철저한 포기입니다, 신앙은 포기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보좌를 포기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절대적인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풍성한 추수를 하려면 종자를 과감하게 땅에 버리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헌신을 통하여 세워집니다.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하여 세워집니다. 교회는 순교자의 피위에 세워집니다. 우리 교회도 이미 과거의 많은 헌신적인 성도들의 헌신을 통하여 세워졌습니다. 부흥하는 교회, 축복받는 성도는 헌신하는 교회와 성도입니다. 우리가 계산하면 하나님도 계산합니다. 헌신 위에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교회는 헌신을 교육하여야 하며 강조하여야 하며 참된 교회의 지도자는 헌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헌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복된 교회가 되려면 헌신은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헌신을 하지 않게 되며 헌신이 없으면 상급이 없게 됩니다. 교회가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면 다른 것들이 헌신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땅에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좋은 결과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투자하고 헌신하여야 합니다.
3.천국가지 갈 수 있는 믿음으로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성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자라난 것이 평생 자란 것이라고 합니다. 5학년까지 자라나고 자라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장은 20세까지 자라고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 자라날 수 있으며 자라나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의 성장이 계속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항상 부족함을 느껴야 합니다. 신앙이 계속 성장하려면 자기만족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족하는 순간 신앙은 추락합니다. 교만하면 신앙이 떨어집니다. 계속 배우려고 하여야 하며 더욱 높은 신앙의 차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올해 많이 자라났다고 만족하며 떨어집니다.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평생을 달려 가야하는 것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소경의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을 떠서 자신의 부족을 보고 충족하기를 원합니다. 습관이 되어야 하고 삶의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습관은 자신은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삶이 몸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치과에서 금속으로 된 이를 끼우면 처음에는 잘 맞지 않고 어색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몸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진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일부가 되어서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신앙은 천국으로 갈 때까지 올라가야할 점차적인 과정입니다.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습관이 되기 위하여 할 것이 있습니다. 성장을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할 습관은 무엇입니까? 경건의 시간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드리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십일조, 주일성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성도를 섬기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4.아름다운 연합을 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시133:1절‘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 곁에서 인격과 신앙으로, 지혜와 지식으로, 믿음과 사랑으로 가르쳐주고 조언해 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붙들어 주고, 물질적으로 도움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의 손길이 부모이거나 형제자매이거나 스승이거나 친구이거나 이웃사람이거나, 성공한 사람들 곁에는 항상 사랑의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깨어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반면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랑의 손길들이 너무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고 바르게 세워주는 사람들,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관계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멘토(Mentor)라고 합니다.
‘멘토’란 말은 ‘오딧세이’에 나오는 노인의 이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할 때 사랑하는 아들을 믿을 만한 친구에게 맡기고 떠났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멘토였습니다. 오딧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기간동안 멘토는 친구의 아들을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가르쳐주면서 삶의 안내자가 되고 상담자가 되고 후원자가 되어 주어서 결국 훌륭한 왕자로 키워냈습니다. 그 이후 멘토라는 그의 이름이 현대인들에게 새롭게 부각되어서, ‘신앙과 인격으로, 믿음과 사랑으로 지혜와 지식으로 한 인생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 조언자, 도움을 주는 조력자, 영향을 주는 자’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새롭게 부각된 ‘멘토’라는 말에서 행복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며 깨닫고 있습니다.
누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까? 자기 곁에 좋은 멘토들을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좋은 멘토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제 새롭게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어디서건 평소에 사랑하고 존경해 온 사람을 멘토로 모시는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멘토가 될 때 멋진 인생이 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 가정문제를 비롯해서 삶의 모든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힘에 부쳐 쉽게 절망하고 포기해서 결국 실패와 파탄으로 끝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험난한 세상 파도와 싸워야 하는 오늘날,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며 돌봐줄 ‘멘토’가 곁에 있어 준다면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좋은 멘토가 됩시다. 서로 서로에게 좋은 멘토가 됩시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숙한 신앙인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마지막으로 연합하는 능력을 가르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독불장군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양보를 할 줄 모릅니다. 함께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전체를 위하여 양보할 줄 압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자신을 낮출 줄 압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목표는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자라나는 것을 기대하며 서로 연합합니다. 교회는 연합을 잘해야 합니다.
교회의 덕을 생각하면서 양보하고 살아갑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고집에 얽매이지만 성숙한 사람일수록 조화를 이룰 줄 안다. 자신을 교회의 한 지체임을 알고 삽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상태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서는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며 삽니다. 순식간에 그 분 앞에 서는 날이 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서지 말아야 합니다. 성숙된 신앙인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닮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헌신하며 사는 신앙인인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계속 자라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연합을 하는 신앙인인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성장하여 하늘의 상급을 받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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